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촌평
조희연 『극우시대가 온다』, 한울 2026
시민운동가 지식인의 공화주의적 전환
이일영 李日榮
경제학자, 한신대 교수
ilee@hs.ac.kr
조희연은 스스로 자신 안에 세명의 조희연이 공존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1980년대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1990년대 시민운동가로서, 2014년 이후에는 교육행정가로서 얼굴을 지니게 되었다. 서울시교육감 3선 임기를 마치고 나서는 은퇴생활을 도모하는 중이었는데, 12·3 계엄을 계기로 다시 분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이번에 『극우시대가 온다: 햇볕정치와 공화적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책을 들고 지식인과 시민운동가로 돌아왔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극우시대를 막으려면 전환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환의 방도로 공화적 햇볕정치와 공화적 민주시민교육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조희연은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무엇이 두려운지/항상 바늘 끝을 떨고 있다”는 민영규의 시 「떨리는 지남철」을 자주 인용한다. 조희연은 전과 같이 지남철의 떨림 그 자체를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지남철이 가리키는 방향을 좀더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 방향은 공화주의이다.
그는 공화주의 사상을 정면에서 제기하기보다 자신의 실천경험을 재구성하여 정치·교육 영역에서의 공화주의적 전환을 논의한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한계를, 2부에서는 공화주의라는 인식틀 내지 개념을, 3부는 공화주의적 정치양식으로서의 ‘햇볕정치’를, 4부는 공화적 교육개혁으로서의 민주시민교육을 논의한다.
그의 시대인식은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고 극우시대가 눈앞에 와 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범여권과 범야권의 정치구도는 5 대 5에 가깝다는 것, 극우정당의 약진은 전지구적 현상이라는 것, 극우는 자발적 대중운동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등을 지적한다. 그는 장기 민주화시대가 지금의 ‘성공의 위기’를 가져왔다고 본다. 민주화시대의 정치언어는 ‘내로남불’로 수렴했고, 자유와 권리의 확대는 개인과 집단의 최대이익주의 경향 또한 확대했다. 민주화가 모든 개인이 정치적 주체성과 전투성을 내면화하게 하고 사회 도처에 최대이익을 위한 전투성이 경쟁적으로 분출되는 역설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조희연은 전환적 사고와 선택을 절박하게 촉구하는데, 이는 자신의 독특한 공화주의 인식틀을 바탕으로 한다. 그는 지금까지의 공화주의 사상가들을 검토하거나 공화주의를 사상 차원에서 체계화하는 대신, 당대의 현실경험에서 길어올린 공화주의 개념을 제시한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빈틈을 메우는 공화성, 공화적 인식틀, 공화적 이니셔티브 등 여러 개념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가 말하는 공화성은 70%의 확신과 30%의 성찰, 즉 3-7제 민주주의로 표현된다. 이제는 100%의 확신이 아니라 70%의 확신으로 싸워야 하는 시대이며, 민주진보가 스스로를 예외적 존재로 규정하여 진영의 극단성을 강화하지 말고 어떤 의제도 상대방의 주장도 30%는 살펴볼 만하다는 성찰성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3-7제 민주주의, 공화적 정치의 실천전략으로 ‘햇볕정치’를 제안한다. 이는 김대중의 햇볕정책과 (보수·진보, 여야, 지역균열을 횡단하는) 포용정치에 노무현의 진정성의 정치를 결합하자는 것이다. 햇볕정치는 새로운 정치양식으로서의 공화적 이니셔티브인데, 다섯가지 유형으로 제시된다. 첫째는 민주화시대의 그늘의 의제(부정선거 음모론 등)를 양지로 끌어올려 공적 의제로 만드는 정치이며, 둘째는 직접 민주주의형 정치이다. 후자는 권리와 책임을 연계함으로써 최대이익주의의 권리투쟁이 낳는 극단성을 완화하는 전략이다. 셋째는 ‘내로남불’에 대응해 일반적 규칙을 정립하는 협치형 정치, 넷째는 민주화운동의 헌신성을 되살리는 자기희생형 정치, 다섯째는 정치적 올바름이 공포가 아니라 해방이 되는 정치이다. 그는 이러한 햇볕정치를 통해 대중의 극단성과 과도한 전투성을 융해하고 우리 안의 일면성·극단성을 성찰하여 극우를 떠받치는 근거를 약화하고자 한다.
이 책은 또한 공화적 민주시민교육으로의 전환을 핵심적 실천과제로 제시한다. 이는 그간의 진보 교육운동에 대한 반성에 입각한 시각이다. 민주시민교육은 그동안 민주적 전투성을 지닌 시민을 길러내는 역할을 했으나 이제는 민주적 공동체성을 실천하는 역량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조희연은 민주주의 원리가 주권, 자유, 권리, 자율이라면 공화주의 원리는 공동체성, 공공선, 참여, 책임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공화적 민주시민교육의 핵심은 다양한 차원의 공존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는 배움의 속도가 다른 존재들과의 공존, 정치적 신념이나 사회경제적 지위가 다른 집단과의 공존, 자연과의 공존, 국가와 민족을 넘어선 공존, AI시대 기술과의 성찰적 공존 등을 포함한다.
한국의 사회과학계에서는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독자적이고 개성적인 아이디어를 체계화한 사회과학자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일이 쉽지 않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조희연이 사회과학자로서 한 문턱을 넘어섰다는 느낌이 들어 반가웠다. 그는 이론과 실천의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 현실에 밀착한 나름의 사회과학 사상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조희연은 과거 급진민주주의를 제기한 바 있다. 그런데 『극우시대가 온다』에서는 국가사회주의와 장기 민주화시대 민주정의 한계를 분명히 언급한다. 그리고 민주정을 민주‘공화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생각을 펼치고 있다.
평자는 공화주의 사상을 구성하는 핵심요소를 혼합정체(고전적 공화주의), 시민적 도덕(신아테네 공화주의), 비지배 자유(신로마 공화주의)라고 이해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소수나 다수의 사적 이익·지배를 넘어서기 위한 것들이다. 그 가운데 조희연이 이 책에서 근본적 요소로 다루고 있는 것은 시민적 도덕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제시한 햇볕정치는 정치체제라기보다는 시민적 도덕에 입각한 정치양식이다. 그리고 그는 민주공화정으로의 전환은 궁극적으로 공화적 시민성을 기르고 공존을 가능케 하는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런데 이 책은 공화주의적 전환의 배경, 이유, 필요성 등에 치중하다보니 교육공화주의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다. 교육 현실에서는 이미 만인 대 만인의 폭력적인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 교육공화주의의 대안으로는 민주시민교육 외에도 학생들의 살인적 경쟁을 완화하기 위한 거시적 환경을 만들고 평가제도와 교원양성체계 등에서의 제도개혁이 필요할 것이다. 이후 추가적인 논의를 기대해본다.
또 한가지 덧붙이자면, 사회경제적 대안이 깊숙이 논의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이는 정치체제 내지 정치개혁 의제에 집중된 지금까지의 공화주의 논의에서 반드시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다. 조희연은 87년체제의 사회경제적 형해화를 넘어서는 개혁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완충국가’와 ‘기본소득형 신복지체제’를 짤막하게 언급하고 지나간다. 평자는 새로운 공화주의 대안의 요소로 비지배관계의 경제체제를 지향하는 경제공화주의, 세계체제 카오스에 대응하는 글로벌·남북 공화주의, 구조적인 지역불균형에 대응하는 지역공화주의를 논의한 바 있다(『새 공화주의 경제 체제』, 박영률출판사 2025). 추후 상호학습과 토론이 이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