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통일시대’를 여는 자세
얼마 전 신문에서 끊겼던 경의선 철도를 잇는다는 소식과 함께 노선도가 실린 것을 보면서 문득 숨이 트이는 느낌을 받은 것은 비단 일개인의 소회가 아닐 것이다. 그같은 해방감은 우리의 공간이 현실에서나 상상에서나 얼마나 갇혀 있었는지 새삼 확인하는 씁쓸함과, 북한과 그 너머 대륙으로 열려갈 선로에 과연 무엇을 싣고 나르느냐 하는 문제가 이제 당면 사안으로 제기되었다는 숙연함을 동반한다.
이번 특집은 통일을 주제로 삼았다. 사실 본지로서는 분단현실과 통일의 문제에 대해서 줄곧 남다른 공력을 쏟아왔다. 간혹 거대담론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은 것은, 그를 제쳐놓고 우리 사회를 진단하는 일이 일면적일 수밖에 없다는 믿음에서였다. 그럼에도 통일이라는 과제가 피부로 다가오기로는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작금의 사태들은 일종의 질적인 비약에 해당하는 것이다. 남북의 분단은 재일조선인 등 한민족공동체의 분단이기도 했으니 이제 그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되었으며, 한미행정협정(SOFA) 개정 협상이 그나마 진척된 것도 그간 남한사회의 민주화는 물론이고 정상회담 이후 달라진 분위기에 힘입은 바 크다. 이번 특집 제목을 ‘분단시대에서 통일시대로’로 정한 것은 우리가 한국사의 한 중요한 전환점에 접어들었다는 실감에서다. 물론 여기에는, 후퇴의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면서 이 고비를 제대로 감당할 때 비로소 새로운 시대가 열려가리라는 다짐도 들어 있다.
남북정상의 만남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통일과업에 갖는 의미는 엄청나지만, 그것으로 통일문제의 난해함이 단번에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남북한만이 아니라 국제 역학관계, 나아가 전지구적 자본주의체제라는 다차원의 변수들이 작동하고 있다. 그런만큼 새 고비를 맞아 우리의 시야를 한층 넓힐 필요가 있겠거니와, 이것이 남한 현실에 대한 깊은 이해와 별개가 아니라는 인식도 중요하다. 남한주민으로서는 무엇보다도 자기 ‘지역’의 문제에 충실할 일이다. 남북의 통합이 양쪽 성원 모두에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제공하는 그런 통합이 되기 위해서도, 남한사회의 개혁을 든든히할 필요가 있다.
의약분업을 둘러싼 최근의 의료분쟁에서 보듯 개혁에의 사회적 합의를 이룩하기가 만만치 않다. ‘모두 한 핏줄’이라는 수사가 만병통치의 처방이 못됨은 물론이다. 이번 분쟁은 결국 ‘밥그릇 싸움’이라는 비난의 소리도 드높은데, 밥그릇 싸움 자체야 탓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마땅히 받아야 할 만큼의 몫을 요구하는 것이냐, 나아가 어느만큼이 과연 적정한 몫이냐 하는 점인데, 이는 어떤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인가 하는 대국적인 물음과 맞물리는 문제다. 통일을 예비하는 시각에서 사회개혁의 적절한 수위와 기준을 찾아가는 지혜가 요구되는 싯점이다.
원로사학자 강만길 교수와 국제문제 전문가 김경원 교수, 소장철학자 홍윤기 교수에 본지 편집인 백낙청 교수가 함께한 좌담에서는 한반도의 운명을 여러 각도에서 진단하고 우리의 과제를 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각자의 발제문을 미리 돌려본 후 이야기를 풀어가는 새 형식을 시도해보았는데, 심도깊은 논의를 진행하자는 취지가 십분 달성되었지 싶다. 특집의 두 글은 좌담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한 부분들을 보완한다. 서로의 좋은 점을 합치고 그렇지 못한 점을 줄여가는 것이 내실있는 통일의 길이라면, 장세훈씨는 근대도시 형성에서 드러난 남북의 공통점과 차이를 밝히면서 그 길을 모색한다. 정현백 교수는 여성주의 시각에서 통일운동이 민족주의를 넘어서 평화운동 속에 자리잡을 필요성을 역설한다. 논단의 두 글도 특집과 연계하여 읽을 만하다. 지난호 특집에 대한 논평을 겸한 이주희씨의 글은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싯점에서 남한의 사회운동들을 재검토하며, 월러스틴은 동구권 몰락 이후 동구만이 ‘문제’인 듯 다루는 풍토를 비판하고 이를 근대 세계체제의 태생적 고질인 인종주의와 연결짓는다. 북한의 개방만이 관건인 듯 여기기 십상인 우리 현실에도 시의적절한 지적이다.
특집과 관련한 이야기가 길어지다보니, 다른 글들에 대해서는 소략하게밖에 언급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 의미를 작게 보아서는 물론 아니다. 문학란부터가 창작과 비평 모두 풍성하다. 창비시선 200권째 발간을 기념하여 열다섯 분을 한자리에 모신 이번 시란에서는 신경림·고은 등 원로에서 신진에 이르기까지 각기 고유한 시세계를 다채로운 언어로 펼쳐낸다. 소설로는, 착잡한 가족사와의 따뜻한 화해에 도달하는 송기원의 「폰개 성」을 비롯하여, 열심히 달려온 삶의 허망함을 들여다보는 김인숙, 입담과 해학이 돋보이는 김종광의 깔끔한 소품이 어우러진다. 비평에서는 임규찬·이명원 두 분의 평론에 윤지관·류신씨의 서평까지 가세해, 근자의 중요한 창작성과들을 고루 짚어보는 자리가 되었다.
이필렬 교수의 논단은 특히 일독을 권한다. 기술혁명의 가능태와 그 사회적·문화적 함의를 짚어준 계몽적이고도 문제제기적인 글이다. 박신의·서반석씨의 문화시평도 흥미롭다. 각기 미술계 행사와 한글 로마자 표기법이라는 특정 사안을 소상히 다루면서도, 한국의 ‘안과 밖’을 통찰함에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 미처 거명은 못했지만 현장통신·서평·촌평·문화평 필자들께 감사드리며, 끝으로 두어 가지 ‘공지사항’을 전할까 한다.
우선 본지는 오는 10월께 창비시선 200권 발간을 기념하는 씸포지엄을 열 예정이다. 자세한 일정은 조만간 홈페이지(http://www.changbi.com)에 게시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바로 홈페이지와 관련된 사항이다. 우리는 새로운 의사소통의 마당으로 싸이버공간에 주목하며, 그것이 종이매체인 잡지와 상호 상승효과를 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가령 독자편지란을 활성화하는 통로도 될 터인데, 씸포지엄과 독자편지, 홈페이지에 대한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김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