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고통의 공유를 위하여
김형경 장편소설 『꽃피는 고래』
정주아 鄭珠娥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기억의 서사와 망자 추모의 형식-김원일론」 등이 있다. har00@paran.com
급속한 산업발전의 시대를 통과하면서 우리는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인내하는 법을 배웠다. 교육현장에 적용된 성장의 문법도 마찬가지다. 위인전의 주인공들은 어렸을 때도 철없이 보채고 울지 않았다. 훌륭한 어른이 되려면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고통을 표현하는 방법, 상실한 대상을 애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미래를 위한 현재적 고통의 보류라는 논리는 성장담론의 정치학적 성격을 보여준다. 도시화의 완성과 더불어 나타난 현대사회의 정신병리적 징후들, 예컨대 무차별적 살인, 은둔형 외톨이(히끼꼬모리), 집단 따돌림 등은 출구를 찾지 못한 고통과 분노가 왜곡되어 표출되는 현상이다.
문학은 오랫동안 상처입은 개인의 내면을 보듬는 역할을 해왔다. 김형경(金炯璟)의 문학은 개인을 파멸로 몰아넣는 성장담론의 정치학에 맞선다. 작가는 시와 소설, 에쎄이를 넘나들며 파편화된 개인의 고통과 절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통을 정직하게 표현해야 삶이 행복해진다는 평범한, 그러나 어른의 세계에서는 실천하기 힘든 원리는 그녀의 문학을 떠받치는 힘이다. 장편 『꽃피는 고래』(창비 2008) 역시 상실의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에 대한 본격적인 모색이다. 작가는 부모를 잃은 소녀‘니은’의 상실감을‘처용포’라는 훼손된 고향에 밀어닥친 망각의 위기와 병치시켜놓았다. 니은은 자신의 운명에 절망하고 상실감을 분노로 표현한다. 그러나 니은은 과거 고래잡이 항구였던 처용포가 산업단지로 변화하는 광경을 보면서 또다른 거대한 상실의 과정을 목격한다. 이로써 개인의 고통을 치유하는 과정은‘고향’에 담긴 공동체적 감각의 복원과정과 겹쳐진다. 자폐적인 몰입을 벗어나 세계와 고통을 공유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 이것은 어설픈 어른 흉내내기보다 근본적인 삶의 과제로 등장한다.
『꽃피는 고래』는 외형상 니은의 성장담을 축으로 하지만, 니은이 세계와 겨루는 능동성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성장서사라 하긴 어렵다. 대신 그녀는 아버지의 고향으로 돌아가 세계와 소통하는 방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 니은의 아버지는 니은 대신 서사를 주동하는 인물이다. 그는 소설 초반에 죽음을 맞지만, 그가 니은에게 내주었던 고래에 관한 수수께끼는 소설의 결말부까지 유효하다. 니은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몰두한다. 니은의 아버지는 부재의 상태로 등장하여, 니은을‘처용포’라는 근원적 고향으로 안내하고 고래의 기원을 묻도록 만든다. 그리고 마침내 니은이 공동체의 세계를 이해하도록 이끈다. 이와같은 구도는 신탁에 따라 주인공이 세계의 비의를 풀어가는 신화의 서사구도와 닮았다. 소설에 등장하는 각종 신화와 민담, 노래들은 신탁의 음성이 지상에 전달되기 위해 필요한 장치들로, 니은이 공동체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한 실마리가 된다.
특히 처용포의 근대사와 관련된‘고래’는 아직 처용포 주민들의 기억에 생생한‘살아있는 역사’로서 지역적·시대적 상실감의 상징이다. 니은이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처용포 주민들이 지닌‘고래’의 존재감을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니은이‘고래’와 관련된 두가지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그대로 『꽃피는 고래』의 서사를 지배하는 두 축이 된다.
첫번째 과제는 아버지가 생전에 니은에게 수수께끼처럼 말했던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10면)라는 노랫말을 풀이하는 일이다. 아버지로부터 처용포의 신화와 전설을 듣고 자란 니은은 여전히 옛날 처용포의 정서를 간직한 사람들을 만난다. 처용포의‘대왕고래’라 불리는 장포수 할아버지는 환경오염으로 황폐해진 처용포의 땅에 묵묵히 한그루씩 나무를 심어나간다. 버려진 동물들에게 매일 먹이를 주는 왕고래집 할머니는 오갈 데 없는 니은에게도 따뜻한 밥상을 차려준다. 옛날이야기에 담긴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가 그들의 삶에는 그대로 남아 있다. 처용포식 삶을 잊지 않는 한 처용포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절실한 그리움이 그들의 일상을 지배한다.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의 뜻을 스스로 알아내라는 아버지의 주문은 결국 처용포의 정서를 공유하라는 의미이다.
니은에게 주어진 또다른 과제는 두개의‘고래축제’의 의미를 분간하는 것이다. 이 두 고래축제는 처용포가 맞이한 망각의 위기를 부각시키는 계기가 된다. 하나는 처용포 주민이 기억하는 과거의 고래축제이다. 처용포 주민에게‘진짜 고래축제’는 땀 흘린 노동과 그만큼의 수확이 주는 풍요로움으로, 정신과 물질의 균형에서 나오는 생의 충만함으로 기억된다. 다른 하나는 장차 처용포 지역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될‘고래축제’프로젝트다. 처용포에는 대규모 고래박물관이 들어서고 관광객을 위한 테마파크와 생태공원이 생길 예정이다. 처용포 주민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가짜 고래축제’가‘진짜 고래축제’와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주민들에게 고래박물관은 아직 개개인의 삶 속에서 생생하게 존재하는 처용포의 현장성을 이미 죽은 역사로 규정하려는 폭력적인 기제로 다가온다. 처용포 주민들의 거부감은 장포수가 낡은 포경선을 고래박물관에 넘기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삽화를 통해 강화된다. 결국 장포수는 남몰래 포경선을 끌고 바다로 사라진다. 물이 새는 포경선을 몰고 생의 마지막 고래잡이에 나선 장포수의 결단이란, 처용포가 죽는 광경을 지켜보느니 차라리 그 역사와 더불어 사라지는 편을 택하겠다는 강력한 거부의 행위로 읽힌다.
소설의 결말부에서 니은은 장포수의 이야기를 세계로 전하는 음유시인의 역할을 맡게 된다. 처용포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할 만큼 니은은 사라진 땅 처용포의 정서를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비로소‘고래’라는 존재에 대해 설명할 수는 없지만 “공기나 햇살처럼 몸으로 느낄 수는 있었다”(268면)고 고백한다. 부모를 잃고 자폐적인 절망에 갇혀 있던 니은이 세계와 온몸으로 다시 소통을 시작하는 순간이다.
최근 젊은 세대 작가의 소설들은 개인의 도저한 절망만이 울려퍼질 뿐 출구라곤 없어 보이는 현실을 그린다. 이때 개인의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을 공동체적 감각의 복원에서 찾은 『꽃피는 고래』의 세계관은 분명 이질적이다. 고통의 현장을 묘사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너머에 있는 회복의 가능성들을 말하는 김형경의 이야기는, 현실적 실현의 여부를 떠나, 우선은 따뜻하고 반갑다. 니은의 성장이 아버지의 가르침 속에 제한되어 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그만큼 어린 주인공이 홀로 세계와 만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겨우 자신의 절망을 세계와 공유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점에서, 니은의 미래도 소설의 결말도 열려 있다. 그 새로운 출발점에서 니은이 보여주는 이야기는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