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문학평론

 

공장과 고향

『박영근 전집』을 읽으며

 

 

황현산 黃鉉産

문학평론가, 고려대 명예교수. 저서로 『얼굴 없는 희망』 『말과 시간의 깊이』 『잘 표현된 불행』 『밤이 선생이다』 『우물에서 하늘 보기』 등이 있음. septuor@daum.net

 

 

박영근(朴永根, 1958~2006)의 생전에 그와 비교적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도 최근에 실천문학사에서 발간된 권당 800여면 분량의 두권 전집(박영근전집 간행위원회 엮음)을 보고는 조금 놀랐을 것이다. 그가 이렇게 많은 글을 썼구나. 시작품을 모은 1권은 『취업 공고판 앞에서』(청사 1984) 『대열』(풀빛 1987) 『김미순전』(실천문학사 1993)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창작과비평사 1997) 『저 꽃이 불편하다』(창작과비평사 2002) 등 그가 생전에 상재한 다섯권 시집과 유고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창비 2007)에 수록되었던 시편들과 기왕의 시집에 들어가지 못했던 시편들을 담고 있다. 산문을 모은 2권은 네권의 책을 묶은 셈이지만 그 가운데 출간된 것은 두권뿐이다. 『공장 옥상에 올라』(풀빛 1984)는 부제 ‘일하는 사람들의 짧은 이야기’가 말하듯 공장 노동자들의 일기와 편지와 수기 형식의 글을 모은 산문집이다. 뒤에 ‘소리 대본’ 「돌멩이 날으는 소리」가 첨가되어 있어서 이 소사한 이야기들의 방향성을 짐작하게 한다. 『오늘, 나는 시의 숲길을 걷는다』(실천문학사 2004)는 부제가 ‘박영근의 시 읽기’다. 이 시평집의 좋은 짝이 되었을 3부 ‘박영근의 시집 읽기’는 원고가 완비되었지만 단행본으로 출간되지 못했다. 4부 ‘박영근의 시평들’에는 앞의 평문들 이후에 쓴 시비평들이, 5부 ‘문화시평·기타’에는 문예지와 신문, 전시회 도록 등에 흩어져 있던 저자의 비평문과 단평, 분류하기 어려운 여타의 글이 한데 묶여 있다. 전집에 부록으로 붙은 ‘작품 연보’는 개별 시편과 산문 들의 집필시기와 최초 발표지면, 집필과 발표의 정황 등을 간결하면서도 신실하게 알려준다.

이 길지 않은 글은 박영근의 전집에 실린 여섯권의 시집을 대상으로 이 시인의 변모과정과 우리의 현대시에 그가 남긴 발자취와 그 의의를 간략하게 살펴보려는 것이다. 그의 산문이 물론 이 일에 도움을 줄 것이다. 박영근을 흔히 노동자시인이라고 말하지만, 그 말은 그가 어떨 때는 노동자였고 어떨 때는 시인이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에게서 노동의 조건은 곧 시작(詩作)의 조건이었고, 시적 서정은 곧 한 노동자의 감정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역사가 있다.

첫 시집 『취업 공고판 앞에서』는 유신 말기와 신군부 시절 이 땅의 노동자들이 겪어낼 수밖에 없었던 토대 없고 불안정한 삶의 실상을 비애의 어조로 읊은 시편들로 채워졌다. 그러나 시적 화자의 목소리에서 곧바로 한사람의 노동자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는 내내 가난한 도시의 빈민들에 대해 말한다. 물론 그들은 야근하는 사람들이고,

 

야근을 마치고, 얼룩져 패인 작업복들로

돌아오는 만석동 온밤 내 살별들 떨어져 뒹굴고

어느새 갯바람은 비린내처럼

쿡쿡 쑤시는 실밥들처럼 불어와

이미 울어버린 스무 살,

「새벽길 1」 부분

 

부실한 일터나마 일터가 있는 사람들이지만,

허기진 형광등 불빛 아래 뒹구는

시간들 곁에 엎드려 며칠째

일감은 들어오지 않고 미싱틀 위에서 졸고 있는

친구들 (…)

「앞날을 향하여」 부분

 

도시의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이거나, 거기에서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강제이주를 당해야 하는 사람들로 더 자주 나타난다.

 

가자, 가자 또 어느 언덕바지 어두운

빗줄기 속에서 남쪽 하늘을 바라볼 것인가

계고장 움켜쥐고 손이라도

흔들 것인가, 정이월 눈보라 건너

이 거리 저 바닥에

철없이 봄빛 쏟아질 때.

「철거민 1」 부분

 

그리고 무엇보다도 늘 고향의 기억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돌아오너라, 해창벌 밀물이 들어도 어둡고

돈 한 푼에 팔려서 네 아우들

헛주먹 감추고 떠나고 있으니

싸락눈 내려 쌓이는 노루목

흐린 서울길 지우며 큰바람 울 때

「고향의 말 4」 부분

 

70년대와 80년대 초에 한국에 노동자는 많아도 노동자계층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고 말해야 할까. 도시의 많은 빈민들이 자기 자신을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벗어나 무슨 횡액처럼 도시 변두리에 표류한 사람으로 생각했을까. 그들은 아마도 자신이 영원히 고향에 돌아가지 못할 팔자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을 바라보는 시인 자신의 시선에 더 많은 해답이 있을지 모른다. “학교 도서관에서 많은 책을 읽고 고향 친구와 선배 집에서 김지하, 고은, 황석영, 이호철, 최일남의 작품과 『창작과비평』 『사상계』 등을 탐독”하고, “더는 억압적인 학교생활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자퇴”한 후, “문학을 하겠다는 꿈을 품고 상경”(‘시인 연보’, 1792면)한 이 문학청년에게 이 시기는 자신의 시정과 현실을 대질하는 기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는 시를 현실로 굳게 다지려 하면서 현실을 시만큼 높이 들어올리려 했다. 그는 첫 시집의 맨끝에 배열한 시 「서시(序詩)」에 이런 시구를 적어 넣는다.

 

맺히도록 분명하게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고 부딪치고

부딪쳐서 굳어진 것들을 흔들고

흔들어 마침내

다른 모든 생명들과 함께

흐르는 힘을

시라고 부르고 싶다.

 

그는 이 첫 시집에서 종종 이런 힘을 증명해 보였다. ‘수유리’ 연작에서 그러했고, 무엇보다도 저 유명한 시 「솔아 푸른 솔아」에서 그러했다. 그러나 그 힘을 대대적으로 만나고 창조까지 하기 위해서는 80년대를 더 많이 살아야 했다. 두번째 시집 『대열』이 나온 것은 1987년이다.

『대열』은 한편으로는 군사독재의 폭압과 싸우고 한편으로는 횡포와 싸워온 투쟁의 일지고 그 노래다. 시는 늘 씩씩하고 단 한번도 굽힐 줄 모르는 결의에 차 있다. 이 긴 싸움의 기록을 작성하면서 시인은 뜻이 중요할 때는 뜻을 강조하고 노래가 필요할 때는 노래의 음조를 한껏 높인다. 늘 새로운 무기가 필요한 시인은 온갖 시의 형식을 실험하며, 산문시에 운문시를 덧붙이고, 공장의 낙서판을 그대로 전사(轉寫)하고, 목소리를 바꾸어가며 긴 시와 짧은 시를 번갈아 썼지만, 어떤 형식도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시의 재능이나 기운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같은 싸움이 오래 반복되었고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시인은 현실과 시의 접점을 놓치지 않았다. 「소식지를 보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아아 와야 할 것은 무엇일까

오르는 생계비의 거친 파도에 뒤집혀

우리들의 임금은 물거품이 되고

우리들의 바보노동은

캄캄한 저임금의 절벽을 타고

잘려나간 친구의 손목을 밟고 오르고

 

현실의 절망이 깊은 곳에 시정도 깊다. 그러나 깊이는 얼마나 아슬아슬하고 허약한 자리에 뚫려 있는가. 「농성장의 밤 3」의 한 구절이다.

 

혜순아, 우리들 가슴마다 성에처럼 답답하게 낀

네 모습을 우리는 비겁함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부끄러움으로 짓물러터진 네 눈물을 밟고

농성장 네가 떠난 빈자리를 돌며

어허야 몹쓸 세상 풍물판을 벌인다

 

이 시와 거의 같은 시기에 썼을 산문들의 이런저런 대목을 읽다보면 시인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사고했으며, 그것이 어떻게 삶의 이해로 이어졌는지를 알게 된다. 이를테면 이런 글이 있다. “휴식벨이 울려 화장실을 가면서 출하부 휴게실을 힐끗 쳐다보니, 운짱들과 상차(上車)하는 일용직 근로자들이 모여 화투판을 벌이고 있다. 아무리 호로를 씌운다 해도 비 내리는 곳에서 박스 더미를 상차시키기란 여간 까다로운 짓거리가 아닌가 보다. 내리는 비에 휴식복이 굴러떨어졌음인지 매우 흡족한 표정들이다. 이놈의 세상 이리 가도 망통이요 저리 흘러도 망통이다. 팔자에 없는 송학이 날아든들 소주값밖에 더 되겄느냐.”(「16. 포장 센터」, 292면) 투쟁의 재능도 시의 재능도 재능은 항상 구체성이다. 『대열』의 노동투쟁시들이 여전히 어떤 열기와 흥취를 지니는 것은 시인이 늘 이 구체성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집 『김미순전』은 동구권이 무너지고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이 정치와 경제의 틀을 바꾼 이후에 출간된 시집이다. 시집 첫머리 시에 가득 차 있는 비극감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비바다 한밤중을 건너

바람더러

들판더러

가야 할 길 물어물어

떠나는 흰 새벽

피에 젖은

까막 눈망울에

아려오는 뜨거운 눈물에

아아, 하늘도 불타라

「눈먼 새」 부분

 

동구권의 몰락은 조국의 미래를 위해 일관되게 투쟁해온 사람들에게, 역사의 끝에 사회주의 세상이 있다고 생각했건 않았건 간에, 깊은 충격을 주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빈 가마를 메고 가는 것이 아닌지 의심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모든 상징이 사라진 깃발을 들고 가는 것만 같았다. 삶의 시간이 역사로 이어진다는 증거 하나가 사라졌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박영근은 그런 사람들에 속했다.

 

세월은

푸르른 하늘에

스러지는 낮달이 쓰고 가는

허튼 소식 몇 자

 

세월은

공장 담벼락 아래 취업 공고판

제 얼굴도

이름도 잊고 서성거리는

꺼칠한 바람

「세월」 부분

 

사람이 사는 시간에 역사가 그 ‘얼굴’과 ‘이름’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인간의 사회생활이 그 의미를 잃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축적되는 것이 없다. 가진 것은 몸밖에 없는 노동자의 삶은 더욱 그러하다. 프롤레타리아가 주력을 담당하는 역사적 전망이 무산되는 순간에 프롤레타리아 시인 박영근은 자신의 프롤레타리아적 삶의 성격을 가장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으며, 그것이 그를 더욱 현실주의자가 되게 했다.

시집 제목이 ‘김미순전’이었던 것은 시집 전체 분량의 3분지 2를 차지하는 장시 「김미순전」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장시는 공장 주변의 ‘날라리’였다가 권력의 프락치였다가 노동투사로 죽음을 맞이하는 한 여공의 이야기다. 발표 당시 김지하(金芝河)의 「오적」이나 「비어」의 전통을 이었다고 평가되었지만, 이 평가는 시의 구조나 내용보다는 두 시인 모두에게 익숙한 판소리의 가락과 장단에 더 많이 기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지하의 풍자적 장시들이 알레고리의 사실주의적 가치를 알게 해준다면 박영근의 장시는 사실과 그 서술이 지닌 알레고리적 힘을 재인식시킨다. 시인이 『김미순전』의 후기에 썼던 다음과 같은 말은 아마도 현실이 지닌 이 알레고리적 힘을 염두에 두고 음미되어야 할 것이다. ‘문학’은 언제나 현실의 유착을 깨뜨리는 알레고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 시집이 씌어지는 동안 나를 가장 곤혹스럽게 한 것은 절망의 포즈들이었다. 변화한 것과 변할 수 없는 것을 함께 바라보려는 인내와 통찰력 없이, 자본의 논리에 그대로 한몸이 된 지식인 언론의 예단과 흥분 속에 자신을 맡기는 모습들이야말로 운동의 침체와 함께 벽이었다. (…) 참으로, 그런 과장 없이, 변화해가는 현실과 변할 수 없는 현실운동의 진보적 지향 사이에 긴장으로 자신을 채우는 것이야말로 문학 하는 일의 자세가 아니던가. (2797면)

 

시인의 나이 서른아홉에 출간한 시집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는 시편들이 두 주제를 중심으로 엮여 있다. 첫번째 주제는 민족분단의 현실과 그 모순이다. 그가 보기에 이 땅에서의 삶은 늘 반만 사는 삶이다. 그가 꿈속에서 다시 군인이 되었을 때도,

 

가령 꿈속에서 너는 아직도 나를 끌고 다닌다

어스름에 춥게 떨고 있는 강물 건너

인민군 막사 위로 펄럭이는 깃발과

군복을 입은 소년들이 제식훈련을 하는 연병장을 가리키며

어서 건너가라 어깨를 친다

「꿈속에서」 부분

 

남한의 광고방송에서 북한을 볼 때도,

 

까까머리 아이를 업은 웬 여인이

배급받은 옥수수자루를 머리에 이고

억새가 하얀 둑길을 지나

평안북도 박천군이라고 씌어진

남한 TV 자막 위를 걸어간다

CF를 위하여 1」 부분

 

백두산 천지(天池)의 동영상을 볼 때도,

 

너는 그렇게 오리라

남과 북, 붉은 정지 신호등을 풀고

헬로우 스포츠카의 정통 엘란을 타고

오장육부 도처에 체인점을 세우며

「천지(天池)를 생각하며」 부분

 

조국 땅 도처에 울타리를 치고 있는 미군부대를 볼 때도(「용산에서 1·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귀순’해온 사내를 만날 때도(「김봉수, 1982」), 처참하게 살해된 기지촌 여인을 애도할 때도(「윤금이」), 그는 갈 수 없는 조국땅의 반쪽과 만날 수 없는 동포들을 생각한다. 시의 중심축이 계층모순에서 민족모순으로 넘어가는 것은 그가 노동 일선에서 물러섰기 때문만은 아니다. 저 『김미순전』의 후기에서 언급했던 ‘절망’ 이후, 그는 무엇보다도 현실을 다른 깊이에서, 원거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그는 이 시집의 후기에서 “나에게 민중, 혹은 문학은 여전히 하나의 가능성이며, 가야 할 미래로서의 새로움”이라고 썼다. ‘민중’과 ‘문학’을 동일시하는 사념의 이면에는 물론 양과 질, 그리고 그 질의 변화에 대한 성찰이 있다. ‘미래’란 곧 그 변화에 대한 알레고리적 표현이다.

그러나 그는 같은 후기에서 “어둠과 절망을 제대로 살아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새삼스럽게 가슴이 뜨거워온다”(2799면)라고도 썼으며, 이는 시집의 두 중심축 가운데 하나를 형성하고 있는 또 하나의 주제와 연결된다. 자신이 이미 젊지 않다는 시인의 자각이다. 이 주제는 매우 하찮아 보이지만 앞의 주제와 미묘하게 연결된다. 시인은 현실과의 투쟁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의 요청에서도 한발짝 물러서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시집의 표제시가 된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에서 시인은 이렇게 읊는다.

 

TV 뉴스 속에선 한총련 아이들 최루탄처럼 구호를 터트리고

내 귀엔 환청처럼 들리고

대낮 뜨겁게 타오르던 해가

페퍼포그 연기 속에서 복면을 한다

 

꽃들이 일제히 모가지를 꺾고 파업을 했는가

 

시위하는 학생들의 구호가 환청처럼 들리는 것은 시인 자신이 그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이며, 대낮의 해가 복면을 쓰는 것은 현실의 명백한 요청 너머에 또 하나의 불분명한, 그러나 중대한 요청이 있다는 것이다. 꽃들의 파업은 시인 자신의 열정이 수그러들었다는 뜻만을 담지는 않는다. 이 거센 노동운동가가 ‘파업’이라는 말을 허투루 쓸 수 있겠는가. 꽃들은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일을 한다. 시인은 과거의 기억을 미래에 던진다.

그러나 시인 자신이 살아서 누릴 수 있는 미래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저 꽃이 불편하다』는 그가 생전에 출간한 마지막 시집이다. 아직 젊은 나이에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시인의 시집은 슬프다. 이 슬픔은 시인이 쓸쓸한 사람이 되어 떠돌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집에는 한번 읽을 때와 다시 한번 읽을 때가 다른 시편들이 가득하여 그 이해의 길에 한량이 없다. 그 한량없음은 그가 내내 몸 바쳐온 투쟁과 그 자신이 당사자였던 역사를, 그 투쟁과 역사 밖에 있는 어떤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잎도 꽃도 남김없이 지워버린 뒤

눈도 그쳐 허름한

늙은 산

 

나무들 이름도 꽃 모양도 잊어버린 산

 

그 산길 외진 바위 곁 잔설 위에서

얼어가는 깃털 하나를 보았다

 

아, 새였던가

「늙은 산」 전문

 

시인은 물론 “얼어가는 깃털 하나”에 자기 자신을 투사했을 것이다. 죽은 새는 겨우 그 깃털 하나로 제가 생명이었던 것을 표현하는데, 그 생명을 끌어안는 듯이 보였던 겨울산은 고요하고 냉정하다. 이 노동자시인에게는 회한만이 남아 있는 것일까. 아니, 그보다는 자신의 생각이 늘 짧았으며, 자신의 투쟁이 늘 좁고 허술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시인인 이 노동자는 세상의 저 고요함과 냉정함 속에 또 하나의 길들이 무한하게 숨어 있다고 생각하기도 할 것이다. 사람들이 역사적이라고 지칭하고 그 지칭에 진정으로 부합하는 것들은 지금 이 순간 현실의 역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가치에 마침내 도달하기 마련이고 ‘역사’의 진정한 가치가 거기 있다고 시는 내내 믿어왔다. 박영근은 이 시기에 자신의 처지에 자주 ‘행려(行旅)’라는 이름을 붙였다. 실제로 시인은 이 무렵 상당한 기간 동안 행려자에 가까운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이 표현은 그에게 모든 선택이 열려 있음을 말해주기도 했다. 그는 어떤 날카로운 지혜와 깊은 감정에 도달했다. 이와 관련하여 지극히 복잡한 감정으로밖에는 읽을 수 없는 시 「길 위에서」(1535면)는 다음과 같은 두 연으로 끝난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저 거대한 담벽

그 너머 어두운 소문으로 몰려와 나를 부르는 소리

 

길 위에 내 몸을 눕힐 수 있는 곳

천막 농성장엔 아내가 있을 게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게다

 

그가 노동자시인으로 사는 동안 살벌한 전쟁터였을 뿐인 “천막 농성장”이 이제는 행려자인 그에게 가장 편하게 몸을 눕힐 수 있는 자리가 된다. 게다가 그 농성장은 가정의 형식을 지니기까지 한다. 농성장 천막과 행려의 거리와 생존의 싸움터와 집은 이제 구분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은 “얼굴을 가리고 있는 저 거대한 담벽”이다. 이 얼굴 없는 담벼락은 “나무들 이름도 꽃 모양도 잊어버린” 저 겨울산과 같다. 시인이 늘 그리워하던 고향의 모습이 실제로는 이 막막함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이 또한 시의 신비일 것 같기도 하다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는 시인의 1주기에 그의 문우들이 엮은 유고시집이다. 『저 꽃이 불편하다』 출간 이후 죽음 전까지 4년 남짓한 기간에 발표했던 시들을 발표시기에 따라 배열하였다. 두 시집의 주제와 정조는 크게 다르지 않기에, 저 얼굴 없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시 한편만을 인용하기로 한다.

 

인제 산촌(山村) 어디쯤인가 지나는데

눈보라가

외딴집 한 채를 비켜가네

 

거기서 나는 보느니

눈 맞으며

눈 맞으며

마당가 빈 나무 밑을 서성대는

누렁이 한 마리

훗날

먼 데

내 모양일레

 

지게문을 열고

머릿수건을 쓴 늙은 어머니

흰빛만 쌓여가는 마당을 물끄러미 내다보네

「인제를 지나며」 전문

 

2003년 『시와반시』 여름호에 발표했던 시이다. 시인은 자신의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예감하며 이 시를 썼다. 눈보라가 비켜가는 외딴집은 얼굴 아닌 얼굴이 벌써 비쳐 있는 자리이다. 죽음 뒤에 남은 기운 같은, 무너져버린 집의 그림자 같은, 외딴 그 집은 물질의 무심한 힘도 눈감고 지나간다. “훗날”의 “먼 데”는 말할 것도 없이 저 생에서 시인이 다시 헤매게 될 자리이다. 시인은 이승에서 다 해결하지 못한 업이 남아 저 생에서도 누렁개로 처량한 생명에 시달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 얼굴 없는 것들의 얼굴을 내내 찾았던 덕이 있어 눈보라도 비켜가는 특별한 자리에서 그나마 “빈 나무 밑”을 서성인다. 누렁개의 삶은 그래서 인간으로 살았던 삶보다 더 나쁜 삶이 아니다. 그만큼 시인은 다른 생에서 저 얼굴 없는 것에 더 가까이 가 있다. “머릿수건을 쓴 늙은 어머니”가 지게문을 열고 무심하게, 눈 쌓이는 마당에서 자신이 보는 줄도 모르고 바라보는 것은 신비할 것도 없는 삶의 이 신비이다. 시인은 이제 혁명전사가 아니지만, 그러나 또한 이 무심한 어머니도 아니다. 박영근이 병든 몸으로 그랬던 것처럼, 저 얼굴 없는 무심함의 얼굴을 그리려고 애써야 할 업이 시인에게는 남아 있다. 말로 치러야 할 업을 말하지 않음으로 갚을 수는 없다. 그 갚음이 없이는 무심함이란 말이 없을 것이며, 그 무심함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는 곳에서는 얼굴 없는 것들의 없음조차도 없다. 얼굴 없는 것들은 그렇게 무심하다. 그러나 그 무심함 안에서 인간은 투쟁하고 사랑하고 미래를 설계한다.

시인 김해자(金海慈)는 이 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가 단행본으로 출간될 때, 그 발문에서 박영근이 설파했던 시론의 한토막을 이런 말로 전한다.

 

빙그레 웃으며 커피 한잔 달라고 한다. 커피 물이 팔팔 끓는 그 짧은 시간, 옆에 앉아 중얼거린다. “시의 몸은 말이야, 변혁의 절박성을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내용과 형식의 결합이야. 시를 낳게 하는 긴박한 현실과 삶의 에너지, 그 싱싱함을 뭘로 대체할 수 있겠어.” 이야기를 듣는 사이 고양이 한마리가 훌쩍 경계를 뛰어넘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 자리의 실천이 경계를 뛰어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박영근은 알고 있었겠지만, 그 자신이 경계를 뛰어넘고 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다른 세상 사람이 되어 경계를 뛰어넘었지만 “변혁의 절박성을 온몸으로 밀고” 나갈 때도 “긴박한 현실과 삶의 에너지”로 쓴 그 시가 모두 경계의 초월이었다. 그 얼굴 없는 담벼락 밖에, 그 경계 밖에 그가 찾는 고향이 있었다. 그는 노동자로 위장한 시인이었고 시인으로 위장한 노동자였으며, 저 얼굴 없는 것들 앞에서 노동자시인으로 위장하여 제 얼굴을 가렸다. 

황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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