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E. T. A. 호프만 『모래 사나이』, 창비 2017
불확실한 시대의 시민과 예술가
성은애 成銀愛
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finching@gmail.com
“병든 작품”이라는 괴테의 평에 사로잡혀서인지, 호프만(Hoffmann, 1776~1822)은 낭만주의 시대 작가들 중에서도 특별히 기괴하다는 선입견이 있다. 그래서 그 ‘괴상한’ 이야기 가운데 일부는 오펜바흐의 오페라나 차이꼽스끼의 발레 등, 각색을 통해서 순화되고 탈색된 채로 유통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렇듯 명성만 자자하고 원전에 접근할 기회는 많지 않은 상황에서, 표제작인 「모래 사나이」 외에 「황금 항아리」 「키 작은 차헤스, 위대한 치노버」 「스뀌데리 부인」까지 총 네편의 중단편이 수록된 이 선집(황종인 옮김)은 ‘환상문학’(littérature fantastique)의 핵심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호프만의 세계를 간략하고 밀도 있게 담고 있다.
또도로프(T. Todorov)의 말대로 “어떤 기이한 사건의 성질에 대한 독자—중심인물에 동일시된 독자—의 망설임”(『환상문학 서설』, 최애영 옮김, 일월서각 2013, 303면)을 근거로 하는 환상문학의 속성은 일상적 현실과 초자연적 세계가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거나 반대로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전통적인 판타지에 비해, 일상적-초자연적 세계의 경계를 불안정하게 설정했다는 점에서 현대 독자의 감성에 좀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상업주의에 침윤된 현대의 판타지 장르가 대개 무기력한 현실에서 일시적으로 탈출하여 억압 없는 백일몽의 세계 속에서 고통 없는 싸움을 즐기게 해줄 뿐이라고 여기는 독자라면 호프만에게서 진정한 ‘환상문학’의 본류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호프만에게 환상은 도피처가 아니라 끊임없이 현실로 되돌아오게 하는 어떤 것이며, 그 내부에 환상 자체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동반하고 있다. 호프만의 이야기에는 시공간적 설정이 매우 구체적인 현실로 주어지며, 초자연적인 요소들은 좀비나 괴물처럼 한순간 당당하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애매모호하고 은밀하게 일상을 파고든다. 환상의 세계가 일상과 구별되는 제2의 현실인지, 아니면 열병이나 광기, 술, 약물 등으로 인한 착란의 결과인지도 알 수 없다. 참과 거짓, 이성과 광기, 자연과 초자연의 경계가 유동적인 이 세계는 주인공과 독자를 모두 불안하게 만든다.
이러한 망설임과 불안의 세계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아마도 호프만 자신을 현실적으로 가장 괴롭혔을 문제, 즉 계몽주의적 이성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예술시장에 내던져진 예술가의 운명이다. 이 선집에 수록된 네 작품에는 모두 호프만 당대의 시민사회와 그것을 초월하는 환상(허구 혹은 예술)의 세계가 공존하며, 인물들은 경계가 불분명한 세계들 사이를 오가며 ‘시인’ 혹은 ‘예술가’로 성장해간다. 그리고 여기서 ‘시인’은 낭만주의 시대의 흔한 용법에 따라 ‘완벽한 인간’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네 작품 중 가장 낭만적인 결말을 보여주는 「황금 항아리」의 주인공 안젤무스는 베로니카로 대표되는 드레스덴의 시민적 일상의 세계와 세르펜티나(뱀)로 대표되는 신화적 세계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결국에는 신화의 세계로 ‘승천’하여 “시 속에서” 살게 된다. 세속의 물욕에 갇힌 구차하고 옹졸한 시대에 뱀의 노래를 알아듣는 시적 심성을 지닌 젊은이가, 인간으로 태어난 샐러맨더(불도롱뇽)인 린트호르스트의 신화적 세계를 복원하는 것이다. 문서관장 린트호르스트의 서재는 자연의 인식과 고전의 섭렵이 동일시되는 유토피아적인 공간이며, 제목의 ‘황금 항아리’는 황금이 더이상 교환가치를 지니지 않는, 현실과 전혀 ‘다른’ 세계를 암시한다.
「모래 사나이」의 주인공 나타나엘의 운명은 안젤무스에 비하면 확연히 비극적이다. 그 역시 “시적인 마음”의 소유자로, 남다른 통찰과 예민함을 갖추었지만 바로 그러한 성향으로 인해 클라라-로타어로 대표되는 시민사회에서 점점 고립되고 파멸해간다. 계몽주의적 이성이 몸에 밴 클라라는 나타나엘이 겪는 공포가 모두 그의 마음속에서만 일어난 일이며 현실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지만, 이에 대한 서술자의 태도는 좀더 모호하다. 「키 작은 차헤스, 위대한 치노버」에서는 합리성을 빙자하여 착취의 시스템을 떠받치고 있는 계몽주의에 대한 비판이 좀더 두드러지지만, 이와 동시에 계몽주의의 세상에서 은밀하게 살아남은 환상과 마법이 어떻게 이기심과 탐욕의 추구에 적극적으로 봉사하는가도 보여준다. 제목과 달리 종장의 주인공이 된 발타자어는 환상의 세계를 경험하고 계몽주의적 세계에서도 잘 살아남을 수 있는 ‘훌륭한 시인’으로 사는 행복한 결말을 맞지만, 독자는 물론 서술자 자신도 치노버의 몰락을 벌충하기 위해 밀어 넣은 이 결말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품고 있음이 분명하다.
「스뀌데리 부인」은 환상의 요소를 배제한 범죄소설의 형식을 취했지만, 이 역시 열정에 사로잡혀 악마적인 범죄에 연루된 천재 예술가를 한편에 두고, 법과 이성에 기반을 두었으면서도 정작 범죄의 진상은 밝히지 못하는 무능한 국가기구를 반대편 극단으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앞의 세 작품과 연속성을 지닌다. 탐정 역할의 스뀌데리 부인은 예술의 세계와 일상적 도덕률의 세계에 동시에 속해 있지만, 그녀의 역할은 과학적 상식으로 범인을 잡는 것이 아니라, 공감과 직관으로 억울한 피해자를 구해주는 것이다. 감추어진 세상의 비밀을 드러내고 진실과 정의에 근접한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을 가진 스뀌데리 부인에게서 시민생활과 예술활동이 통합되어 있지만, 사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스뀌데리 부인의 사건해결이 아니라 불안하고 낯선 사건의 연속 자체에 있다. 그리고 그 공포와 불안의 핵심에 있는 대도시의 범죄는 창의력과 열정이 넘쳐나는 예술가와 상식을 중시하는 시민사회의 본질적인 부조화에서 나온다.
호프만은 문학, 음악, 미술에 모두 관심과 재능을 보였던 예술가인 동시에 생계를 위하여 법학을 공부하고 법원 관리로 근무한 생활인이기도 했다. 이러한 이중생활의 경험으로 인하여 그는 근대사회의 시민적 일상과 그것을 초월하려는 낭만적 동경 사이의 모순을 남달리 예민하게 의식하게 되었고, 일상과 환상의 경계를 뒤흔들어 독자로 하여금 낯선 경험 앞에서 해석을 주저하게 만드는 독특한 종류의 환상문학을 만들어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호프만의 개성은 서구문학의 곳곳에 남아 있다. 보들레르, 발자끄, 포, 디킨스 등 독일 낭만주의의 직접적인 영향하에 있던 작가들은 물론이고,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도 「변신」(1915) 같은 낯설고 기이한 환상소설을 통해서 자신이 호프만의 후예임을 드러낸다. 현대 환상문학의 대가인 이딸로 깔비노가 엮은 『세계의 환상소설』(1983)의 시작이자 중심이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0년 전에 출간된 호프만의 이야기가 아득하고 신비로운 동시에 기이할 정도로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