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세상의 기준은 이미 변했다
변화가 시작될 때 ‘지금 이대로’가 어떤 것인지 한층 분명해진다. 으레 그랬던 일이 갑작스레 조명을 받고 내면의 반추조차 필요치 않던 행위가 새삼 비난을 받는 이 시절은 어떤 이들에게는 납득하기 어렵고 또 어떤 이들에겐 어긋나버린 시간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난겨울의 촛불이 혁명이라면 한국사회에도 이제 변화야말로 정상이 되었고 지금까지의 ‘이대로’가 지속 불가능함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워졌다. 이 변화가 자칫 균형을 잃을까 우려만 하기보다 한층 대담하면서 더 설득력 있는 새로운 정상성을 고심하는 편이 합당하리라. 혁명에 부합하는 정상성이라면 그 말이 갖는 통상적 의미마저 변화시킬 힘을 가질 것이다. D. H. 로런스는 “진리란 하루하루 사는 법이라 어제의 훌륭한 플라톤이 오늘은 대체로 허튼소리”라고 이야기했다. 이 말은 하루를 넘기는 진리란 없으니 그에 다가가려는 노력도 부질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늘 온갖 플라톤들에게 기대지 않는 진리만이 내일 허튼소리의 운명을 돌파할 수 있음을 함축한다. 이미 변한 세상의 ‘뉴 노멀’이란 그렇듯 독립적인 탐구의 용기를 통해 이룩되는 무엇일 것이다.
낡은 것들의 온존을 확인하는 순간조차 이미 변한 세상의 기운은 확연히 감지된다. 현직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는 걸어다니는 권력기관인 줄 알았던 검사조차 무려 8년간의 고통 끝에 이런 결심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새삼 탄식하게 했다. 그럼에도 이 폭로를 지지하는 ‘미투’운동은 전에 없던 반향과 파급력을 보이며 문학과 영화, 연극 등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늘 뒤따르던 피해자 흠집내기가 더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고색창연한 꽃뱀설과 드세거나 독하거나 미친 여자라는 험담들이 사건과 무관한 시비라는 반박이 차고 넘친다. 성폭력은 명백히 구조적인 문제지만 일반화와 추정보다 사건들의 특정성에 초점을 맞출 때 그 구조의 실제상이 드러난다는 사실도 차츰 분명해지고 있다. 언뜻 근본적인 것처럼 들리는 구조에 대한 언급이 종종 무차별적 개탄이 됨으로써 도리어 망각을 허용해왔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기준을 암시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양상은 성폭력에 관련된 젠더의식이 개개인의 인격의 핵심과 연루된 사안임을 부인할 수 없게 된 점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적폐청산뿐 아니라 인간다움의 이해를 결정적으로 심화하는 작업이 내포되며, 이 작업은 성폭력 문제를 한층 엄중하면서도 더욱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요구한다.
국정농단의 핵심 당사자였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2심재판 결과 역시 낡은 것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확인해주었다. 역사의 ‘결을 거스른’ 이 집행유예 판결에 법리적으로 어떤 착오와 모순이 있는지는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했거니와, 정의를 향한 가장 기본적인 요청도 외면한 판사의 ‘과감성’은 삼성과의 유착 여부를 떠나 도대체 공적 영역에 대한 감각이 있는가를 묻게 만든다. 그러나 이른바 공인(公人)들의 감각과 인식마저 잠식한 ‘민영화’ 경향은 이제 세상의 이치로 통용되지 않으며 세상의 이면으로 용인될 수도 없다. 이 판결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해당 재판장에 대한 비난이나 사법부의 재벌 봐주기라는 비아냥으로 수렴될 성격이 아니다. 그것은 법의 존재 이유를 겨냥한 추궁이자 사법기관이 법의 적용에 어떤 사유권(私有權)도 갖지 않는다는 엄중한 경고이다.
촛불혁명은 시대착오가 어떤 것인지 새롭게 정의했을 뿐 아니라 전방위적 시대착오들이 음으로 양으로 기대온 버팀목이 무엇인지 적시해주었다. 법체계를 비롯하여 ‘개명한’ 세계의 상식들을 유난히 묵살해온 관행이 분단체제의 한 효과로서, 안보논리와 종북담론을 궁극의 알리바이로 활용해왔음을 드러내준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관계와 관련한 시대착오가 특히 극심할 것은 당연하고, 한국전쟁 이래 다시 반복되지 않으리라 싶던 전쟁 가능성마저 공공연해지기에 이르렀다. 바로 그렇기에 남북관계의 개선과 평화의 성취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정상성이 단단히 뿌리내리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된다.
천만다행히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최소한의 디딤돌이 다시 마련되는 듯하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에 이은 북한 응원단, 예술단, 고위급 대표단의 방문, 그리고 특사를 통한 친서 전달과 방북초청에 이르는 과정은 상황 반전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남북선수단이 공동 입장하는 순간 남의 대통령과 북의 대표단이 재차 악수를 나누며 호응할 때 미국 부통령과 일본 총리는 냉담하게 앉아 있던 개막식의 한 장면이 일러주듯, 사태는 간단치 않고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그간의 경험으로 우리는 간신히 얻어낸 오늘의 성과가 안도할 일이지 감격할 일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공정성 논란은 (상당부분 그 과정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데서 비롯되었지만) 어쩌면 올림픽 기간의 일시적 조처들이 충분치 않음을 알려주는 증상일지 모른다.
그 모든 어려움에도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평화를 성취하는 일은 기본적인 생존부터 더 많은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이 걸린 정언명령이 되었다. 올림픽 개막식 참석차 방한한 유엔 사무총장은 “북미대화는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라 말한 바 있다. 미국의 태도를 예측하기 어렵더라도 북미대화를 이끌어낼 방도를 지속적으로 도모하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하지만 북미대화가 요원하다는 이유로 남북관계를 방치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오래된 시대착오를 반복하는 태도와 다름없다. 한반도 평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당사자는 미국이 아니며, 지루한 현상유지가 전략이 되는 시간은 이미 지나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상황이 어떠하든 차근차근, 혹은 성큼성큼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그러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되리라는 낙관이야말로 이미 변한 세상에 합당한 정서일 것 같다.
이번호 특집의 취지는 ‘분단체제를 다시 생각할 때’라는 제목에 명확히 표현되어 있다. 대내외적 변동과 위기가 고조되면서 가까운 앞날도 가늠하기 어려운 한반도의 현재 상황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고자, 촛불혁명 전후로 한층 가시화된 분단체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자 한 것이다. 이남주는 분단체제론을 한국사회의 여러 특이성과 관련하여 설명하는 한편, 국가연합을 경유하는 분단체제 극복의 길을 일국적·양국적 해결방안과 대조하면서 제시한다. 특히 평화의 우선성을 주장하면서 남북관계의 개선 모색을 사실상 방치하는 경향을 포착한 시선이 날카로우며, 지속적인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남북 간의 통합 수준을 높이는 방향을 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성경은 타자와 관계를 맺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상호인정 행위의 불능이 초래되고 사회 구성의 장애가 생겨나는 ‘분단분열증’을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분단체제의 기제로서 고찰한다. 이 글이 적실하게 보여주듯, 정치와 담론 영역만이 아니라 주체와 일상의 차원까지 분단체제의 작동을 다양하고 두텁게 분석하는 일은 분단체제 인식과 탈분단적 주체 상상에 긴요한 작업임이 분명하다. 김준형은 분단체제하의 한미관계에서 여하한의 실용적 접근과 상상이 봉쇄당한 채 한미동맹이라는 경직되고 비대칭적인 틀이 신성불가침으로 강요되어왔음을 살핀다. 동맹의 일반법칙까지 벗어난 동맹절대주의는 한미동맹을 곧 평화주의와 동일시하는 착시를 만들어낸바,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을 더 수평적이고 유연하게 ‘세속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동엽은 북한의 핵개발이 광기나 악행이라기보다 안보우려와 생존 요구에 따른 선택임을 전제하면서 북한 핵의 과거, 현재, 미래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각각의 위협을 해소하는 단계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북핵 위기의 합리적인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한반도 운명공동체’라는 개념에 도달한 그의 논의에는 군사전문가의 식견뿐 아니라 역지사지하는 분단체제론적인 사유가 녹아들어 있다. 특집 글들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대화는 촛불혁명으로 표면화되었으나 여전히 확고한 방향성과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개헌’을 주제로 삼았다. 권김현영 백승헌 이인영 정두언 네명의 참여자는 기본권과 직접민주주의 요소의 강화를 통한 국민주권 원칙의 한층 고도화된 실현을 요구하는 민의가 개헌 논의의 핵심 배경임을 재확인하면서, 개헌의 필요성과 가능성, 그리고 세부 내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과 전망을 나눈다.
창작란에서는 다양하고 개성적인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시란은 김상미에서 류진에 이르는 시인 열세명의 신작을 소개한다. 새롭게 연재를 시작한 김려령의 장편소설은 남다른 소재와 특유의 활력이 돋보이며, 박민규 이주혜 임재희 조남주로 이어지는 단편소설은 다양해진 소설 지형의 흥미로운 면면을 펼쳐 보인다. 세편의 문학평론은 각기 다른 주제를 다루면서도 문학의 현재를 새롭게 되새길 기회를 제공한다. 장은정은 ‘설계-비평’이라는 용어를 키워드로 삼아 최근 등장한 문학잡지들의 새로운 비평행위와 문학 이해를 고찰한다. 김동윤은 4·3항쟁 70주년을 맞아 4·3문학의 거장인 현기영과 김석범의 소설들을 촛불혁명의 시각으로 다시 읽고 그 현재적 의미를 재해석한다. 한편, 수단 출신 작가 타예브 쌀리흐의 소설이 그린 식민성의 복합적 면모와 역사적 딜레마를 분석한 유희석의 글은 이 소설의 탈식민적·세계문학적 성취를 한국문학의 참조점으로 되받아 읽는다.
작가조명에서는 우리 시대의 노동현장을 핍진하게 그린 만화 『송곳』의 작가 최규석을 소설가 황정은이 만났다. 이 범상치 않은 조합 자체가 독특한 아우라를 예감케 하는데, 갈등구조의 익숙한 프레임을 깬 장면들과 인물 형상화의 세부, 그리고 결말에 이르기까지 『송곳』의 면면에 실린 작가의 생각을 여전히 팽팽한 진행형의 시제로 엿볼 수 있다. 이번호부터 문학초점 진행을 맡은 신샛별 평론가와 최정례 시인은 정용준 소설가를 초대해 각기 개성이 뚜렷한 여섯권의 시집과 소설을 두고 기탄없는 이야기를 나눴다. 시인, 소설가, 평론가의 서로 다른 관점이 다채롭게 펼쳐지고 또 이어지는 양상이 흥미롭다.
논단에는 문화연구의 흥미로운 사례가 될 두편의 글을 싣는다. 1990년대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른 러시아의 ‘소비에뜨 노스탤지어’ 현상의 출현과 변모를 살핀 이문영의 글은 우리에게 점점 더 먼 나라가 되어가는 러시아의 오늘을 이해할 귀중한 단서를 제공한다. 김영진은 근래 화제를 모은 영화 「택시운전사」와 「1987」에 담긴 현대사 재현의 성과 및 한계를 세심하게 짚고 불연속과 분열을 봉합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참여와 개입을 발동시킨 다큐멘터리 「공동정범」의 혁신적 시도를 소개한다. 시민참여형 민주주의 연속기획을 이어나간 현장란에서 김영배는 모의시민의회와 주민참여예산제를 비롯한 마을민주주의 실천 사례들을 소개하며, 촛불혁명이 생활공간에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들여다본다.
이번호의 산문 두편은 모두 애도의 글이라 여느 때보다 큰 호소력이 있다. 김동윤의 평론과 호응하는 재일조선인 시인 김시종의 글은 4·3과 뗄 수 없는 자기 삶의 곡진한 토로이자 ‘가지 못한 길’을 가늠하여 4·3항쟁 자체를 이해하게 하는 길잡이가 되어준다. 한 시대의 고통이 요구하는 경건함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이 글이 독자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남기리라 믿는다. 얼마 전 타계한 맑스주의 역사학자 애리프 덜릭을 기린 황동연의 글은 탈식민주의적 연구와 전지구적 자본주의 비판, 그리고 중국혁명사 연구를 아우른 덜릭의 학문적 궤적을 소개하는 가운데 그의 삶과 믿음이 남긴 의미를 짚는다.
지난해 독자들의 단소리 쓴소리를 고루 담아낸 ‘독자 리뷰’는 참여의 문턱을 낮춰 ‘독자의 목소리’로 개편되었다. 종이잡지와 웹사이트를 통해 『창작과비평』을 읽고 허심탄회한 의견을 전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지면에 그 모두를 소개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올해 촌평은 김기흥(과학), 이정숙(인문사회) 두분을 고정필자로 모셨다. 두분을 포함하여 아홉분의 필자가 다양한 분야의 깊이있는 서평을 보내주셨다. 제16회 대산대학문학상 발표와 수상작도 일독을 권한다. 젊은 수상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내며, 그들의 데뷔 이후 변화될 한국문학의 모습도 기대해본다.
세상의 기준이 이미 변했다는 사실은 잡지를 만드는 이들에게도 하루하루 새로운 탐구의 자세를 가다듬도록 촉구한다. 성평등과 민주주의, 그리고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과 도약을 예고하는 오늘의 시간에 『창작과비평』은 한층 치열한 사유와 실천의 자세로 임하고자 하며 독자 여러분의 질책과 성원도 더 귀담아들을 것을 다짐한다. 지독한 겨울 추위가 다 지나가지는 않았어도 대기에 가득한 봄의 예감으로 남은 추위를 거뜬히 이겨내시길 바란다.
황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