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한기욱 『문학의 열린 길』, 창비 2021
대양을 가르는 향유고래의 간절한 서원(誓願)
이경재 李京在
문학평론가 ssmart1@hanmail.net
한기욱의 두번째 평론집 『문학의 열린 길』은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18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1부에 수록된 네편의 글은 시대론·문학론, 2부에 수록된 여섯편의 글은 작품론·작가론, 3부에 수록된 네편의 글은 장편소설론, 4부에 수록된 네편의 글은 미국문학론·세계문학론에 해당한다. 이 평론집은 ‘사유·정동·리얼리즘’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바, 제목과 부제에는 저자가 생각하는 한국문학의 실제와 전망이 옹골지게 압축되어 있다.
그가 보기에 최근 한국문학을 규정짓는 대사건은 ‘촛불혁명’이며, 이것은 문학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변혁을 담보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촛불혁명이 기존의 역사적 대사건과 구분되는 핵심적인 특징은 혁명의 주체가 정동적 성향을 지녔다는 점이다. 이번 평론집의 핵심적인 키워드를 하나만 뽑으라면 정동(情動, affect)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정동적 요소를 우리 시대의 가장 특징적인 것으로 보며, 정동적 주체를 촛불혁명 이후 한국사회의 가장 대표적인 인간형으로 파악하고 있다. 정동은 “기존의 경계들—신체와 정신, 감성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경계들—을 가로지름으로써 세계를 계속적으로 변형시키는 힘”(21면)을 지녔지만, 동시에 아나키즘적 속성으로 인해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참된 사유’에 의해 제어만 될 수 있다면, 우리 시대의 정동을 제대로 형상화한 소설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삶에 맞닿은 리얼리즘을 구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창안된 새로운 리얼리즘이야말로 우리를 ‘문학의 열린 길’로 이끌 수 있다고 확신한다.
나아가 정동은 리얼리즘 소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인 상투성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긴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한기욱은 “정동적 요소를 간을 맞추듯 적절히 사용하면, 상황이나 인물의 생생함을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반복적인 서사로 말미암은 상투성이나 정치적 정답주의 등 서사의 도식성을 깨는 데도 효과적”(48면)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생각에 기초해 촛불혁명 이후의 소설(황정은 김세희 김금희 등)에 나타난 정동의 양상을 지극한 정성으로 살펴보는 것은 이 평론집의 백미에 해당한다. 김금희의 소설을 ‘마음 중심의 서사’라 부르며, 작가가 소설을 통해 “무의식 깊은 곳의 움직임까지 포착해내는”(30면) 과정을 촘촘하게 뜯어보는 대목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간을 맞추듯’ 정동적 요소를 사용해야 한다는 표현에서도 드러나듯이, 정동적 요소는 적절한 사유에 의해 특유의 아나키즘이 통제되어야 한다. 이것은 리얼리즘의 대립적인 두 원천으로 ‘서사적 충동’(narrative impulse)과 ‘정동’을 꼽으면서 후자에 방점을 찍는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과는 다른 견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이상적으로 제시하는 “정동이 내재된 사유”(55면)는, ‘운동으로서 리얼리즘’이 요구하는 원숙한 시각과 균형, 나아가 새로운 세상을 향한 지혜와 진리에 해당한다.
몸과 무의식의 차원에까지 가닿은 정동에 주목하는 만큼, 문학작품을 읽는 저자의 눈은 매우 섬세하고 치밀하다. 더욱 주목할 것은 텍스트에 대한 자상한 태도가 스타일의 문제를 넘어서 기본적인 문학 인식에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이는 문학이야말로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는 발견적 방식이라는 인식과 관련된다. 이러한 인식은 문학작품이 사회과학이나 철학적 이론에 버금가는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담론 체계를 뛰어넘는 창조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기욱은 우도할계(牛刀割鷄)식으로 거대담론에 맞추어 텍스트를 재단하기에 급급한 정론 비평의 문제에서 한참 벗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생각하는 문학은 “작가가 의식하든 안 하든 주어진 삶과 현실을 온몸으로 밀고 나가 사유와 감각에서 미답의 세계를 여는 일”이며, 비평은 “이 창조적 행위가 열어놓은 새로운 인식과 감성의 의미를 밝히면서 그 창조적 핵심을 지켜내는 일”(79면)이다. 신경숙의 『외딴 방』을 논하면서 주인공의 창작 행위에 대해 “글쓰기라는 창조적 과정을 통해 그 한계를 돌파할 수 있으며 현재성을 구현할 수 있다는 뜻”(111면)이라고 말하는 대목은, 후기구조주의에서 주장하는 글쓰기론에까지 닿아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텍스트의 심연에 대한 섬세한 관심은 인간을 향할 때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황정은이나 김애란의 소설에 나타난 ‘개별자성/개체성에 대한 민감한 의식’을 읽어내는 대목이 돋보인다. 공동체의 일부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의 단독성에 대한 인식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일 뿐 아니라, 저자가 그토록 갈망하는 근대세계체제 극복의 한 방편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소중하다. 그것은 이번 평론집에서 무려 세편의 글(「근대세계의 폭력성에 대하여」 「근대체제와 애매성」 「로런스는 들뢰즈의 미국문학론에 동의할까?」)을 통해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문학을 집중적으로 조명·논의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한기욱에 따르면, 그동안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에 등장하는 바틀비는 “하트/네그리에게는 ‘해방정치의 시작’을 여는 사람으로, 지젝에게는 체제는 물론 체제에 기생하는 체제 반대세력(‘항의’의 정치)과도 결별하려는 새로운 정치의 주체로, 아감벤에게는 순수하고 절대적인 잠재성의 형상으로, 들뢰즈에게는 아버지의 권능에서 벗어난 ‘형제 공동체’의 영웅으로 호명되었다.” 그러나 한기욱이 파악한 바틀비의 핵심적인 특징은 무엇보다도 “불가해성”에 있으며, 이때의 불가해성은 “살아 있는 존재 특유의 속성”(371면)에 해당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필경사 바틀비」의 위대함은 ‘타자성의 본질’에 해당하는 “바틀비의 불가해한 현존을 실감나게 표현한”(372면) 점이다. 더욱 주목할 것은, 저자가 바틀비의 애매함이 “근대 자본주의체제의 강력한 논리와 균형을 뒤흔”(373면)든다고 파악하는 지점이다. ‘개별자성/개체성에 대한 민감한 의식’을 바탕으로 근대 자본주의체제 비판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은 특히나 눈여겨볼 만하다.
이외에도 이 책은 수많은 논점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주변에서 중심의 형식을 성찰하다」에 나타난 세계문학론은 저자가 오래전부터 강조해온 ‘쌍방향 교호작용으로서의 세계문학’이 호베르뚜 슈바르스(Roberto Schwarz)의 소설론을 경유해 한단계 성숙했음을 증명한다. 한기욱의 『문학의 열린 길』은 간절한 서원(誓願)에 의해 창작된 평론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의 한국소설을 리얼리즘적 맥락에서 새롭게 그리고 제대로 읽어내어 비평의 권능을 회복하고자 하는 서원이자, ‘촛불혁명’으로 상징되는 한국사회의 변혁적 과제를 완수하고자 하는 서원이며, 인종주의와 자본주의가 뒤얽혀 있는 근대체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서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표지에도 그려진 어린 향유고래들처럼, 지구상의 모든 이들이 대양을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 서원은 언젠가는 분명 이루어지겠지만, 『문학이 열린 길』은 그 간절한 서원으로 인해 저자가 이미 대양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한마리 향유고래가 되었음을 증명하는 우리 시대의 평론집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