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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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대한민국 선진화는 한반도 선진화를 통해

 

 

새 정부가 출범하는 올해는 마침 대한민국 건국 60년이 되는 해이다. 건국 60주년을 맞이해 한국현대사를 새롭게 보려는 보수세력의 담론공세는 보수정권 출범에 힘입어 한층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작년말 조직된 ‘건국60주년 기념사업 준비위원회’는 발족 취지문을 통해 1948년 건국의 역사적 의의에 대한 일방적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 그간 분단국가의 불구성과 그 극복을 강조해온 논의를 비판한 바 있다. 건국은 한국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성취”이자 “탁월한 민족사적 성취”이기에 “건국 지도자들의 혜안과 신념에 존경과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수언론들이 적극 호응하고 나섰고, 소위 뉴라이트 계열의 지식인들은 이런 역사인식을 통해 대한민국 선진화노선 대 통일지상주의란 이념구도를 재생산해내고 있다.

균형있는 역사인식에서 벗어난 낡은 이념공세가 마치 새로운 역사인식인 양 강력하게 대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식으로 아는 그대로, 대한민국 건국 60년은 동시에 분단 60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분단이냐 건국이냐의 양분법을 통해 분단 및 통일 논의를 배격하고 건국의 의의를 일방적으로 상찬하는 것은 과거의 역사적 맥락을 사상시킨 단선적인 인식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분단하에서 숱한 질곡의 역사를 살아온 우리가 대한민국의 유례없는 성취를 통해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은 참으로 흐뭇한 일이다. 또한 그간 민주화와 경제발전 그리고 남북화해와 협력을 진전시켜 분단체제를 허물어온 대한민국의 역사는 자랑할 만한 것이다. 그렇지만 분단국가 형성이 질곡이 아니고 그토록 잘된 일이라면, 혹독한 전쟁과 뒤이은 억압체제하에서 시린 삶을 살아온 남북 민중의 고통에 대해서는 무어라 말할 것인가? 아니, 기형적인 건국에도 불구하고 그 60년 이후가 이만큼 자랑스러워진 것이 바로 분단체제에 대한 남한 민중의 저항 없이 가능했겠는가?

대한민국 60년사에서 경제발전과 민주화 그리고 분단극복은 고통이 함께한 복합적 과제였고, 그동안 거둔 성과는 참으로 컸다. 본지가 줄곧 제창해온, 분단체제 극복을 통한 ‘한반도 선진화’론은 통일지상주의가 아니라 대한민국 현실의 이러한 복합성에 좀더 충실하고자 하는 시각이다. 그간 겪어온 시련과 성취를 동시에 기억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층 바람직한 세계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지난 60년을 분단시대이자 동시에 대한민국의 성취의 시대로 보게 될 때, 남북한의 점진적 통합과 대한민국 내부의 개혁을 연계시켜 한반도에 지금보다 나은 선진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노력이 절실해진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독자적 ‘선진화’라는 미래구상은 낡은 성장주의의 복사판이 아닌가 우려스럽다.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가 확정한 ‘선진일류국가 5대 국정지표와 21대 전략’을 보면 우리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지 그 윤곽이 보이는데, 각종 친기업 정책, 민영화, 한미관계 강화 및 대북관계 조절 등 숱한 정책전환이 예시되고 있다. 현재의 전환기를 이제까지의 관치에서 민간자율로의 이행으로 보는 선진화론은 산업화시대나 민주화시대의 국가개입을 가능한 한 배제한다는 데 초점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에도 자본 입장에서 종종 제기되던 낡은 담론이고, 양극화와 일자리 문제 등 심각한 문제들이 한층 더 악화되리라는 것은 이미 다른 나라의 경험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그같은 미래구상은 사실상 현 국면의 세계사에 대한 빗나간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여기서 마치 문명화처럼 간주되는 시장만능주의 흐름은 1980년대부터 20여년간 지속되었다가 이제는 문제점이 너무 커져 도저히 지속하기 어려워진 한 국면일 뿐이다. 지금은 그 폐해에 대해 비판자들뿐 아니라 주류 경제학자들까지도 경종을 울리는가 하면, 신자유주의를 주도하는 나라에서조차 그 부작용에 대한 대안과 보완책이 적극적으로 모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전환기적 상황이 요구하는 현실적 방안은 결코 단선적이고 일방적인 것일 수 없다. 우리는 엄혹한 세계사의 현실에 처해서도 그간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와 역량을 바탕으로 21세기 한반도에 희망의 틈새를 열어젖히고 새로운 선진사회를 건설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번호 특집 ‘한반도에서의 근대와 탈근대’는 이같은 전환기에 걸맞은 미래지향적 대안을 구체적으로 모색하려는 시도이다. 특집을 꿰뚫고 있는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론’은 얼핏 추상적 거대담론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지금 이곳 현실의 쟁점과 정면으로 맞서되 넓은 세계사적 시야 속에서 근본적이면서 현실주의적인 길을 추구하고자 하는 본지의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먼저 이남주는 현재 우리 정치지형에서 진보의 대안부재를 위기로 인식하면서, 진보개혁진영이 세계와 한반도 현실을 시야에 두고 근본적으로 그 구상을 점검할 필요를 제기한다. 반시장, 반지구화를 넘어서 신자유주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구체적 대안은 근대와 근대극복의 과제를 동시에 감당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아시아공동체를 둘러싼 쟁점을 점검하는 백영서는 동아시아 각국의 정부와 시장 그리고 시민단체 같은 주체들의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이것이 개별 국가의 내부개혁과 함께 진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특히 한반도의 경우, 통일과 연계된 개혁과정에서 실현가능한 새로운 복합국가 건설이 근대 적응과 극복의 중요한 계기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홍석률은 대한민국 60년사를 단선적인 성공스토리로 파악하는 보수진영의 역사인식을 문제삼고, 그 대신 현실에 잠재되어 있던 여러 가능성들과 실현태들의 복합적 사고를 요청한다. 기계적인 단계론에 입각한 역사인식은 근대의 성취 과정에서 근대 이후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길을 차단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김종철은 근대 적응과 극복의 이중과제 담론이 빠지기 쉬운 근대주의 순응의 함정과 실천적 모호성을 비판하면서 한층 급진적인 발상의 전환을 촉구한다. 문명 차원의 문제제기를 통해 그는 성장지향국가, 선진화론 등 지배적인 통념을 신랄하게 공박하면서, 계속적인 경제성장은 곧 민주주의의 장애이고 권력집중과 사회경제적 격차, 생태위기를 초래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특집을 한결 다채롭게 해준 그의 글은 본지의 문제의식에 대한 중요한 비판을 담고 있는만큼 앞으로도 진전된 논쟁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백낙청과 조효제의 ‘대화’는 지난 대선과정 평가에서부터 87년체제의 성격과 그 극복방안으로서의 변혁적 중도주의에 이르기까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지난호까지의 ‘도전인터뷰’는 이번호부터 대상자 선정과 진행방식에서 좀더 자유롭고자 ‘대화’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대화 당사자 구성으로 볼 때 이번에는 다분히 ‘도전인터뷰’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백낙청은 민주화시대로서의 87년체제가 끝났다는 뉴라이트 및 일부 진보진영의 시각을 반박하고, 87년체제에 대한 자신의 독자적인 인식을 보여준다. 중도적 방향에서 최대한의 대중적 통합을 이끌어내는 변혁적 중도주의만이 현 난국을 타개하는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그의 지론이 대화 형식을 통해 좀더 알기 쉽게 개진되고 있다.

이번호부터는 문학작품의 현장비평을 강화하고자 새롭게 ‘문학초점’이 신설되었다. 이번에는 주목할 만한 여섯 작품을 대상으로 삼았지만, 때로는 한 작품을 두고 각기 다른 시선에서 조명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선보일 것이다. 창작란에도 작은 변화가 있다. 등단 순서에 따라 작품을 배치하던 관행을 깨고 가나다 순으로 했다. 시란은 열두명의 시인들이 개성적인 목소리를 담아 풍요롭게 꾸며주었고, 소설 역시 중견작가 전상국부터 박민규와 황정은의 작품 그리고 첫회분에서 호평을 얻은 신경숙의 장편연재 2회분에 이르기까지 알차다. 문학평론에서 지난호 세계문학 특집을 이어받아 새로운 문제의식을 더하는 한기욱의 글은 미국사회나 세계의 문제를 다양한 양식으로 깊이있게 다루는 미국문학, 특히 소수자문학의 활력을 우리 문학 논의에 요긴한 참조점으로 삼자고 제안한다.

이번호는 그 어느 때보다도 ‘논단과 현장’이 다채롭다. 네편 모두 개인적 체험이 스며든 현장감 넘치는 글들이 아닐까 싶다. 현재 팔레스타인에 체류중인 소설가 오수연이 부시 방문시의 현지상황을 일지 형식으로 보내왔다. 그의 글은 이스라엘 점령하에서 하마스와 파타로 분열되어 있는 팔레스타인의 이중적 고난의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아우슈비츠의 생존 증언자 쁘리모 레비에 관한 책을 출간한 바 있는 서경식의 이번 글은, 동아시아 현실과 쁘리모 레비의 삶과 죽음을 교차시키면서 20세기의 폭력을 극복하는 인류 보편의 과제를 ‘기억의 투쟁’이란 문제의식하에 제기한다. 북한동포돕기운동의 현황과 과제에 대해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진솔하게 서술하고 있는 강영식의 글과, 광산촌에서 25년째 작업하고 있는 화가 황재형의 개인전에 대한 김정락의 문화평 역시 유익한 읽을거리가 되리라 믿는다. 그외 짧은 글임에도 의외로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촌평을 써주신 일곱분 필자들께도 감사드린다.

올해 6회를 맞는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작들은 그 수준이 한층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문학의 밝은 앞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구할 일이 있다. 부득이 봄호부터 정가를 인상하게 됐다. 한층 더 알찬 내용으로 성원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할 따름이다. 끝으로 편집위원진에 약간의 변화가 있음을 알린다. 이번호부터 김종엽 교수와 한기욱 교수가 다시 상임편집위원진에 합류하고 김영희 교수가 비상임위원으로 복귀했다. 새롭게 정비된 진용으로 독자들에게 좀더 가깝게 다가가고자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

柳在建

유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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