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 너머북스 2013『일본의 역사관을 비판한다』, 창비 2013
동아시아적 근대성에 대한 새로운 모색
유재건 柳在建
부산대 사학과 교수 jkyoo@pusan.ac.kr
일본인 한국사학자 미야지마 히로시(宮嶋博史)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연구서들을 평하는 일은 서양사 연구자인 나로서는 아무래도 버거운 일이다. 제목이 ‘나의 한국사 공부’와 ‘일본의 역사관을 비판한다’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이 책들이 보여주는 폭넓은 역사적 시야, 그리고 세계사 인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대담한 시도는 서양사학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10년 전인 2003년에 저자가 「근대를 다시 본다」(『창작과비평』 2003년 여름호)라는 시론적인 글에서 그런 시도를 했을 때, 내가 비판적 언급을 한 적이 있기도 하다(「세계사 다시 읽기와 유럽중심주의」, 『창작과비평』 2003년 가을호). 저자는 그 글에서 동아시아의 ‘근대’를 자본주의로의 통합 이후로 보는 통상적인 인식과는 다른 대안적 역사상을 제시했는데, 동아시아사에서 개항 이전의 전근대(혹은 ‘근세’라는 애매한 용어)로 이해되어온 16~18세기를 ‘근대’로 보아야 한다는 논지였다. 이번에 출간된 두 저서에서 저자는 유럽사적 개념이 아닌 독자적인 동아시아적 근대성을 포착하기 위해 16세기 이후의 동아시아를 과감하게 ‘소농사회(小農社會)’에 근거한 ‘유교적 근대’라고 규정짓고 있다.
저자의 소농사회론은 한국사학계에서는 이른바 ‘내재적 발전론’과 대립된 논쟁적인 가설로 알려져 있다. 이 논란 많은 문제는 물론 한국사의 실증적 연구가 동반되어야 해결될 수 있는 것이기에 전문적 연구 없이 무어라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저자의 문제의식의 창의성과 기본 논지에 담긴 통찰력, 이를 뒷받침하는 실증적 연구의 저력이 돋보인다는 것은 분명하다. 소농사회론은 노예제-봉건제-자본주의라는 유럽의 역사상에 근거한 기존의 동아시아사 인식을 비판하는 대안적 역사론인 동시에 일본사를 동아시아의 공통성 안에서 봄으로써 일본 사학계의 고질적인 ‘탈아입구(脫亞入歐)’적 경향을 극복하기 위한 가설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한・중・일 3국의 공통점 안에서 차이점을 판별하는 비교사를 위한 가설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일본의 역사관을 비판한다』는 으레 예상하듯이 우익진영의 역사왜곡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진보적 역사학계를 포함한 학계 전반이 공유해온 서구편향적 역사인식 틀을 비판한다. 이 책은 일본의 서구적 근대화, 즉 탈아입구 성공의 역사적 근거로 인식되어온 두가지 논점을 겨냥하고 있으니, 일본만이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유럽과 유사한 봉건제를 겪었다는 주장과 중국 및 한국과 달리 유교의 폐해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저자는 일본의 역사를 서구의 역사와 유사한 것으로 이해하려는 봉건제 담론이나 이에 맞서 한국에도 봉건제가 있었다고 반박하는 한국사학계의 통념 모두 잘못된 유럽중심적 역사관의 소산이라 본다. 이는 그간 서구의 ‘봉건제’를 보편적 역사발전 단계로 이해함으로써 그 개념을 관료제적 집권체제가 정착한 조선에 적용해온 한국사학계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기도 하다.
유럽 봉건제사회와 달리 소농사회는 토지소유자든 소작농이든 독립적 경영주체로서의 소농들이 압도적인 사회인데, 이런 소농사회적 성격이야말로 전체 세계사에서 오직 동아시아 ‘근세’(저자의 적극적 주장대로라면 ‘근대’로 규정되어야 할 16~18세기) 이후의 사회만이 갖는 독특한 특징이라는 점에 저자의 강조점이 있다. 저자에 의하면, 농민이 자신과 가족의 노동력만으로 농지를 경영하는 소농사회로의 전환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인구의 급속한 증가와 농업기술의 변혁이라는 조건에서 성립해 중국은 명대(明代) 전기 이후, 한국과 일본은 17세기경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 시기 동아시아에서는 유럽 봉건제사회와 같은 영주의 대토지소유에 기초한 직영지(直營地) 경영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지배층인 중국의 사대부, 한국의 양반, 일본의 무사가 농업생산에서 이탈해 결국 토지귀족적 성격이 없거나(사대부와 양반) 아주 약했다(무사)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조선의 지배계층인 양반도 일반 서민과 동등한 토지소유자일 뿐 토지에 대한 특권을 갖고 있지 않았음을 주목한다.
소농사회는 국가나 사회 전반에 걸쳐 지배계층의 존재양식을 규정했고 그 체제에 걸맞은 이념을 수반했다는 것이 저자의 또 하나의 핵심적 주장이다. 그것은 집권적 관료체제가 재생산될 수 있는 경제적 토대이면서 주자학의 이념적 수용에 적합한 사회였다고 할 수 있다. 유럽형 토지귀족층의 부재와 독립 소경영 농민계층의 편재는 관료제적 지배를 가능케 했고, 지배계층의 이런 존재형태는 유교, 특히 주자학적인 정치사상과 잘 들어맞았다는 것이다. 그 이념의 담당자인 사대부층이나 양반층은 유교적 교양능력을 기준으로 인재를 등용하는 과거제도를 통해 평가받는 비교적 개방된 계층이었다. 물론 중국과 조선 간에 약간의 편차는 있어서, 조선의 양반이 신분적으로 더 폐쇄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주자학 이념이 양반을 통해 사회 전체에 널리 전파되어 조선왕조는 주자학적 이념을 국가운영의 기본으로 삼을 수 있었다. 저자에 의하면 이 시기 일본도 불완전하게나마 정치적 지배이념으로 주자학을 수용해 중세 분권체제를 얼마간 부정하긴 했다. 그러나 과거제도를 비롯한 문관 관료제가 정착되지 못하고 인문적 교양이 부족한 무사들이 지배함으로써 주변부적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근대의 식민침략 등에서 드러나는 일본의 취약한 평화의식도 유교적 문명주의를 온전히 경험하지 못한 주변부의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이렇듯 동아시아적 ‘근대’가 소농사회에 기반한 유교적 근대라면, ‘근대’의 정의(定義)상 지금도 그러하다는 뜻이 되며, 그 특징적 성격이 현재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 책에서 저자는 그것을 여러 차원에서 정리하고 있다. 가령 소농사회에 상응하는 농업형태와 촌락구조의 정착으로부터 가족 및 친족제도의 형태 변화, 가부장권의 강화와 여성의 지위 하강, 상속제도의 단독상속으로의 변화, 정치적 지배와 토지소유 사이의 괴리에 따른 민중의 균질화, 이런저런 긍정적・부정적 정치문화의 형성에 이르기까지 소농사회가 사회구조 전반에 가한 근본적 변화가 지금껏 작동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이해할 때 서구 역사에 근거한 개념틀에 매몰되어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동아시아적 특질을 새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구조적 특질들이 지금껏 온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저자가 소농사회의 성립이 동아시아의 전체 역사를 둘로 가르는 획기적인 변화라 주장할 때, 나로선 깊은 의구심이 든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그것이 그 이후 자본주의적 근대로의 변화보다 더 중요하다는 뜻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소농사회의 성립을 전후로 하는 동아시아 사회구조의 대변동에 비한다면 전근대로부터 근대로의 변화는 오히려 상대적으로 작은 것”이었다고까지 주장한다(『나의 한국사 공부』 72면). 저자가 전근대로 이해되어온 16~18세기를 근대로 설정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까닭은 바로 이렇듯 자본주의적 근대로의 변화를 소농사회의 연속성 안에 있는 상대적으로 작은 변화로 이해하는 데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역사학의 가장 근본적인 존재의의가 ‘근대’를 현재의 삶과 직결되는 시대로 파악하는 데 있기 때문에 역사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근대와 근대 이전을 구별하는 일이라고 말할 정도로 역사학의 실천적 문제의식을 강조하는 편이다(『나의 한국사 공부』 325면). 하지만 오늘날 동아시아적 근대성을 소농사회와 유교 이념에서 찾는다면 도대체 어떤 지향의 실천적 의식이 요구된다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거니와, 이런 역사인식이 자본주의적 근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실천적 의미를 지니는지도 의문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의 실상, 나아가 근대를 넘어가고자 하는 우리의 역사적 방향이 도리어 흐려지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아무래도 근대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 문제를 역사적 시야에서 제쳐놓은 데서 오는 것이지 싶다. 오히려 우리 시대의 동아시아 공간을 더 깊고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면 ‘소농사회라는 유교적 국가를 경유해온 자본주의 사회’라는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런 특이한 경험이 자본주의 이후를 상상하고 설계하는 데 어떻게 긍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이 역사학의 실천적 문제의식에 더 걸맞은 것은 아닐까? 저자가 규정한 ‘동아시아적 근대성’을 오히려 자본주의적 근대와 복합적으로 결합된 동아시아 특유의 전근대적 유산으로 볼 때, 저자가 학문적 열정을 쏟아온 입론은 지금 여기의 근대극복의 길에서 반드시 참조해야 할 한층 소중한 통찰이 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