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책머리에

 

진짜 카르텔은 어디에 있는가

 

 

이번 여름에도 어김없이 닥쳐온 폭염과 수해는 계절적인 자연재해를 넘어서 유례없는 혹독한 재난사고로 깊은 상흔을 남겼다. 중부지방의 수해와 오송 지하차도의 참담한 수몰사고, 해병대 안전사고로 시민들이 귀중한 목숨을 잃었다. 자연현상의 불가피함만으로 온전히 떠넘길 수 없는 인재(人災)에 가까운 사고였다. 이태원참사가 발생한 지 불과 8개월여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환기하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하다. 재난상황을 사회적인 참사로 만드는 정부의 행정적 무능과 안전불감증이 반복되는 가운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까지 파행을 거듭하면서 이제는 국가운영의 총체적 부실과 혼란을 전면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국가가 재난사고를 예방하고 수습하는 과정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실질적인 임무인 동시에 한 사회를 운영하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계된다. 기후위기를 포함한 각종 재난이 일상화된 삶에서 우리는 언제든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재난의 복구와 재건은 그런 점에서 한 사회의 정치적 본질을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재난에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결연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오히려 이들은 대상도 불분명한 이권 카르텔을 찾아내 재난사고의 책임을 묻겠다고 겁박하며, 부패한 카르텔을 색출하여 그들이 받아온 보조금을 폐지하고 그 돈으로 피해복구를 할 것이라는 어이없는 대책을 발표했다.

이처럼 최근 대통령과 정부의 발언에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이 ‘카르텔’이라는 용어는 적대적 정치전술을 통해 공공적 책임을 회피하는 의도로 쓰이고 있다. 정작 척결해야 할 진짜 부패한 조직은 그것을 발화하는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희한한 쓰임새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익을 독점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부당하게 결탁하는 조직을 뜻하는 ‘카르텔’만큼 현 정부의 탄생 기반과 정체성을 알려주는 투명한 키워드도 없다. 소위 정계와 법조, 언론, 군부, 학계를 망라하는 광범한 엘리트 카르텔이야말로 체제화된 분단현실의 토대에서 기능해온 집단이며, 이들의 기반과 동조 속에서 지금의 정부가 태어난 것 아니던가. 백낙청은 촛불혁명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집단으로 현재 여당의 변화를 짚으며, 이들이 촛불대항쟁에서 패한 후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자기 잇속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변모했다는 점을 지적한다(백낙청 「2023년에 할 일들: 살던 대로 살지 맙시다」, 『창작과비평』 2023년 봄호, 18면).

정부는 올해 초 노동, 교육, 연금 방안을 개혁한다면서 주제가 다른 사안을 줄줄이 엮어 ‘이권 카르텔’로 명명해왔다. 검찰조직과 수사기관이 동원된 카르텔 척결 작업은 전임 정부를 포함하여 자신들의 이권 추진에 방해가 된다고 보는 공동체를 탄압하는 표적수사로 이어지고 있다. ‘반(反)카르텔’을 외치지만 그들 자신이 철저한 카르텔의 몸통인 셈이다. 적대적 전선 형성과 표적수사를 내세우는 카르텔의 정치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언론을 억압하고 통제하여 민주주의의 기반을 위협하고 핵심적인 공공 의제를 은폐한다는 점이다.

지금 이 순간도 카르텔 논란 속에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정치적 쟁점들이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으며 앞으로도 묻힐 기세다. 당장 8월 18일에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담의 주요 안건인 일본 오염수 방류 문제와 군사동맹 문제 등에 대한 본격적인 보도와 비판적 분석은 거의 찾기 어렵다. 국가기관이 총동원되어 법적 절차도 무시한 채 밀어붙이는 공영방송 장악, 번역 출판 관련 기관에 대한 부당한 고발과 감사 역시 카르텔 프레임을 씌워 악의적으로 강행하고 있다. 건설 카르텔 척결을 운운하며 노동에 관련된 의제를 묻어버리는 행태도 심각하다.

무엇보다도 기득권 세력이 추동하는 이 난폭한 정치적 정동은 불안과 적대의 구도를 통해 끊임없이 사회적 혐오를 만들어낸다. 지하철과 길거리, 교실에서 우리가 만난 끔찍한 폭력은 갑자기 돌출한 사건이 아니라 바로 이런 혐오와 불안을 먹고 자란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 세계는 현실의 잔혹한 생존체제를 강조하고 각자도생만이 유일한 출구인 것처럼 부추기며, 어차피 세상은 위험한 곳이니 당신은 그냥 ‘살던 대로 살아보라’고 속삭인다. 그러나 적을 만들고 나만의 생존을 도모하는 프레임이 약속하는 안전한 미래는 실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로지 우리의 눈과 귀를 일시적으로 막을 뿐이다. 적대와 혐오를 유일한 자양분으로 퍼올리는 이 뿌리 깊은 불신의 벽을 넘어서 새로운 정치의 시야를 만들어낼 삶의 자리가 긴급하게 필요하다.

공공적으로 정당하게 쓰여야 할 나라의 예산을 부당한 이권 혐의를 씌워 삭감하고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 기반을 위협하는 지금의 정치 상황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절박한 변화의 정점에 도달했음을 알려준다. 카르텔의 정치가 야만적인 실체를 드러낼수록 그것을 만들어낸 기반의 취약함도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 각자의 실천적 삶을 바탕으로 진정 맞서야 할 개혁의 대상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함께 사유하고 고민할 때도 바로 지금이다. 폭주하는 이권 쟁탈의 정치를 어떻게 멈출 것인가. 현명한 의논과 각자의 힘을 모아야 할 때가 임박했다.

 

지난여름 통권 200호를 기념한 『창작과비평』은 대전환의 지향을 구체화하는 실천적인 과제들을 안고 다시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한다. 201호부터는 특집 기획에 걸맞은 각론들을 간명한 분량과 너른 시야로 담아내고자 한다. 이에 현실문제에 직핍하여 예리하게 비평하는 글쓰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한다. 이번호 특집은 ‘한국이라는 서사’를 주제로 네편의 글을 묶었다. 문명 전환 시대의 한국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에 대한 담론적 진단과 비평을 바탕으로 사회정치, 문학사, 한국학, 동아시아론에 이르는 폭넓은 영역에 걸쳐 한국이 가진 서사적 가능성에 대한 창조적인 진로를 모색하는 글들이다. 이남주는 그동안 한국이 이루어온 발전과 성취가 새로운 문명 전환 시대의 과제와 결부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한국에 대한 담론적 사유의 활로를 모색한다. 현재 정부가 주도하는 글로벌 중추국가 담론과 외교안보정책이 근본적으로는 분단체제 재공고화 기획과 깊숙이 연결되었음을 날카롭게 분석하며, 다극화하는 글로벌 질서 속에서 정부가 고집하는 냉전식 양자택일의 정치적 기획이 한국의 발전공간을 축소하게 될 위험성을 환기한다. 이 글은 궁극적으로 분단체제의 극복이 한국의 문명 전환 과제에서 관건적인 문제임을 설득력있게 피력하며 이러한 바탕에서 한국의 가능성을 새롭게 만들어가기를 제안한다.

강경석은 최근 한국문학 연구와 비평에서 성행하는 문학성에 대한 논의들에 주목하여 탈민족주의와 근대문학 종언론의 시각을 배경으로 한 이들 논의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분석한다. 특히 문학성 회의론과 연결되는 최근의 주류 문학사 연구들이 “단절론적 청산주의와 자기 시대의 특권화”에 매몰된 부분을 지적하고, 전통과 현재를 창조적으로 연결하며 문명 전환기에 새롭게 써나가야 할 한국문학사의 가능성을 제안하는 지점이 긴요하다.

정헌목은 한국학에 대한 기존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내포하는 본질주의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세계적인 맥락에서 한국적인 것을 새롭게 이해하기를 요구하는 분위기 속에서 문화적 성취를 넘어 지금의 한국을 만들어낸 과정을 객관적으로 성찰하며, 바깥으로부터의 질문에 답하기 위한 한국학의 새로운 과제를 강조한다.

백지운은 급변하는 미중간 패권경쟁체제의 위기 속에 한반도에서 발신할 수 있는 동아시아 담론의 현재성을 살펴본다. 리영희의 극동아시아론에 대한 논의를 경유하여 과거 냉전의 이분법에서 벗어나려 했던 전환시대의 논리를 성찰하고, 현재 동아시아의 문명론적 의제가 현실에 새롭게 개입할 가능성을 타진한다.

대화는 최근 뜨거운 사회 쟁점이 되는 후꾸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를 다룬다. 남상욱의 사회로 송기호 오은정 이헌석이 참여하여 오염수 방류의 기원이 되는 원전사고의 이면과 핵산업의 본질적 성격, 오염수 방류의 실질적 쟁점을 다각도로 논의한다. 우리 사회의 망가진 재난 대응 시스템과 민주주의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고민하며 국제사회 연대를 촉구하는 중요한 토론으로 주목을 요한다.

논단의 서재정은 한반도의 군비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위기상황을 다룬다. ‘선제타격’ 독트린이 득세하며 한미일 대 북중러의 진영화가 구축되는 긴급한 현실을 환기하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국이 ‘선도적’으로 긴장완화 조치를 취하는 한편 ‘일방적’인 군비동결과 군사훈련동결을 선언하고 실천할 것을 간곡히 요구한다. 현장에서는 최시현이 가사·돌봄유니온의 최영미 위원장을 만나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된 1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와 외국인 가사인력 도입에 따른 최근의 논란 및 가사·돌봄노동의 플랫폼화까지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한다. 가사·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며 가치로서의 돌봄과 노동으로서의 돌봄을 함께 생각해보는 뜻깊은 글로 일독을 권한다.

작가조명에서는 제주와 한반도 현대사의 뿌리가 담긴 역작 『제주도우다』를 출간한 현기영 작가를 본지 편집위원 백영경이 만났다. 제주의 근현대사를 총체적으로 다룬 작품의 현재적 의미를 실감하는 한편, 사라진 제주 공동체와 애도의 공동체를 딛고 대안적 삶을 만들 수 있는 서사적 상상력에 대한 깊고 진지한 대화가 오간다.

문학평론에서 임홍배는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거둔 성취를 자상하게 짚으며 과거사에 대한 새로운 서사적 해석과 지역서사의 현재적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다. 특히 아버지를 통해 그려진 사회주의자의 형상이 지닌 문학적 의미를 조명하면서 파괴적인 폭력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성 재현에 대한 깊은 감동을 전한다. 창비신인평론상 수상자 권영빈은 최진영의 소설을 중심으로 한국사회의 죽음을 둘러싼 지배적 정동을 파악하고, 죽음의 리얼리티가 사라진 현실에 대한 저항으로서 작품이 보여주는 고유한 애도의 방식을 새롭게 읽어낸다.

이번호 문학초점은 새로운 리뷰의 형식으로 독자들을 찾아간다. 김영희 정주아 송종원이 참여하여 이번 계절 시, 소설, 평론에서 의미있는 작품을 선정해 섬세한 읽기와 예리한 분석을 보여준다. 비평적 글쓰기의 활로를 찾고자 하는 문학초점란의 기획에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린다.

허은의 산문은 분단국가의 민주화와 남북의 평화통일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사학자 고 강만길 선생의 생애를 곡진하게 돌아본다. 반식민 민족주의자, 공동체를 중시하는 사회주의자, 반전 평화주의자의 신념에 기반한 강만길 역사학의 현재성을 통찰하는 글로 마음 깊이 와닿는다. ‘내가 사는 곳’ 연재에는 극지에서 동물을 연구하는 이원영의 글이 실렸다. 십년째 남극 과학기지를 오가며 겨울을 보내는 필자의 삶과 남극에서 만날 수 있는 생태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이번호 촌평란도 다양한 분야의 양서들을 선정하여 알차고 품격있게 꾸려졌다. 따스한 격려와 질정을 보내주신 독자의 목소리에도 깊이 감사드린다.

창작란도 풍성하다. 시란에서는 열네 시인이 다채로운 시적 개성으로 자리를 빛내주었다. 창비신인시인상 수상자 이하윤의 시와 더불어 특별기고를 통해 동일본대지진 후의 재난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김시종의 작품을 소개하게 되어 뜻깊다. 신예작가 특집으로 꾸린 소설란에서는 김기태 김지연 전지영 주영하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지난호 연재를 시작한 김금희 장편이 2회째를 맞아 한층 무르익은 이야기를 펼쳐가면서 소설란의 풍요로움을 더한다.

아울러 제41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이동우 시인과 이주혜 소설가에게 축하를 보낸다. 이번 가을호에서는 만해문학상의 최종심 대상작 또한 살필 수 있으며, 겨울호에 이어질 수상작 발표에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긴 여름의 끝에 여러 사람의 수고와 열정이 담긴 한권의 잡지를 엮는 마음이 각별하다. 사회 곳곳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현실이 지난하게 느껴지지만 책을 펴내며 만나게 된 희망과 모색의 움직임들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모아 앞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실감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공동체의 협력과 지혜가 긴요한 시간에 본지 역시 성심을 다해 노력할 것을 약속드리며 독자 여러분께도 변함없는 성원과 엄정한 조언을 부탁드린다.

백지연

백지연

저자의 다른 계간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