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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칼럼] 2기 촛불정부와 22대 총선



백낙청

백낙청TV의 시청자 여러분, 창비주간논평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새해에 다들 건강하시고 좋은 일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이번 신년칼럼의 제목을 ‘2기 촛불정부와 22대 총선’이라 했습니다. ‘2기 촛불정부’가 앞에 나오는 것은 그 성립이 총선 전일지 후일지 또는 동시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양자의 선후관계를 예단하는 게 아니고, 어느 경우든 우리가 집중해야 할 과제는 2기 촛불정부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난해 신년칼럼을 저는 ‘나라 꼴이 말이 아닙니다’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1년이 더 흐른 오늘, 나라 꼴은 더욱 참담해졌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일차적 책임은 무능하고 무도한 정권의 폭주에 있겠습니다만, 분단체제의 속성도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이 괴물 같은 분단체제를 퇴치하는 작업이 지체되는 순간, 나라 꼴이 더 괴상해지고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괴물 또한 위력이 더욱 커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시국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이런 세월을 맞아 체념하고 기죽어 지내는 대신 세상을 요동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 국민의 체질이며 전통입니다. 하지만 정확한 진단을 하고 알맞은 처방을 내놓기가 어려워진 건 분명하지요. 그럴수록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는 정치공학적 디테일에 함몰되지 말고, 건전한 상식을 가진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고 거기 충실해야 하리라 믿습니다.


기준은 2기 촛불정부 수립


저는 우리의 최우선 당면과제가 ‘2기 촛불정부’를 만드는 일이고 다른 시국문제도 그 기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정부교체는 2027년에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못 참겠다고, 아니 하루도 더 참지 못하겠다고 정권퇴진을 외치는 시민들이 촛불시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저 자신은 퇴진이 언제 실현된다고 예언하기보다, 2023년에 못하면 총선국면으로 접어드는 2024년에는 더 어려워지리라고 진단했습니다(2023년 신년칼럼 ‘살던 대로 살지 맙시다’, 「백낙청TV」 2022.12.30). 바야흐로 그 2024년을, 퇴진이 실현되지 않은 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총선 논의는 정가는 물론이고 언론계, 학계에서도 유달리 일찍 시작해서 담론계를 거의 휩쓸어온 형국입니다. 대중의 퇴진운동이 일찍부터 시작된 만큼이나 ‘선거’라는 익숙한 프레임에 논의를 가두려는 시도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퇴진담론은 사그러들지 않고 시민들의 촛불행동의 열기도 식지 않고 있습니다. 


총선이 중요한 정치일정임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또한 의정활동 참여를 꿈꾸는 이들이 총선 준비에 골몰하는 것을 나무랄 이유는 없지요. 문제는 2기 촛불정부 건설을 기준으로 총선에 접근하느냐는 것입니다. 기준을 그렇게 정하면, 2024년 총선에서 여당과 이준석 신당 등의 의석 합계가 과반을 넘기는 사태는 촛불혁명에 치명적이지만 그렇다고 야당의 총선승리만으로 촛불혁명이 재출범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2020년에 더불어민주당이 총선승리에 ‘몰빵’해서 180석의 대승을 거둔 결과가 어땠습니까? 아니, 2022년의 대선도 2기 촛불정부보다 4기 민주당정부 수립을 우선 목표로 내걸었다가 ‘정권교체’ 프레임에 몰려 패배한 것 아닙니까?


기준을 망각한 총선담론들


4기 민주당정부 수립 시도가 실패한 것은 촛불혁명의 진행이라는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의 총선승리가 곧 촛불정부의 성공으로 이어지리라는 환상 또한 시대의 주요 전선이 양대 정당 사이가 아니라 촛불 대 반촛불 사이에, 다시 말해 민주당 내부에도 그어져 있다는 사실을 놓친 오류였지요. 


2기 촛불정부 수립이라는 기준에서 벗어난 야권의 총선담론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가장 저열한 유형은 검찰독재의 본질을 외면한 채 총선승리를 위해 ‘사법 리스크’가 있는 이재명 대표를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 터무니없는 주장을 여기서 길게 반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반박하는 논리 또한 총선을 지상과제로 삼는 한에는 동일한 프레임에 묶인 입씨름을 거듭하게 되고 결국 ‘사법부의 판단’만 하염없이 기다리는 신세가 되리라는 겁니다.


신종 ‘몰빵’론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총선을 치르더라도 한 석이라도 더 얻는 것 말고는 딴생각을 말자는 식이지요. 그러다보면 어떻게든 ‘중도세력’을 더 잡아야 할 텐데 행여 누가 촛불혁명을 들먹이고 퇴진을 거론하는 등의 ‘강경발언’을 해서 ‘중도 표’를 놓칠세라 울렁증에 빠지게 됩니다. 만약에 이재명 대표마저 그런 기색을 보인다면 총선을 이기더라도 2기 촛불정부에서 도리어 멀어지는 ‘소탐대실’로 끝날 공산이 큽니다.


이른바 반명세력뿐 아니라 이 대표에 우호적인 상당수의 인사들 가운데도 선거제도 문제에서 민주당이 소탐대실할 가능성을 우려합니다. 2019년에 민주당을 포함한 이른바 4+ 연합이 합의해서 만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이번에는 꼭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저는 이 경우에도 2기 촛불정부 수립을 기준으로 삼는 논의가 관건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이 기준에 따른 최선의 전략이 무엇인지를 제시할 능력이 없습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는 “거대양당의 위성정당 놀음”을 분명히 비판했더랬습니다(「4·15총선, 누구를 어떻게 심판할까」, 창비주간논평 2020.4.1).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입장을 그대로 되풀이하기 힘든 사정도 없지 않습니다. 우선 2020년과 같은 ‘위성정당 놀음’이 재연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국민의힘(당시의 미래통합당)은 처음부터 선거법 개정에 반대했기 때문에 그때나 지금이나 위성정당 만들기에 거리낌이 없는 데 반해, 민주당이 그런 꼼수를 되풀이하는 것은 자멸에 가까울 것임을 스스로 알고 있을 겁니다. ‘비례연합정당’ 논의도 있습니다만, 결국은 준연동형을 감수하지 않을 거라면 병립형에 가까운 제도를 만들려고 할 것 같습니다. 그럴 경우 촛불시민이 얼마나 강하게 규탄해야 할지, 또는 이해하는 자세를 취해야 할지, 판단이 어렵습니다.


4년 사이에 달라진 사정도 적지 않으니까요. 민주당은 선거법 개정에 협력했던 동지 정당들을 배신한 뒤 2022년 대선에서의 패배라는 댓가를 치른 바 있습니다. 박빙의 싸움에서 정의당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대선 도중에 이재명 후보가 ‘반성’을 말하며 꼼수를 되풀이 않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심상정 후보로부터 냉랭하게 외면당했지요. 정의당의 이후 몰락이 그것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른바 ‘제3지대’에서 정의당의 존재감이 거의 사라졌고, 준연동형 시행의 주된 수혜자는 이준석이나 이낙연의 당이 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의석수에 집착해서 약속을 가벼이 여기는 일은 촛불정부 수립 노력을 손상하게 마련입니다. 반면에 무조건 약속을 지키라는 다그침도 총선 위주의 판단이어서는 도움이 안 됩니다. 입법부의 비례성 강화는 국힘당이 말도 못 꺼내게 하는 의원정수 확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촛불혁명의 진전을 통해서만 실현될 과제인 것입니다. 이런 복잡한 사안에 도덕적 판단을 과도하게 들이대는 것은 무리한 담론이 되겠지요. 연동형 비례제가 ‘원칙적으로’ 더 훌륭한 선거제도라는 주장도, 총선우선론의 ‘점잖은’ 버전이거나 총선·대선에 대한 현실적 관심보다 무엇이 이론적으로 최상의 제도인지를 가르치는 데 열중하는 태도이기 십상입니다.


이재명 대표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단순히 제1야당 대표가 아니라 2기 촛불정부를 내다보는 국가적 지도자로서 어째서 시대적 과제에 부응하는 최선의 길인지를 국민들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멋지게 지면 뭐 하냐?’는 답이 아닙니다. 민주당이 촛불정부에 대한 확고한 목적의식을 지니는 한 국민들은 결코 총선을 지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는 신뢰와 감사의 마음을 갖고, ‘그러나 이번에야말로 이겨도 아주 크게 이겨야만 된다’는 사정을 정중히 설명해야지요. 더하여 그러한 지지를 받을 자격이 있는 정당이요 지도자임을 실행으로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기득권세력에 대한 정확한 평가에 기반한 전략을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저서(『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 창비 2021)를 내면서 저는 촛불과 반촛불 세력 간의 ‘건곤일척의 대회전’을 말했습니다(18면). 예단을 자제하긴 했지만 내심 촛불세력의 승리를 예상하기도 했습니다. 저의 현실진단이 부실했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 기득권세력의 힘을 과소평가했던 것입니다. 새해에는 퇴진운동이건 총선전략이건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아야겠습니다.


2018년의 남북·북미 정상회담의 성과가 2019년 하노이 북미회담의 실패로 인해 더는 진전되지 못한 것을 두고 남측 당국의 소심성이나 북측 당국의 핵무기 집착을 탓하기도 합니다. 물론 아주 틀린 해석은 아니지요. 그러나 근본원인은 남이건 북이건 미국의 뿌리깊은 대북 적대노선과 한반도에 대한 분할통치 전략을 바꿔낼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북측 정권의 대미자주성을 평가하더라도, 그들 역시 분단체제 속의 자기 생존을 최우선시하는 집단임을 인식해야겠지요. 그 점에서 북이 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일단 접어두고 통일 대신 ‘국가 대 국가’ 관계를 우선시하는 태도로 전환한 것이 우리의 시야를 정리해준 면이 있습니다. 아니,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통일하자는 그간의 북측 주장이 현실적인 방안이 못 되었던 만큼,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는 것 자체는 남북연합을 향한 하나의 전진이라 볼 수 있겠지요. 


무엇보다 우리 국민의 경우에는 대미·대북관계의 주요 전선이 바로 국내에 그어져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민주당이 국회의 압도적 다수의석을 차지한 뒤에도, 분단체제의 기득권세력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포함한 사회 곳곳에 얼마나 완강하게 둥지를 틀고 있는지를 더 열심히 연마할 일입니다


이런 지형에서 1기 촛불정부의 출범 자체가 보수세력 일부의 협동이 있어 가능했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촛불군중의 위력에 눌린 분열이었지만, 국회의 탄핵결의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이 살아나면 자신들은 다 죽는다는 위기의식이 상당수 여당 의원들의 이탈을 낳았고 촛불시위에 대한 기득권 언론들의 은근한 응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백만, 이백만의 군중이 다시 나오면 윤석열 탄핵이 이루어질 거라는 희망적 기대는 금물입니다. 2016~17년의 대항쟁 같은 기적적인 사건이 역사에서 그대로 되풀이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 뿐 아니라, 탄핵으로 한번 망해본 수구세력의 대책 또한 똑같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총선에 관해서도, 대통령실이나 국힘당보다 훨씬 장기적이고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집단들은 여당의 승리에 다 걸기보다 선거 후의 정계개편이라든가 여야를 망라한 기득권세력이 합작하는 내각제 개헌 같은 다양한 대책을 궁리 중이라고 보는 게 옳을 듯합니다.


국제적 환경도 촛불에 결코 우호적이랄 수 없습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역에서 세계 민중의 목소리에 귀를 닫은 채 미국의 지지 아래 자행되는 민간인 대량학살을 보나,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위기에 대한 자본의 교활한 회피책들을 보나, 세상의 강자들이 우리 사회의 변혁을 반길 리 없음이 뻔합니다. 그러나 한국 내부에 그어진 분단체제의 주요 전선 중 하나를 우리 국민이 돌파하는 것을 외국이 힘으로 막을 수는 없지요.


후천개벽 과정 속의 2기 촛불정부


6년 전의 촛불대항쟁은 분명 국민의 엄청난 분노가 터져나온 사건이었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대다수 참여군중이 ‘아, 이런 세상도 있구나’라는 실감을 처음으로 해보는 환희의 체험이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신동엽 시인의 표현대로 ‘하늘을 보았던’ 거지요(2019년 신년칼럼 「하늘을 본 뒤에 무엇을 할까」, 창비주간논평 2018.12.27).


대중의 분노로 말하면 오늘이 그때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다만 탄핵이든 ‘자의 반 타의 반’ 사임이든 이번에는 광장의 촛불만으로 성취하기 어렵다는 거지요. 지금은 한군데 광장으로 다 모이기보다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인 분노 표출이 이루어지는 형국입니다. 집권세력의 내부갈등도 오히려 더 심해진 것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듯이, 이런 힘들을 정교하게 뭉쳐내는 다중의 지혜와 유능한 정치적 리더십이 관건입니다. ‘2기 촛불정부’ 수립은 또 하나의 안 가본 길을 가는 그야말로 개벽 차원의 거대한 역사적 과제인 것입니다.


실제로 이 땅에서는 19세기 중반에 수운 최제우 선생의 동학(東學)을 통해 새 세상의 꿈과 설계가 이미 나온 바 있습니다. 그때 시작된 후천개벽운동은 1894년의 갑오농민혁명, 1919년의 3·1운동, 도산 안창호 선생 등 독립운동가·혁명사상가들의 헌신, 소태산 박중빈 선생의 원불교 개창, 그리고 분단시대에 들어선 뒤로도 4·19와 5·18, 6월항쟁 등으로 면면히 이어졌습니다. 그 흐름이 우리시대의 촛불혁명으로 크게 분출한 것입니다.


물론 이런 민중의 각성을 억누르는 적폐의 역사도 장구합니다. 유교국가의 본분을 되찾으려는 마지막 몸부림이었다고 할 정조(正祖)의 개혁이 실패한 뒤로 세도정치, 동학혁명군 탄압, 식민통치, 분단시대 들을 거치면서 나라는 멍들 대로 멍들고 백성들의 심성도 피폐해졌습니다. 그런데도 촛불대항쟁을 이루어내고 촛불정부를 출범시킨 우리들이기에, 2기 촛불정부의 탄생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헌정중단 사태를 빨리 끝내야


저는 윤석열정부의 등장을 촛불혁명의 와중에 벌어진 하나의 ‘변칙적 사태’로 규정한 바 있습니다. 지금 이 나라가 ‘헌정중단’ 사태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이는 윤석열정부의 폭주가 헌법을 파괴하고 있다는 비난을 좀 색다르게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윤정부의 헌법파괴 행위 이전에 촛불대항쟁으로 87년체제가 수명을 다했고 현행 87년 헌법은 정상적인 작동을 멈추었다는 판단을 담은 말입니다(‘[백낙청 공부길 090] 백낙청 사상의 일관된 급진성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백낙청TV」 2023.12.22).


6월항쟁으로 새 헌법이 제정되고 87년체제가 형성된 것은 우리 역사의 획기적 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분단체제라는 토대를 허물지 못한 채 수구세력과의 불안한 타협으로 탄생한 현실이었기에, 그로써 시작된 민주화 과정이 일정하게 진전되었을 때 더 나은 체제로 넘어가야 할 사명을 띤 체제였습니다. 1998년 김대중정부의 출범으로 최초의 평화적인 수평적 정권교체가 실현되었고 뒤이어 6·15공동선언이 분단체제 해체의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노무현정부는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 한층 확대되는 가운데 ‘특권과 반칙 없는 사회’라는 새로운 체제로 넘어갈 계기였습니다.


그러나 노무현의 개혁은 실패했고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이들은 김대중·노무현 직전의 노태우·김영삼 시대를 계승하는 게 아니라, 87년체제를 허물고 다시는 정권상실의 위험이 없는 체제로의 이행을 추진했습니다. 남북관계에서도 6·15선언뿐 아니라 아예 노태우정권의 남북기본합의서 이전의 시대로 되돌아가고자 했지요. 이명박이 시작하고 박근혜가 계승한 이런 역전 기도를 이남주 교수는 ‘점진 쿠데타’로 규정하기도 했는데(이남주 「수구의 ‘롤백 전략’과 시민사회의 ‘대전환’ 기획」, 『창작과비평』 2016년 봄호), 이 총칼 없는 쿠데타를 막아내고 박근혜정권을 퇴출한 것이 2016~17년의 촛불대항쟁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87년체제보다 나은 체제의 건설 노력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도가 순항하지 못한 결과로, 87년체제가 비교적 정상적으로 작동하던 시대의 정권교체와는 질적으로 다른 사태가 벌어진 것이 윤석열의 집권이라는 ‘변칙적 사건’입니다. 이명박·박근혜의 ‘점진 쿠데타’와도 또다른 차원의 폭주, 박정희·전두환 시대보다 이승만 시대의 북진통일노선과 도적정치—영어로 kleptocracy라고 하는 권력에 의한 공공연한 약탈과 부정축재의 정치—가 벌어졌지요. 아니, 잘했건 못했건 이승만이 표방하던 반일외교마저 친일헌납 노선으로 대체했습니다. 저 먼 어느 대륙의 후진국도 아닌 대한민국에서, 21세기의 대명천지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요?


얼마나 지속될지는 결국 하늘이 정하고 민심이 정할 테지요. 어쨌든 이미 생명력을 다한 87년 헌법, 체제의 뒷받침이 사라진 일종의 ‘대리헌법’에 정해진 정치일정을 우리가 고수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당면한 정치국면과 다가오는 총선에서 2기 촛불정부 수립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공하는 촛불정부’로 귀결할 때 세계사적으로도 아무도 안 가본 길을 우리가 열게 될 것입니다.

 

 

 

백낙청 / 서울대 명예교수, 『창작과비평』 명예편집인

2023.12.29.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