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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이제 함께 살자, 함께 웃자

김덕진

김덕진 / 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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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은 왜 이렇게 길고 추운지 모르겠다. 새해가 시작된 지 겨우 보름이 지났는데 몇달이 지난 것처럼 지치고 힘들다. 꼬박꼬박 끼니를 챙기고 따스한 잠자리에서 쉬는 우리의 겨울도 이런데 울산 현대자동차 최병승과 천의봉, 평택 쌍용자동차 한상균과 문기주, 복기성, 아산 유성기업 홍종인의 겨울은 어떨까?

 

지난해 말, 18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참담하고 고독한 마음을 지닌 채, 차례로 세상을 떠난 한진중공업 최강서, 현대중공업 이운남, 민권연대 최경남, 한국외대지부 이호일과 이기연의 가족들은 이 겨울을 어찌 지내고 있을까?

 

혹독한 겨울, 그들의 안부를 묻다

 

며칠 후면 용산참사 4주기가 되는데도 아버지를 죽인 죄인이라는 멍에를 벗지 못하고 옥살이를 하고 있는 용산 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 이충연과, 동료 철거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죄인이 되어 감옥에 갇혀 있는 철거민 김주환, 김성환, 김창수, 천주석에게 감옥에서 맞는 네번째 겨울은 어떤 의미일까?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공사를 중단시키겠다고 공사장 정문을 막고 매일 천배를 올리며, 경찰에 끌려가고 고착(둘러싸고 통행을 가로막음)당하면서도 레미콘 차량 앞에서 평화의 춤을 추고 생명의 노래를 부르는 강정 주민들의 겨울은 얼마나 추울까?

 

수십년 살아온 집 앞마당에 들어서려는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밀양에서, 청도에서 매일 아침 공사장 바리케이드 앞으로 출근하는 할머니들에게 이 겨울은 얼마나 야속하고 지긋지긋할까?

 

쫓기고 내몰리는 이들의 천막에는

 

쫓겨나고 내몰리는 사람들에게 이 겨울은 한파 대신 절망에 온몸이 얼어붙고, 하늘에서 눈이 아니라 눈물이 내리는 시절이다. 이들 곁에서 ‘함께살자 농성촌’ 천막을 머리에 이고 있는 나는, 이 서럽고 참담한 겨울의 증인이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 온몸의 오감을 곤두세운 채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어제 서울 대한문 앞 ‘함께살자 농성촌’에는 참 귀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송전탑 저지 싸움을 8년째 하고 있는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밀양에서 출발한 희망버스를 타고 울산 현재자동차 비정규직 철탑 농성장, 한진중공업 최강서의 빈소, 대한문 ‘함께살자 농성촌’, 평택 쌍용자동차 송전탑 농성장, 아산 유성기업 고가다리 농성장을 들르는 일정 중 대한문을 찾아온 것이다. 이 삭막하고 황량한 겨울, 그래도 이런 마음들이 있으니 우리가 이나마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일터에서 해고되어 쫓겨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지, 수백일씩 천막 하나에 의지하며 생을 걸고 농성하는 투쟁현장이 얼마나 많던지, 재개발, 골프장, 송전탑, 댐, 4대강사업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들이 얼마나 많던지. 울지 않은 날이 없었고 분노하지 않은 밤이 없었다. 그 시간들을 떠올리니 잠이 오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 시대, 다시 살아가기 위하여

 

이명박 대통령이 지긋지긋하다면서도 박근혜를 선택한 국민의 뜻을 나는 도통 모르겠다. 부자들은 부자들을 위해 살게 마련이고, 권력을 가진 이들은 오로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을 지난 수십년의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어리석은 반복을 다시 선택한 국민의 뜻은 정말 옳은 것일까?

 

기업이 노동자들에게 청구한 수십억의 손배소는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길은 요원하다. 주민들이 반대하는 해군기지는 24시간 강행되고 1인당 수백, 수천만원에 달하는 벌금은 평화활동가들의 삶을 옥죈다. 대도시 사람들이 쓰는 전기를 위해 지역의 마을은 파괴되고 주민들은 평생 살아온 터전에서 쫓겨나면서도 전기를 아껴야 한다고 불을 끈다.

 

박근혜 대통령 시대가 열렸지만 쌍용·강정·용산·탈핵의 연대인 ‘SKYN_ACT’와 ‘함께살자 농성촌’은 우리의 절박한 요구들이 해결될 때까지 연대의 끈을 이어갈 것이다. 생명평화대행진으로 전국을 돌며 쫓겨나고 아파하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다짐했던 우리의 결심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우리는 서로의 상처가 맞닿아 있고, 서로의 아픔이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제발 이제 함께 살자. 함께 웃자.

 

“그렇게 높은 곳이었는지 몰랐다. 그렇게 추운 곳이었는지 몰랐다. 마누라 새끼 떼놓고 철탑을 기어오른 새벽녘 얼마나 외로웠느냐, 얼마나 까마득했느냐. 우리가 산속에서 용역놈들에게 개처럼 끌려다닐 때 너희도 공장 밖으로 쫓겨나 길거리를 헤매고, 피붙이 같은 동료들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냈던 너희의 그 서러운 청춘을 우리는 미처 알지 못했다. 시골 할매들까지 데모질에 나서야 하는 사람이 사람대접 못 받는 세상 국민이 국민대접 못 받는 나라. 그래도 바꿔보겠다고, 더이상 물러서지 않겠다고 우리보다 먼저 나선 너희들이 아니냐, 우리보다 더 오래 버텨온 너희들이 아니냐. 그러니 살아서, 살아서 싸우자. 대통령이 누가 됐든, 어떤 비바람이 몰아치든 질기게 살아서 싸우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믿는다. 그러니 너희도 너희들을 믿어라. 결국엔 우리가 이긴다. 아들아, 힘내자! 우리 할매들은 끄떡없다!” (밀양 송전탑 반대투쟁 할매들이 철탑 위 노동자들에게 씀)

 

2013.1.16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