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역사와 안보는 분리 가능한가

일본의 우경화와 한일관계

 

 

권혁태 權赫泰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저서로 『일본의 불안을 읽는다』 『일본 전후의 붕괴』 『전후의 탄생』(편저) 등이 있음. kwonht88@gmail.com

 

 

1. 아베 신조오의 ‘위험한 도박’: 야스꾸니 참배

 

아베 신조오(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취임 1주년을 맞이한 20131226일 야스꾸니신사(靖國神社)를 참배했다. 현직 총리로는 코이즈미 쥰이찌로오(小泉純一郞)2006815일 참배 이래 74개월만의 일이었다. 이로써 아베는 일본의 ‘전후(戰後)’ 총리 28명 중에서 야스꾸니를 참배한 14명의 총리중 한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횟수로 말하자면 현직총리 참배로는 67번째에 해당된다. 야스꾸니에 A급 전범이 ‘합사(合祀)’된 사실이 밝혀진 19794(합사는 19781017일)부터 계산하면, 아베는 야스꾸니에 참배한 5번째 총리가 되고 횟수로는 29번째에 해당된다. 제1차 아베정권(2006~2007)하에서 야스꾸니를 참배하지 못한 것을 2012년 중의원선거 기간 중에 “천추의 한”이라 말했고, 또 20131019일에도 “그 마음에 변함이 없다”라고 말했으니1) 아베 총리에게는 뒤늦은 ‘한풀이’가 된 셈이다.

‘전후 정치의 총결산’을 내건 나까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가 야스꾸니를 전격 공식참배한 1983년 이래, 야스꾸니는 항상 국제사회로부터 관심의 표적이 되어왔다.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뜨(Roland Barthes)는 천황이 거주하는 토오꾜오 중심가에 자리한 황거(皇居)를 가리켜 “공허한 중심”이라고 말한 바 있다.2) 사실 야스꾸니신사에는 유골도 없고 위패도 없다. 몇개의 건물과 천황의 ‘명령’으로 영새부(靈璽簿)에 등재된 A급 전범 14명과 전몰자 250만명의 ‘영혼’만이 있는 ‘텅 빈 공간’이다. 이 ‘텅 빈 공간’이 일본이라는 국가의 정치적이념적 향방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되었다는 의미에서 야스꾸니는 황거와 아울러 또 하나의 ‘공허한 중심’일지 모른다. 그래서 새로운 총리가 등장하거나 일본에서 ‘종전기념일’이라 불리는 815일이 되면, 이 ‘공허한 중심’은 항상 논란거리가 되어왔다.

하지만 아베 신조오의 이번 참배만큼 일본 안팎에서 ‘갈등’을 불러일으킨 적은 없었다. 일본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반발이 있었지만, 특히 국제사회의 반발이 일본정부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물론 중국과 한국의 반발은 아베의 예상 안에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참배를 강행한 것은 중국과 한국의 반발이 외교관계의 단절이나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아베는 취임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