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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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에드워드 싸이드 『프로이트와 비유럽인』, 창비 2005

이스라엘의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다

 

 

김상환 金上煥

서울대 철학과 교수 kimsh@snu.ac.kr

 

 

프로이트와비유럽인

20세기 후반에 들어 서양사상사에서 어떤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의 핵심은 동일성과 차이의 관계가 역전된다는 데 있다. 이 역전은 “동일성에서 차이가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차이에서 동일성이 비롯된다”는 명제로 집약된다. 현대의 급진적 사상은 이 원리적 사실의 증명이자 확인이다. 니체, 하이데거, 아도르노, 푸꼬, 데리다, 들뢰즈 등의 철학은 말할 것도 없고 정신분석, 페미니즘, 오리엔탈리즘 등도 차이의 원리를 대변하는 중요한 사례들이다.

이런 전복적 사조들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정체성, 가령 성별상의 정체성이나 문화적 정체성의 배후에서 어떤 불합리한 왜곡과 조작의 흔적을 읽는다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에드워드 싸이드(Edward W. Said)의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을 바라보는 유럽인의 시각과 이미지에 문제를 제기하는 개념이다. 서양인의 동양인 상(像)에 투사된 모종의 욕망,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로 이어지는 그 무의식적 욕망을 추적하는 이런 문제제기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유럽은 비유럽의 정체성을 구성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했고, 비유럽을 규정하는 술어들을 고안하면서 자신을 정의하는 범주들을 획득했다. 자신의 이상적 이미지가 투영될 타자의 눈을 자기 스스로 그려내는 상상적 거울놀이가 오리엔탈리즘이다. 오리엔탈리즘은 자신의 우월한 위치를 자리매김할 수 있는 타자의 위치를 자기 스스로 조작하는 가상적 이항대립의 체계이다.

최근작 『프로이트와 비유럽인』(Freud and the Non-European,주은우 옮김)에서 싸이드는 이런 오리엔탈리즘이 과거의 오리엔탈리즘의 희생자였던 유대인들, 정확히 말해서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에 의해 반복되고 있음을 고발한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들어선 이후 여기서 공공연히 벌어지는 여러 배타적이고 국수주의적인 정책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특히 이 책에서는 고고학을 통해서 이 지역의 역사적 기억을 독점하고 유대인의 민족적 정체성과 이스라엘의 국가적 정체성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려는 폐쇄적 순수주의를 비판의 도마에 올린다.

이런 배타적 순수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 저자는 이스라엘의 고고학과 프로이트의 고고학을 정면으로 마주 세운다. 이 대표적인 유대인 학자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 『모세와 유일신교』(1939)에서 유대인의 정체성이 성립되는 역사적 경위를 발굴한 바 있다. 이런 발굴은 매우 집요하고 미시적인 분석의 절차를 거쳐 현재의 이스라엘 민족주의자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테제를 확립한다.“유대민족의 창조자” 모세는 이집트인이었고, 유대민족의 정신적 정체성을 담보하는 유대교는 이집트가 주변의 상이한 민족과 나라들을 정복했을 때 모습을 드러낸 어떤 유일신 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유일신교는 문화적 다양성과 차이를 초월하여 제국의 정신적 통일성을 정당화하는 종교유형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고고학은 “디아스포라(diaspora) 정신으로” 가득 찬 프로이트의 고고학을 “유대역사의 새로운 실정적(實定的)인 구조로 대체하려는 터무니없고 수정주의적인 시도”(71~72면)라는 비난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런 대조 속에서 이스라엘의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적 오리엔탈리즘과 식민주의의 전형으로,반면 프로이트의 마지막 작품은 탈식민주의의 고전으로 부상한다. 사실 유대민족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프로이트의 분석은 신경증의 형성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성과를 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신분석의 반복이지만, 우리는 이 저작에서 현대 차이의 철학에 꾸준히 영감을 주고 있는 프로이트의 근본적 통찰이 그 어떤 저작에서보다 극적으로 입체화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은 곧 “가장 식별가능하며, 가장 강고한 집단적 정체성(…)조차도 거기에는 그것이 하나의, 오직 단 하나의 정체성으로 완전히 병합되는 것을 방해하는 내재적인 한계가 존재한다는 통찰”(82면)이고,“정체성은 억압되지 않을 근본적인 기원적 단절 혹은 흠 없이는 스스로를 구성할 수도 심지어 상상할 수도 없다”(83면)는 통찰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서 이런 통찰은 ‘증상’의 개념을 구성하는 여러 하위개념들 속에 압축되어 있다. 정신분석학적 의미에서 증상은 “억압된 것의 회귀”이다. 이때 회귀는 어떤 왜곡과 변형, 그리고 타협이다. 서로 대립하는 경향들 사이의 잠정적 평형상태가 증상이라는 것인데, 이 평형상태는 회귀하는 ‘진리’가 표현되는 동시에 훼손되고 은폐되는 사태라는 점에서 타협적이다. 게다가 이런 타협은 복수적인 경향이나 심급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따라서 증상의 정체성은 “복합적인 원인의 사슬 혹은 망상(網狀)조직”을 통해 일어나는 어떤 “중복결정” 혹은 “중층결정”의 산물이다(국역 프로이트 전집,16권 147~48면). 이런 다차원적인 결정 속에서 원래의 진리는 장소를 바꾸고 모습을 바꾼다. 이렇게 볼 때 증상, 또는 그것의 정체성은 어떤 “망상적 포장(wahnhafte Umhuellung)”(같은 책 177면)에 불과하다. 복수적 층위 사이에서 성립하는 어떤 환원 불가능한 간극과 오점을 봉인하고 있는 가상적 외피인 것이다.

『모세와 유일신교』에서 프로이트는 유대교를 어떤 증상으로 간주한다. 이 증상 속에서 회귀하는 진리는 “부친살해”이다. 유대인들은 모세를 죽였고, 그 살해 이후에 모세의 진리를 무조건 믿게 되었다. 모세는 이집트에서는 더이상 실현할 수 없게 된 유일신교를 노예상태의 유대인에게 전파했고, 다양한 혈통과 부족의 집합체인 유대인들은 이 이념을 통해 하나의 동일한 정신적 정체성을 획득했지만, 처음에는 기존의 믿음에 비하여 고도로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새로운 이념(초–감성적인 신)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게다가 모세의 엄격한 태도를 견디기 어려워 그를 죽였다. 하지만 그 죽은 모세는 유대인들의 후회와 애도가 반복될수록 정신적으로 승화되어 신적인 권위와 더불어 “강박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부활하게 되었다. 본질은 어떤 불합리한 사후(死後)현상, 애도 속의 승화현상이다. 유대교의 유일신 이념이 증상이라면, 그 증상은 유대인의 기억 속에 억압된 모세–살해의 회귀, 역사적으로 반복되어온 회귀이다.

이 회귀 속에서 원래의 모세와 유대인들은 부단히 조작되고 수정되어 순수한 혈통을 공유하는 단일민족으로 창안되었다. 이런 통찰을 입증하기 위해 프로이트는 모세와 그의 신이 반복적인 왜곡과 변형을 통해 어떤 순수한 유대적 동일성 안에서 복귀하는 복잡한 절차들을 접근 가능한 자료들을 통해 세밀히 분석한다. 싸이드는 이런 프로이트의 통찰과 분석에 근거하여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비판하고 이스라엘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민족이 관용과 화해 속에서 공생할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아마 그 누구도 평화를 갈망하는 이 팔레스타인 학자의 호소, 그 정의로운 호소를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족을 붙인다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살아 움직이는 사상 속에 프로이트가 원용된다는 것은 중요한 사건이고, 나 같은 많은 독자들에게는 정신분석에 다시 주목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모세론은 오리엔탈리즘보다 훨씬 더 사변적인 차원을 배회하고 있고, 간단히 정리하기 어려운 복잡한 경로를 거친다.우리는 거기서 수준 높은 차이의 논리학이 간결한 문장 속에서, 실감나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개진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데리다의 글쓰기나 차연(差延) 등의 개념을 암시하는 대목, 하지만 무엇보다 헤겔의 본질–논리학에 나오는 ‘자기관계적 부정’이나 ‘부정적 자기관계’라는 독특한 차이개념으로 갈 수 있는 길목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민족갈등의 문제에 집중하는 싸이드의 실천적 담론 속에서야 프로이트의 모세론이 지닌 이런 ‘논리학적’ 가치를 깨달을 수 있었으니, 이번 서평은 나에게 행운이었다.

김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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