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연합정치의 진화로 2012년을 준비하자
터널 끝이 보인다. 이명박정부의 임기가 반환점을 한참 돌아 종착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이명박정부의 등장을 진보개혁시대의 종식과 보수패권시대의 도래로 보았던 사람이 많았다. 당시 진보 내의 혼란과 연이은 선거패배를 고려하면 무리도 아니다. 그러나 이명박정부가 ‘도적정치’(kleptocracy)적 행태를 반복하며 민심의 이반을 초래하면서 임기 5년이 수구보수의 무덤이 될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현정부가 물러간다고 새로운 시대가 자동적으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정치사회의 전반적인 퇴행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1년 전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국민은 이미 이명박정부를 심판하고 야권연대에 힘을 몰아주었다. 지난 4월의 재보선에서도 야권은 여당의 지지기반이 강한 지역에서마저 승리했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내년 총선에서 야권을 지지하겠다는 유권자의 비율이 여권을 지지하겠다는 측보다 훨씬 높다.
이명박정부를 반대하는 정치세력이 함께 연합정치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였다. 지방선거 이전에는 진보개혁세력 내에 패배주의가 만연했다. 2008년 총선 패배의 기억도 사라지지 않았고, 야권은 새로운 인물도 참신한 정책도 내놓지 못했다. 2012년까지 이러한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이 없다는 자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국민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 이명박정부의 퇴행적 행태를 심판하지 못하면 2012년 이후의 미래도 없다는 것이 곡절 많은 정치사를 살아온 그들의 실감이었다. 이때 연합정치가 국민이 자신의 생각을 표출할 수 있게 만든 마중물이 되었다. 유권자들은 연합정치를 야권이 지리멸렬한 상태를 극복하고 수구보수의 패권에 도전하기 위한 변화로 인정하고 그것에 지지를 보내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연합정치가 완벽한 성공도 아니었거니와 한두번의 성과로 연합정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연합정치는 기존 정당의 기득권 강화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희망을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4・27 재보선 전후로 야권내 소수정당은 연합정치 내에서 자신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길을 찾고, 다수당은 연합정치를 당면한 위기에서 탈출할 수단으로만 여기는 문제점이 나타났다. 연합정치가 성공의 역설에 직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지울 수 없다. 연합정치는 제한된 몫을 나누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파이를 키우고 그 속에서 모두가 성장하는 협력게임이 되어야 계속 발전할 수 있다.
따라서 연합정치의 다음 목표는 2012년 총선의 승리, 그것도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압도적 승리이다. 이미 지방선거와 재보선이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과정에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정책과 인물이 나온다면 2012년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한층 높아질 것이다. 총선의 압도적 승리가 갖는 의미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2012년 정권교체는 단지 절차적 민주주의가 작동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라 남한 내의 개혁이 결실을 맺고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큰 흐름을 만드는 전기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난 십수년간 경험한 것처럼 이러한 변화에 대한 수구보수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따라서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로 개혁이 중도반단(中途半斷)되지 않고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힘을 만들어야 한다.
총선의 압도적 승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야권 내에서 통합의 흐름을 강화해야 한다. 현재의 파편화된 정당구도에서는 후보단일화 방식의 연대가 어렵다. 정당공천의 이해관계 조정에 얽매이다 보면 새로운 세력이 진출할 기회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념과 뿌리가 유사한 정당, 정치세력이 먼저 통합하면서 연합정치의 새 동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러한 소통합을 통해 정치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세력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후보단일화의 어려움을 줄일 수 있다.
연합정치 진화의 또다른 관건은 새로운 수권주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2012년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가 진정한 변화의 계기가 되려면 그 변화를 주도할 주체세력이 필요하다.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모든 정치세력이 하나의 정당으로 합쳐 수권주체가 되면 좋겠지만, 일부라도 근본적 변혁을 사명으로 여기고 독자정당의 필요성을 주장한다면 비현실적 발상이 되기 쉽다. 그렇다고 현재의 민주당만으로 수구보수의 반발을 극복하고 개혁을 완수할 주체를 형성할 수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 따라서 정당간 연합의 과제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적절한 방법으로 풀어가더라도, 이와는 별도로 더 폭넓은 통합을 실현하고 통합적 수권정당을 건설하는 과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통합적 수권정당이 건설된다면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이고, 연합정치도 더 효율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수권이라는 위치에 가장 가깝게 접근해 있는 민주당이 정책정강이나 정당운영방식 등을 획기적으로 혁신하는 것이 필요하다. 명분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하며 신뢰를 얻어야 통합의 폭을 넓힐 수 있다. 동시에 우리 사회에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통합된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세력들이 통합적 수권정당 건설에 한층 적극적으로 나서고 민주당의 변화도 이끌어낼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올해 들어 국내사정도 간단치 않지만 지구적 차원에서 심상치 않은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북아프리카 및 아랍권을 휩쓴 시민혁명의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아직 가늠하기 어렵고, 일본 후꾸시마 원전사고는 생활방식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을 볼 때 2012년의 선거가 정치세력의 교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지구적 차원의 변화에 대응할 새로운 주체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더욱 절박해진다. 큰 꿈을 품고 자기혁신과 연대의 정신을 견지한다면 우리는 2013년을 평화, 복지, 민주를 향해 새롭게 출발하는 전환점으로 만들고 안팎의 도전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호 특집은 ‘2010년대 한국문학을 위하여 2’이다. 작년 겨울호 특집의 후속으로, 당시 제기된 문제의식을 이어가는 동시에 한국문학이 직면한 새로운 쟁점과 과제를 폭넓게 다룬다.
한기욱은 한국소설의 장래를 회의하는 평자들의 입장을 꼼꼼이 짚으면서 그들의 단절론적인 근대문학사 인식과 장편소설 불가능론의 근거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장편소설의 가능성, 장편소설과 장르문학의 관계 등 현단계 소설비평의 주요 쟁점에 관한 심도있는 논의가 구체적인 작품 평가와 서구문학 양식에 대한 흥미로운 토론으로 이어진다. 백지연은 불안의 시대에 대응하는 문학의 소통적 상상력을 주목하면서 권여선과 윤성희, 김미월의 작품을 분석한다. 개별성을 보존하면서도 자신 속에 잠재한 관계성을 발현하는 능동적 개인의 의미와 더불어, 근대적 공동체의 각종 범주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상상적 공동체의 의미를 집중 조명한다. 심보선은 2000년대 시와 시비평에서 전개돼온 ‘문학과 정치’ 논의를 현재의 문학제도가 지닌 전통적 분할선의 해체라는 쟁점으로 이끌고 간다. ‘무식한 시인-되기’라는 도발적 언명을 통해 창작행위에 내재한 감성적 역량의 평등과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한다.
올해 본지의 주요 기획 중 하나로 중견작가 은희경의 장편소설을 연재한다. 그동안 화제를 모아온 본지 장편연재의 성가를 이어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부응할 것으로 기대한다. 아울러 윤대녕, 김도연, 김이설의 단편들이 각각 개성있는 세계를 펼쳐 보인다. 시란에서도 여러 세대와 경향의 시인들이 어우러지며 지면을 다채롭게 장식한다. 아랍문학 및 비교문학자 싸브리 하피즈의 평론은 1990년대 이후 이집트 문학에 등장한 젊은 작가군의 작품경향과 사회변화의 관계를 추적하는 글이다. 쉽게 접하기 힘든 현대 중동문학에 대한 이해를 도울 뿐 아니라 작년말 시작된 ‘재스민혁명’을 예견(?)한 듯한 필자의 통찰력이 주목할 만하다. 지난호 신설된 코너인 작가조명에서는 새 소설집을 내며 독특한 작품세계를 이어가고 있는 편혜영을 초대한다. 이와 함께 각 부문의 주목할 만한 성과를 가려 간명한 리뷰를 제공하는 문학초점란도 챙겨두시길 바란다.
이번호 대화는 일본 대지진이 초래한 원전재앙을 주제로 마련되었다. 에너지 및 환경정책 연구자인 동시에 환경운동 현장에도 이해가 깊은 세 전문가가 이번 원전사고의 원인과 수습과정을 짚어보고 한국 원전의 안전성 및 ‘원자력 신화’의 허상을 깊이있게 진단한다.
논단과 현장은 어느 때보다 무게있는 글들로 묶였다. 사까모또 요시까즈는 원전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을 차분하게 돌아보는 동시에 현대문명의 존재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통일부장관 등을 역임하며 참여정부의 외교통일정책에 깊숙이 참여한 이종석이 분단 극복과 동아시아공동체에 대한 그동안의 이론과 실천을 평가하는 글도 실렸다.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문제의식은 카라따니 코오진의 강연문으로 이어진다. 그는 동아시아의 평화가 ‘밑으로부터의 운동’을 통해 가능하다는 지론을 재차 강조하는 동시에 그러한 운동은 국가를 ‘위로부터’ 억제하기 위한 국제연합의 개혁을 공동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논쟁적인 주장을 편다. ‘사회인문학 연속기획’의 두번째 순서에서는 김영식이 인문학과 과학의 섣부른 통합 시도에 존재하는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이 양자를 연결하는 작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인문학은 특정 분과가 아니라 모든 학문분야를 아우르는 것이 되리라 신중하게 전망한다.
조효제의 산문과 문화평은 제목만으로도 눈길을 끄는데 그 내용 역시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촌평들도 짧은 분량이지만 『창비』를 더욱 맛깔스럽게 만들어주는 주역이다. 아울러 올해부터 신설하여 시행하는 ‘창비사회인문학평론상’의 제1회 원고공모에도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분과학문의 틀을 뛰어넘어 주체적 담론 생산에 앞장설 새로운 비평가의 출현을 고대한다.
매호 잡지를 마무리할 때마다 항상 문학과 사회비평을 통해 시대정신을 밝히려는 본지의 취지가 충분히 발현되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부족하지만 이러한 소명을 감당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독자들께 전달될 수 있다면 무엇보다 큰 보람이 될 것이다.
李南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