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김흥규 『근대의 특권화를 넘어서』, 창비 2013
‘단층적 근대성론’에 대한 포스트-내발론자의 경종
김백영 金白永
광운대 교양학부 교수 kimby@kw.ac.kr
정년을 목전에 둔 원로학자가 최근 10여년 사이 학계의 ‘주류 담론’이 되어버린 탈민족주의론과 식민지 근대성론에 대해 와신상담 전의를 불태우며 지난 수십년간 쌓아온 학문적 내공을 한데 쏟아부어 작심하고 쓴 논쟁적 저작. 짧은 촌평으로 소개하기 쉽지 않은 사유와 통찰력의 폭과 깊이를 갖춘 이 책은, 한국 현대문학 전공자로 학문적 이력을 시작한 저자가 조선 후기 문학사로 긴 학문적 우회로를 거쳐 몇년 전 근대로의 귀환을 결심하면서 맞닥뜨리게 된 상전벽해의 현실에서 느낀 충격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한다. ‘소극적 내발론자’로서 줄곧 조선 후기의 근대로의 내생적 전환 가능성을 천착해온 저자가 2006년경부터 ‘근대로의 귀향’을 준비하면서 느낀 소회는 실로 ‘다리가 불타고 골짜기가 물에 잠겨버린’ 참담함이었다. 언젠가부터 공공연하게 내발론의 시효 만료가 선포된 가운데, 이제 전근대 사회・문화에 대한 연구는 학계의 주변부로 밀려나고 ‘민족’과 ‘민족주의’는 시대착오적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채, 어느덧 학계는 근대의 외래성을 전제로 한 담론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저자가 ‘단층적 근대성론’으로 통칭하는 최근의 지배적 연구 경향에는 내발론의 실효(失效)를 인정한 저자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들이 발견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을 통틀어 저자가 제기하는 핵심 쟁점들은 네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각 장마다 학계의 문제적 현실에 대한 노학자의 상황 인식의 절박함과 초조감이 반복적으로 묻어난다. 첫째, 1920년대초에 느닷없이 나타난 연애감정의 대대적 분출은 과연 서구와 일본에서 수입된 새로운 현상인가(제1장「조선 후기 시조의 불안한 사랑과 근대의 연애」). 둘째, 한국인의 민족의식과 집합적 정체성은 20세기에 갑자기 출현한 현상인가(제2장「정치적 공동체의 상상과 기억」). 셋째, ‘통일신라’라는 관념은 일본 식민사학에 의해 발명된 것인가(제3장「신라통일 담론은 식민사학의 발명인가」). 넷째, 한국 근대문학은 전통문학과 단절된 ‘번역된 근대’인가(제4장「한국 근대문학 연구와 식민주의」). 특히 제3~5장은 2008년 출간된 『신라의 발견』(황종연 엮음)에 대한 저자의 비판에서 비롯되어 이후 2011년까지 『창작과비평』과 『문학동네』의 지면을 오가며 저자와 윤선태(尹善泰), 황종연(黃鍾淵) 간에 반론과 재반론으로 뜨겁게 전개된 논쟁과정의 산물로, 쌍방의 글을 함께 읽어야만 맥락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균형잡힌 사태 파악이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해두고 싶다.
각 장의 결론만 놓고 보자면 저자의 문제제기는 대체로 일관되고 타당하며, 어떤 부분에서는 매우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제안을 담고 있기도 하다. 가령 권보드래와 김동식(金東植)으로 대표되는 ‘연애의 전파론’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저자는 그것을 조선왕조의 규범적 통제체제하에서 억압되어온 욕망의 사회적 질량이 1920년대초라는 역사적 조건을 맞아 폭발한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18~19세기 시조에서 급증하는 ‘불안한 사랑 모티프’를 그것의 전사(前史)로서 징후적으로 독해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의 압도적 영향하에 한국 근대 민족주의 형성사를 ‘기억 없는 상상’으로 바라보는 탈민족주의론적 관점에 대한 저자의 신랄한 비판도 매우 설득력있다. 근대 한국의 민족은, 신기욱(申起旭)과 헨리 임(Henry Em)의 문제적 주장과는 달리, 무(無)로부터 갑자기 출현한 현상이 아니라 고려・조선시대의 약 10세기에 걸친 언어・종족・종교・통치체제 등에서의 숙성과 수렴 작용을 통해 지속적으로 출현한 정치적・사회적 집단성의 자각을 바탕으로 하여, 그것을 ‘상속/거절’(descent)한 결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연애의 기원 문제에서 “유럽과 근대를 부적절하게 특권화한” 기든스(A. Giddens)의 한계를 넘어서 낭만적 사랑에 대한 역사인류학적 연구를 본격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나, 덩컨(J. Duncan)과 홉스봄(E. J. Hobsbawm)의 논의를 전거로 삼아 민족 형성에 관한 원초주의와 근대주의의 이분법적 대립 구도를 넘어서자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 도달하기 위해 저자가 논지를 전개하는 방식에는 다소간 —상대방 논지에 대한 과잉단순화라고 지적할 만한— 문제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세번째와 네번째 논점을 둘러싸고 저자와 윤선태, 황종연 간에 그토록 격렬하고 살벌한 논전이 오갔던 까닭도 이러한 저자의 논지 전개방식과 무관하지 않은 듯싶다.
‘통일신라’ 관념이 식민사학자 하야시 타이스께(林泰輔)에 의해 발명된 것이라는 윤선태의 주장에는 분명 다소 거친 부분이 있고, ‘모든 근대는 식민지 근대’라는 김철(金哲)과 윤해동(尹海東)의 언명에는 형식논리적으로 비판의 소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이광수(李光洙)의 문학적 실천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한국의 근대가 ‘번역된 근대’라는 함의를 이끌어내는 황종연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의 이면에 놓인 동시대 연구자들의 문제의식의 행간을 이해하려는 관점에 선다면, 그러한 문제점들은 이론적 주장 전체가 배격되거나 기각되어야 할 치명적 결함이라기보다는 향후 이론적 설명력을 제고하기 위해 좀더 엄밀한 검증과 세부적 보완이 필요한 작업가설의 미정련된 부분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그것을 “발리바르-월러스틴에 대한 단순한 오독의 산물”로 몰아붙인다거나, “식민지시기의 종속적 회로에 갇힌 약시 내지 시야협착증”으로 단정지어버린다면, 상대방이 이러한 비판을 학문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생산적 논쟁이나 향후 대승적 협업의 메시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이처럼 자극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언사는 단층적 근대성론을 ‘이행서사의 그늘’에 빠져 ‘근대의 외래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외발론’으로 규정하는 대목에서도 반복된다(제5장 「식민주의와 근대의 특권화를 넘어서」).
결국 저자는 단층적 근대성론이 ‘과거에 대한 의도적 평가절하의 경향성’을 띠고 있으며, 문학사・사상사・예술사를 포함한 한국문화 연구자들이 “근대라는 개념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는 사고모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결론짓는다(제6장 「특권적 근대의 서사와 한국문화 연구」). 하지만 평자가 보기에 결코 동일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식민지 근대성론과 내재적 발전론의 근대 인식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식민지 근대성론에 내재된 ‘발전론적 근대’의 혐의를 추궁하는 데 집착하고 있는 저자의 모습은 마치 유령과 대화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유령은, 저자에게는 마치 명확한 의도와 목적을 지닌 일련의 동질적인 학문적 실천의 총합인 것처럼 간주되고 있지만, 평자가 보기에 그것은 실체가 매우 박약한 이질적 분자들의 집합으로서, 저자의 주관이 과도하게 투영된 관념적 구성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지적하고 싶은 한가지 중요한 문제는 저자가 ‘단층적 근대성론’ 일반을 하나로 묶어 비판하는 과정에서 식민지 근대화론과 식민지 근대성론의 차이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문제시하는 ‘특권적 근대의 서사’는, 어떤 의미에서는 오늘날 광의의 한국 역사학계 전체가 암묵적으로 공유해온 에피스테메(episteme)이자 망딸리떼(mentalités)로서, ‘단층적 근대성론자’들만의 한계나 잘못으로 돌릴 수 있는 성질의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서양사/동양사/국사’와 ‘고대-중세-근대’로 짜여진 근대사학의 학제적 구획화 그 자체에 항상-이미 내재되어 있는 속성으로, 근대 유럽에서 창안되어 일제 식민주의를 통해 한국에 이식된 ‘근대=문명’의 시공간 질서 그 자체에 다름아니다. 거칠게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내발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이 그 표면적인 이론적 주장의 상극성에도 이러한 목적론적 근대 개념에 대한 가치론적 입장을 공유하고 있는 반면, 식민지 근대성론은 적어도 이에 대한 계보학적 비판의 문제의식을 담지한 성찰적인 이론적 실천이라는 점에서 질적 차별성을 띤다. 따라서 식민지 근대화론과는 달리, 식민지 근대성론에 대해서는 그 연구관심이 지나치게 근대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식이나 대상설정의 제한성이나 이론적 불완전성을 비판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근대에 특권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근대인식 문제와 관련하여 저자에게 하나로 겹쳐보였던 유령은, 적어도 두개 이상의 별개의 실체에 대한 착시현상의 산물인 것이다.
그럼에도 평자가 이 책을 현시점의 한국 근대 연구자들에게 필독서가 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이 책이 무책임한 청산주의와 ‘인식론적 단절’이 횡행하는 우리 학계의 척박한 토양에서 보기 드물게 진지하고 책임감 있는 노학자의 학문적 자기고백을 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는 자신의 학문적 이력의 대부분을 쏟아부은 익숙한 내발론의 진지를 떠나서 낯선 근대성론의 영토를 새로운 탐사영역으로 선택한 한 용기있는 포스트-내발론자가 한국 근대 연구의 문제적 현실에 대해 던지는 묵직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참신함과 발랄함을 무기로, 국제화와 글로벌화를 면죄부 삼아 손쉬운 유행과 모방을 일삼아온 많은 근대 연구자들에게 자성의 경종을 울린다. 그 울림의 강도는 아마 사람에 따라 —특히 세대와 관점에 따라— 크게 다르겠지만, 문학・역사학・사회학・인류학・정치학・문화연구의 광범위한 학제적 영역을 넘나들면서 한국 근대 연구의 전후방 곳곳의 분쟁지역과 취약지대를 파고들어 불편한 숙제를 제기하는 노학자의 지적에는 경청할 대목이 적지 않다. 이 논쟁적 저작이 한국 근대 연구의 좌표 점검을 위한 작지만 요긴한 지도책으로 널리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