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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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생태정치 확장과 체제전환

그린뉴딜 다시 쓰기

녹색성장을 넘어

 

 

김상현 金湘顯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 과학사·과학사회학. 주요 논문으로 「1960~ 1970년대 초 한국 에큐메니칼 운동과 ‘근대화’와 ‘발전’의 정치」 등이 있음. shkim67@hanyang.ac.kr.

 

 

1. 어떠한 그린뉴딜인가?

 

최근 국내에서도 ‘그린뉴딜’(Green New Deal)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린뉴딜은 2008~2009년 기간 발간된 유럽과 유엔환경계획(UNEP)의 보고서들에서 처음 제시되었지만, 선언적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했었다. 그러다가 2019년 2월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 에드워드 마키(Edward Markey)와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lexandria Ocasio-Cortez)가 그린뉴딜 결의안1을 의회에 제출해 세계 여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저탄소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실행 전략으로서 그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일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명박정부가 2008년 8월 ‘저탄소 녹색성장’의 비전을 발표하고 2009년 1월 그 일환으로 ‘녹색뉴딜’ 정책을 추진하면서 그린뉴딜의 기본적인 아이디어가 상당히 일찍 제기된 편이다. 그러나 이 정책은 기존 사업들을 녹색으로 재포장하고 4대강사업을 추진하는 데 그쳐 환경운동 등 시민사회 진영의 강한 반발을 일으켰고, 별다른 진전도 없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마키와 오카시오코르테즈의 결의안과 그것이 불러일으킨 국제적 관심은 우리나라에서는 부정적 인상이 강하던 그린뉴딜이 다시금 논의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사실 그린뉴딜은 단일한 내용으로 사용되는 개념은 아니며, 여러 갈래가 존재한다. 다만 ‘뉴딜’이라는 역사성을 지닌 표현에서 드러나듯 유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대공황에 직면한 미국의 로즈벨트(F. Roosevelt) 정부가 금융개혁, 사회보장, 노동권 강화, 대규모 공공사업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을 포괄하는 뉴딜 정책을 실시했듯 심각한 수준에 이른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정책 패키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린뉴딜에 다른 갈래들이 있더라도 이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온실가스 배출 감축,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 에너지 효율 개선과 생태계 복원 등을 대대적으로 추진하여 경제와 사회의 ‘ 탈탄소화’(decarbonization)를 달성하는 것이다. 문제는 화석연료 산업으로부터 탈피하는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이 막대하고, 실업과 지역경제 침체로 적지 않은 수의 노동자와 대중이 고통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린뉴딜은 이들에게 고용 연계, 직업 재교육·재훈련, 사회안전망 등을 제공하는 한편, 재생가능에너지 분야와 기타 탈탄소화 사업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여 저탄소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고용과 삶이 희생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획과 그에 포함된 과제들이 각기 어떠한 정치적 의미를 지니며 어떻게 접근되어야 하는가에 관해서는 기후위기의 주원인을 무엇으로 보는지, 그리고 현존하는 자본주의체제와 그것이 수반하는 사회-생태적 관계가 지닌 문제들, 성장과 발전, 시장의 논리와 기능, 과학적 전문성과 기술의 역할, 저탄소사회로의 전환을 가로막는 구조적 힘과 이를 타개해나갈 동력 등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따라 큰 차이가 존재한다. 이는 그린뉴딜에 대한 서로 다른 내용과 방향의 비전들로 나타나고 있다. 안타깝게도 국내의 그린뉴딜 논의는 아직까지 그같은 차이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린뉴딜은 대개 “기후위기 극복과 경제성장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2는 또는 “성장률을 높이면서 분배악화와 환경문제도 함께 해결”3하는 케인즈주의 경기부양책의 녹색 버전으로 단일하게 전제된다. 이에 따라 논의의 초점은 주로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대규모 공공투자 및 그로 인한 고용창출 효과에 맞춰지고, 이는 다시 다분히 탈정치화된 기술적(technical) 차원의 문제로 환원되고 만다. 지난 2년간 북미와 유럽에서 그린뉴딜이 주요 의제로 급부상한 상황도 녹색 케인즈주의의 관점에서 평가되고, 정작 이를 아래로부터 추동해온 정치적 맥락은 간과되기 일쑤다.4

‘녹색 케인즈주의’(green Keynesianism)로 표현될 수 있는 생태환경 이슈에 대한 케인즈주의적 접근이 십수년 전 그린뉴딜 개념이 처음 제기되는 과정은 물론 그 이후의 관련 담론도 줄곧 이끌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풀뿌리 환경정의운동, 원주민 환경운동과 생태사회주의(ecosocialist) 그룹을 아우르는 민중지향적 ‘기후정의’(climate justice)운동은 바로 그 녹색 케인즈주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초기 그린뉴딜 제안들에 회의적이었다. 이윤 극대화와 자본축적을 자연과 인간에 우선하는 정치경제체제야말로 기후위기의 근원이라고 보는 이들에게 녹색 케인즈주의 전략은 미봉책으로 비추어질 수밖에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그린뉴딜의 새로운 물결은 초기의 그린뉴딜 논의보다 기후정의운동의 활성화에 더 기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9년 미국 의회에 제출된 그린뉴딜 결의안 5이 좋은 예이다. 이 결의안은 마키가 공동 발의했지만, 실제 입안을 주도한 것은 초선 하원의원 오카시오코르테즈였다.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DSA)의 회원이기도 한 그는 노스다코타주 스탠딩록(Standing Rock) 원주민들의 송유관 건설 반대 투쟁에 참여한 바 있는 활동가 출신이다. 오카시오코르테즈는 2018년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청년 기후정의운동 조직 ‘썬라이즈운동’(Sunrise Movement), 싱크탱크 ‘진보를 위한 데이터’(Data for Progress) 등과 함께 진보적인 탈탄소화 전환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는데, 그린뉴딜 결의안은 그 결과로 추진된 것이었다.6

이 결의안은 비록 법적 효력이 없고 상원에서는 통과조차 하지 못했으나 민주당 주요 대선후보 일부와 상·하원의원의 적지 않은 수가 찬성함으로써 그린뉴딜이 미국 정치의 핵심의제로 부각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사실 결의안의 수위는 가급적 많은 의원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어느 정도 온건하게 조정될 수밖에 없었다. 에너지 효율 개선과 재생가능에너지 분야의 대규모 공공투자로 수백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내용은 적어도 외양상으로는 녹색 케인즈주의 경기부양책과 그리 다른 것이 아니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안은 기후정의운동의 관점을 반영하고자 시도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인종·지역·사회·경제·환경적 부정의가 구조화되어 있으며 기후변화와 환경파괴로 인해 지속적으로 심화되어왔음을 분명히 한 것은 이를 보여준다. 탈탄소화 과정이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을 통해 정의와 형평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체제변화를 주장하는 급진적 기후정의운동의 지향은 이후 버니 쌘더스(Bernie Sanders)의 대선후보 경선 공약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지만, 오카시오코르테즈의 그린뉴딜도 이전과는 분명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이는 녹색 케인즈주의에 기반한 초기 그린뉴딜안들과 비교할 때 보다 명료해진다.

 

 

2. 녹색 케인즈주의 전략으로서의 그린뉴딜

 

에너지 효율 개선과 재생가능에너지에 투자하는 대규모 산업 프로젝트로서의 그린뉴딜을 처음 언급한 것은 2007년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의 칼럼이었다.7 다만 이 칼럼은 원론적인 입장을 서술하는 데 그쳤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녹색 경기부양책’(green stimulus)을 체계적으로 검토한 예로는 진보 성향 케인즈주의 경제학자 로버트 폴린(Robert Pollin)의 연구팀이 2008년 발표한 보고서 「녹색 회복」을 들 수 있다.8 이 보고서는 지속되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저탄소사회로의 전환이 불가피하게 된 조건이 역설적으로 미국경제가 금융위기와 유가 급등에 따른 경제침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지적한다. 미국 정부가 향후 2년간 건물 에너지 효율 개선, 철도와 대중교통의 확대, 전력망 현대화와 재생가능에너지 개발에 460억 달러를 직접투자하고 기업의 녹색투자에 대한 세금감면과 세제혜택 등 재정적 인센티브로 500억 달러를 활용한다면, 저탄소사회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도 2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루어진 고용의 증가는 소득과 생활수준 향상 및 소비의 증가로, 이는 다시 경제 전반의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이 연구는 미국 민주당 주류의 싱크탱크 ‘미국진보센터’(Center for American Progress, CAP)가 차기 민주당 정부에 권고할 경제전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행된 것이다. 폴린은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오래도록 경고해왔고 이를 개혁하기보다 유지·강화하는 데 앞장서온 민주당 주류 ‘신민주당’ 그룹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워왔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민주당 주류 내에서도 확장적 재정정책과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폴린의 연구팀도 CAP의 기획에 참여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보고서의 내용은 2009년 초 집권한 오바마 정부의 정책에 일부 반영되기도 했다. 스스로 신민주당 그룹의 일원임을 선언했던 오바마는 그러나 높은 실업률을 비롯한 부진한 경제상황에서 경기부양책을 실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집권하자마자 ‘경기회복 및 재투자법’(American Recovery and Reinvestment Act)을 통과시킨다. 연방정부 지출, 세금감면과 담보대출 등으로 구성된 이 법안의 예산은 8400억 달러에 달했는데, 그중 900억 달러 이상이 「녹색 회복」이 제안한 것과 같이 건물 에너지 효율 개선, 철도와 대중교통 확대, 전력망 현대화, 재생가능에너지 개발 등의 분야에 투자되었다.9

「녹색 회복」 보고서는 그린뉴딜의 개념을 활용하지 않았지만, 폴린은 이후의 저술들에서 경기부양책을 활용해 고용창출과 ‘녹색성장’(green growth)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곧 그린뉴딜이라고 주장해왔다.10 저탄소사회로의 전환에서 피해를 입게 될 노동자와 공동체를 포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재생가능에너지 산업과 기타 탈탄소화 사업에서 창출되는 일자리와 사업 기회를 제공하는 것인 만큼 그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2008~2009년 기간 공표된 여러 그린뉴딜 방안에서도 반복된다. 2009년 UNEP가 기후변화, 식량, 에너지, 수자원 문제와 금융위기에 통합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발의한 ‘글로벌 그린뉴딜’이 대표적이다.11 전지구적으로 GDP의 1퍼센트를 투자함으로써 탄소 의존도와 생태계 훼손을 줄이는 동시에 빈곤을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운 이 안의 골간은 역시 공공투자와 인센티브를 포함하는 경기부양책으로 경제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유럽의회 녹색당-자유 동맹(Greens-EFA)의 의뢰로 독일 부퍼탈 기후·환경·에너지연구소(Wuppertal Institute for Climate, Environment and Energy)가 같은 해 발행한 「유럽을 위한 그린뉴딜」도 그러했다.12 이 안은 녹색 경기부양책을 통한 경제성장이 자연자원의 소비를 증가시킬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탈동조화(decoupling)하는 해법으로 산업 전반의 ‘생태적 근대화’(ecological modernization)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녹색성장론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었다.

영국의 진보적 싱크탱크 ‘신경제재단’(New Economics Foundation, NEF)이 이들보다 한해 앞서 발간한 보고서 「그린뉴딜」은 다소 다른 입장을 취한다.13 여기서도 에너지 효율 개선과 재생가능에너지 등에 대한 대규모 공공투자를 중심축으로 상정한다. 차이는 금융규제 강화를 위시한 금융제도의 개혁이 그린뉴딜의 주 내용으로 함께 추진되어야 함을 주장한다는 데 있다. 신자유주의적 금융자유화와 탈규제가 야기한 투기적 거래와 신용의 과잉팽창이 생태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투자와 소비를 촉진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의 금융제도를 그대로 두고서는 저탄소사회로의 전환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NEF 보고서는 기본적인 물질적 필요가 충족되는 한 경제성장이나 물질적 소비의 수준이 삶의 만족도와 직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린뉴딜을 녹색성장론에 가두지 않고 ‘포스트성장’(post-growth) 혹은 ‘탈성장’(degrowth)과 연결할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는 이윤추구와 축적을 향한 자본의 논리, 구조화된 사회·경제·환경 불평등과 권력관계, 공공부문 생산과 서비스 사유화의 한계 및 민주적 통제의 부재 등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채 공공투자와 금융규제라는 케인즈주의적 개입을 통해 자본주의의 녹색화를 시도하는 기획이라는 점에서는 다른 그린뉴딜안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14

이처럼 2008~2009년의 그린뉴딜안들은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로는 기후위기에 대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유했으되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의식을 담고 있지 않았다. 다르게 표현하면 이들은 각국의 정부, 기업만이 아니라 주류 환경운동의 기후변화 대응에서도 나타나는 ‘탄소환원주의’(carbon reductionism)의 경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15 탄소환원주의는 온실가스, 특히 탄소배출의 감축을 통해 지구온난화를 막아내고 인류의 다수를 위기에서 구한다는 일종의 공리주의적 접근에 기초한다. 이어 현재의 자본주의적 경제질서 내에서 기업투자에 대한 재정적 인센티브, ‘탄소배출권 거래제’(carbon emission trading), ‘탄소세’(carbon tax) 등과 같은 시장 기반 메커니즘을 활용하여 비용-효과적(cost-effective)인 방식으로 탄소배출을 줄이는 데 매진할 것을 요구한다. 폴린의 녹색성장 중심 그린뉴딜이나 금융개혁을 병행하는 NEF의 그린뉴딜은 모두 탄소환원주의의 논리를 수용하고 있고, 자본주의적 불평등과 기후위기의 관계가 비판적으로 검토될 여지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린뉴딜의 개념은 그 정의상 저탄소사회로의 전환 과정에서 타격을 입게 될 이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음에도, 제안된 그린뉴딜안의 대부분이 이를 고용창출의 차원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한계 때문이었다.

 

 

3. 기후정의운동과 그린뉴딜의 급진화

 

탄소환원주의에 근거한 기후변화 대응은 풀뿌리 환경정의운동, 원주민 환경운동, 제3세계 민중운동, 생태사회주의 그룹 등의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이같은 흐름은 민중지향적 기후정의운동의 태동으로 이어졌다.16 기후정의운동은 탈탄소화의 비용과 기후변화의 피해가 불평등하게 전가되는 현실을 강조하고, 노동·환경 연대운동에서 발전되어온 ‘정의로운 전환’의 개념을 차용해 저탄소사회로의 전환이 곧 원주민, 유색인종, 노동자, 농민, 여성, 이주민 등 사회적·경제적 약자의 삶과 권리를 보장하는 과정이어야 함을 역설한다.17 아울러 이들은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문제에서 드러나듯이 기후위기와 기후불평등의 근원에는 이윤 극대화와 자본축적에 최우선의 가치를 부여하고 자연과 삶을 상품화하는, 착취적이고 추출적인(extractive) 정치경제체제—자본주의 혹은 적어도 그 지배적 형태—가 있다고 주장한다. ‘정의로운 전환’이 주류 노동운동과 국제기구 등에 의해 수용되면서 온건한 버전으로 확산됨에 따라18 ‘정의’와 ‘전환’에 대한 한층 급진적인 의미를 지켜내려는 시도들도 이루어졌다. ‘정의로운 전환’은 탈탄소화와 기후변화로 피해를 입는 이들에게 고용, 보상과 구제를 제공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노동자와 공동체가 전환의 계획과 실행을 민주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착취적이고 추출적인 정치경제체제에서 정의롭고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정치경제체제로의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19

내부적인 견해차가 없지는 않았지만, 기후정의운동의 반자본주의 지향은 계속 강화되어갔다. 2010년 볼리비아 꼬차밤바(Cochabamba)에서 개최된 ‘기후변화와 대지의 권리에 대한 세계민중회의’는 자본주의를 기후변화의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하고 체제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민중협정’(People’s Agreement)을 채택했는데, 북미·유럽·중남미·아시아·아프리카의 기후정의운동 조직 다수가 이에 지지를 표명했다.20 녹색 케인즈주의 전략에 관한 기후정의운동의 비판도 점차 커져갔다.21 한편 일각에서는 ‘정의로운 전환’이 정치경제체제의 변화를 추구하는 하나의 과정이 될 수 있듯이 그린뉴딜도 탈자본주의를 향한 전환기적 플랫폼이 될 수 있으리라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했다.22 그 바탕에는 1930년대 로즈벨트 정부의 뉴딜 정책 전개를 대공황의 위기에 맞서 자본주의체제를 안정화시키고자 했던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는 차원에서만 이해하기보다는 이를 압박한 급진적 실업자운동과 노동운동의 맥락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린뉴딜이 화석연료 자본에 대항하는 노동·환경·원주민·여성 연대투쟁의 장을 마련하고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비(非)시장적 생태사회주의의 개입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린뉴딜을 녹색성장의 틀을 넘어 체제변화의 계기로 전유하는 정치적 실험은 미국 녹색당에 의해 처음 시도된다. 2012년과 2016년 대선에서 녹색당 후보 질 스타인(Jill Stein)은 미국사회의 녹색 전환 방안으로 그린뉴딜을 공약했다.23 스타인의 공약은 이전의 그린뉴딜과 마찬가지로 녹색 경기부양책과 일자리 창출을 추구했으나 이를 정치·경제·사회 전반의 개혁과 연결한다는 점에서 다른 접근이라 할 수 있다. 녹색 경제전환의 추진을 고용·노동·보건의료·교육·주거·에너지 기본권과 공평 조세를 보장하는 ‘경제권리장전’(Economic Bill of Rights)의 시행을 비롯해 연방준비은행 국유화를 통한 통화정책의 민주적 통제, 대형은행 해체, 금산분리 회복, 부실은행 공적 구제금융 금지, 주택과 학생 부채 탕감을 포함한 금융제도의 개혁, 그리고 국방예산의 50퍼센트 감축 등과 연동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녹색 공공투자에 의해 창출되는 부가 해당 공동체 노동자와 주민에게 귀속되도록 하고, 에너지 생산과 소비를 공적소유와 민주적 통제하에 두도록 했다. 탈자본주의를 뚜렷이 표방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자본주의 정치경제체제의 대대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 공약은 그러나 구체성이 결여된 데다 소수당에 대한 언론의 외면으로 크게 이목을 끌지는 못했다.

2016년 미국 대선 국면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정치경제체제의 급진적 개혁과 접목시킬 수 있다는 기대를 불러일으킨 것은 오히려 무소속 상원의원이자 민주적 사회주의자인 버니 쌘더스의 민주당 대선후보 캠페인이었다. 소수를 위한 약탈적 경제와 기업권력에 포획된 기득권 정치를 타파하는 ‘정치혁명’을 슬로건으로 내건 쌘더스는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이 경선에서 압승하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기후변화 이슈에 있어서도 화석연료 보조금, 키스톤 송유관 건설, 수압파쇄(fracking) 채굴과 국유지 화석연료 채굴 등에 반대함으로써 친기업 신민주당 그룹을 대표하는 클린턴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쌘더스의 기후변화 공약은 환경정의운동 진영 및 기후위기 대응운동단체 ‘350.org’와 협력해 의회에 제출한 에너지 관련 법안들에 기초하고 있었고, 따라서 빌 매키벤(Bill McKibben) 등 여러 환경운동 인사들이 그를 공개 지지하고 나선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24 그러나 공약보다 더 파급력이 있었던 것은 쌘더스 캠페인이 화석연료 자본의 탐욕을 강경하게 질타하며 기득권 정치와 경제의 근원적 변화를 줄기차게 외쳐온 점, ‘환경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을 강조한 점, 그리고 풀뿌리 사회운동의 조직화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기후정의운동을 비롯하여 민중지향적 사회운동 활동가들에게 상당한 호소력을 발휘했으며, 역으로 이들의 운동이 활성화하는 데도 기여했다. 일례로 쌘더스 캠페인 이전 6천여명에 불과했던 DSA의 회원 수는 이후 3년 남짓한 기간에 열배 가까이 늘어났다.

쌘더스 캠페인의 여파는 DSA 회원으로 그에 적극 참여한 오카시오코르테즈가 원주민들의 송유관 반대 투쟁을 지원하는 기후정의 행동에 나서고 나아가 하원에 진출해 썬라이즈운동과 함께 ‘환경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에 입각한 그린뉴딜을 추진하기에 이른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 이 그린뉴딜 결의안은 정치적 이유로 수위가 낮춰진 것이었다. 역시 쌘더스 캠페인에서 활동했고 오카시오코르테즈 당선 후 그를 보좌했던 사이캇 차크라바티(Saikat Chakrabarti)는 자신들의 구상이 기후문제 해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경제 전체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고 말한다.25 하지만 결국 그렇게까지 나아갈 수는 없었다. 논의 초기에 부정적으로 평가된 핵발전, 이산화탄소 포집·저장 기술, 지구공학(geoengineering) 등도 최종안의 재생가능에너지에서 제외되지 못했다. 북미 기후정의운동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원주민환경네트워크’(Indigenous Environmental Network, IEN)가 오카시오코르테즈의 그린뉴딜에 지지를 표명하면서도 비판적 의견을 내놓은 것은 그 때문이다. IEN은 재생가능에너지의 불명확한 범위 외에도 결의안이 온실가스 ‘순제로’(net zero) 배출을 목표로 삼고 생태계 복원과 보호를 이산화탄소 제거와 연결시키고 있는 것은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정당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26

이러한 기후정의운동 진영의 비판은 2020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재차 나선 쌘더스가 2019년 8월 발표한 그린뉴딜 공약에 대폭 수용된다. 쌘더스의 그린뉴딜은 16조 3천억 달러에 달하는 공공투자를 통해 2050년까지 모든 에너지를 100퍼센트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해 2천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국경제의 탈탄소화를 이룰 것을 천명한다.27 세간의 관심은 그 야심찬 목표와 규모에 쏠리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 안이 2008~2009년에 제시된 그린뉴딜 방안들과 내용적으로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쌘더스의 그린뉴딜은 우선 ‘순제로’ 탄소배출이 아닌 완전한 탈탄소화를 지향하며,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수용하지 않는다. 시장주의적 편향으로 오염자(polluter)가 아닌 일반 대중, 특히 저소득층에게 불공평하게 부담을 줄 수 있는 탄소세도 도입하지 않는다.28 대신 화석연료 보조금을 철폐하고 화석연료 산업과 투자자의 수입 및 자산에 대한 세금을 대폭 인상하여 탈탄소화 전환의 부담을 오염을 제공한 자본이 지도록 한다. 또한 에너지의 사유화에 의한 공공성 훼손을 막기 위해 그린뉴딜을 통한 재생가능에너지의 생산은 모두 공적소유로 하고 송·배전의 경우도 지자체나 협동조합 등에 의해 공적으로 소유된 기업이 우선적으로 담당하도록 하여 에너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한다. 같은 이유에서 재생가능에너지 개발도 사기업 투자에 대한 재정적 인센티브를 활용하지 않고 직접적인 공공투자로 추진한다. 핵발전, 이산화탄소 포집·저장 기술과 지구공학을 ‘지속 가능하지 않은’(non-sustainable) 에너지, 즉 ‘거짓 해법’(false solutions)으로 명시하여 탄소배출 저감에 대한 기술 중심적 접근과 분명한 선을 긋고 있기도 하다.

‘환경정의’와 ‘정의로운 전환’도 더욱 부각되고 그 폭이 확대되었다. 그린뉴딜은 “기후정책일 뿐 아니라 사회적·인종적·경제적 정의를 진전시킴으로써 역사적 부정의와 불공정을 근절하는 기회”라는 점이 강조된다.29 화석연료 산업에서 새로운 일자리로 옮겨야 하는 노동자들에게는 고용 연계, 무상 대학교육을 포함하는 재교육·재훈련, 이주 지원, 의료보험 및 주택 지원 등이 제공되며, 전환 과정에서 탈산업화되는 공동체에는 재생사업과 인프라 투자가 지원된다. 그린뉴딜에 의해 창출되는 모든 새로운 일자리는 노동조합 결성이 보장되며, 쌘더스 캠페인이 별도로 추진하고 있는 ‘작업장 민주주의 계획’(The Workplace Democracy Plan)에 의해 더욱 강화된 노동권을 누리게 된다. 그외에 저소득 노동자, 유색인종, 원주민 등 구조화된 불평등으로 기후변화의 피해에 가장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는 ‘최전선’(frontline) 공동체를 위한 대응도 강화되었다. 무엇보다 그린뉴딜의 시행과 관련된 주요 의사결정에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최전선 공동체의 일자리, 공동체 재생과 방재 인프라 구축을 위해 ‘기후정의 복원력기금’(Climate Justice Resiliency Fund)도 설치된다. 특기할 만한 점은 쌘더스의 그린뉴딜안에서 ‘경제성장’과 ‘GDP’라는 표현이 단 한번도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발전’도 최전선 공동체를 비롯하여 전환 과정에서 피해를 입게 되는 지역공동체의 경제적 안정을 위한 지원과 투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요약하자면, 쌘더스의 그린뉴딜은 노동자, 유색인종, 원주민 등 민중의 참여가 확대되는 가운데 사회·경제·환경 정의와 생태적 지속 가능성에 우선적 가치를 부여하고, 탄소배출 거래제, 탄소세 등 삶과 생존, 자연의 상품화를 조장하는 시장 기반 메커니즘을 활용하지 않으며, 오염자(화석연료 자본)가 오염 부담을 상품 가격에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게 강제하고, 에너지의 공적소유를 확대하며, 사기업 투자에 대한 의존도를 줄임으로써 탈탄소화 과정 그리고 에너지의 개발, 생산 및 유통을 자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급진적 시도로서 기후정의운동이 추구해온 바와 부합하는 면이 많다. 케인즈주의적 정책이나 포스트-케인즈주의 현대화폐이론(Modern Monetary Theory)에 따른 녹색 양적 완화(green quantitative easing) 등이 부분적으로 활용될 수 있겠지만, 탄소환원주의를 수용하고 녹색성장을 지향하는 녹색 케인즈주의 경기부양책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30 이 기획이 미국 녹색당이 시도했던 것과 유사하게 보편적 국민건강보험, 공립대학 무상교육, ‘작업장 민주주의 계획’, ‘21세기 경제권리장전’, ‘공공주택을 위한 그린뉴딜’(Green New Deal for Public Housing), 대형은행과 거대정보기술(Big Tech)기업 해체, 금산분리 재도입 등과 병행 추진되고 있다는 것도 매우 중요한 점이다.31 그러나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쌘더스가 풀뿌리 사회운동의 조직화와 아래로부터의 압박 없이는 이와 같은 그린뉴딜이 가능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32 그런 면에서 즉각적인 체제변화를 가져다줄 수는 없을지라도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동시에 착취적·추출적 성장 중심 자본주의 정치경제체제로부터 포스트-성장, 탈자본주의로 나아가는 전환기적 전략으로서의 가능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4. 다시, 어떠한 그린뉴딜인가?

 

그린뉴딜을 단지 또 하나의 녹색 케인즈주의 경기부양책이나 녹색성장 기획이 아니라 그와 차별되는 진보적 탈탄소화 전환 방안으로 재구성하려 한 오카시오코르테즈와 쌘더스의 실험은 녹색성장을 주장해온 이들, 기후정의운동, 생태사회주의 그룹, 좀더 최근에는 탈성장론자들 사이에서도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16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쌘더스를 지원하기도 했던 폴린은 오카시오코르테즈와 쌘더스의 그린뉴딜이 너무 많은 내용을 한번에 해결하려는 비현실적인 시도라고 비판하고, 자신의 녹색성장과 고용창출 중심 모델을 옹호한다.33 그는 또 에너지의 공적소유가 항상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기도 한다.34 반면, DSA의 생태사회주의 워킹그룹과 영국의 ‘그린뉴딜을 위한 노동당’(Labour for a Green New Deal, LGND) 캠페인 그룹은 쌘더스 그린뉴딜의 방향을 지지하는 가운데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 교통과 수자원 인프라 등에 대한 공적소유와 민주적 통제를 더욱 강화하는 ‘(생태)사회주의 그린뉴딜’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35 탈성장론자인 요르고스 칼리스(Giorgos Kallis)는 오카시오코르테즈의 그린뉴딜 결의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그것이 의미가 큰 이유는 폴린이 주창해온 녹색성장 중심의 그린뉴딜 모델로부터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36 이는 한편으로 폴린이 탈성장론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녹색성장 중심 그린뉴딜 모델이야말로 기후위기에 대한 실질적 대안이라고 주장한 것37에 대한 반박이기도 했다. 칼리스는 폴린의 접근과 차별되는 오카시오코르테즈의 시도가 보여주듯이 그린뉴딜은 성장지상주의에 속박되지 않을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 중 어느 입장이 타당한가?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기후위기를 야기하는 주원인이 무엇인지, 자본주의체제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이며 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가장 큰 장애는 무엇이며 어떻게 타개해나갈 수 있는지 등에 따라 그린뉴딜에 대한 이해와 접근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케인즈주의적 경기부양책에 기초한 녹색성장과 이를 통한 고용의 창출을 곧 그린뉴딜로 등치시키는 경향이 너무나도 강하다는 데 있다. 그러다보니 “영국 ‘그린 뉴딜’의 급진적 논의에서조차 성장지표로 GDP를 금과옥조로 여긴다”38와 같은 현실과 전혀 다른 오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LGND가 발간한 그린뉴딜에 관한 총 9개 문건 중에서 GDP가 언급된 유일한 부분은 GDP의 지속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영국경제가 생산성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내용인데도 말이다. 국내의 여건만 탓할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는 진보적 잡지 『뉴레프트리뷰』(New Left Review)가 ‘녹색 전략에 관한 토론’(Debating Green Strategy) 특집의 일환으로 그린뉴딜에 관한 글을 청탁한 필자가 바로 폴린이었다. 최근 기후정의운동이 지지하고 있는 그린뉴딜의 방향과는 달리 녹색성장과 고용창출 중심 모델을 설파해온 그가 그린뉴딜의 입장을 대표해 탈성장론을 비판하고 논쟁을 벌이니,39 독자들이 혼란에 빠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칼리스는 『뉴레프트리뷰』에 실린 폴린의 글로 인해 “탈성장 대 그린뉴딜”이라는 불필요한 구도가 만들어졌다고 비판하고, 그가 설파하는 것과 달리 “탈성장과 그린뉴딜”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40

그린뉴딜을 녹색 케인즈주의 경기부양책과 이를 통한 고용창출로 등치시켜버리는 상황이야말로 기후위기와 기후불평등에 맞서기 위해, 그 위기와 불평등을 발생시키는 착취적·축출적 자본주의 정치경제체제를 변화시키기 위해 급진적 그린뉴딜을 모색하려는 이들에게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4대강사업과 핵발전을 녹색산업으로 둔갑시켰던 이명박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이 ‘저탄소 녹색성장’에 대한 의미있는 논의를 한동안 어렵게 했듯이, 그린뉴딜이 또다른 녹색성장론으로 이해되어버리는 순간 급진적 그린뉴딜에 관한 진지한 토론은 심각하게 제약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기후변화가 아닌 체제변화’(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 ‘이윤보다 민중과 지구를’(People and Planet Over Profit)과 같은 기후정의운동의 핵심 슬로건들이 지닌 의미마저 퇴색시킬 우려가 있다.

마침 최근 정의당과 녹색당이 총선 공약으로 각각 ‘그린뉴딜경제 전략’과 ‘그린뉴딜’을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도 곧 그린뉴딜 공약을 발표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아마도 대부분의 언론은 탄소배출을 언제까지 얼마나 줄일 것인가 혹은 자동차의 전기화를 언제까지 얼마나 진행할 것인가 같은 부분들에 집중할 것이다. 물론 이 또한 매우 중요한 이슈이지만, 이 글에서 강조하고자 했듯이 더 핵심적인 것은 어떠한 그린뉴딜인가를 묻는 것이다. 그에 따라 탄소배출 감축과 자동차의 전기화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 자체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당신들의 그린뉴딜은 어떠한 그린뉴딜인가? 탄소환원주의로부터 벗어나고 있는가? 녹색성장론에 갇혀 있지 않은가? 기술관료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자본주의 정치경제체제의 변화를 지향하는가?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가? 기후불평등으로 나타나는 사회·경제·환경 불평등을 어떻게 이해하며 또 대처하고 있는가? 풀뿌리 사회운동은 어디에 있는가? ‘정의로운 전환’을 고용, 보상과 구제의 제공 차원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에너지의 공적소유와 민주적 통제는 어떻게 이루어갈 것인가? 반드시 이야기되어야 할 질문들이다. “그린뉴딜의 의미를 둘러싼 전투”41를 시작할 때이다.

 

 

  1. Recognizing the duty of the Federal Government to create a Green New Deal, H. Res.109, 116th Congress (2019-2020), 2019.
  2. 이광석 「그린 뉴딜, 지구 구할 응급처방 될까… 경기 부양용에 그칠까」, 경향신문 2019.11.28.
  3. 이동한 「경제: 버니 쌘더스의 그린 뉴딜 공약」, 정의당 10월 정례보고서 『정의와 대안』, 2019, 12면.
  4. 예외적인 경우로는 다음 참고. 주소윤 「미국: 그린 뉴딜(Green New Deal)을 향한 미국의 움직임」, 『국토』 2019년 1월호 75~78면; 김선철 「미국과 영국의 그린뉴딜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참세상 2019.11.25.
  5. Recognizing the duty of the Federal Government to create a Green New Deal.
  6. Greg Carlock and Sean McElwee, “Why the Best New Deal Is a Green New Deal,” The Nation 2019. 9.18.
  7. Thomas Friedman, “A Warning From the Garden,” The New York Times 2007.1.19.
  8. Robert Pollin et al., Green Recovery, Center for American Progress and the Political Economy Research Institute, University of Massachusetts 2008.
  9. Robert Pollin et al., Green Growth, Center for American Progress and the Political Economy Research Institute, University of Massachusetts 2014, 252면.
  10. Robert Pollin, “De-Growth vs A Green New Deal,” New Left Review 112, 2018, 5~21면; “Advancing a Viable Global Climate Stabilization Project: Degrowth versus the Green New Deal,” Review of Radical Political Economics 51 (2), 2019, 311~19면.
  11. UNEP, A Global Green New Deal: A Final Report, 2009. 2.
  12. Wuppertal Institute for Climate, Environment and Energy, A Green New Deal for Europe, 2009.9.
  13. New Economics Foundation, A Green New Deal, 2008.7.
  14. NEF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진보 성향 경제학자 앤 페티퍼(Ann Pettifor)는 최근 그린뉴딜에 관한 새로운 저서를 출간했다. 이 책은 이전에 비하면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위와 같은 문제들을 극복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Ann Pettifor, The Case for the Green New Deal, Verso 2019 참고.
  15. Michael Méndez, Climate Change from the Streets, Yale University Press 2020, 22~25면; 한재각 「탄소가 아니라 사회를 바꿔라」, 『창작과비평』 2019년 봄호 344~56면.
  16. 기후정의운동에 대해서는 이안 앵거스 엮음 『기후정의』, 김현우·이정필·이진우 옮김, 이매진 2012 참고.
  17. ‘정의로운 전환’에 대해서는 김현우 『정의로운 전환』, 나름북스 2014 참고.
  18. TUAC and ITUC, A Just Transition: A Fair Pathway to Protect the Climate, 2012.
  19. ITF Climate Change Working Group, Transport Workers and Climate Change: Towards Sustainable, Low-Carbon Mobility, International Transport Workers’ Federation 2010.
  20. 이진우 「기후변화 세계민중총회(CMPCC)의 결과 및 시사점」, 『ENERZINE FOCUS』 13호, 2010.5.18, 6~13면.
  21. Sean Thompson, “The Limits of Green Keynesianism,” Climate & Capitalism, 2018.10.9.
  22. David Schwartzman, “Green New Deal: An Ecosocialist Perspective,” Capitalism Nature Socialism 22 (3), 2011, 49~56면.
  23. Jill Stein의 연설, “A People’s State of the Union: A Green New Deal for America,” 2012.1.25.
  24. 주요 법안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End Polluter Welfare Act (2012), Clean Energy Workers Just Transition Act (2015), American Clean Energy Investment Act (2015), Climate Protection and Justice Act (2015).
  25. David Montgomery, “How Saikat Chakrabarti became AOC’s chief of change,” Washington Post Magazine 2019.7.10.
  26. Indigenous Environmental Network, Talking Points on the AOC-Markey Green New Deal (GND) Resolution, 2019. 2.7. ‘순제로’(net zero) 배출이란 한 국가 또는 지역에서 온실가스 감축활동과 더불어 탄소배출권을 구입하거나 산림녹화에 의한 온실가스 흡수를 산림탄소배출권(forest carbon credit) 형태로 거래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명목상 탄소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27. 버니 쌘더스 홈페이지의 그린뉴딜 공약 참조(2020년 1월 10일 검색).
  28. 탄소세에 대한 비판으로는 Matt Huber, “The Carbon Tax is Doomed,” Jacobin 2016.1.9. 참조.
  29. 버니 쌘더스, 앞의 그린뉴딜 공약.
  30. 쌘더스가 그린뉴딜의 재정 일부를 위해 현대화폐이론을 활용할 계획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현대화폐이론의 선구자 중 한명인 스테파니 켈튼(Stephanie Kelton)이 2016년 캠페인 당시 경제자문이었고, 그는 오카시오코르테즈의 그린뉴딜 재정을 현대화폐이론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Stephanie Kelton, Andres Bernal, Greg Carlock, “We Can Pay For A Green New Deal,” Huffington Post 2018.11. 30.
  31. 버니 쌘더스 홈페이지의 공약 참조(2020년 1월 10일 검색).
  32. 최근 그린뉴딜 논의의 급부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언론인 겸 작가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도 자본주의 정치경제체제의 변화를 지향하는 그린뉴딜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풀뿌리 사회운동의 활성화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현재 쌘더스의 대선후보 경선 캠페인을 돕고 있기도 하다. Naomi Klein, On Fire: The (Burning) Case for a Green New Deal, Simon & Schuster 2019 참고.
  33. Dan Drollette Jr, “We need a better Green New Deal: An economist’s take,” 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2019. 3.25.
  34. Robert Pollin, “De-Growth vs A Green New Deal”; “Advancing a Viable Global Climate Stabilization Project”.
  35. Keith Brower Brown et al., “A Class Struggle Strategy for A Green New Deal,” Socialist Forum: A Publication of 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Winter 2019; LGND에 대해서는 www.labourgnd.uk 참조.
  36. Giorgos Kallis, “A Green New Deal Must Not Be Tied to Economic Growth,” Truthout 2019.3.10.
  37. Robert Pollin, 앞의 글 참조.
  38. 이광석, 앞의 글.
  39. Robert Pollin, 앞의 글 참조.
  40. Giorgos Kallis, 앞의 글 참조.
  41. Kate Aronoff et al., A Planet to Win: Why We Need a Green New Deal, Verso 2019, 16면.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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