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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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현장 | 가자사태가 던지는 질문들

 

해제

팔레스타인 문제 해법과 서구의 문명적 파탄

 

 

한기욱 韓基煜

문학평론가, 인제대 명예교수. 저서 『문학의 열린 길』 『문학의 새로움은 어디서 오는가』, 공저서 『21세기의 한반도 구상』 『영미문학의 길잡이』, 역서 『오픈 시티』 『필경사 바틀비』 등이 있음.

kiwookh@gmail.com

 

 

 

작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 후 개시된 가자전쟁은 수난의 팔레스타인 역사에서도 유례없이 큰 희생을 낳았다. 5월 1일 현재 가자지구의 사망자 수는 34,568명(이중 어린이 약 14,500명, 여성 약 8,400명)에 달한다. 주택과 상가, 학교와 병원 대부분이 거의 완파되거나 심각하게 손상되어 폐허가 되다시피 했고, 75~80%가 난민인 가자 주민 대다수가 다시 피난길에 올랐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네타냐후(B. Netanyahu) 정부는 ‘테러리스트’ 하마스를 뿌리 뽑겠다며 가자 인구 230만 중 절반 이상이 몰려 있는 라파흐에 대한 공격을 공언하고 있다. 예견되는 대참사 앞에서 컬럼비아대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대학과 거리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팔레스타인 해방’과 ‘가자전쟁 반대’를 외치며 천막을 치고 점거농성을 하는 등 친(親)팔레스타인 반전시위가 거세지고 있다. 대참사를 막기 위해 당장 급한 것은 휴전이지만, 팔레스타인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을,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기존안보다 원만하고 지속가능한 해법을 고민하게 된다.

이 지면에서 소개한 또스까노의 「오슬로 해체하기」는 현재 팔레스타인 문제를 바라보는 데 요긴한 길잡이를 제공한다. 또스까노는 하이다르 이드의 최근 저서 『팔레스타인 정신의 탈식민화』에 대한 서평을 통해 오슬로협정과 ‘2국가 해법’의 문제점을 면밀히 검토하는 한편 이드의 견해에 대해서도 뼈있는 논평을 한다. 이 과정은 현재 가자전쟁의 근본원인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랜 분쟁의 역사 속에서 재조명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1국가 해법’과 ‘2국가 해법’이 팔레스타인 역사에 본격적으로 대두한 계기는 1947년 11월 유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 분할안’이 결의되었을 때였다. 영국의 위임통치령이던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국가와 아랍인 국가로 나누는 이 분할안은 팔레스타인 땅의 56%를 인구 32%의 유대인들에 할당한데다 특히 지중해 연안의 비옥한 땅은 대부분 유대인 쪽에 포함된 터라, 유대인 측은 즉각 수용했으나 아랍인 측은 거부했다. 인구비의 불공평뿐 아니라 분할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양측의 갈등은 곧 내전으로 발전했고, 유대인 측은 분할안에 제시된 유대인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이스라엘 국가’ 독립을 선언한다(1948년 5월 14일). 그러자 주변 아랍국들인 요르단,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등이 이스라엘을 포위 공격함으로써 이스라엘-아랍 전쟁(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한다. 전쟁의 결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의 78%에 이르는 땅을 차지한다. 이는 기존 분할안에서 배정된 것보다도 더 넓은 것이었다. 서안지구는 요르단, 가자지구는 이집트가 점령한 상태로 이듬해 1949년 정전협정이 체결되었는데, 이때의 휴전선이 1967년 6일전쟁 때까지 유지되어 ‘1967년 경계’로 불린다.

1948년 팔레스타인 전쟁(내전과 이스라엘-아랍 전쟁) 동안 이스라엘 군대가 아랍계 마을들을 ‘인종청소’하면서 팔레스타인인 1만 5천명이 살해되고 약 75만명이 난민이 되는 ‘나크바’(대재앙)가 일어났다. 1967년 6일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요르단에게서 서안과 동예루살렘을, 이집트에게서 가자와 시나이반도를 빼앗아 점령지를 대폭 늘렸고, 그 지역에 살던 팔레스타인인 중 30만명가량을 추가로 난민으로 만들었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한복판에 아직도 끝나지 않은 참혹한 제노사이드와 대규모 난민 문제가 놓여 있는 것이다. 이드처럼 나크바 이래의 팔레스타인 분할을 인정하지 않는 1국가 해법 논자들이 1948년, 1967년 전쟁으로 말미암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귀환할 권리를 최우선 사안으로 내세우는 근거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

이드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간의 오슬로협정(1차 1993년, 2차 1995년)의 여러 문제점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헛된 희망의 미로에 가두어 근본적인 사안을 직시하지 못하게 한 점이다. 이드는 오슬로협정에서 잠정 합의된 2국가 해법이 어찌하여 실제로는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족쇄(‘철제 새장’)가 되었는지 조목조목 짚는다. 우선 1국가론자의 입장에서 오슬로협정의 2국가론은 1967년 경계에 기초해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을 제외한 서안과 가자로 축소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더구나 오슬로의 2국가 해법에서 ‘2국가’는 전혀 동급이 아니라는 것이다. 명실상부한 국가로 인정받는 이스라엘 측에 비해 팔레스타인 측은 장차 독립국가가 되리라는 약속만 주어질 뿐, 이스라엘 점령하의 가자, 서안, 동예루살렘에서 부분적인 자치권밖에 없는 상황에서 2국가는 비대칭적인 구도였다. 이드의 이런 비판은 “가자는 지금 ‘오슬로의 거울상’”이라는 그의 표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공존의 약속만 있을 뿐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할 권리도 배상과 보상도 배제하는 오슬로의 허울 좋은 평화 프로세스의 베일을 벗기면 폐허가 된 오늘날 가자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인종주의적 경계를 넘어 하나의 세속적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려는 이드의 1국가론은 정의로운 구상임은 분명하지만, 얼마나 ‘현실적인’ 방안일지는 모르겠다. 이 지점에서 서평자인 또스까노와 저자 이드의 견해 차이가 뚜렷이 감지된다. 예컨대 또스까노는 이드의 1국가 해법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가 하면, 하마스가 가자지구라는 감옥의 ‘교도관’으로 전락했다는 이드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도 않는다.

애초에 팔레스타인 해방이라는 1국가적 비전을 내세웠던 하마스가 2006년 총선 이후 1967년 경계에 기초한 ‘장기휴전안’을 제시하는 등 입장을 달리한 것을 두고 이드는 ‘하마스만의 독특한 2국가론’이라고 평가절하하지만, 궁극적 목표로 나아가는 과도적 조치를 제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어쨌든 여러 버전의 1국가 해법과 2국가 해법을 유연하게 검토하되 그때의 기준은 팔레스타인 민중의 삶이 되어야 마땅하다. 이드가 기성 정치권보다 풀뿌리 현장의 핵심그룹과 BDS 운동에 의미를 둔다거나 또스까노가 무장저항의 역할과 대중적 저항전선을 중시하는 것도 팔레스타인 민중해방의 관점에서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라파흐 공격을 앞두고 벼랑 끝에 몰린 가자의 팔레스타인 민중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 명분조차 찾기 힘든 가자전쟁은 근대세계의 국지적·예외적 상황이 아니라 서구 식민주의 역사의 필연적 결과물이자 패권 구도의 반영이며, 특히 담론적·도덕적 차원에서의 몰락을 보여주는 본질적 사건일 수 있다.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와 가자전쟁의 문제 자체보다 이를 명시적·암묵적으로 지지하는 서구의 태도를 심층적으로 파헤치는 로르동의 「순수의 종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 지점이다.

로르동의 직관적 서술방식이 설득력을 얻는 까닭은 서구 근대의 식민지 역사, 특히 그 정신사적 메커니즘과 정동을 정확히 간파하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머리부터 썩는다”는 발언의 은유적·환유적 의미를 통해 서구 근대문명의 중추라 할 사유 작동이 부패하는 현상과 사유 작동을 관장하는 규범이자 문명적 원칙의 붕괴까지 끌어내는 솜씨도 볼만하지만, 서구 강대국이 이스라엘에 느끼는 은밀한 심리적 동질감(‘지하의 친연성’)을 포착하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서구 기득권층은 제노사이드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이스라엘에게서 ‘순수’한 지배자의 모습을 보고 거기에 매혹된다는 것이다. 20세기 중반까지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서구 강대국 부르주아지는 근대세계의 주변부를 식민화하면서 저항하는 원주민들을 문명의 이름으로 악마화하고 무자비하게 제압했으며, 그런 억압과 폭력을 ‘순수’로 미화해왔다. 식민지 ‘폭력’의 표면이 ‘순수’로 나타나기에, 하마스를 악마화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이스라엘의 지배자적인 모습에 서구 지배층들이 매료되는 데는 표리부동한 자아상에 도취하는 나르시시즘적 면모가 있다.

이런 폭력/순수의 표리부동성에 주목하면 서구와 이스라엘이 가자전쟁의 방어논리로 애용하는 ‘테러리즘’이나 ‘반유대주의’의 오용을 새로운 차원에서 비판할 수 있다. 로르동의 논법에 따르면 ‘테러리즘’이라는 비난은 서구인들이 자기들이 저지르는 폭력을 직시하지 않는 부인의 논리로서, 인과관계의 사유를 막기 위해 설계된 범주이며 결국에는 “서구의 순수를 보호하는 방패”가 된다. ‘반유대주의’라는 비난은 표면상 유대인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혐오를 비판하는 말이지만 사실은 서구와 이스라엘의 “순수에 의문을 제기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정당성을 박탈하려는 의도”를 내장하는, 그 자체가 인종주의적 언행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글의 제목 ‘순수의 종말’이란 가자전쟁을 맞으면서 서구 지배계급이 더이상 자신들이 저지르는 폭력을 순수로 위장할 수 없게 되었음을, 그런 순수를 지탱해왔던 서구의 문명적·도덕적 규범이 무너졌음을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

서구 식민주의 역사에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볼 때, 팔레스타인을 1920년부터 1948년까지 위임통치한 영국이 분쟁의 씨앗을 뿌렸다면, 독일은 홀로코스트(유대인 600만명 이상을 학살한 제노사이드)로 수많은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를 유발하여 분쟁의 골을 키웠다. 아이러니한 것은 1948년 건국을 선포한 이스라엘이 제노사이드의 가해자로 탈바꿈한 점이며, 그런 이스라엘을 미국, 영국, 독일을 포함한 서구가 열렬히 지지해온 점이다. 점령지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현 이스라엘 정부의 태도도 눈여겨볼 만하다. 원주민을 살려둔 채 착취하는 서구의 전통적 식민지와 달리 이 경우에는 “점령된 사람들의 존재를 없애버리려는 소망”이 더없이 강렬하다. 서안과 동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정착촌이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실제 이스라엘의 행태는 원주민을 살해하고 그 땅을 빼앗는 ‘정착식민주의’에 방불하다. 이 점에서 이스라엘은 아메리카 원주민을 집단학살하고 그 땅을 빼앗은 미국과 역사적 상동성을 지닌다. 미국 건국선조의 하나인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인디언+럼주 = 0’라는 방법론까지 제시하며 아메리카 인디언의 멸종을 추동했다. 그 결과 미국은 “좋은 인디언은 오로지 죽은 인디언뿐”이라는 말을 흥겹게 내뱉기까지 한다. 그러나 죽은 인디언은 무(無)가 아니다. 가자에서 억울하게 떼죽음을 당한 팔레스타인인들도 그렇다. 그들의 공동묘지까지 파괴한다고 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존재 자취, 그 원혼마저 지울 수는 없다.

이스라엘이라는 전략적 요충지를 잃는다면 중동에서의 미국 패권은 급속히 무너질 것이며, 그럴 경우 힘겹게 유지되는 미국의 세계적 패권의 둑을 더는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은 점점 더 많은 부하가 걸리는 미국의 세계적 패권을 유지하고 굴러가도록 붙잡아주는 린치핀인 셈이다. 그러니 미국은 이번처럼 이스라엘의 명백한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앞장서서 지지할 수밖에 없고 유럽 국가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번져가는 반전시위에서 보듯 미국과 유럽의 추락한 문명 원칙으로 저항세력을 억누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로르동은 우리가 서구의 “도덕적 자살”을 목격하고 있다는 과감한 표현을 쓴다. 한때 서구의 문명 원칙이 보편적인 것으로 받들어졌을지언정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 전쟁 지지를 계기로 그 도덕적 자격은 이제 여지없이 추락했다. 서구의 식민지 프로젝트에 대한 상징적 심판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서구근대사에서 팔레스타인이야말로 핵심적인 문제인데, 그 문제에서 서구는 문명적 파탄에 직면해 있고 그 사실을 숨길 수 없다. 지금 실시간으로 “온 세상이 가자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고, 온 세상이 가자를 지켜보는 서구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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