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홍은택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 창비 2005
세계화시대 미국의 ‘우울한’ 현장
한기욱 韓基煜
문학평론가, 인제대 영문과 교수 englhkwn@inje.ac.kr
9·11사태와 이라크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거나 미국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까발리는 국내외 필자들의 저서가 다수 출간되었다. 이런 흐름은 미국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와 주류문화를 선전하는 책들이 대세를 이루던 과거 출판계의 편향을 어느정도 교정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미국을 비판하는 책들 가운데 상당수가 미국을 찬양하는 책 못지않게 어떤 단순화나 도식성에 빠져 있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미국이 저지른 ‘죄상’을 열거하거나 심지어 그 본질을 ‘악’으로 규정한 다음 맹공을 퍼붓는 데서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홍은택(洪銀澤)의 『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는 여러모로 신선하다. 우선 성실한 현장취재기의 형식이 흥미롭고 미더웠다. 미국의 이런저런 면모를 책상에 앉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을 답사하면서 그곳의 내력을 조사하고 지역민심에 귀기울이는 실증적인 자세가 돋보이는 것이다. 전직 기자였던 저자의 저널리즘 정신이 값진 기여를 한 것이 분명하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관심의 촛점을 미국 정치와 금융의 중심인 동부나 대중문화와 첨단산업을 화려하게 꽃피운 서부가 아니라 미국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낙후된 지역인 중서부와 남부에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화려한 앞면이 아니라 눈에 잘 띄지 않는 뒷면으로 접근하는 방식인 것이다.
저자가 미국 인구의 중심이었던 미주리주 스틸빌(Steelville)에서 만난 한 청년은 자기 고장을 ‘미국의 똥구멍’(asshole of America, 35면)이라 부르는데, 사실 오늘날 미국의 중서부와 남부 전체가 ‘미국의 똥구멍’으로 전락한 면이 있다. 없어서는 절대 안되지만 치부로 취급받는 그런 곳이다. 대통령선거 개표방송에서 민주당은 파란색, 공화당은 붉은색으로 승리지역을 표시한 데서 보편화한 개념인 ‘블루 아메리카’와 ‘레드 아메리카’의 구분법에 따르면 이런 지역들이 바로 ‘블루 아메리카’에 해당된다. 미국에서 세계화가 가장 심한 상처를 낸 이 지역들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에는 한국이라는 세계화의 피해지역 출신으로서의 동병상련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중서부와 남부가 미국문화의 중심이었던 적은 없더라도 미주리 출신의 국민적 작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작품들이 입증하듯 19세기 후반만 해도 이 지역은 미국문화의 생동하는 일부로서 미국인들에게 마음의 고향처럼 소중한 지역이었다. 그러던 것이 산업화시대를 거치고 이제는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그 지역의 공동체문화는 쑥대밭이 되었다. 저자는 이곳의 방대한 곡창지대가 몽땅 카길(Cargill)을 비롯한 다국적기업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바람에 농토는 1백만평이 넘지만 보조금을 받아가면서 농사를 지어도 손해가 나는 기막힌 현실을 보고한다(3장).
중서부 농촌지역보다 더 황량한 것은 세계 자동차산업의 본산이었던 미시간의 디트로이트와 플린트 같은 중북부 도시들의 쇠락한 몰골이다. 포드와 GM이 임금이 싸고 노조가 없는 남부나 멕시코 혹은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산업공동화 현상이 빚어진 결과, 한때 위용을 자랑했던 두 도시의 대공장들은 이제 “자동차공장의 무덤”(103면)이 되어버렸고 도시 전체가 쇠락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해 “근대화의 공동묘지”(87면)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저자는 1930년대 후반 성공적인 노동자파업을 통해 노동자들도 풍족한 삶을 누리다가 1960년대 후반의 흑인폭동, 1970년대의 오일쇼크, 1980년대의 공장이전을 거치면서 차츰 몰락하는 이 도시들의 역사를 꼼꼼히 들려준다(6~7장).
이 책에는 그밖에도 짭짤한 읽을거리가 많다. 가령 텍사스인의 거칠고 독립적인 기질이 탈규제 논리의 신자유주의 경제씨스템과 연결되어 있다는 분석(11장), 미국사회의 양극화와 형량기준의 가혹화가 감옥비즈니스의 번창으로 이어진 역설적인 상황(12장), 범죄자를 발본색원하는 살벌한 풍토에서 제씨 제임스(Jesse James) 같은 무장강도가 우상이 된 사연(13장), 아메리카인디언들의 자활을 돕기 위해 허용된 도박업이 ‘아메리칸드림’을 잃어버린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또한번 결딴내고 있는 현장(15장), 멕시코와의 국경을 엄격하게 단속하면서도 “매년 5만명을 추첨해서 영주권을 나눠주는 비자복권제도”를 실시하는 모순된 현실(16장) 등등 미국 특유의 역사와 문화의 면면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특히 미국적 사유방식과 문화풍토에 깃든 아이러니를 적절하게 포착하는 저자의 감각이 빼어나다. 예컨대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민주당을 외면하고 부자에게 유리한 정책만 골라서 시행하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현실을 부각하며 “블루 아메리카여야 하는 곳이 선거만 되면 레드 아메리카가 되는”(9면) 연유를 묻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빼어난 부분은 미국의 중서부와 남부에서 탄생하여 세계로 뻗어나간 맥도널드, 월마트, 코카콜라 같은 식음료 및 유통산업을 다루는 장들(4~5장, 8~9장, 10장)이다. 오늘날 미국 소비문화의 상징이 된 이들 기업의 ‘1호점’을 탐방하면서 흥미로운 일화들을 양념처럼 섞어 각각의 성공비결을 추적할 때 저자의 상상력과 문화적 지식이 빛을 발한다. 가령 아칸쏘주 시골마을 벤톤빌(Bentonville)에서 생겨난 월마트가 당시 도시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막강한 K마트를 물리치고 유통업계의 패권을 장악하는 과정을 마오 쩌뚱(毛澤東)의 혁명방식에 비유하여 서술하는 다음 구절을 보라.
마오 쩌뚱의 농촌혁명전략은 도시노동자 중심의 레닌주의와 배치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월등한 무력을 지닌 국민당의 쟝 졔스를 피해 혁명세력을 조직할 수 있는 곳은 농촌밖에 없었다. 농촌에서 쏘비에뜨를 조직해 쟝 졔스 정권을 타이완으로 밀어내는 과정은 농촌의 월마트가 결국 2003년 도시 중심의 K마트를 파산상태로 몰아넣은 것과 흡사하다.(113면)
그렇다. 월마트야말로 “21세기형 자본주의의 전형”(131면)이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문제점을 가장 잘 표현하는 기업이라 할 만하다. 미국 남부 농촌의 열악한 기업환경을 마오 쩌뚱의 유격대처럼 온몸으로 돌파해왔기 때문에, 어지간한 저항으로는 그 도저한 추진력을 제어할 수 없다. 다른 기업들과 세계사람들도 월마트의 기준에 맞춰야 할지 모른다. 오히려 사람들은 노조를 용납하지 않고 인건비와 경상비를 최소화하는 월마트의 반노동적 짠돌이 정책을 비난하면서도 쇼핑을 갈 때에는 항상 최저가를 유지하는 월마트로 발걸음을 옮긴다. 1만개에 이르는 납품업체도 월마트에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해야 살아남기 때문에 “납품회사들의 노동조건은 연쇄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나빠질 수밖에 없다.”(131면)
저자는 월마트의 이런 무서운 돌파력과 파급력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공동체 단위의 움직임”을 거론하지만 그런 저항이 성공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관적인 듯하다. “앞으로 3년 내에 미국의 모든 식품과 약품의 35%가 월마트에서 팔릴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 걸 보면 현재로는 월마트화(Walmartization)를 뒤집을 길이 없어 보인다”(134면)고 결론짓는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고려해야 마땅한 중요한 변수 하나가 빠져 있다. 현재 월마트 매장에서 팔리는 헐값 물품 상당수가 중국에서 수입한 것인데(월마트는 미국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물품의 10%를 수입하고 있다), 만약 미국의 엄청난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의 파국이 달러가치의 하락 및 위안화의 절상과 맞물리면 과연 박리다매형의 월마트의 매력이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그렇기에 저자가 에렌라이히(Barbara Ehreneich)의 강연에서 “우리〔미국 시민들〕가 써비스와 재화를 값싸게 소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들〔미국의 근로빈곤계층〕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값싼 임금을 받기 때문”(299면)이라는 대목을 인용할 때에는 절반의 진실밖에 짚지 못한 느낌을 준다. 왜냐하면 미국의 소비자가 싼값의 써비스와 재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미국의 현정부가 자국의 소비자에게 세금을 물리는 대신 일본, 중국,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엄청난 빚을 끌어다 잔치를 벌이는 덕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의 빚잔치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 미국이 재정적 파탄에 직면할 때 미국의 노동계급과 시민들에게는 어떤 일이 닥칠지를 상상하고 대비하는 모습이 이 책에 있었다면 더 좋을 뻔했다. 미국을 관류하는 세계화의 흐름과 그 폐해는 잘 그려져 있지만, 세계 민중들에 대한 빚을 담보로 이뤄지는 미국의 소비주의 풍조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 빠져 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