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6자회담에 거는 기대
지난 7월 26일 뻬이징에서 시작된 제4차 6자회담이 장장 13일간의 열띤 대화와 협상에도 불구하고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기본원칙에 합의하지 못해 3주간의 휴회에 들어갔다. 북한의 핵폐기 범위와 핵의 평화적 이용 권리, 특히 경수로사업에 대한 북·미간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이로써 한반도 정세는 북핵문제의 타결과 결렬 가능성을 모두 안은 채 다시 불확실한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휴회기간 동안 회담의 탄력이 상실되지 않을까, 미국 네오콘들의 ‘회담무용론’이 득세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그러나 이번 4차회담은 지난 1,2,3차회담의 기준에서 보면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만큼 중대한 진전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우선 참가국들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와 이에 대한 상응조처로서 대북 경제지원과 북미·북일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점, 그리고 회담기간 내내 북미협상이 활발하게 이뤄진 점이 눈에 띄는 성과이다. 지난 회담들에서 평행선을 달리듯 각각의 강경노선을 되풀이해온 북·미 양국이 이번에는 기본적인 합의틀을 만들어내기 위해 실제적인 협상까지 벌인 것이다.
그런데 이번 6자회담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우리 대표단이 주도적·중재적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 점이 아닐까 싶다. 한국 대표단은 북·미 대표단과 수시로 접촉하면서 한미간, 남북간 협의를 갖는가 하면 두 나라를 이어주는 중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회담의 고비에서는 유례없는 ‘남·북·미 3자회동’을 일궈내기도 했다. 이런 맹활약은 이번 회담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이미 예고된 것이기도 하다. ‘6·15공동선언 5주년 민족통일대축전’을 계기로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대통령특사로 방북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200만kw의 송전 제의를 하면서 6자회담 복귀를 설득하고 연이어 미국의 대북정책 실권자 체니 부통령을 찾아가 남북한의 핵문제 해결의지를 전달함으로써 6자회담 재가동을 주도한 것이다. 북핵사태 초기인 2003년 4월 북·중·미 3자회담이 개최되었을 때, 문제해결의 자리에 끼지도 못했던 한국의 처지와 비교하면 우리의 주도적 역량이 비약적으로 성장했음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이런 주도적·중재적 역량의 신장은 노무현정부의 자주외교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 초기에 민족공조와 한미동맹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해 갈팡질팡하던 노무현정부는 미국의 대북 무력행사 반대원칙을 천명한 대통령의 LA 발언(2004년 12월)과 한·미·일 삼각동맹에서 벗어나 동북아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동북아균형자론(2005년 3월)을 통해 일관된 자주외교 노력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이런 노력이 결실을 거둘 수 있는 바탕에는 민족분단의 장벽을 정면으로 돌파하여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이라는 민족사적 쾌거를 이뤄낸 역사가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를 계기로 정부와 민간 차원의 여러 부문에서 남북간 교류와 협력의 물꼬가 트이고 평화와 통일의 기운이 힘차게 일었음은 물론이다. 특히 주목할 바는 북핵문제 등으로 인해 한동안 경직되었던 남북관계가 풀리면서 올해 들어 남북의 민간교류가 어느 때보다도 활발해졌다는 점이다. ‘6·15공동선언 5주년 민족통일대축전’을 필두로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와 ‘8·15민족대축전’ 같은 획기적인 민간주도의 행사들이 공동선언이 열어놓은 통일의 공간에서 잇따라 성공리에 개최되고, 이런 민간교류들이 한반도에 강력한 평화기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6자회담에서 남북한이 함께 의지할 수 있는 공동의 자산이 있다면 한반도에 형성중인 바로 이 평화기류가 아닐까.
이번 6자회담의 최대 걸림돌로 부각된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권 주장이 생뚱맞은 것이 아님을 지적할 필요도 있다. 오히려 상궤를 벗어난 쪽은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한다고 공언하면서도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기본적인 보장사항인 평화적 핵이용권까지 제한하려 드는 미국의 패권주의적 태도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제조하려 했다는 ‘전과’를 들어 이를 현단계에서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NPT에 가입하지도 않고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에는 어떠한 제한도 가하지 않고 있거니와,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된 이란에 대한 EU의 평화적 핵이용권 제공 협상에 동의한 바 있다. 이란은 이런 협상마저 거부했지만, 북한은 NPT 재가입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을 전제로 평화적 핵이용권을 요구하는 것이니 무리한 주장은 아닌 것이다. 다만 우리는 북한이 미국의 패권주의적 요구에 대해 극한대결로 치닫기보다 좀더 유연한 자세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 미국 패권주의를 극복하는 길은 한반도에 형성중인 평화기류를 원군으로 삼아 패권주의적 강박에서 벗어나는 활로를 남녘의 동포 및 선의의 이웃들과 함께 개척하는 쪽에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6자회담은 한반도의 평화기류를 동북아로 확산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
이번호 특집은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문제를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했다. 특집 제목을 ‘아시아인에 의한 동북아 평화는 가능한가’로 정한 까닭은, 서구나 아시아의 국민국가가 아니라 동북아의 주민인 ‘아시아인’이 동북아 평화체제 건설의 주체가 될 때만이 참된 평화를 실현할 수 있음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 지역의 중심세력들인 미국·중국·일본의 강대국 위주의 세력균형에 입각한 현 동북아 질서를 혁신하고 새로운 대안적 질서를 찾는 일이 요긴해진다. 무엇보다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패권주의적 영향력을 줄여야 하고, 동북아의 주민들이 주체로 나서서 국민국가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다양한 형태의 협력과 연대의 틀을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배긍찬·박명림·임원혁·이남주가 참여한 좌담은 중국의 급부상과 미일동맹의 강화로 말미암아 동북아의 세력균형이 변화하는 근래의 상황에서 동북아의 탈중심화 가능성을 타진하고 평화체제 구축의 과업에서 한국의 바람직한 역할을 모색한다. 이 과정에서 미·중·일 3자의 패권논리에서 탈피한 지역협력·지역통합의 여러 형태와 방식이 검토된다. 참여자들은 각각의 전문분야에서 연마한 식견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아 논의가 더욱 풍성해졌는데, 특히 국민국가와 지역통합 사이의 새로운 거버넌스(governance) 구조라든지 바람직한 형태의 한국 모델에 관한 건설적인 토론이 좌담의 활력을 더한다.
특집의 각론으로 타이완-중국, 일본, 한국의 사례를 통해 동북아 질서의 혁신과 평화체제 구축의 전망을 점검하는 세 편의 글을 실었다. 난팡숴(南方朔)는 한국의 주체적 대외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가운데, 최근 타이완 야당 지도자들의 역사적인 중국대륙 방문을 계기로 양안관계가 한반도의 남북관계처럼 분열과 대립에서 벗어나 평화와 협력으로 발전될 전망을 보여준다. 권혁태는 일본의 평화헌법의 성립에서 최근의 불길한 개헌 움직임에 이르기까지의 궤적을 주변국과의 관계망 속에서 추적하면서, 한국의 반공군사독재가 일본의 평화주의를 지탱하고 한국의 민주화가 일본의 우경화를 촉진시키는 아이러니를 포착해낸다. 이일영의 글은 한국의 ‘87년체제’가 글로벌화한 동아시아의 생산네트워크와 맞지 않고 심각한 교착상태에 빠져 있어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는 취지로서, 평화적이고 수평적인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추구하는 일에 중요한 참조가 될 것이다. 특집의 주제와 관련하여 전후 일본의 ‘재일조선인’ 북송사업(北送事業)을 재조명하며 현재의 탈북자문제를 인권정치의 시각에서 진단하는 논단의 테싸 모리스–스즈끼의 글 역시 동북아 평화문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시와 시비평의 현황을 점검한 지난호 문학특집이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앞으로 문학란 편집에 더 큰 공력을 기울일 것을 다짐하면서, 지난호 특집과 관련하여 두 편의 평론을 싣는다. 박수연은 특집 평론들의 됨됨이를 논평하는 한편, 특집 구성에서 드러나는 ‘균열’을 문제삼고 창비의 최근 비평작업에 대해서도 고언을 아끼지 않는다. 김수이 역시 그 글들에 대한 자신의 비평적 반응을 발판삼아 ‘자연의 매트릭스론’을 더 정교하게 다듬고 이에 입각하여 ‘현재의 사막’에서 고투하는 시들의 중요성을 부각한다. 특집에 대한 평가요청에 성실하게 응해준 두 평론가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전한다. 김영찬은 1990년대 문학이 내면에 몰두했음에도 철저한 자아탐구를 수행하지 못해 나르씨씨즘에 빠진 것이 오늘날 문학의 근본 위기라고 진단하고, 90년대 문학과 달리 ‘탈내면의 상상력’을 보여주는 2000년대 문학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여기에 임철우·최인석 등의 최근작을 촘촘히 분석하는 백지연의 계간소설평, 최하림·김신용·이기인 등의 근작시에서 환상성의 시적 효과를 추적하는 박형준의 계간시평, 그리고 김연수 소설집과 서영채 평론집을 다룬 김미정과 이수형의 촌평은 이번호 평단의 풍성함을 더해준다.
소설란은 역량과 개성이 뚜렷한 작가들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독특한 명상적 서사를 선보인 윤대녕, 저마다의 개성적인 필체로 민중적 삶의 현장을 실감나게 그려내는 공선옥, 한창훈, 김종광의 단편들과, 전편에 이어 ‘왕따’의 성장기를 특유의 무규칙적인 어법으로 추적하며 흥미를 더해가는 박민규의 장편소설(연재 2회분)이 독자의 평가를 기다린다. 송기원, 김수열, 이창기, 이승하, 정세기, 조용미, 김영산, 이홍섭, 문태준, 김선우, 조말선, 신기섭 등 열두 분의 시인이 펼치는 다양한 시풍도 주목하길 바란다.
또한 최근 우리 사회의 병통이 된 부동산문제의 진상과 해법을 차분히 짚는 이상영의 시평과 화제의 영화·드라마·사진전의 성과를 맛깔나게 평하는 성은애, 김진철, 진동선의 문화평은 읽는 재미와 교양적 효과를 동시에 맛보게 할 것이다. 그리고 부문별로 알차게 꾸려진 촌평과 ‘독자의 목소리’가 잡지에 더해주는 활력은 어떤 난 못지않을 것인데, 분량에 비해 품이 많이 드는 글쓰기를 마다하지 않은 필자들께 감사드린다.
끝으로 지난 7월 15일 ‘창비’와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공동주최한 심포지엄 ‘87년체제의 극복을 위하여’에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에 감사드린다. 창비는 앞으로도 이 시대의 주요 쟁점에 대해 늘 여러분과 함께할 것임을 다시 한번 약속드린다.
韓基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