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미국에 비굴하고 북한에 으스대는 이명박식 외교
선진화와 실용주의를 내걸고 출범한 이명박정부는 상식과 민의에 어긋나는 정책을 잇달아 쏟아내는 바람에 출범한 지 100일도 안되어 심각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해 있다. 땅투기로 치부한 사람들로 내각과 청와대를 가득 채우는 특권층 인사, 가뜩이나 힘겨워하는 어린 학생들을 새벽부터 밤까지 입시경쟁의 도가니에 몰아넣는 학교 자율화 조치, 광우병 감염 우려가 있는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와 그 위험부위까지 수입하면서 검역주권을 사실상 포기한 굴욕적인 한미 쇠고기협상 등으로 급속히 민심을 잃고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 압권은 쇠고기협상이다. 이 협상은 한국 외교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될 만하다. 협상책임자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4월 18일의 협상 타결은 4월 19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선물을 안겨주기 위한 것이라는 혐의가 짙다. 그것이 한미FTA를 위한 것이라고 둘러댈 수는 있겠다. 한미FTA의 미 의회 비준을 돕는다는 이유로 미국측이 쇠고기 수입 재개를 요구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상회담에 때를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한미FTA가 미 의회에 아직 안건으로 상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세계무역기구(WTO)가 보장하는 검역주권까지 포기하는 굴욕적인 협상을 서둘러 타결할 이유가 없었다. 협상 내용과 진행과정을 되새길수록 분명해지는 현정부의 비굴한 태도는 정통성이 결여된 후진국 친미독재정권의 태도를 방불케 한다.
이런 값비싼 선물의 댓가로 이대통령이 무슨 대단한 실익을 챙긴 것도 아니다.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 부시의 골프 카트를 대신 운전하는 ‘근사한’ 사진을 몇장 찍었을 뿐이다. 향후 한미관계를 ‘전략적 동맹관계’로 발전시켜나간다는 두 정상의 합의도 성과라고 보기 힘들다. 무엇보다 곧 퇴임할 부시를 상대로 하는 이런 합의가 실제적인 계획으로 이어질지 의문인 것이다. 만약 부시의 7월 답방에 때맞추어 이명박정부가 ‘전략적 동맹관계’ 추진을 명목으로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이나 미사일방위체제(MD) 참여 등 미국측 요구를 들어준다면 한미 쇠고기협상에 이어 또 한번 외교적 패착이 될 것이다. 만에 하나 값비싼 댓가를 지불하고 미국과의 명실상부한 ‘전략적 동맹’을 성취한다면 그건 더욱 낭패다. 북한은 물론 중국, 러시아와의 필요불가결한 협력관계가 결딴남으로써 한국은 동아시아의 ‘왕따’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명박정부가 이런 외교적인 낭패를 당한 데는 대략 두가지 요인이 작용했다고 본다. 하나는 이대통령이 한반도 분단체제와 한반도 주변의 지정학적 판세 및 외교적 역학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식견과 경륜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가령 남한의 지도자가 소위 ‘북한 카드’를 잃어버리는 순간 외교적 지렛대를 거의 상실한다는 이치를 모르는 듯하다. 그렇기에 북한의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에 한미동맹 강화로 대응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대응이 대북관계에도 효과가 없고 미국으로부터 대접도 못 받는다는 것은 김영삼정부 때 확인하지 않았던가. 이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또 하나의 요인은 이대통령과 그 보좌진들의 경직된 보수 이데올로기 색안경이다. 이 색안경 때문에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따라서 ‘실용주의적’ 외교정책을 적절하게 구사하지 못한다. 이를테면 두 전임 대통령 시기(이른바 ‘잃어버린 10년’) 동안 한미관계가 몹시 훼손되었고 북한에는 무조건 ‘퍼주기’만 했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김대중·노무현정부의 정책을 뒤집는 것을 외교정책의 골간으로 삼는 듯하다.
안타깝게도, ‘한미관계의 복원’을 부르짖는 한편 남쪽에서 ‘퍼주는’ 것을 받아먹기만 하는 북한의 버릇을 고쳐놓겠다고 벼르는 이명박 대통령이야말로 부시에게 가장 다루기 편한 상대가 된다. 이른바 ‘봉’인 것이다. 사실 이대통령은 미국을 철석같이 믿고 따르지만 미국은 그런 것 같지 않다. 이대통령의 충정어린 선물을 받아 챙기는 동안에도 북한을 상대로 북핵논의를 진행시켜 현재 부시의 방북을 포함한 획기적인 타결책을 놓고 막바지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4월 8일 싱가포르 잠정합의에 이어 북미간에 북핵문제의 최종적인 타결이 이뤄진다면 그건 희소식임에 틀림없지만, 이런 획기적인 성과가 한국이 철저히 배제된 가운데 나오고 있다는 것은 실로 착잡한 일이다.
이런 연유로 이명박정부 출범 후 한국의 외교력은 동아시아 지역정치에서 영향력을 급속히 잃어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더 열심히 매달린다고 해서 사태가 반전될 것 같지 않다. 그 대신 부시의 정치적 변화에서 한수 배우면 어떨까. 집권 내내 대북정책에서 반(反)클린턴 입장을 고집하다가 얼마 전부터 클린턴의 정책과 다를 바 없는 실용주의 노선으로 돌아선 부시의 행로에서 이대통령이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점에서 북한을 거세게 몰아붙이던 이명박정부가 최근에는 태도를 상당히 누그러뜨린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아직도 북한에 으스대는 태도가 남아 있다. 가령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이 요청하면 식량지원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우리는 답답할 것 없으니 아쉬운 쪽에서 간청하라는 식이다. 한국이 더 힘센 미국한테 비굴하게 간청하듯 북한도 한국한테 그래야 한다는 발상이 깔려 있다. 이런 소인배적 발상을 버리고 한국이 미국에 당당해지고 북한에 대해 어른스러워질 때만이 문제해결의 길이 열릴 것이다.
이번호 특집은 둘이다. ‘특집 1’은 최근 한국소설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장르문학의 요소들에 주목하고 그 문학적 가능성과 문제점을 다각도로 짚는다. 유희석은 국내외 장르실험의 사례들을 ‘작품의 작품다움’을 파악하는 비평적 관점에서 날카롭게 분석하면서, 장르문학의 자원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되 ‘장르문학의 게토화된 경계’는 극복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박진은 ‘본격문학’/장르문학의 구분법 자체를 회의하고 장르서사를 대중서사와 동일시하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장르서사에 접속하는 ‘주류문학’의 다양한 갈래와 층위 들을 조목조목 짚는다. 주로 복거일과 듀나의 작품을 다룬 복도훈은 두 SF 작가의 대조적인 방식과 이데올로기적 성향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가운데, SF와 유토피아의 관계 등 만만찮은 이론적인 문제를 궁구한다. 장르문학과 ‘본격문학’의 경계를 깊이 사유하는 정영훈은 장르문학이라는 거울을 통해 한국문학의 소설서사가 당면한 ‘위기’를 비판적으로 읽어낸다. 또한 김항은 일본소설의 경계 변화를 ‘나’라는 사소설적 주어의 위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추적하는 가운데, ‘캐릭터 소설’과 ‘케이따이(휴대전화) 소설’ 등 최근 일본문학의 동향을 흥미롭게 소개한다.
‘특집 2’는 김수영 시인 40주기에 맞춰 본지가 특별한 정성을 기울여 준비한 기획이다. 고인의 부인이 소중히 간직해온 상당분량의 미발표 유고(시와 일기)를 김명인이 발굴·정리하고 각각의 작품마다 그 문학사적 의의를 꼼꼼하게 짚는 해제를 붙였다. 이번에 빛을 본 원고들이 김수영 문학에 대한 새로운 탐구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사물에 덧씌워진 어떤 장식적·초월적 의미도 거부하는 김수영 특유의 언어에 주목하는 황현산의 평문은 그런 새로운 탐구의 일환이라 할 만하다.
이 계절의 문제작 여섯편을 간결하게 평하는 ‘문학초점’ 역시 이번호 문학란에서 빠뜨릴 수 없다. 특히 김사과 장편소설 『미나』를 서로 다른 관점에서 고찰하는 ‘시선과 시선’의 글들에 주목하기 바란다. 문학특집과 문학초점에 이어 이번호 문학란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창작란이다. 신예에서 원로에 이르는 열두명의 시인들이 각자 자기만의 감각으로 벼린 언어를 선보이고 있으며, 김숨 김재영 이승우 이장욱의 소설들은 사뭇 다른 문체와 성향을 보여주면서도 하나같이 관습적인 소설문법에서 벗어나고자 분투한다. 서정적 언어와 곡진한 서사로 회를 거듭할수록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신경숙의 장편연재 3회분 역시 일독을 권한다.
박태주와 오건호의 ‘대화’는 이명박시대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및 양극화의 흐름과 맞물려 더욱 심각해질 비정규직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비정규직’이라는 용어의 정의부터 그 극복방안에 이르기까지 조목조목 따지는 가운데 정규직 중심 노동운동의 한계, 노동유연화의 허실, 비정규직 보호법의 개정 및 보완 문제, 사회적 연대의 방식 등 폭넓은 논점들이 거론된다. 두 사람은 중앙 노사정위 참여의 문제 등 몇몇 쟁점에서 시각 차이를 드러내지만 보건의료노조의 비정규직에 대한 연대활동을 비롯한 여러 쟁점들에서 견해가 합치된다.
이번호 ‘논단과 현장’은 묵직한 주제의 글 세편이 기다리고 있다. 성한용은 4·9 총선 이후 정치지형을 이명박 대통령의 조기 위기국면 진입, 박근혜 전 대표의 대안세력화, 통합민주당의 방향 모색이라는 세 흐름을 중심으로 분석하는데,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야박하리만치 냉정한 평가에는 각고의 쇄신을 촉구하는 뜻이 스며 있다. 지난호 김종철의 비판에 대한 답글에서 백낙청은 공유하는 지점과 갈라지는 지점을 변별하면서 문제의 쟁점들을 주밀하게 따진 후에 “‘산업화 대 농업화’ 또는 ‘자본주의적 과소비 대 공생공락의 가난’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것들이 발생할 가능성”을 좀더 열심히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이필렬은 ‘기후변화’가 초래할 전지구적 생태적 재앙에 대응하는 방식과 위기담론의 갈래들을 소개하고, 경제적·사회적 능력과 지리상의 위치에 따라 기후변화의 영향이 달라지는 ‘기후불평등’ 양상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이 글들과 아울러 최근 출간된 중요한 인문사회서들에 대한 조효제를 비롯한 여덟분의 개성적인 필자들의 촌평을 함께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촌평 필자와 ‘독자의 목소리’란에 투고하신 분들께 특별히 감사드린다.
韓基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