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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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구제역 재앙 앞에서

 

 

출범 4년째인 이명박정부가 망쳐놓은 것은 사회 전분야에 걸쳐 많기도 하거니와 그 하나하나가 모두 엄청난 사안이다. 비교적 최근의 것만도 4대강사업, 종합편성채널(종편) 무더기 허가, 구제역 사태, 예산안 날치기 통과, 충청권 과학벨트 공약 백지화 등을 꼽을 수 있는데, 불법과 편법, 망언과 거짓말, 몰상식과 무책임, 무능과 남의 탓이 두드러진다.

구제역 사태는 정권의 이런 무책임·무능·무반성의 생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구제역이 이명박시대에 와서 대재앙으로 번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번 구제역은 발생 70여일째인 27일 현재 전라도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69개 시·군·구, 153곳을 휩쓸었고 그 결과 살처분된 가축 수가 (소는 전체 사육두수의 4%, 돼지는 25%가 넘는) 316만여마리에 이르렀다. 여기에 조류인플루엔자로 살처분된 닭과 오리 600만마리를 더하면 피해 규모는 실로 엄청나다. 대한민국의 축산업 기반이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살처분된 가축은 전국 4251곳에 마구잡이로 매장되었는데, 봄이 되어 땅이 녹으면 부패한 동물사체로부터 침출수가 흘러내려 식수원을 오염시키거나 제방을 붕괴시킬 것으로 예상되어 전례없는 환경재앙마저 우려된다.

위기관리의 측면에서 당국의 초동방역 실패와 안이한 대처가 대재앙을 낳은 일차적인 요인인 듯하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역학조사에 따르면 작년 1129일 안동에서 구제역 발생이 최초로 확인되기 6일 전에 의심 신고가 들어왔으나 정부당국이 적절한 방역조처를 취하지 않은 바람에 구제역 바이러스가 경기도 파주지역을 비롯한 여러 곳으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그후 여기저기로 번지는 구제역에 주먹구구식으로 대처하다 보니 백신접종의 효과적인 시기도 놓치고 말았다. 2000년 구제역 발생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방역당국이 군과 합동으로 신속하고 과감한 초동작전을 펼쳐 2200마리의 살처분으로 선방한 것과 확실히 대조되는 대목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구제역이 발생한 지 40일이 되어서야 ‘긴급’ 관계장관 대책회의를 열고 50일이 지나서야 현장을 방문할 정도이니 구제역에 대한 인식은 물론 관심조차 없는 듯하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다방 농민들의 모랄 해저드(도덕적 해이)” 운운하면서 농민 탓을 한 데 이어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도 “집주인이 도둑 잡을 마음이 없다”며 마치 농민들이 보상금을 타먹기 위해 구제역을 방치하고 있다는 암시를 했다. 시쳇말로 ‘개념 없기’로는 대통령이나 관료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조금이라도 개념이 있는 대통령이라면 이런 대재앙의 한가운데서 어찌 속 들여다 보이는 개헌논의를 내놓을 수 있단 말인가. 소모적인 정쟁과 국론분열을 불러올 게 뻔한 개헌논의를 부추기기보다 이런 재앙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부터 하고 더이상 피해가 확산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현정부 출범 초기에 검역주권을 포기한 채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졸속으로 추진했다가 촛불시민들에게 혼났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번에야말로 참회다운 참회를 해야 한다.

소는 안락사를 시킨 후 매장했지만 돼지는 대부분 산 채로 매장했는데, 그 광경이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소와 돼지를 자식처럼 생각하는 농민들이나 멀쩡한 동물을 무수히 죽이고 파묻어야 하는 방역직원은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방역현장에서 과로와 스트레스로 쓰러지는 직원이 속출하고, 기르던 가축의 살처분에 절망해 목숨을 끊는 농민도 나왔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심각한 외상후증후군에 시달리는 이들 농민과 방역직원의 심정을 배려하고 영문도 모르고 떼죽음당한 동물의 넋을 달래주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사실 무고한 수백만의 생명을 빼앗고도 깨닫는 바가 없다면 우리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정부 방역체계의 헛점을 지적하는 한편으로 시민들은 좀더 근본적인 논의와 성찰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수백만의 생축(生畜)을 죽이는 일이 축산농가와 방역당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덧 서구인처럼 육식 위주의 식생활에 젖은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사실을 직시할 일이다. 구제역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밀집형 공장식 사육제도와 그런 사육제도를 전제로 하는 육식 위주의 식생활을 바꾸려는 노력이 요구되지 않는가.

공장식 사육제도에는 자연과 생명을 사물화하고 착취하는 근대문명의 특성이 집약되어 있다. 이런 반생명적인 문명에서 생태친화적이고 생명지속적인 문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생명이 존귀할뿐더러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발상 전환이 절실하다. 이럴 때만이 동물에게도 품위있게 살고 의미있게 죽을 권리가 있다는 종요로운 인식이 가능해지고, 현재의 과도한 육식문화와 공장식 사육제도에서 벗어날 길이 열리지 않을까. 이 정부의 부실한 방역대책을 성토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이런 근본적인 성찰까지 수행하는 것이 구제역 재앙으로 몰살당한 가축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

 

동아시아는 1993년 봄호 특집 이래 본지의 주요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다. 이번호 특집 ‘다시 동아시아를 말한다’는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변화와 갈등을 겪는 동아시아 정세를 논하되, ‘국가주의를 넘어서는 동아시아공동체’를 지향하는 담론과 연대 움직임에 특히 주목한다.

백영서는 자신과 창비가 주창한 동아시아론의 궤적을 돌아보면서 그것이 제3세계론을 비롯한 한국사상사의 자양분을 섭취하는 가운데 탈분과학문적이고 실천적인 담론으로 발전해왔음을 강조한다. ‘이중적 주변의 시각’ ‘복합국가론’ 등의 핵심개념과 그간의 연대활동 경험을 지렛대로 삼아 동아시아론과 분단체제론의 내재적 관계를 조명한 그의 글은 동아시아론의 계보와 현실적 의의를 꼼꼼히 정리한 머릿글로 주목할 만하다. 박민희는 미국과 중국의 양극체제시대가 도래한 현실을 직시하되 그 체제가 어떻게 끝날지는 ‘열린 질문’으로 전제하면서 중국의 부상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길을 묻는다. 또한 실감나는 사례 분석을 통해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관계가 변하는데도 한국이 중국 위협론에 빠져 한미동맹 강화 일변도로 나가는 것은 위험천만한 선택임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개번 매코맥은 최근 센까꾸/오위 섬의 영유권 분쟁의 이면에 중국의 실력행사와 일본의 강박적 과잉반응, 미국의 전략적 애매성이 맞물려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동아시아 국민국가의 틈새에 위치하여 역사적으로 모호한 지위를 점하는 센까꾸/오위 섬의 분쟁을 해결할 실마리를 한때의 오끼나와처럼 동아시아 가교의 역할에서 모색하자고 제안한다. 쑨 꺼는 동아시아 ‘핵심현장’으로서의 진먼과 오끼나와 및 한반도가 지닌 함의에 주목한다. 특히 오까모또 케이또꾸와 백낙청 등의 창의적인 논의를 바탕으로 민중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끌어내고 그런 민중시각에서 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민중연대가 실현될 조건을 독창적으로 읽어낸다.

백낙청은 남북연합 건설을 통한 분단체제 극복이야말로 한반도의 국가개조 작업과 국가주의 극복의 관건이며 ‘국가주의를 넘어선 동아시아’의 건설에 핵심적이 되는 근거를 제시한다. 또한 천안함사건의 진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연평도사건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짐을 치밀하게 따지는 한편 한반도의 악성 분단국가주의를 극복하는 작업이 모든 근대인에게 요구되는 근대 적응·극복의 이중과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특집에서 제기된 동아시아에서의 국가주의 극복 문제는 ‘논단과 현장’의 첸 리췬의 글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는 마오시대가 남긴 문화사상적 유산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중국의 부상과 더불어 부쩍 강화되는 국가주의와 중화중심주의를 각별히 경계한다. 그런 조류에 휩쓸리는 세태 앞에서 그가 보인 진솔한 자기성찰은 값지다. 임형택은 정약용의 공부법을 사례로 들어 전통적 인문 개념이 문명의식과 직결되어 있으며, 실용과 과학을 포괄하는 총체적인 성격을 지녔음을 지적한다. 그는 현재 “인문학의 위기의식은 ‘문명적 전환’의 시대를 반영한 정신현상”이기 때문에 인문학의 총체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어렵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다고 역설한다. 본지는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임형택의 글을 필두로 하는 ‘사회인문학’ 연속기획을 꾸리니 지켜봐주시기 바란다. 이명박정부와 참여정부의 에너지정책의 공과를 따져가며 장기적 관점의 에너지 계획이 시급함을 주장하는 이필렬의 글도 일독을 권한다.

백지운 심진경 이현우 김영희가 참여하는 ‘대화’는 본지 2007년 겨울호 세계문학 특집의 논의를 이어받아 그간 새롭게 제기된 담론상의 쟁점을 점검하고 최근 한국문학과 활발하게 교류중인 중국과 일본의 소설에 대해 토론하면서 동아시아 지역문학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참여자들은 최근 세계문학 담론이 부상하는 배경에서 시작하여 세계문학의 여러 개념들(특히 ‘괴테-맑스적 기획’으로서의 세계문학 개념), 한국문학/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의 관계, 하루끼 현상 등에 대해 격의없는 대화를 나눈다. 작품 토론에서는 대체로 중국소설의 풍부한 서사와 활기에 비해 한국소설은 서사가 약하고 추상적이라는 평이 나왔는데, 한중일 문학의 특성에 대해 앞으로 많은 논의가 필요할 듯하다.

이번호 시란은 열한분의 시인들이 개성적인 시 세계를 선사하고 소설 역시 이시백과 백가흠의 단편이 만만찮은 기량을 보여준다. 첫회분부터 줄곧 주목을 끈 김애란의 장편은 이번호로 대미를 장식한다. 성공적으로 장편연재를 마무리한 작가에게 축하와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이번호에 신설된 ‘작가조명’ 코너에는 최근 작품집 『더블』을 출간한 소설가 박민규를 초대한다. 황정아의 인터뷰와 조연정의 작품론은 이번 소설집의 남다른 특징을 포착하고 그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예리하게 비춰준다. 앞으로도 주목할 만한 소설가와 시인을 초대할 예정이니 눈여겨봐주시기 바란다. 아울러 신진시인 4인의 시어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그 낯선 어법을 맥락이 닿게 해석하는 송종원의 평론은 한국시의 첨단이 가리키는 방향을 가늠하게 해주는 이번호의 읽을거리다.

일일이 소개하지 못하나 문학초점, 촌평, 문화평의 필자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를 표한다. 올해 9회째를 맞은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들은 한국문학의 앞날을 이끌 희망이다. 그들의 수상작을 읽고 격려해주시기 바란다. 아울러 지난 150호 기념호에 대한 각별한 성원에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독자 여러분과 함께 신선한 새 봄을 맞고자 한다.

韓基煜

한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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