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상황과 운명, ‘탈향’과 ‘귀향’ 사이
이호철의 소설세계
임규찬 林奎燦
문학평론가, 성공회대 교수. 평론집 『왔던 길, 가는 길 사이에서』 『작품과 시간』 『비평의 창』 등이 있음. kclim@skhu.ac.kr
‘소설가란 평생 현역’이라는 말을 즐겨 할 만큼 최근까지 정력적으로 문학활동을 해온 분이시라 이호철(李浩哲, 1932~2016) 선생의 부음 소식은 조금 뜻밖이었다. 한국전쟁 후 등단한 많은 전후세대 작가군 가운데 최근까지 활동하는 작가는 이호철뿐이라 할 정도로 워낙 노익장이셨다. 그래서일까, 이제 50년대 후반기에 등장한 소설가, 월남민 작가 모두가 떠났구나 하는 썰물 같은 시대감에 일순 휩쓸린다. 물론 이호철은 아주 오래전부터 ‘분단과 실향’의 대명사처럼 불리던 작가였다. 이호철이라는 이름자가 뿜어내는 이미지는 국토의 분단 그리고 동족상잔의 비극, 버릴 수도 없고 간직하기도 버거운 남북의 여러 복합적인 문제를 상기시킨다. 이호철은 스스로 그러한 일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작가의 길을 평생 걸어왔다.
더욱이 말년에 접어들수록 연작소설 『남녘 사람 북녁 사람』(1996) 등의 작품을 통해 한국전쟁의 소슬한 국면과 늙은 실향민의 삶을 둥우리처럼 품고 있던지라 더욱 그러하다. 이호철은 체험과 연륜이 빚어내는 작품세계의 고유성으로 늘 당대적 의미를 부여받아왔다. 무엇보다 이호철만이 쓸 수 있는 고유한 역사적 체험에 사람들은 큰 관심과 기대를 가졌고, 작가 역시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해방 직후의 북쪽 생활 경험, 한국전쟁기의 전투경험과 포로경험, 월남하여 겪은 전중 혹은 전후의 남쪽 생활이라는 특별한 시공간이 그것이다. 이호철 소설이 전쟁문학, 월남민(실향민) 문학, 분단문학 등으로 이야기되는 바가 여기에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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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역사 속에 그를 던져놓고 하나의 완결된 과거로 되돌아보았을 때 과연 이호철의 문학적 인생에서 어떤 국면, 어떤 서사적 노선이 가장 아름다울까? 되돌아본 이호철의 문학에서 가장 멋진 풍경은 역시 등단과 등단 이후 혜성처럼 작단의 선두에 나서는 과정이다. 이호철은 스무살 전후 청년 시절에 겪은 혹독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1955년, 비교적 이른 나이인 스물셋에 순탄하게 소설가로 등단했다. 이어 「판문점」(1961) 「닳아지는 살들」(1962) 등의 문제작으로 주요 문학상을 받고, 뒤이어 『소시민』(1964~65 연재) 『서울은 만원이다』(1966 연재) 같은 성공적인 장편을 중앙일간지 등에 연재함으로써, 등단 십여년 만에 대중적으로도 각광받는 명성을 얻는다.
어디에도 의지가지없던 열아홉살 홍안의 소년이 함경남도 원산에서 혈혈단신 월남해 부산부두에서 막노동, 미군부대 부근에서 경비원 일을 하는 등 갖은 고난 속에서 한 사람의 소설가로 오뚝이처럼 우뚝 선 면모는 그의 집념과 뚝심을 보여준다. “어쩌다 이국이나 다름없는 남쪽 나라에 홀로 뚝 떨어져서, 그것도 척박하기 짝이 없는 문단이란 동네에 끼어들어, 그 오랜 세월을 붓 한자루로 살아왔다니 장하다, 장해!”1)라는 고향 친구의 진솔한 표현이 그래서 더 살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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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등단작 「탈향」(1955) 「나상」(1956)부터 세월을 거스르며 더욱 역사적 의미를 키워간다. 이제는 “소박한 휴머니즘과 비장한 영탄조의 50년대 소설과 결별이라는 소설사적 의미”2)까지 담기에 이르렀다. 두 작품은 분명 전후문학 계열이다. 어린 나이에 급작스레 맞이한 낯설고도 폭력적인 상황에서 자기 생존을 추스르기도 바쁜, 더군다나 고향과 가족과 생이별한 여린 존재의 외로움, 그런 젊은 존재의 자화상이 애잔하다. 역사나 시대 상황을 문제삼기 전에 위기의 존재 상황에서 마주하는 내밀한 생의 충동과 윤리를 넘어서는 삶의 의지 등 존재의 비밀스런 경험이 중심을 이룬다.
「탈향」은 한국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낯선 정착지로 피난 온 네명의 청년이 근대적 도시의 일상으로 진입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두 세계에 닿아 있다. ‘고향’으로 묶인 유사-가족공동체로서의 인정의 세계로 결합된 네명이, 피난지 수도 ‘부산’으로 대표되는 근대적 자본주의의 생존의 세계에서 끝내 단독자로 흩어진다. 핵심 이야기는 주인공 ‘나’가, ‘광석’을 배반한 ‘두찬’의 행동을 비판하며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따라하며 ‘하원’을 배신한다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 버리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 그게 바로 ‘탈향’이다. 명백히 반휴머니즘인데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 조금 이른 나이에 어른의 세계로 성큼 들어선 풋청년의 당당한 사회진입에 이 작품의 묘미가 있다. 쉬 가늠하기 힘든 낙관주의와 배신의 행위 뒤로 슬며시 고개를 들이미는, “야하, 눈 보구 싶다, 눈이” 하는 하원이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죄의식의 결 또한 미묘하다.
그 점에서 「나상」은 「탈향」과 다른 별개의 세계가 아니라 또다른 속살이다. 「탈향」에서 나타난 현실의 승리가 이 소설에서는 은밀히 뒤집힌다. 현실보다 순수성을 껴안는다. 일상적 합리성으로 무장한 ‘동생’과 바보 같은 순진무구함을 지닌 ‘형’의 대립에서, 결국은 ‘바보 같은 순진무구함’을 윤리적으로 재평가한다. 동생인 ‘나’가 전쟁 중의 포로라는 비일상적 상황에서 형의 죽음을 액자의 이야기로 객관화하여 자기 자신을 사후적으로 징벌하는 심연의 침전물이다. 이호철 소설에서 곧잘 보게 되는 비밀의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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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黃順元)은 신인 이호철에 대한 추천사에서 “여기 천(薦)하는 「탈향」의 작가는 재질뿐만 아니라, 자기 작품을 매만질 줄 아는 끈기와 노력까지도 겸비한 사람이다. 한 4년 동안에 내가 개인적으로 보아온 작품만도 10여편이 넘지만, 그중의 3, 4편은 두세번씩 개작하는 겸허와 노력을 아끼지 않은 사람이다. 특히 여기의 「탈향」은 다섯번씩이나 개작을 했다. 이것은 결코 이 젊은 작가가 무능하다는 표가 아니요, 도리어 얼마든지 유능하다는 증좌인 것이다”(『문학예술』 1955년 7월호)라고 했다.
사실 등단 이후만큼이나 감동적인 장면은 등단 이전의 문학소(청)년 이호철의 집념이다. 해방이 되고 나서 집이 지주 반동분자로 몰려 숙청되어 맨몸으로 쫓겨나와 친구들에게 왕따 신세가 되어서도 책읽기로 이를 견디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문학서클의 리더로 활약하면서 신초샤(新潮社)의 세계문학전집을 독파하고 글만 썼단다. 무엇보다 인민군에 징집되어 또 국군포로가 되어서 이리저리 휘둘렸던 생사의 요철 속에서도 손수 백지를 잘라 실로 묶어 만든 수첩에 기록을 빼놓지 않았다는 것. 수첩을 본 한 친구가 전한다. “그의 독특한 필체의 글이, 허리가 휘어진 개미를 세워놓은 것 같은 그의 필체가 가득 차 있었다. 때로는 연필로 때로는 잉크로, 그리고 뒷장의 여백 한쪽에도 가득했다.” “생명이 아슬아슬한 그 전장 속에서 주워 적은 것은 수첩의 기록이 아니라, 그의 피와 땀이었을 것이다.”3) 어디 그뿐이랴, 포로였다 간신히 살아난 후 어렵사리 홀로 월남한 이 어린 사내를 보라. 집 떠나면서 부친이 준 천금 같은 돈 오천원을 몽땅 주고 자신이 좋아한 안똔 체호프(Anton Chekhov) 희곡전집 다섯권을 샀단다. 그러니 피난 가서 부두 노동자, 제면소 직공, 미군 정보기관부대 경비원으로 일하면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스물셋 이호철은 멋지게 소원을 성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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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이후 그가 보여준 놀라운 행보가 그저 행운이 아닌 재능과 노력이 함께 일군 결과라는 것을 「판문점」과 『소시민』이 입증한다. 「판문점」과 『소시민』은 확실히 시대의 아이콘이자 이호철 문학의 문패다. ‘판문점’으로 상징되는 분단 상황과 근대화가 양산한 ‘소시민’, 이것이야말로 이호철 문학세계의 양면이다. 아니, 각 작품마다 두 요소가 비밀스럽게 맞물려 펼쳐내는 접착성이야말로 세태와 시류를 넘어서는 이호철 소설의 고갱이다.
이호철은 1961년 『사상계』 3월호에 「판문점」을 발표해서 제7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소설은 당시 공보실 보도관 최규정의 권고로 기자 자격증을 얻어서 극적으로 판문점 회담에 참관한 작가가 북한 기자들과 담화한 현재적 경험을 발 빠르게 변용한 작품이다. 기자로 신분을 속이고 외국인 기자들과 함께 판문점에 도착한 진수에게 붉은 완장을 찬 북쪽 여기자가 말을 건다. 두 사람이 합의점 없는 논쟁을 이어가던 중 소나기가 쏟아지고 진수와 여기자는 남인지 북인지 소속이 불분명한 지프차로 들어간다. 조용한 차 안에서 이데올로기의 무거움은 우스워지고 서로가 그저 한명의 인간임을 확인하지만, 비는 곧 그치고 두 사람은 각자 남과 북으로 향하는 게 중심 이야기다.
사실 「판문점」은 작가의 초기 작품과 후기의 리얼리즘적 경향을 연결해주는 작품으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작품에서 돋보이는 것은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북의 여기자에게 “이봐, 금니 어디서 했어?” “살구알 냄새가 나, 네 머리에서”를 읊조리는 ‘나’, 그리하여 작품 대미를 “기집애, 조만하면 쓸 만한데, 쓸 만해”로 장식하는 도발적인 발언 등이다. 또한 소나기를 기화로 숨어든 지프 안의 청춘남녀가 펼치는 뜻밖의 세상, 비몽사몽 꾸는 꿈을 통해 횡설수설하는 이야기 속에 불쑥 자신의 속내를 담아내는 은밀한 진실 등 통상의 상식을 뛰어넘는 작가적 기질과 소설적 장치가 도처에 쑥덕인다. 거기다가 소설 앞뒤의 많은 부분을 함께 사는 형과 형수의 소시민적 생활 묘사가 덮고 있는데, 화자의 냉소적 시각에 예리하게 포착된 속물적 삶의 양태가 발산하는 이역감 등 여러 결의 ‘분단’이 에워싼다. 분단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다거나 통일에 대한 작가의 의식이 도드라진다거나 해서 화제작이 아니라 여러 겹의 서사적 근육으로 미묘한 심리와 정서를 움켜쥐는 수완이 예사롭지 않아서 문제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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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철의 또다른 대표작이라 할 『소시민』은 우리 소설사에서 1951년 부산의 피난시절을 다룬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더구나 “50년대와 60년대, 그리고 오늘 이 시대까지 일관하게 관통하고 있는, 분단시대의 핵심을 여실하게 잘 드러내고 있는 드문 작품”4)이다. 자신의 체험을 기반으로 한 진실성에다, 월남민이라는 독특한 삶의 유형이 당대 사회체제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추스르는가를 생동감 있게 목격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전쟁으로 인한 사회적 변동 속에서 부침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인간군상이 제면소라는 한 공간 속에 충만하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 원형이라 할 과거 제면소 시절의 일기를 큰 야심 없이 조금씩 픽션으로 변형시켜 쓴 소설이라고 한다. 사후 진단이 부분부분 들어갔겠지만, 무엇보다 그때의 눈높이가 결정적 작용을 해서일까, 소설이 활기차다. 당대 대다수 소설의 침울함이라든가 지독한 관념성과 다르게 생활 자체의 웃고 우는 실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냄으로써 어떤 특정한 이념이나 사상을 성급한 잣대로 조작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 자신의 삶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다시금 예의 그 천진난만함, 성급히 논리화할 수 없는 삶의 교활함이라 할 복잡성이 만져진다. 배신한 ‘나’를 향해 이별을 통고하듯 내뱉던 매리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약게 사이소. 앞뒤가 분명해야 합니더.”
그러므로 어떤 결론을 향한 도정이란 없다. 부침을 거듭하며 허우적이는 인간군상을 보여줌으로써 당대의 상황이 전장터로 요동친다. 소설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늦봄에서 시작하여 삼팔선 근처에서 교착상태로 굳어가던 5월을 거쳐 휴전회담이 시작되는 여름에서 끝난다. 당시의 부산 거리는 단순한 피난지라는 의미를 넘어서 피난의 수도이자 앞으로의 세상을 가늠케 하는 무대다. 전쟁의 긴장이나 공포, 대포와 총 소리에 대한 묘사 하나 없이 이 소설은 한국전쟁이 남한사회의 자본주의적 재편에 어떻게 기능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점에서 작품의 제목 ‘소시민’은 상징적이다.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삶의 존재양식 속에서 사회의 기초가 되는 가족공동체의 파괴, 고향 상실과 함께 주어진 존재터의 부동성, 연(緣)의 상실로 인한 인간관계의 반목과 질시, 상대적으로 팽배해가는 사적 욕망체계와 이기주의 양산, 그리고 계층 형성 및 사회관계 재편의 혼란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존질서의 파괴는 필연적으로 사회의 정상성을 극도로 훼손하고 비정상적인 사회구조를 만들어놓은바, 이로부터 소시민이라는 사회적·역사적 존재양태가 생성되어 나온다. “본격적인 소시민화 이전 시대의 대부분 소시민도 채 못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5)가 분명한데, 이후 전개될 사회적 존재형태를 생생히 선취한 실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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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전제나 선입관 없이 이호철의 작품 중 문학적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 하나를 고르라면 필자는 선뜻 「큰 산」(1970)을 고를 것이다. 일부 묘사만으로도 김광섭(金珖燮)의 명시 「산」에 견줄 만큼 이미 평판이 높은 작품이다. 필자의 눈에 특별히 잡힌 소소한 대목이 있다. “활짝 갠 날보다 덜 갠 날이 기분이 언짢은 법이며, 덜 갠 날보다 흐린 날이, 흐린 날보다 비오는 날이, 비오는 날 가운데서도 마가을 저녁답의 빈 들판에 내리는 비가 훨씬 더 쓸쓸한 법이다.” ‘활짝 갠 날’ ‘덜 갠 날’ ‘흐린 날’ ‘비오는 날’ 이렇게 일반론으로 쭉 진술되다가 돌연 ‘마가을 저녁답의 빈 들판’에 쏟아져 내리는 너무도 선명한 서정적 풍경 때문이다. 발레리(P. Valéry)는 “작품이란 언제나 보고 있는 것인데도 그것을 전에 본 적이 없었다고 항상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6)이라고 했다. 「큰 산」이 그러하다. 알면서도 금세 잊고 지나치기 쉬운 커다란 존재, 그 크기를 가늠키 힘든 심연을 읽을 때마다 단박 환기한다.
소박한 단편이지만 작품 내의 미학적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야기의 중심인 신발 한짝을 두고 벌이는 소동부터가 재미있다. 다분히 희극적인 상황인데, 작가는 비극적 분위기로 반전시키면서 외현보다 훨씬 넓고 큰 세계 앞에 서게 한다. 옛날과 현재의 이야기 속 왜소한 ‘신발 한짝’과 대비되는 엄청나게 ‘큰 산’을 사실 그대로 상상하자. 단순한 대조의 문제가 아니라 크기의 문제다. 조그맣게 꿈틀거리는 ‘소시민적’ 세속의 크기나 이기적 욕망을 일거에 뒤흔드는 뇌성벽력 같은 배음(背音)의 배경이다. 따라서 흔히 이야기되듯 ‘큰 산’의 의미를 소시민성에 맞선 윤리성이나 사회의식, 혹은 실향민에 맞춘 고향이나 통일에의 염원 등으로 보는 것은 다분히 이야기 자체에 갇힌 비유적 해석이다.
자연 그대로인 채 인간에게로 밀려오는 거대한 자연의 섭리를 떠올린다면, 실제로 작품 속의 “아 큰 산, 큰 산”이라는 말을 주문처럼 읊조리는 것만으로도 시적인 큰 울림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두 세계가 선명히 맞서 현실 속의 이야기와 옛이야기, 서술적인 세계와 서정적인 세계, 사실적인 것과 낭만적인 것, 세태적인 것과 근원적인 것 사이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일어나는 정서적 효과가 짧은 단편 안에 올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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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탈향」에서 시작하여 「판문점」과 『소시민』을 거쳐 「큰 산」에 이르는 서사의 노선이 250편 가까운 이호철 소설의 주능선이다. 주능선에서 보이는 대표적인 미학적 특징은 우선 사실적인 것과 낭만적인 것이 겹쳐진다는 데 있다. 두 미학적 겹이 형성하는 긴장과 호응이 이호철만의 독특한 현실적 구체성과 세계상을 구축한다. 낭만적인 속성은 그의 소설들이 세태적·산문적으로만 흐르는 것을 저지하는 비약적·시적 기능을 수행한다. 동시에 그의 사실적인 속성은 낭만적 경향을 제어하면서, 소설이 탈현실적이고 감상주의로 빠지는 위험을 막아준다. 이러한 현실성과 낭만성의 관계를 작가 자신은 ‘소설가적 경향’과 ‘예술가적 경향’으로 이야기한 바 있다.
소설가 속에 어차피 다소는 동서하고 있는 예술가는 제멋대로 생겨먹었고 방자하다. (…) 소설가 속에 다소는 동서하고 있는 예술가란 첫째, 게으르고 골치 아픈 것을 싫어하고 장난꾸러기이다. 인생과 세상은 자기 취미에 알맞도록만 내다보여지게 마련이다. 여기에 부닥치면 분석하고 분류하고 결론을 내리는 저 논리의 조작, 비평 업무는 무색해진다. 예술가를 달래어 이끌어가며 결국 그것을 소설 제작에 기술적으로 동원해야 할 사람은 바로 소설가 자신이다. 큰 윤곽은 소설가가 정하지만 디테일에서는 예술가가 동원되어야 한다.(「소설작가의 자세」, 『사상계』 1965년 2월호)
다소 대립적이고 이질적인 것들이 한데 어울려 만들어내는 서사적 세계야말로 성공적인 이호철 소설의 특장이다. 그렇다고 둘 사이가 사이좋게 균형과 조화를 이룬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충돌과 긴장, 예기치 못한 모순과 반전이야말로 이호철의 독특한 서사미학이다.
또 하나의 성취군인 풍자소설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공중전 화법’이라 칭한 황석영(黃晳暎)의 표현대로 「부시장 부임지로 안 가다」(1965) 「1965년, 어느 이발소에서」(1965) 같은 이호철의 뛰어난 풍자소설에는 확산과 폭발의 힘이 있다. 이를테면 부시장으로 발령되어 찾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자신을 잡으러 오는 줄 알고 그저 줄행랑만 치는 「부시장 부임지로 안가다」의 장면을 보라.
짜개지는 행진곡이 울리다가 또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터져나오자, 규호는 깜짝 놀라서 마시던 코오피를 그냥 놓고 흐떡흐떡 코오피값을 치르고 층층다리를 내려오면서 쌍년 쌍년 하면서 그 아나운서의 욕을 하고 있었다. 어느새 그는 반공에 쫓기고 있는 것이었다.
‘반공’에 쫓긴다는 확산의 힘이 팽팽히 속도를 낸다. 한 사람의 오해가 만든 단순한 풍자가 아니라 5·16이 여기저기서 폭발하고 있다. 이발소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오해를 통해 분단 이데올로기를 한편의 코미디처럼 풍자하는 「1965년, 어느 이발소에서」는 또 어떤가. 어느 이발소에 손님 하나가 들어오는데, 작가는 그냥 ‘그자’로 호칭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자’의 생김새를 보라. “짧게 깎은 앞머리가 가지런히 일어서 있고 (…) 칼칼하게 야윈 몸매지만 서슬이 선 눈매를 지녔고, 하관이 빠르고 얼굴색도 까무잡잡”, 바로 육군소장 박정희(朴正熙)다. 임형택(林熒澤)은 “한강인도교를 건널 적의 육군소장 박정희의 이미지, 그것은 국민 앞에 노출된 첫 화면이었다. 그 박정희가 까만 썬그라스만 벗으면 곧 어느 이발소에 불쑥 나타난 그자”7)라고 했다.
이호철 소설의 보편적 특징은 이렇듯 특정한 공간을 무대로 이야기를 펼친다는 사실이다. 초기작 「탈향」도 ‘화차’라는 공간이 중심이며, 「닳아지는 살들」 연작도 ‘집’이라는 공간이 중심이다. 「탈향」에서는 ‘화차’에서의 생활이 끝날 것임을 암시하며 서사가 종결되고 「닳아지는 살들」 연작도 집을 떠나는 ‘이사’로 서사가 종결된다. 이러한 공간 중심의 서사는 시간의 변화와 나란히 가는 인물들의 삶이나 의식의 ‘변화’보다는 공간 속에 존재하는 삶의 부면들과 인물들의 관계 양상에 자연 초점을 맞춘다. 작가는 실제로 자신의 분신이라 할 인물들을 직접 동원하여 시대와 맞대면시킨 초기 방식에서 벗어나 상황을 전면에 내세운다. 주인공이 중심이 아니라 상황이 중심이 되는 일종의 상황소설까지 나아간다. 『남풍북풍』(1977) 『문』(1981) 등의 장편뿐만 아니라 「큰 산」 「이단자」(연작, 1972~73) 「1965년, 어느 이발소에서」 등의 단편에서도 초점은 상황에 가 있다.
이호철의 소설에는 사건 속에 뛰어들어 있는 행동자로서의 ‘나’가 존재하지 않고, 사건 밖에 있는 관찰자로서의 ‘나’가 있을 뿐이라는 일반적 인식도 이러한 작품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오히려 특정 상황에 중점을 둔 작품의 면모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또다른 현실적 세계를 환유하거나 연상하게 한다. 가령 감방이 이념의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분단의 방으로 확대되는 장편 『문』, 실향민끼리의 미묘한 갈등과 우애를 다루면서 ‘전화통화’를 비롯한 상징물과 상징행위를 통해 남북회담을 우의적으로 표현한 「이단자 4」 등이 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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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철의 전체 소설을 놓고 보면 크게는 개인적인 내면세계로부터 사회적인 현실로 확대해나가면서 낭만적인 세계에서 사실적인 세계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후기를 대표하는 연작소설 『남녘 사람 북녁 사람』이나 단편집 『이산타령 친족타령』(2001) 등은 확실히 사실적인 세계로만 일원화되는 감이 없지 않다. 『남녘 사람 북녁 사람』은 작가 자신의 인민군 참전 체험에 근거한 것으로 한국전쟁을 다룬 통상의 전쟁소설과는 달리,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저마다의 과정을 밟아 인민군에 들어온 온갖 종류의 인간들이 엮어나가는 사람살이의 실상을 재현한, 우리 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개성적인 전쟁소설이다. 준역사물에 가까울 정도로 세밀한 증언의 측면에서 이호철의 고유성은 특별하다.
그렇게 보면 「탈향」에서 시작하여 「판문점」과 『소시민』을 거쳐 「큰 산」에 이르는 노선 이후 얼마간 정체와 답보기를 거친 후 예전과는 다른 서사적 노선을 모색한 것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큰 산」의 시선에서 바라보자면 왠지 아쉽다. 오히려 그 단절 속에, 1970년대 재야 민주화운동의 효시인 민주수호국민협의회 시국성명 참여를 필두로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의 발기인, 유신반대 61인 문인 시국성명, 김지하(金芝河) 석방 기도회,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등에 참여하고 문인간첩단 사건과 김대중(金大中) 내란음모 사건으로 두차례나 옥고를 치른 민주투사로서의 삶이 오롯하다. 그런데 또 투사적 삶에 대응하는 문학적 성취가 별반 없다는 점도 이호철 문학의 숨은 그림자다.
이호철의 소설에서 대화나 행동 등을 통한 유대나 연대, 말하자면 성격 변화가 이루어지는 행동형 인물이나 집단이 없다는 것도 이와 무관치가 않다. 그런 점에서 이호철의 인물들은 햄릿형에 가깝다. 또한 ‘소시민’이라는 말과는 그렇게 친밀하면서도 묘하게 ‘민중’이나 ‘지식인’이라는 범주는 이호철의 세계에 자리하기 힘들다. 그의 특장이었던, 당대적 삶의 은밀한 낌새를 실감나게 포착하는 날카로운 관찰력도 후기의 작품에선 잦아들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이 ‘과거’로의 귀향이었고, ‘실향민’이라는 특수한 삶의 운명이다. 자신의 출발지, 작은 세계로 회귀한 셈이다. 그만의 고유한 전쟁소설이 새롭게 태어났고, 실향민의 통일의지를 운명처럼 붙들었다. 이것이 이호철의 마지막이 보여준 역사와 당대에 대한 문학적 대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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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철 선생의 마지막을 생각하니 단편 「이산타령 친족타령」(1999)이 떠오른다. 쌍방 간에 한과 앙심을 품어왔던 두 할망구가 머리 아닌 가슴과 몸으로 만나서는 대뜸 세월의 잡사들을 말짱 증발시켜버리고는 조곤조곤 정분을 나누던 원래의 사람살이로 돌아간다. 이별의 까닭(분단의 원인) 같은 것을 꼬치꼬치 캐어묻는 것은 ‘설익은 치졸함’ ‘촌스러움’이라고 핀잔한다. ‘귀향’에 다가서는 이호철 문학의 마지막 숨결이 거기에 담긴 듯하다.
선생은 나이가 들수록 고향 생각이 심해진다고 했다. 땅냄새, 흙냄새까지 맡아지는 것 같단다. 함께 동해안에 간 지인이 전한다. “늙은 소나무 한그루를 끌어안고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거의 모든 바다가 내 고향 원산 앞바다로 보인다며 거의 울상이 된 모습이었다.”8) 현실의 통일은 요원해도 견산(見山) 이호철 선생은 벌써 고향에서 ‘큰 산’을 품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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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광수 「또 오랜만이군」, 이어령 외 『큰 산과 나』, 국학자료원 2011, 39면.
2) 정호웅 「탈향, 그 출발의 소설사적 의미」, 문학사와비평연구회 엮음, 『1960년대 문학연구』, 예하 1993.
3) 김완규 「이호철과 나」, 『큰 산과 나』 53면.
4) 염무웅 「개인사에 부각된 민족사」, 『소슬한 밤의 이야기』, 청아출판사 1977.
5) 백낙청 「작가와 소시민: 이호철의 작품세계」, 『이호철문학선집』 6, 국학자료원 2001.
6) 마르셀 레이몽 『발레리와 존재론』, 이준오 옮김, 예림기획 1999.
7) 임형택 「작가 이호철 인상기」, 『큰 산과 나』 182면.
8) 민병모 「이호철 선생님과의 6박 7일」, 『큰 산과 나』 25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