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50주년 특별기획: 창비에 바란다
작가들과 함께 더 너른 ‘운동-장’을
송종원 宋鐘元
문학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주요 평론으로 「사실, 역사, 그리고 시」 「텅 빈 자리의 주위에서」 등이 있음. renton13@hanmail.net
2000년대 이후의 한국 시사(詩史)를 쓸 때 빠질 수 없는 이름들이 있다. 김행숙(金杏淑)은 당연히 그중 하나다. 이장욱의 말처럼, 김행숙 시의 화자들은 시라는 형식 자체를 소외시킴으로써 시에 도달하는 실험을 펼쳤고, 한국의 시는 그만큼 넓어진 시적 영역을 거느리게 되었다. 다수의 젊은 시인들이 이 넓어진 마당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김행숙 시인은 인터뷰의 형식조차 소외시키며 단답형의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일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래서 우리는 예정보다 긴 대화를 나눴다. 아니 대화라기보다 그저 그녀의 말을 경청한 편이었는데, 경청만으로도 어떤 기운을 충전한 기분이 들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인은 그것을 이 정권의 본질이 드러난 상징적인 사건이라 말하며, 영혼과 무의식을 조정하려는 통치술이라고 진단했다. 식민지시기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이 공분을 샀던 전례를 기이하게 떠올리게 되는 퇴행적인 현실 앞에서 깊이 절망하는 문학의 언어는 ‘운동하는 문학적 예외들’을 발명해야 하는데, 지금은 문학마저 그 자체로 추문처럼 여겨지는 상황이어서 더 안타깝다고도 고백했다.
창비는 한국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여러 부침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지켜낸 우리의 소중한 지적 자산이자, 작가들의 ‘운동(運動)-장(場)’ 같은 공간이에요. 이 공간에서 실제로 많은 의미있는 사회운동과 문학적 고투가 발생했죠. 창비를 염려하는 마음이 특히 요즘에 더 커지는 것은 창비라는 ‘운동장’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거예요.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운동’이었다. 창비가 마련한 자리에 초대를 받아서 특별히 준비한 단어는 아닌 듯했다. 그녀가 글쓰기에서 중시하는 것은 작가 고유의 독자적인 내면이 아니라, 타자와 어떻게 만나고 흔들리느냐의 문제였다. 글쓰기는 계속해서 변하는 운동성 같은 것을 품고 있어서, 삶이 문학에 묻어날 뿐 아니라 문학이 삶을 밀고 가기도, 일으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시인의 말에 따르면, 문학 이전에 이미 가지고 있는 ‘새로운 것’만으로는 문학이 되지 않으며, 문학과 함께 운동하면서 ‘새로워지는 것’이 필요하다. 답 없이 떠나는 모험으로서의 문학. 이 모험에 좀더 개방적이고 수용적인 장이 되기 위해 창비가 고려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50주년을 맞이하는 창비의 비전 중 하나가 문학잡지로서의 위상을 강화하는 일이라고 했는데, 이 말이 단지 『창작과비평』 지면에서 한국문학의 비중을 늘린다는 의미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창비』가 가진 정론지와 문예지의 결합이라는 형식을 잘 활용했으면 해요. 이 둘의 ‘화학적’ 결합작용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나아가 어떻게 이 둘을 가로지르는 문학적 사건과 형식을 만들어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 교차의 지점이 바로 문학 안에서 창비의 운동성이 발현되는 특이점이기도 하겠죠.
문학이라는 이름의 더 큰 쓰임 내지는 문학과 인문사회 영역의 창조적 결합은 창비 내부에서도 늘 제기되던 문제이기도 하다. 신임 주간 한기욱은 5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2016.1.20)에서 “사회적 현안과 민중의 삶에 열려 있는 큰 문학을 지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것의 구체적 형태를 찾는 일은 앞으로 창비의 과제임이 분명하다. 김행숙 시인은 창비 50년의 무게가 결코 만만치 않을 거라는 중의적 진단을 덧붙이기도 했다. 50년을 이어온 전통 속에는 새롭게 활용할 유산도 많은 한편, 운동성의 경화로 인해 공전(空轉)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말을 듣자니 결국 문제는 창비의 역사와 현재의 조건을 최대한 생산적인 방식으로 가동시켜 창비적인 색깔을 뚜렷이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잡지의 기획과는 별개로 잡지에 실리는 작품이나 창비가 출간하는 단행본을 보면 ‘창비적’이라는 표현이 무색해지는 면모가 없지 않다.
몇몇 대형 문학출판사들이 똑같은 작가 풀(pool) 안에서 경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창비적’이라는 것에 대한 끊임없고 생산적인 고민과 갱신이 동반된다는 전제하에서 말한다면, 창비가 꿈꾸는 문학 안에서 작가들을 찾고 서로의 가능성을 열어가면 좋겠어요. 그냥 ‘잘 쓴다’ 이런 게 아니라, 창비와 함께 운동했을 때 이 작가가 더 멀리 갈 수 있겠다, 또는 이 작가와 함께 운동했을 때 창비가 더 멋진 꿈을 꿀 수 있겠다, 하는 문학적 모험과 기투 같은 것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창비와 함께 운동했을 때 더 멀리 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우선 귀에 꽂혔다. 창비와 작가 사이의 연대작업, 둘 사이의 갈등과 조정을 통해 각자가 자기를 더욱 충족시키는 일. 이상하게 갑자기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창비와 작가가 손을 잡고 더 멀리 떠나는 일에 대한 기대가 잊었던 느낌을 되살린 듯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아무 때나 일어날 리가. 우선 함께 떠날 이를 찾아낼 창비의 눈은 얼마나 밝은지를 물어야 한다.
멋진 비평은 작품의 가능성을 일으켜 세우고 작품과 함께 문학적 모험을, 미지의 모험을 감행하지요. 그런데 이러한 모험 속에서 발생하는 비평적 곤경보다 작품을 독해하는 일차적인 수준에서 허덕이다 마는 경우가 우리 비평에 더 많은 것 같아요. 창비를 향해 말한다면, 창비의 비평언어가 덜 문학적으로 느껴질 때가 가끔 있어요. 답을 알고 있는 비평 같기 때문이에요. 그런 비평에는 계몽하고 지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문학은 길을 잃어버리는 방식으로 길을 찾아가는 게 아닐까요?
쓴소리가 나왔다. 작품의 이해 자체에 허덕이는 비평이란 말에는 간담이 서늘해진 기분이 들었다. 창비가 비평가를 독자의 한 사람으로 여기고, ‘자기가 읽은 좋은 글을 이웃에게 말하는 작업’으로서의 비평을 지향하더라도 실제의 결과물은 그와 무관하게 지도비평이나 계몽의 사명감이 투영된 글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쓴소리를 더 청했다.
문학적 ‘소통’에 대해 새롭게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창비는 민중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고 또 강조해왔지요. 저도 그 자체로는 소중한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창비가 문학적 소통의 다양한 방식‘들’과 가능성‘들’에 대해 좀더 열려 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문학은 소통 자체도 모험 속에서 이루어지기도 하니까요. 사랑을 나누듯이 문학을 나눈다는 것이 결코 안전하고 편안한 일만은 아닐 거예요.
창비는 보통 독자의 넉넉한 소통능력과 창조성을 신뢰한다. 그런데 이 신뢰와는 조금 다른 지점에서, 지식과 증상들이 뒤엉킨 난해하고 복잡한 작품에 대한 불신 역시 창비에 존재한다는 인상이 없진 않다. “문학적 소통의 다양한 방식들”에 대해 창비가 얼마나 개방적인가의 문제는 중요하다. 역사에 대한 감각 안에서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려는 창비의 지향이 얼마나 실천적인가를 묻는 지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자꾸 제 스스로를 소환하는 문학적 질문은 ‘참여’예요. 이 질문에 붙들릴 때마다 들여다보고 곱씹게 되는 문학적 전사(前事)가 바로 시인 김수영이에요. 김수영은 ‘모호성’의 옹호와 실천에서 ‘참여시’에 도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내죠. 김수영은 시를 쓸 때 자기 정신의 첨단에 모호성이 있다고 말했어요. 정신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앎의 영역이 파열되면서 ‘미지’에 닿는다는 거죠. 이 시적 모호성을 김수영은 “미지의 정확성”이라고 달리 표현하기도 했어요. 시인은 시 속에서 ‘딸깍’ 하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정확성’에 대한 직관적인 확신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이 ‘모호성’의 감각이 시적으로 가로지르는 세계는 내가 잘 모르는 타자들의 세계, 혼돈의 세계예요. 김수영은 시를 쓰면서 절대적인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이질적인 타자들이 웅성거리는 혼돈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면, 혼돈을 억압하고 특정한 질서를 요구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어떤 말들이 특히 정치적으로 억제되고 검열된다면, 그래서 시 속에서 절대적인 자유를 누릴 수 없다면, 시인은 정치적으로 불편한 존재가 되어야 하고 ‘참여시’는 그 불편함 속에 이미 도래해 있다는 거예요. 김수영 식으로 말하면, ‘참여’가 ‘시’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국정화’가 시의 반대편에 있는 겁니다. 김수영은 ‘문학적 자율성’의 반대편에서 참여시를 찾아낸 것이 아니라 ‘미적 자율성’을 끝까지 밀고 나감으로써 참여시와 조우했어요. 아주 희귀한 사례죠.
김수영은 시적이라고 인정된 감정들과 체계화된 앎을 멀리했다. 그래서 그의 언어는 단번에 알아듣기는 어려웠지만 생생했고, 유동적인 현실에 좀더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시에 무슨 말을 할지를 고민하기보다는 무슨 말이 불가능한가에 더 예민했다. 자신의 말이 사회가 용인한 말의 테두리에 갇히지 않길 원했다. 최근 몇년 사이 문학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김수영이 자주 거론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 현실이 억압적이 되었다는 방증이 아닐까. 어쩌면 창비의 50주년 앞에는 역사와 사회, 그리고 문학에 기대했던 바를 새롭게 구성해야 하는 시대가 펼쳐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면사정상 미처 다 기록하지 못한 말들이 많다. 그렇지만 한마디만 덧붙이자. 시인은 얼마 전에 대통령이 즐겨 구사하는 어휘로 “척결”이라는 낱말을 짚어내는 어느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서, 우리 사회의 공식 언어들이 군사용어를 닮았다는 것을 새삼 절감했다고 한다. ‘공포’를 조장하고 이용하는 정치는 사람들의 손발을 오그라들게 하지만, 그 손으로도 쓸 것이며, 시를 쓰는 손이라면 그 손으로 문학적 자유를 누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사이 시인의 손끝이 이상한 모양을 그리며 움직였다.
*“아아, 행동에의 계시. 문갑을 닫을 때 뚜껑이 들어맞는 딸각 소리가 그대가 만드는 시 속에서 들렸다면 그 작품은 급제한 것이라는 의미의 말을 나는 어느 해외 사화집에서 읽은 일이 있는데, 나의 딸각 소리는 역시 행동에의 계시다. 들어맞지 않던 행동의 열쇠가 열릴 때 나의 시는 완료되고 나의 시가 끝나는 순간은 행동의 계시를 완료하는 순간이다. 이와 같은 나의 전진은 세계사의 전진과 보조를 같이한다. 내가 움직일 때 세계는 같이 움직인다. 이 얼마나 큰 영광이며 희열 이상의 광희(狂喜)이냐!”(김수영 『김수영 전집 2: 산문』, 민음사 2008, 43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