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50주년 특별기획: 창비에 바란다
정의를 구하는 착한 시민들의 잡지
정현곤 鄭鉉坤
세교연구소 선임연구원,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정책위원장, 본지 편집위원. 공저 『천안함을 묻는다』가 있음. jhkpeace@empas.com
이향규(李向珪) 박사는 계속 손사래를 쳤다. “제가 무슨.” 그러니까 창비 50년에 한마디 보태는 것이 가당찮다는 말인데, 사실 그 점에서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인연이 짧다면, 달리 도리가 없다. 짧은 인연의 일단이나마 더듬어보는 수밖에.
대학 시절 기억이 있어요. 캠퍼스에서 누군가가 『창작과비평』 영인본을 들고 와서 권했죠. 까만색이라 무거운 느낌을 주었어요. 세상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만드는 잡지라 했어요. 시대의 아픔이라는 말도 했던 것 같아요. 진지함에 끌려서 책을 샀어요. 그땐 모두들 그랬지 않나요. 다들 세상을 구하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어요.
30년 전쯤의 기억인데, 당시의 캠퍼스를 떠올리니 먹먹해온다. 전두환 독재의 끝 무렵이라 정부는 매사가 거칠었고 20대 청춘들의 저항도 그렇게 거셌다. 그때 가까운 벗들이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났고 감옥은 늘 가까이에 있었다. “세상을 구하는 여러 방법이 있었을 터인데, 왜들 그렇게 한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아마 창비도 그랬다는 뜻인가 보다. “세상을 찢어버리려 한다는 느낌이 남아 있어요. ‘ㅊ’으로 시작되는 이름이라 파열음처럼 그렇게 느꼈나봐요. 그때 문지(『문학과지성』)는 어려웠고 창비는 무서웠어요.”
지금 그는 『창비』를 즐겨 읽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묻는다. “여전히 창비는 세상을 구하려고 하나요?” 그가 창비와 대비시키려는 것은 뭘까?
『창비』에 대한 그의 직접적인 기억은 2015년 여름호 대화에 참여한 일이다. ‘탈북인의 자리를 돌아보다’라는 제목의 이 좌담(고경빈·이향규·설송아·한기욱)은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탈북자 문제를 다루는 교본이 될 만하다. 그만큼 정리가 잘되어 있다. 이 좌담의 섭외에 참여하면서 나 또한 약간의 몸살을 앓았다. 남북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탈북자의 실체에 접근하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이향규 박사는 한 탈북학생을 5년간 추적 인터뷰하는 ‘탈북청소년 종단 연구’를 진행해왔고, 연구를 바탕으로 탈북 학생들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좌담에서 이야기한 그의 경험 한마디. “제가 이 친구에게 네 삶을 이미지로 표현하면 무엇이냐고 물어봤거든요. 북한에서는 자기가 들판을 날아다니는 새 같았대요. 아침에 일어나서 떨어진 곡식 낟알이라도 주워먹으러 찾아다니고 저녁에 둥지에 와서 자다가 다음날 다시 들판에 나가는 삶이었다는 거죠. 중국에서는 닭장 속의 병아리 같았대요. 자기가 다시 날 수 있을지, 밖에 나갈 수는 있을지,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건지 몰랐다구요. 그리고 한국에 와서는 쳇바퀴를 도는 햄스터 같대요. 열심히 뛰고는 있는데, 왜 뛰는지 모르겠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옆에 있는 애들도 다 뛰고 있고…… 어디가 더 행복한지 잘 모르겠다고 했어요”(2015년 여름호 129면) 그는 이런 예를 들며 경계를 넘는 경험을 통해 성숙해가는 탈북 청소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좋은 멤버들과 함께해서일까, 탈북자 좌담은 그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천편일률적이지 않았어요. 고경빈 원장님은 균형있는 시각을 보여주셨죠. 국가권력에 비판적이면서도 또 국가이기 때문에 해야 할 역할을 고민하시면서 안보의 문제도 짚어주셨어요. 탈북자 설송아씨는 본인의 얘기를 해주었다는 점이 좋았어요. 배려심이 있는 분이셨죠. 그래서 이해하기 어렵지 않게 들었어요. 저는 또 저대로 할 얘기가 있었고. 좋은 잡지는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고 독자들이 스스로 생각해보도록 안내하는 것 같아요. 그게 이 시대에 맞는 대화법이라고 봐요. 답을 주려고 하지 말고.
이향규 박사가 가장 공들여 하는 작업이 있다. 이주민 여성들의 자서전을 묶어내는 일이다. “이분들에게 글쓰기 지도를 했어요. 글은 어떻게 쓰는 것이고 자서전 챕터에는 무슨 얘기가 들어가야 하는지. 글을 써서 오면 첨삭을 해서 책이 되도록 하는 일이었죠. 사전에 인터뷰도 하면서 자기 삶을 쭉 돌아보게 했어요. 이주민 여성들은 글을 쓰면서 지금 여기 한국에 와 있는 불쌍한 자기 모습이 아니라 그전에 젊었을 때 용감했고 씩씩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돼요. 그 속에서 ‘내가 참 괜찮은 사람이었구나’ ‘내가 여기서도 참 애썼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고 ‘나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죠.”
한국사회는 도대체 약자를 애정있게 대하지 않으며 도와주기보다는 나무라기에 바쁜 사회다. 그래서 그에게 탈북자와 이주여성은 서로 닿아 있는 문제다. 그의 작업 이야기를 듣다보니 『창비』를 포함해 이 시대에 세상을 구한다고 하는 이들의 방식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담론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내 주변의 많은 착한 사람들하고는 좀 다르다고 느껴요. 작은 힘이나마 내 곁의 사람을 도와주었을 때 기쁨을 느끼는 착한 소시민들의 정서라는 게 있어요.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기를 원하죠. 『창비』는 아무래도 제도나 체제, 시스템에 관심이 많아 보여요. 구체적인 인간에 대한 관심은 약하죠. 이렇게 변하지 않는 한국사회를 살면서, 구체적인 삶을 건드리지 않으면 그게 무슨 힘이 될까? 종종 생각해보게 돼요.
계간지뿐 아니라 창비의 책에 대한 가장 최근의 기억으로 그는 최규석 만화 『송곳』(전3권, 2015)을 언급했다. 현대인의 생활을 그리면서도 비정규직이라는 시대의 과제에 맞닿아 있다. 그뿐 아니라 작품 속 표현 하나하나가 유려하며 사람들의 심리가 잘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읽힌다. “그게 문학과 사회가 만나서 대중과 소통했을 때의 방식이지 않을까요?” 말인즉슨, ‘문학과 사회는 창비의 본질이므로 사람 이야기가 없을 수 없다’라는 나의 얘기에 대한 그의 답이다. 사실 그는 창비를 즐겨 찾는 독자이다. 그런데 그의 관심은 주로 청소년 출판물로, 이 분야의 창비 출간도서들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잡지 『창비』는 여전히 검은색 영인본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창비』에 대한 그의 생각이 과거형이라고 느껴졌지만, 지금의 『창비』가 그에게 잘 다가오지 않는 것도 사실인 듯했다.
또 하나 그와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분단체제론이다. 내가 창비에 끌린 이유가 분단체제론이었기 때문인데, 그래서 여기서는 내 설명이 길어졌다. 남북관계를 매개로 해서 벌어지는 일련의 복합관계가 우리 사회의 외적 존재가 아니라 내면화된 무엇이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본질이 되고 있다는 것이 얘기의 요지였다. “남과 북이 얼마나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하고 있는지, 서로가 서로를 먹여 살리는 체제인지, 분단체제론은 잘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의 이런 답변은 분단체제론을 쉽게 소화하는 이의 표현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담론의 생활력을 인정한다는 것인지도 궁금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느껴요. 정치인의 모습과 시인의 모습이 그것인데, 제가 쓴 구술사 경험에서 예를 들어보자면 정치인은 김석형이고 시인은 이종입니다. 분단체제론은, 말하자면 정치인들의 소통이라고 봐요.
이향규 박사가 말하는 김석형(金錫亨)은 북으로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로 다큐 「송환」(2004)과 구술사 책 『나는 조선노동당원이요』(선인 2001)의 주인공이다. 그가 김석형과의 40여차례 인터뷰와 100시간 분량의 녹음테이프 77개를 통해 얻은 ‘정치인’의 이미지는 뭘까? “가만 예를 들어서 캄캄한 밤에 동지들을 이끌고 목적지까지 가는데 횃불을 밝히고, 그리고 안개가 자욱하게 끼고 갈대 숲속으로 헤쳐 설라무네 나가는데, 동지들 이끌고 나가는데, 햇불이 다 됐어. 횃불이 다 됐으면 그걸로 끝마치는 게 아녜요. 감정 표현이야 거기서 끝마치는 아네요? 그래 지금 안개 속에서 깜깜한 밤에 그 험한 갈대숲을 헤쳐나가는데 횃불이 끊어졌거든. 끊어지면 아주 막막하지요. (이향규: 그러면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 자기 가슴에서 심장을 꺼내 가지고 불을 붙여 가지고서, 그 동지들 다 밝은 세상으로 이끌어나간다. 이제 그만하면 알겠어?”(574면)
인터뷰 중반 어느 때에 나는 ‘이향규를 닮은 잡지’라는 말을 생각해냈다. 그는 소수자를 대변하는 열혈자라기보다는 정의를 위한 일에서 작은 보람을 찾고 싶어하는 착한 시민이었는데, 문득 창비의 목적도 거기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만약 그 차이가 소통의 문제라면 창비는 좀더 사람냄새 나는 잡지로 가야 하지 싶다.
이향규 박사가 헤어지면서 “잘 써주세요” 한다. 아무래도 그의 뜻을 좀더 잘 풀어내려면 그가 이메일로 보내준 시 한편을 올려야겠다. 김석형과 대비된 그 시인은, 같은 전쟁의 시대를 산 또다른 장기수 이종(李鍾)이다.
사랑을 아십니까 물어보니/모른다고 시침떼던 당신 침묵은/왜 숨결이 가쁘고 얼굴을 붉히셨소/날 사랑하십니까 편지를 하니/아니라고 잡아떼던 당신 글월은/왜 끝을 못 맺고 찢곤 찢곤 하였소/훗훗이 만나자고 약속은 맺고/안된다고 뿌리치던 당신 발길은/왜 못 가고 되돌아서곤 하였소/부모 말 들으라고 타이르니/그런다고 순종하던 당신 얼굴은/왜 입술을 깨물며 눈물에 젖었었소/생각지 말자고 다짐한 두 맘이/왜 세월도 분간 못하고 꿈 속까지 따라다니오.(이종 「첫사랑」, 『독방』, 일송정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