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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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프레드릭 제임슨 『단일한 근대성』, 창비 2020

전지구적 자본의 시대, 변혁은 가능한가

 

 

윤지관 尹志寬

덕성여대 영문과 명예교수 jkyoon@duk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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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 환경에서 맑스주의적 변혁론의 가능성을 모색해온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의 『단일한 근대성: 현재의 존재론에 관한 에세이』(A Singular Modernity, 황정아 옮김)가 번역 출간되었다. 본격적인 지구화가 대두하던 2002년 출간 당시의 시의성을 생각하면 국내에 다소 늦게 소개된 감도 없지 않지만,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근대성과 탈근대성, 그리고 모더니즘의 문제에 대해 이 책이 제기하는 문제의식과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소련 해체와 더불어 냉전이 종식되고 시장의 전지구적 확산이 이루어지던 1990년대 내내 미국을 비롯한 서구 학계에서 근대성 논의가 확산되고, 국제 정치현실에서도 영국 노동당 토니 블레어 총리의 ‘제3의 길’ 등이 주목을 끌고 있었다.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티의 특성들이 현저한 현실에서 ‘억눌린 것의 귀환’이라고 할 이 근대성 담론의 대두를 일종의 퇴행으로 보면서, 담론으로서의 근대성은 결국 본격화된 지구적 자본주의의 약호라고 규정한다. 시장경제의 지배가 확립되는 것에 발맞추어 근대성 담론이 다시 한번 진보나 발전과 같은 서구중심의 근대화 논리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근대성 담론의 이같은 득세가 세계화된 시장에 대한 옹호로 귀결된다면 제임슨의 ‘단일한 근대성’은 근대성의 진정한 성격이 자본주의체제에 있음을 환기시킴으로써 이러한 추세를 비판한다. 근대성이라는 말 자체가 마치 텅 빈 기표처럼 각종 이데올로기로 포장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은 근대성이 오히려 극복 내지 철폐의 대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아울러 ‘단일한 근대성’이라는 그의 규정은 당시 ‘복수의’ 다양한 근대성들을 내세우며 서구중심의 근대주의에 복속되지 않는 일종의 대안적인 근대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에 대한 경계도 담고 있다. 비서구 지역에서 국지적으로 근대성이 다른 방식으로 구현된다 하더라도 근대성의 핵심으로서의 지구적 자본주의에 대한 논점이 흐려진다면 그 또한 지구화의 이데올로기에 종속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그의 관점은 지구화 이후 서구 학계에서 맑스주의가 담론으로서의 힘을 잃어가고 자본주의 극복의 전망이 흐려지는 추세 속에서 변혁론을 재정초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며 그런 점에서 결을 거스르는 활동이기도 하거니와, 심지어 철 지난 맑스주의 변혁론을 고수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제임슨이 새로운 시대의 성격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티에 주목하고 이를 해석함에 있어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부제에 포함된 ‘현재의 존재론’이라는 용어에서도 드러나듯, 그가 포스트모던이라는 새로운 시대구분을 통해 근대와 단절된 ‘현재’를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탈근대주의자들의 문제의식과 통하는 면도 있다. 그렇지만 그는 포스트모던 현실에 대한 변증법적 해석을 통해 대안적인 미래를 구축하려고 하며, 차이와 다원론을 앞세운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데올로기는 그에게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 된다.

『단일한 근대성』의 이같은 논지가 가장 빛을 발하는 대목은 문학과 예술에서의 모더니즘론이다. 제임슨은 다소 범박하게 만델(E. Mandel)의 시대구분인 자본주의 3단계, 즉 시장자본주의-독점자본주의-다국적자본주의의 구분을 원용하여 그 각각에 대응하는 지배적 문화양식으로 리얼리즘-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을 내세운 바 있다. 이 책에서 그는 모더니즘의 국면에서 다시 본격 모더니즘과 후기 모더니즘(late modernism)을 구분하여 그가 말하는 모더니즘의 진정한 속성을 분명히 밝힌다. 모더니즘은 기본적으로 불완전한 근대성의 산물로 가령 프루스뜨(M. Proust)나 조이스(J. Joyce)와 같은 본격 모더니스트들은 이 과도기의 삶에서 “자신들의 도시적 경험을 넘어선, 근본적으로 다르면서도 그 경험을 완성시켜주고 어쩌면 부분적으로 그 경험을 결정해주는 무언가의 존재를 느낀다”(165면)고 한다. 그것이 진정한 모더니스트들의 작품으로 하여금 현실의 재현과 총체적인 이해라는 끈을 놓치지 않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전후의 후기 모더니즘은 그 기법만을 이어받았을 뿐이며 모더니즘은 이데올로기로 굳어져버렸다는 것이다.

본격 모더니즘의 성취에서 총체성과 재현, 그리고 유토피아에 대한 지향을 읽어내는 제임슨의 관찰은 이 책이 출간되기 거의 30년 전 그가 이미 ‘억눌린 것의 귀환’을 말하면서 불러냈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대립구도를 떠올리게 한다. 제임슨은 1977년 그가 편집한 표현주의 논쟁집 『미학과 정치학』(Aesthetic and Politics)에 붙인 후기에서 “모더니즘의 궁극적인 쇄신, 즉 지금은 자동화된 인식혁명의 미학적 관습들에 대한 최종적인 변증법적 전복은, 바로 리얼리즘이 되지 않을까! 하는 물음”을 던진 바 있다. 이데올로기화한 모더니즘을 혁신할 새로운 정치적 미학을 리얼리즘이 제공할 수 있으리라는 당시 제임슨의 제안은 본격 모더니스트들의 비판적·급진적 충동을 후기 모더니즘의 제도화된 보수주의와 구별한 이 책의 논지와도 이어진다.

모더니즘 작품을 면밀히 읽으면 그 성취가 미적 자율성이라는 모더니즘 이데올로기를 넘어 현실 재현 및 그 변화의 역동과 연계되어 있음이 드러난다는 제임슨의 시각은 우리 평단에서 이루어진 리얼리즘론의 문제의식과도 통한다. 제임슨은 리얼리즘의 성취들을 특정한 맥락에서 떼어내고 읽으면 “그 자체가 모더니즘”이며, 다른 한편 ‘리얼리즘의 혁신이론’ 프리즘으로 보면, “이후의 모든 모더니즘들도 실제로는 부지불식간에 리얼리즘으로 드러날”(143면) 것이라 하는데, 이는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을 단순히 대립시키거나 전자로부터 후자로의 손쉬운 이행을 말하는 관행과는 달리 리얼리즘의 문제의식이 모더니즘 이후에도 관통하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아울러 모더니즘 시대 내내 그리고 그 이후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새롭고 활력 있는 리얼리즘에 관한 이야기”(142면)가 확인되고 있다는 발언도 그렇다.

이 책의 바탕을 이루는 문제의식은 포스트모더니티의 현실 속에서 모더니즘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예술적 실천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의 물음에 있다. 비록 현재는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논리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이 지배적인 시기이지만, 빈부격차를 비롯한 계급문제와 세계체제 내에서 국민국가들 사이의 갈등관계는 더 심화되고 있다. 자본주의적 근대 극복의 전망을 현재 속에서 읽어내고 그 내부에서 변화의 단초들을 정초해내려는 제임슨의 이론적 모색이 지금도 살아 있는 쟁점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윤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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