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 다시 읽고 싶은 책
김흥규 『근대의 특권화를 넘어서』, 창비 2013
주류 담론에 대한 성찰과 쇄신
백지연
白智延 / 문학평론가 cyndi89@naver.com
김흥규의 『근대의 특권화를 넘어서』의 부제는 ‘식민지 근대성론과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이중비판’이다. 서문에서 저자가 밝히다시피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 근현대사와 문학 연구를 주도해온 탈민족주의론과 식민지 근대성론에 대한 비판적 검증에 초점을 두고 있다. 현대문학 연구에서 출발하여 조선 후기의 문학사와 사상사를 연구해온 저자는 먼저 내재적 발전론을 기반으로 한 자신의 학문적 여정을 비평적으로 점검하며 논의를 전개한다. 이 책의 지향이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성론 양자를 모두 넘어서는 데 있다는 것은 부제의 ‘이중비판’에서 또렷이 확인되는 바이다. 탈민족주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대세를 이루고 민족, 민족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학계의 주류 담론으로 부상하는 분위기 속에서 저자가 전개한 근대성 논의는 현재의 문학연구에도 여전히 중요한 논점들을 던진다.
이 책이 제기한 역사적인 쟁점은 여러 방면에서 현재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탈민족주의 담론을 기반으로 한 일부 식민지 근대성론에 관한 날카로운 비판들은 담론의 실천성이라는 측면에서 출간 당시보다 지금 더 첨예해지는 측면이 있다. 당장만 하더라도 ‘일제 강제동원 피해보상 판결 관련 해법’을 둘러싼 어처구니없는 역사왜곡과 정치적 파행이 노골화되는 시점에서 문학연구와 역사인식을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책에서 전개되는 주요 논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3, 4장을 중점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3장 「신라통일 담론은 식민사학의 발명인가」는 근대와 식민성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의 포문을 본격적으로 여는 글이다. 김흥규는 황종연과 윤선태의 논문을 중심으로 『신라의 발견』(김현숙 외 지음, 동국대학교출판부 2008)에 개진된 ‘식민주의 역사학에 의한 신라통일 발명론’을 비판적으로 검증한다. 저자는 ‘신라통일’이라는 관념이 일본 사학자의 논의에서 발원한 것이라는 이들의 주장에 맞서, ‘삼한/삼국통일’ 담론이 7세기 말의 신라에서 형성되어 조선 후기까지 여러차례 재편성과 전위 과정을 거치면서 존속했음을 실증적으로 밝힌다. 이후 전개된 논쟁 당사자들의 반론을 읽더라도 『신라의 발견』에서 펼쳐진 이론적 가설과 식민지 근대성론을 납득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김흥규의 주장대로 이러한 역사적 해석의 오류는 개별 논점을 넘어 근대라는 시공간에서 식민주의 헤게모니를 역사적 운동의 핵심으로 가정하고 있어 문제적이다. 가설의 과잉이라 하더라도 모든 근대는 ‘식민지 근대’, 한국의 근대는 ‘번역된 근대’로 수렴되는 ‘근대적 발명론’의 과잉은 전근대와 근대를 가르는 단절적 인식에 고착되는 결과를 낳는다.
4장 「한국 근대문학 연구와 식민주의」에서는 통일신라 담론의 해석에서 드러난 바 있는 단층(斷層)적 근대성론의 문제점을 확장하여 분석한다. 글에서 중점적인 고찰의 대상이 되는 김철과 황종연의 논의는 ‘식민지=근대’라는 공통전제를 보여준다. 해석의 다양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민족적 자기인식과 표현을 식민성의 계보학과 제국주의의 기획 속에 수렴하여 규정하려는 방법적 과잉은 필연적으로 역사적 사실관계의 핵심을 가리는 문제로 연결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책에서 점검되는 근대문학 연구의 한 경향, 즉 ‘번역된 근대’와 소설/노블의 구도 속에서 식민지 근대현실과 문학작품의 관계를 발신-수신 관계로 평면화하는 해석도 마찬가지다. 한국 근대문학의 성립을 추적하는 다수의 논의에서 서양의 ‘문학’ 개념과 ‘노블’이라는 모델이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번역된 근대’의 개념을 일방향적으로 적용하는 데 있다. “노블이라는 방사체가 세계 각지에 침투 적응하여 장르적 식민화를 달성한다는 ‘노블 제국주의’의 보편성”(156면)에 대한 믿음을 전제하는 해석방식은 발신 중심의 영향관계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문학사 속의 다양한 작품현실을 협소한 시야에 가두기 때문이다.
이렇듯 ‘단층적 근대성론’에 대한 저자의 비판 사례는 식민지적 조건의 압도적 규정력을 강조하는 일부 논의에 집중되는데, 이 지점에서 ‘단층적 근대성론’의 범주를 다시 살펴보게 된다. 저자에게 단층적 근대성론은 “한국의 근대성을 개항/식민지화 이후의 산물로 보고, 그 외래성·단층성을 강조하는”(9면) 관점들을 아우르는 뜻을 지닌다. 그러나 논점의 선명성을 위해서라도 이러한 범주에 묶이는 식민지 근대성론의 다양한 논의들을 세분화하고 변별하여 의의와 한계를 치열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김백영 「‘단층적 근대성론’에 대한 포스트-내발론자의 경종」, 『창작과비평』 2013년 가을호 566~67면 참조). 이는 계보학적 비판의 문제의식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근대적 구성론의 틀을 답습하는 다수 연구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더욱 필요한 작업이다.
제도와 구조의 힘에 우위를 둔 작품해석이 보여주는 단선적 인식은 저자가 지적한 대로 ‘발명’이라는 술어가 작동시키는 특정한 지형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특히 역사와 문학 연구에서 일상문화의 사례들을 중심에 놓는 ‘신역사주의’ 혹은 문화론적 연구의 상당수는 이러한 개념이 ‘발명’되는 지점의 전과 후를 구분하며 단절론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 근대문학 연구의 주류 담론틀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점검은 그동안 문학과 역사의 근대 논의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져온 노블, 연애, 청년, 여성, 과학 등 각종 표상과 개념, 그리고 그에 대한 연구작업들이 결여한 지점들을 돌아보게 한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이러한 특권적 근대서사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행위자들의 귀환’을 강조한다. 문화행위자의 능동성(agency)에 대해 언급하는 이 대목은 개념들의 구성 과정과 더불어 그것의 구성에 작용한 행위자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찰할 것을 제안한다. 문학사 연구 맥락에서는 작품을 읽고 해석하고 가치평가를 하는 능동적인 비평 실천의 과정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문학사의 구조적 인식 못지않게 읽기와 쓰기의 실천적 위치를 고려하는 행위자라는 요소는 사실 문학연구에서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문학비평의 감식안이 작동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더불어 식민지 근대성론의 비판적 점검에 집중한 이 책에서 한층 중요하게 읽히는 지점은 ‘내재적 발전론’의 현재적 의미와 극복 과정에 대한 논의기도 하다. 근대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이행서사를 이해하는 데는 내발론과 외발론, 개화와 척사의 이분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복합적 사고가 필요한바, 이는 단순히 서구중심주의를 벗어나는 과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령 류준필은 김흥규의 논의를 통해 창조적인 고전 읽기와 해석의 필요성을 제안하기도 한다. 내재적 발전론의 이행서사가 초래한 한계로부터 비켜서면서 근대와 식민주의의 특권화에 빠지지 않는 균형을 위해서는 전근대적 과거를 새롭게 읽는 고금(古今)(론)적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류준필 「‘한국문학연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역사와현실』 2013년 12월호 374~75면 참조).
그런 점에서 “근대에 만들어진 가장 문제적인 구성물은 바로 근대라는 관념 자체다”(192면)라는 저자의 전언은 결론이라기보다는 문학사의 주류 담론을 새롭게 성찰하고 쇄신해야 하는 현재의 연구과제로 다가온다. 문학사, 사상사, 예술사를 포함한 한국문화 연구가 근대라는 개념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는 사고모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저자의 강조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연구의 지평을 열기 위한 사유의 담대한 전환일 것이다. 이러한 사유의 전환을 위해서는 우리가 자리한 곳의 역사를 새로운 눈으로 들여다보는 창조적 기획이 필요하다. 이 책이 집중적으로 다루는 한반도 현실이 맞이한 근대의 전환기 역시 개별 국가의 시야에 가두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사의 자본주의 근대라는 시간대 속에서 사유하는 작업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작업은 근대적 현실에 적응하는 동시에 그를 극복하는 이중과제의 무게를 감당하는 작품의 현재성을 문학사 속에서 새롭게 읽는 과정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