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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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벗겨짐’과 ‘뒤집음’

문성해 시집 『자라』, 창비 2005

 

 

김기택 金基澤

시인 needleeye@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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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해(文成海)의 시집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꽃이나 나무, 풀 등 식물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다. 예를 들면 목련은 “창살 박힌 담장에 하얗게 질려있거”나 “봉오리들 아우성치며 위로 위로 도망”치거나(「봄밤」), 도살되어 보신탕으로 끓여지는 개를 꼼짝없이 내려다보거나(「봄날」), “목장갑을 낀 꽃들”이나 “때 전 꽃송이 한 켤레”처럼 인력시장에서 온 일용직 노동자가 되어 “울분으로 피어”나거나(「인력시장」), “집집마다 냄새나고 누런 목련꽃잎들”처럼 풍치를 앓거나(「풍치」), “목련꽃 송이를 컥컥 뱉어내는 아버지의 기침소리”이거나(「목련의 힘」), “하 수상한 시절에 어김없이 사라져간”꽃들(「여름목련」)로 나타난다.

순수하고 청순한 이미지를 가진 꽃에 왜 그는 이처럼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여할까? “엉큼한 달빛이 꽃잎 벌리려 애쓴다”(「봄밤」)나 “봄만 되면 어김없이 사타구니를 벌리는 꽃들에게선 이제 매독 내가 나”(「나비야, 청산 가자」), “혹부리 같은 꽃대”를 아이처럼 들쳐업고 있다(「同心」) 등의 표현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꽃은 나무나 풀의 성기이며 벌과 나비의 매개를 통해 열매를 맺는 자궁이다. 이것은 곧 성관계를 통해 아이를 낳는 여성의 몸을 환기시킨다. 따라서 식물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여성의 몸으로 살아야 하는 삶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암시한다. 꽃이나 나무, 풀 등은 현실 삶의 폭력 앞에 나약하고 수동적인 모습으로 노출된 여성의 몸에 대한 객관적 상관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를 들쳐업은 듯한 혹부리 같은 꽃대는 “물혹처럼 매달린/시퍼런 열매들”(「이화식당」)로 변주되고, 사타구니를 벌리는 꽃들은 “견고한 비닐하우스 아방궁 속에서” “매일 핵폭발하듯”재배되다가 “수만 톤”씩 “학살”되어 “쓰레기 더미에 저리도 비참하게 말라비틀어진 꽃들”(「외곽의 힘2」)과 같이 사회적으로 확대되며, 병든 목련들은 “죽은 자의 수의를 걸쳐 입은” “온몸이 붕대로 친친 감긴” “미라”(「자작나무」)와 같이 죽음의 이미지로 심화된다.

식물에 나타난 문성해의 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여성의 몸에 직접 닿을 때 더욱 민감해지며 더 강렬한 시적 에너지를 발산한다. 「아랫도리」에서 산모, 임종하는 할머니, 육체적인 사랑을 하는 시적 자아는 작고 나약한 신생아처럼 아랫도리를 “벗어야 한다”. 이것은 여성의 몸이 삶의 “실전에 돌입할 때”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다. 아랫도리를 벗어야 하는 수치 앞에서 그들은 “한없이 곱상해지고 슬퍼지고 부끄러워지고 촉촉해”질 수밖에 없다. 「수건 한 장」에서는 신생아의 상반된 태도를 통해 옷의 벗겨짐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흥미있게 보여준다. 수건 한 장으로 덮여 있을 때 아기는 따뜻하고 안전하지만 벗겨냈을 때는 “천둥소리를 지르며”깨어 운다. 특히 이 시는 옷 대신 너무나 쉽게 벗겨질 수 있는 수건을 소도구로 사용함으로써 벗겨짐에 대한 아슬아슬한 불안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자라」에는 불구의 몸을 가리려 애쓰는 꼽추가 등장한다. 그녀는 지하철역 앞 토큰 판매소를 “등껍질처럼 둘러”쓰고 “하얀 손”만 드러내며 노출의 위협에 완강하게 버틴다. 지하철 역사에 불이 나는 극한 상황이 되어 “어서 고개를 내밀라 내밀라고,/사방에서 뿜어대는 소방차의 물줄기”가 벗음을 강요하는 데 이르러서야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서럽도록 희게 빛나는” “자라다 만 목덜미”를 노출시킨다. 그 희게 빛나는 목덜미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여성의 몸과 꼽추라는 흉측한 불구를 대조시켜 여성으로서의 수치감을 배가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문성해의 시가 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여성적인 몸에 대한 남성적 힘의 폭력성이나 여성의 몸의 나약함, 수동성, 수치감에 있지 않다. 그의 시선은 여성적인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과 맞닿은 근원적인 슬픔, 그 속에 감춰진 “살아가는 진액”이나 “사람의 뿌리”(「아랫도리」)에 더 밀착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삶의 비극성에 대한 시적 대응이 나타나지 않을 리 없다. 그것은 부정적인 현실 뒤집어보기이다.

「굴을 보는 방법」은 그런 전략적 태도를 보여준다. 이 시에서 그는 굴을 자루처럼 뒤집어서 “묵은 먼지와 퀴퀴한 냄새/ ‘철수는 영희와 sex했다’라는 붉은 낙서와 누런 신문지 조각들”이 있는 어두운 현실을 세상으로 쏟아내고, 그 속을 “태양과 바람과 공기의 지복을 누리던 산과 나무들”같은 밝고 긍정적인 것으로 채운다. 그곳은 “언젠가 사라졌다던 영산(靈山)과 짐승들”이 있고, “열대우림이 펼쳐진 사이로 익룡도 천천히 날고”있는 곳이다. 「틀니」에서 화자는 웃지 않는 어머니를 불안해한다. 어머니의 틀니는 입밖으로 나와 물 담긴 사기그릇 속에 있을 때는 흠뻑 웃지만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그 웃음을 “턱 안에서 굳게”가두어버린다. 틀니의 웃음은 턱에서 빠져나온 상황, 즉 안과 밖이 뒤집어진 상황에서만 나온다. 「활엽수림 영화관」에서 영화관 옥상에 있는 “뿌리를 비좁은 화분 속에 쑤셔박은 나무들”은 화분의 좁은 공간을 넘어 ‘옥상 밑에 있는 오래된 상영관’의 화면에 비가 되어 뿌리를 내리고, 씨멘트를 뚫고 내려와 영화 속 세계를 누빈다. 즉 화분을 벗어나 무한공간으로 뿌리를 뻗는 것이다. 심지어 그 뿌리는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 흰자위”에까지 뻗어 있다.

뒤집어보는 행위는 벗겨짐을 역전시킨 동작이기에 흥미롭다. ‘벗겨짐’의 수동성을 ‘뒤집음’의 능동성으로 전환한 것이기에 통쾌하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 뒤집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의 뒤집어보기는 ‘뒤집어’보다 ‘보기’에 무게가 더 실려 있다. 안과 밖이 뒤집어지는 굴은 “~할 것이다”라는 문장 속에서 뒤집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틀니만 끼우면 턱에서 굳어지는 웃음을 뒤집어 어머니 턱 안에서 웃음을 완성시켜드리는 일은 소망에 머물러 있으며, 비좁은 화분을 뒤집어 우주로 뻗어가려는 뿌리에는 “~일까”라는 의문형 종결어미가 매달려 있다.

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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