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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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 대전환의 한국사회,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대전환과 자본주의

맑스와 월러스틴을 다시 봄

 

 

유재건 柳在建

부산대 명예교수. 공저서 『백년의 변혁』, 공역서 『고대에서 봉건제로의 이행』 『근대세계체제』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등이 있음.

jkyoo@pusan.ac.kr

 

 

1.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특히 기후위기에 대한 실감과 더불어 자본주의체제의 위기와 종말을 주장하는 논의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1 하지만 자본주의가 지속 가능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점점 굳어지면서도, 그 종말 혹은 극복을 운위하는 것이 다소 공허한 거대담론으로 들리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자본주의체제가 종말을 맞이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그리고 이후의 사회체제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가 어려워서일 것이다. 특정 사회체제가 종언을 고한다고 할 때 그 체제의 본질적인 특징들이 사라진다는 뜻일 터인데, 그렇다면 자본주의체제는 과연 무엇인가? 일반 대중의 인식에서 자본주의라면 하나의 체제로서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제, 혹은 임노동제 같은 것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런 특징들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가까운 미래에 온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런 세상이 바람직한 건지 의심스럽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몰락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억압적인 모습은 자본주의가 아무리 폐단이 많은 체제라 하더라도 최소한 그런 체제보다는 낫겠다는 관념을 강화시켜준 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역사에서 자본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하는 문제는 그 자체가 실천적인 함축을 갖는다. 일찍이 사회주의 국가들이 건재하던 1970년대에 역사가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역사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일반적 통념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의식하고 그것을 재정의하고자 했다. 자본주의란 것은 역사에서 늘 존재해온 시장경제와는 다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그는 “해방과 개방 그리고 다른 세계로의 접근”2을 뜻하는 시장의 세계와 거대한 독점세력이 판치는 근대의 반(反)시장적 자본주의를 구별하고, 후자가 전자 위에 얹혀 동행해온 근대의 경험 때문에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착각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그간 축적된 역사학의 연구성과는 전근대 유럽이나 비유럽을 막론하고 그 중심지역들에 근대 자본주의의 특징으로 간주되는 활력적인 시장경제, 상품생산과 임노동, 자본축적과 자본가까지 다 존재했다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 극복을 모색하더라도 실제로 오래전부터 있던 것, 그래서 미래에도 있을 법한 것을 없애겠다고 나선다면 대중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실천적인 힘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거기서 자본주의의 상이 잘못 설정되면 아무래도 극복 방향을 잘못 잡거나 알게 모르게 체념하게 되어 극복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에 대한 브로델의 관점을 공유하는 월러스틴이 자본주의에 대한 통념이 야기하는 해로운 결과들에 대해 경고하는 것도 그런 뜻일 것이다.

 

자본주의가 단순히 시장경제에서의 임노동 같은 것이라는 생각은 많은 자유주의자들과 맑스주의자들의 오래된 이데올로기적 착각이다. 그런 생각이 어느 편에서든 20세기의 기본적인 신념이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착각의 해로운 결과들을 상대하고 있다. 시장과 임노동은 자본주의보다 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으며, 시장을 통한 사회적 조정은 필시 자본주의보다 더 오래도록 존속할 것이다.3

 

그간 맑스주의가 노동력의 상품화, 즉 임노동을 역사에서 근대 자본주의의 특징적인 차이점으로 간주해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맑스도 유명한 『자본론』 1권의 ‘본원적 축적’ 장에서 자본주의 발생사를 임노동계급의 형성사로 그려낸 바 있다. 그것은 한편으론 사회적 생산수단을 자본으로 전화시키고, 다른 한편으론 “민중을 근대사의 훌륭한 작품인 임노동자, 즉 자유로운 노동빈민으로 전화시키는”4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와 월러스틴의 관점은 얼핏 대립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맑스(K. Marx, 1818~83)와 월러스틴(I. Wallerstein, 1930~2019)은 100여년의 시차를 두고 각기 자본주의를 천착하면서 자본주의의 탄생과 소멸의 역사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실천적 관심을 기울인 인물이다. 두 사람은 각기 자기 시대의 자본주의가 그 자체의 작동원리에 따라 소멸할 수밖에 없음을 주장하면서 문명의 대전환을 꿈꾸었던 점에서 일치한다. 다만 월러스틴은 그것이 역사적 체제이기에 소멸만 확실할 뿐 그다음에 무엇이 올지는 그 과정의 혼돈의 분기점에서 인간의 집단적 실천에 달렸음을 강조한다. 어쩌면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은 자본주의의 종언을 먼저 예측했던 맑스가 실패한 바로 그 자리에서 왜 실패했는지, 자본주의의 지속적 생명력의 원인은 무엇인지 탐구하는 가운데 태동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제시하는 근대 역사 서사가 고전적 맑스주의자들의 그것과 다른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5

이 글은 자본주의의 탄생과 소멸에 관한 두 사람의 생각을 큰 틀에서 돌아봄으로써 현재 지구적 현실로서의 자본주의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월러스틴도 본원적 축적론을 맑스의 사상에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 술회하기도 했는데, 일단 자본주의 탄생에 대한 두 사람의 비슷한 문제의식과 결정적 차이를 보는 것이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된다.6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이 각기 그 소멸의 대전환을 어찌 상상하고 모색하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2. 자본주의의 탄생

 

『자본론』의 ‘본원적 축적’ 장은 맑스가 자본주의의 탄생과정을 300여년에 걸친 처절하고 야만적인 민중수탈사로 생생하게 기록한 역사 이야기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 장은 자본주의 탄생과 그 소멸이라는 두번의 체제 대전환을 함께 시야에 담고 있다. 다만 그 탄생은 역사 이야기를 통해서, 미래의 소멸은 간략한 변증법적 논리 전개방식을 통해서 개진된다. 거기서 결론은 자본주의 탄생과정이 미래의 소멸과정에 비해 “비교도 되지 않으리만큼 지루하고도 가혹하며 어려운 과정”(791면)이고 그것은 소수가 다수 민중을 수탈했던 과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맑스가 그려낸 역사상은 한편으론 당시 부르주아 역사가들이 묘사한 역사상, 즉 임노동자층 형성사를 생산자가 농노적 예속과 길드적 강제에서 해방되는 것으로만 묘사하는 일방적인 역사상에 대한 반박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는 당대 사료를 통해 자본주의 시대가 출현한 곳은 이미 오래전에 농노제가 사실상 폐지되어서 주민들 대다수가 자유로운 자영농민층이었던 곳이고, 이들이 비록 소유권은 봉건적인 간판에 의해 은폐되어 있긴 했지만 사실상의 토지 소유자들이었음을 밝히고 있다(741~46면).7 그래서 맑스는 그것이 전형적인 형태를 띠고 나타나는 영국을 사례로 들면서, 농민들로부터의 토지 수탈, 공유지 약탈을 비롯해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 온갖 폭력적인 수탈과정을 증언한다. 특히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의 압살과 노예화, 동인도 정복과 약탈, 아프리카 흑인사냥 등 온갖 식민주의적 폭력들이 본원적 축적의 계기가 되었으니, 그는 15세기 말에서 18세기 말까지 벌어진 이 과정을 자본주의가 제 발로 서기 위한 기초를 쌓는 일로 보았다.

여기서 우선 주목을 끄는 것은 수탈 대상이 직접생산자들, 즉 자영농민들이고 사실상 토지의 사적 소유자였다는 것, 그래서 자본주의의 출현이 자연스럽다기보다 진보적 추세가 역전되는 과정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맑스는 너무 심각했던 “15세기와 16세기 사이의 간극”에 대해 영국 경제학자 손톤(W. T. Thornton)이라는 인물의 말을 빌려 “영국의 노동자계급은 어떤 과도기도 거치지 않고 황금의 시대에서 철의 시대로 단번에 퇴락했다”고 표현했다(746면). 그리하여 자기 땅을 경작하던 자영농 민중이 피고용자로 전화되면서 예속상태에 들어가고 그 민중의 노동수단은 자본으로 전화되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자본주의는 바로 자영농의 수탈 위에서 출현한 것이다.

 

정치경제학은 원리상 전혀 다른 두가지 사적 소유를 혼동하고 있다. 하나는 생산자 자신의 노동에 기초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 노동의 착취(Ausbeutung)에 기초한 것이다. 후자는 전자의 정반대일 뿐 아니라 오직 전자의 무덤 위에서만 성장한다는 것을 정치경제학은 잊고 있다.(792면)

 

본원적 축적이란 바로 이 수탈과정을 통해 “각기 독립적으로 노동하는 개인과 그 노동조건의 융합(Verwachsung)에 기초한 사적 소유”(790면)가 임노동 착취에 기초한 자본주의적 소유에 의해 축출된 것이다. 맑스의 공산주의 사상은 물론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제 폐지를 주창하지만, 그것은 타인 노동의 착취에 기초한 자본의 폐지를 뜻하는 것이다. 하지만 독립적으로 노동하는 생산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경우에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맑스의 생각은 맹자의 항산항심(恒産恒心)론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노동자가 자기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것은 소경영의 기초이며, 소경영은 사회적 생산과 노동자 자신의 자유로운 개성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789면)8

 

그런데 월러스틴 역시 15세기 말 이후의 사태를 봉건제가 붕괴하면서 토지제도가 한층 평등한 체제로 나아가던 추세가 갑자기 반전된 것으로 파악해 맑스와 비슷한 인식을 보여준다. 다만 그는 이것이 위기에 몰린 귀족계급이 필사적으로 반격해 승리한 것으로, 혹은 지주 귀족계급이 스스로 부르주아지로 변신함으로써 소농 대중과 세계의 주변지역 민중에 대한 착취와 지배를 지속시킨 과정으로 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장기의 16세기’(대략 1450~1650년)에 마무리되었기에 그 이후에는 부르주아지로 변신한 귀족이 있을 뿐 근대사에서 귀족 대 부르주아지의 대립은 없다는 것이다.

 

1650년에 이르기까지 생존력을 지닌 한 사회체제로서 역사적 자본주의는 그 기본구조를 확립하고 또 굳건히 하였다. 보수의 평등화를 향한 추세는 정반대 방향으로 바뀌었다. 상부계층은 정치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나 다시 한번 확고히 통제력을 장악했다.9

 

월러스틴이 제시하는 이러한 역사 서사는 프랑스 대혁명을 부르주아지가 귀족의 구체제를 타도한 부르주아 혁명이라 보았던 맑스의 견해와는 대립된다. 그간 여러차례 있었던 맑스주의 이행 논쟁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맑스는 실제로 근대 자본주의 발생의 시기와 성격에 관해 여러모로 흐릿하고 불분명한 구석을 남겼다. ‘본원적 축적’ 장에서 그는 자본주의 시대가 16세기부터 시작된다고 했지만 저작 곳곳에서 18세기 말 산업혁명기, 즉 대공업시대와 산업프롤레타리아의 등장을 중대 전환점으로 보는 시각을 보여주기도 했다. 실제로 『공산당선언』에서 묘사한 자본주의 시대의 혁명적 성격이 바로 대공업 시대의 산물로서, “이전의 모든 생산양식의 기술적 기초는 본질적으로 보수적인 것인 데 반해 근대 공업의 기술적 기초는 혁명적”(510~11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맑스주의자들, 잘 알려진 홉스봄(E. J. Hobsbawm)이나 앤더슨(P. Anderson), 발리바르(É. Balibar) 등이 대전환의 시점을 18세기 말에서 보는 것 역시 맑스를 근거로 한 것이다.10

이 점에서 홉스봄의 근대사 4부작이 전형적인데, 그는 ‘혁명의 시대’에 이어 ‘자본의 시대’, 그리고 ‘제국의 시대’를 위치짓는다. 홉스봄의 논의에서는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이라는 소위 이중혁명을 통해 유럽의 낡은 체제가 무너지면서 자본의 시대가 열린 것으로 상정되는데, 지금껏 맑스주의와 자유주의 양자는 이런 근대사 인식틀을 공유해왔다. 하지만 월러스틴은 자본의 본원적 축적, 식민주의(제국주의), 그리고 지구화 모두 16세기 자본주의 세계경제 형성 때부터 지금껏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세가지는 주기적으로 두드러진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가 있을 뿐 자본주의 500년사의 고유한 특징들이라는 것이다.

맑스와 월러스틴은 인류사에서 자본주의 출현이라는 사태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전혀 다른 입장에 서 있다. 월러스틴은 그것이 인류사의 결정적인 퇴보라고 보는데, 도덕적으로도 또 생태계 파괴 면에서도 그렇지만, 80% 정도의 세계 민중에게는 삶의 질과 소득에서도 더 나아진 것이 없다고 본다. 비교적 평등한 소농들의 체제로 나아가던 역사가 역전되었다는 것, 그 이후의 엄청난 물질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계급적·지리적 위계화와 양극화가 한층 심각하게 전개되었기에 이것은 인류 다수에게 진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유럽이 자본주의체제의 출현으로 다른 모든 문명들이 현명하게 피했던 불합리한 모험의 길로 들어갔다고 주장한다.11 하지만 맑스는 자영 소생산자 사회의 지속 가능성에 회의를 보였다. 그런 분산된 소경영 양식은 생산자의 자유로운 개성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긴 하지만 단지 협소한 테두리에서만 조화로운 사회를 구성하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분업과 협업을 배제하고 자연에 대한 사회적 규제, 그리고 사회적 생산력의 자유로운 발전과 사회적 관계의 풍요로움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대로 유지되기는 어렵고 언제든 터질 일, 어느정도 수준에 이르면 자신을 파괴할 물질적 수단을 창출해서 “사회의 태내에서 이 소경영 생산양식을 질곡으로 느끼는 힘과 열정이 움직이기 시작”(789면)하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탄생에 대해서 그것이 아무리 끔찍스러웠어도 그다음 인류사의 대전환을 위해 어차피 언제고 일어날 일이었다는 19세기 중엽의 맑스와,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이고 그래서 지금껏 80% 넘는 세계 민중에게 고통을 주었던 퇴보의 길이었다는 20세기 말의 월러스틴, 과연 누가 옳을지? 그것은 자본주의 소멸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과 함께 살펴봐야 할 것이다.

 

 

 

3. 맑스와 자본주의의 종말

 

자본주의의 탄생보다 소멸이 훨씬 수월하리라는 것은 발전한 자본주의체제의 작동 자체에 소멸의 계기가 잠재해 있다는 생각일 것이다. 맑스에 의하면, 자본으로 전화한 생산수단이 소수의 손에 독점되어 있다 하더라도 자본주의체제는 이미 노동자들에 의해서 공동점유된 상태, 그리고 사실상 사회적 생산경영에 기초를 두고 있다. 따라서 그 자본이 노동자 개인들에게 낯설고 억압적인 점을 빼면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에 미래 사회의 두드러진 특징들이 이미 다 있다는 것이다. 가령 “노동의 사회화의 가속화, 토지 및 생산수단의 사회적으로 이용되는 생산수단으로의 전화” “갈수록 대규모화하는 노동과정의 협업적 형태, 과학의 의식적·기술적 응용, 토지의 계획적 이용, 노동수단의 공동적 사용으로의 전화, 결합적·사회적 노동을 생산수단으로 사용함에 따른 모든 생산수단의 절약”(790면) 등등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인 것이다.

따라서 맑스는 다가올 체제의 대전환을 가리켜 자본주의 시대의 성과인 토지 및 생산수단의 공동점유와 사회적 협업을 기초로 하여 “개인적 소유를 재건”(791면)하는 과정으로 표현했다. 그것은 과거 전근대사회에서 자영농이 누렸던 자유로운 개성의 발전을 이제 진전된 생산수단의 집중화와 공동점유에서 차원 높게 재생시킨다는 발상이라 할 수 있다. 그 발상은 생산수단이 더이상 노동자를 예속시키는 낯선 사물적 힘이기를 그치면서 가능해진 노동자와 노동조건의 새로운 차원의 융합을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으로 상상하는 것이었다.12 이것은 인간이 생산수단 및 생산물과 맺는 관계와 방식이 바뀌게 되면 사물화와 낯선 소외는 사라지고 친숙함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다. 다만 동시대의 사회들 전체를 합해도 토지의 소유자가 될 수 없다는 맑스의 생각은 이를 커먼즈(공동영역)로 관리하고 참여한다는 발상으로 보인다.

 

더 높은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토지에 대한 개인의 사적 소유는 한 인간의 다른 인간에 대한 사적 소유만큼이나 전적으로 황당무계한 것으로 보인다. 한 사회 전체나 한 나라, 또는 동시대의 모든 사회를 합친다 해서 이것들이 토지의 소유주는 아니다. 이것들은 토지의 점유자이자 그것의 수익자에 지나지 않으며, 스스로 선량한 가장으로서 후손들에게 그 토지를 더 개량된 상태로 물려주어야 한다.13

 

다른 한편, 맑스가 체제의 대전환을 개인적 소유의 재건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의 독특한 자본주의관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상품관계의 전면화로 인해 개인적 관계들이 사물을 매개로 한 관계로 변형되었고, 근대 이전 사회의 인신적 지배와 신분적·정치적 억압은 추상적이고 사물적인 억압의 형태로 바뀌었다는 인식이다. 전근대사회의 신분이란 것은 개성으로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성질인 반면 화폐와 자본은 추상성과 보편성, 사물성을 속속들이 구현하는 매개이다. 근대사회는 사물이든 인간노동이든 그 개성이 화폐와 자본에 의해 양적으로 규정되는 최초의 사회이고 다양한 구체적인 개별 노동들은 추상적 인간노동이라는 공통지표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주나 농노에서처럼 어떤 규정들이 개인들에 각인된 형태가 아니라 추상적이고 사물적인, 즉 근대성으로서의 계급관계가 작동하게 되고, 사회적 지배는 직접적인 인신 지배가 아니라 추상적·객관적 사회구조들의 기능이 되었다. 따라서 개인적 소유란 자본주의의 특징적인 소유형태, 추상적이고 객관적인 억압형태인 ‘계급적 소유’(Klasseneigentum)와 대립되는 것이다. 젊은 시절인 1840년대에 맑스는 이를 ‘사물적 소유’(sachliches Eigentum)라고 일컫기도 했다.14

맑스가 1840년대에 동시대 평등주의적인 공산주의를 도그마라고 비판한 것도 자본주의관이 잘못되어 있다보니 극복되어야 할 과제설정도 잘못되어 있다는 뜻이었다.15 그 발상이 이미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객관적·사물적 지배에 익숙해 있다보니 다음 공산주의의 목표도 현실의 주어진 객관적 지배와 예속상태를 보편화하는 방식으로 설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유의 주체가 개인이냐 사회냐의 발상법에 머물러 이미 사회와 공동체가 자본이라는 낯선 힘으로 개인들 위에서 지배하고 있는데도 이 낯선 힘을 개인들의 관계의 힘으로 다시 회복하는 과제 대신에 거꾸로 개인들에 대한 사회와 공동체의 우위를 목표로 상정한다는 것이다. 결국 자본주의의 극복은 발전된 생산력을 둘러싼 개인들의 관계가 지배예속이냐 자유냐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다. 맑스는 사회는 개인들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개인들이 서로 상호관련되어 맺는 연관들, 관계들의 총화를 표현한다고 말할 정도로 그 복합적 관계를 강조한 인물이다. 이는 개인 대 사회라는 문제설정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관계에서의 차이의 생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공산주의를 근대의 특정한(사물적이고 억압적인) 계급관계를 다른 특정한(자유로운 개별성이 발현되는 친숙한) 관계로 변혁시키는 과정으로 이해한 것이다.

맑스가 미래 사회의 목표로서 일생 동안 평등이라는 구호를 내걸지 않았음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고타강령 비판』에서 그 강령이 ‘모든 사회적·정치적 불평등의 제거’라고 제시한 목표에 대해서도 그런 “막연한 문구 대신에 계급차별의 폐지와 더불어 거기서 비롯되는 온갖 사회적·정치적 불평등이 저절로 사라진다고 했어야만 했다”16고 비판한 바 있다. 엥겔스가 “계급폐지를 넘어서는 그 어떤 평등에 대한 요구도 필연적으로 불합리에 이르게”17 되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평등의 왕국으로 연상하지 말자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맑스 사상에서 소외 극복이라는 주제에 잠재된 유토피아주의에 경계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령 지젝(S. Žižek)에 의하면 자본주의를 넘어설 때 소외 없이 사회가 투명해질 것이라는 맑스의 생각은 아무래도 형이상학적 차원에 머물러 있기에 이런 기본 모델은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18 하지만 소외의 극복을 사회가 투명해진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아무리 사물화와 억압이 있는 사회 안에서라도 사람들이 자연과 사회적 관계에서 경험하는 친숙함이라는 것이 있고 맑스 자신은 그런 경험을 개별성의 실현, 혹은 유물론적 의미의 자유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19 그가 유물론적 의미의 자유 개념을 대상세계에서의 개별성의 실현으로 이해한 것은 헤겔이 자유 개념을 대상세계에서의 정신의 실현, 즉 과학과 계몽으로 이해한 것에 대한 맞대결일 터인데, 그것은 지식 이전의 감성적 체험에서의 친숙함 내지는 생명력있는 관계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는 다른 한편 화폐나 지대, 이윤 등의 사회적 관계가 “사물의 개별성까지 소외시켜”20 토지나 기계의 고유한 본성을 침해한다는, 한층 형이상학적으로 보이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확실히 맑스의 사상에는 인간과 사물에 대한 새로운 사유방식이 있으며, 그는 자본주의가 마련한 엄청난 생산력을 토대로 인간과 사물이 그것답게 존재하면서 충만한 개성을 발현시키는 것이 가능하리라 전망했다. 이 점에서는 하이데거가 맑스는 소외를 경험하면서 역사의 본질적 차원에 도달했고 존재(Sein)의 역사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 그런 뜻이 아닐까 싶다.

 

맑스는 소외를 경험하면서 역사의 본질적 차원에 도달했기 때문에 맑스주의 역사관은 다른 모든 역사학보다 탁월합니다. 그러나 후썰도,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싸르뜨르도 존재(Sein)의 역사적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현상학도 실존주의도 맑스주의와 생산적인 대화를 비로소 가능하게 하는 그런 차원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21

 

여기서 무엇보다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맑스에게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역사상 이런저런 사회유형 가운데 하나인 예사로운 사회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본주의는 개인들의 실천적 힘이 만들어낸 엄청난 생산력 발전과 끝없는 변혁을 자기 생존조건으로 하는 인류사 최초의 체제이고 만약 이 생산력을 개인들이 자기화(Aneignung)하지 못하면, 즉 그 생산력의 사회적 존재방식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그 사물적 힘에 의해 철저히 예속되어 개별성의 상실이 깊어지는 사회이다. 이러한 맑스의 문제의식은 요즈음 종종 논의되는 우리 전통의 후천개벽(後天開闢) 사상, 즉 물질개벽에 걸맞은 정신개벽이 절실하다는 원불교 소태산의 사상과도 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백낙청은 이를 물질의 세력이 확장되는 가운데 인간의 정신이 쇠약해져 문명의 노예로 변하는 자본주의 시대의 상황을 정신개벽을 통해 넘어서자는 주장으로 이해하면서 맑스의 주장과의 상통성을 강조하고 있다.22

맑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공업이 야기하는 부정적인 측면과 억압적인 기제가 “노동자계급이 불가피하게 정치권력을 장악할 경우”(512면) 새로운 문명을 위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았다. 가령 자본주의체제 안에서 전통적 가족제도의 붕괴가 아무리 무섭고 혐오스럽게 보일지라도, 대공업은 가정 영역 밖에 있는 사회적으로 조직된 생산과정에서 여성과 남녀 아동들에게 중요한 임무를 부여함으로써 가족과 남녀관계의 더 높은 형태를 위한 새로운 경제적 토대를 창조하고 있다는 것이다(514면). 또한 그는 자본주의적 농업의 기술적 진보가 노동자를 착취할 뿐 아니라 토양까지 약탈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비판하지만, “자본주의적 생산은 그러한 물질대사의 단지 자연발생적으로 조성된 환경을 파괴함으로써 물질대사가 사회적 생산의 규제적인 법칙으로, 그리고 인류의 온전한 발전에 적합한 형태로 체계적으로 재건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528면)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는 프롤레타리아혁명에 대한 맑스의 낙관적 전망을 잘 보여준다. 그는 자본이 집중 독점되어 노동자들의 빈곤과 예속·착취 정도는 증대되는 반면 자본주의적 생산과정 자체의 메커니즘을 통해 훈련되고 조직되는 노동자계급의 저항 또한 커져간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맑스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폐지 요구가 실현되는 혁명의 발생 자체를 혁명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 예상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1881년 2월의 한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789년 이전의 프랑스 부르주아지의 일반적 요구들은, 다소의 차이는 있겠지만 오늘날 프롤레타리아의 1차적인 직접적 요구가 자본주의적 생산이 이루어지는 모든 국가에서 거의 한결같은 것이나 마찬가지로 대개는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네. 그러나 프랑스 부르주아지의 요구가 달성된 방식에 관해 18세기의 어떤 프랑스인이 사전에, 선험적으로 짐작이라도 했겠는가? (…) 매일 우리 눈앞에서 전개되는 지배적 사회질서의 불가피한 해체에 관한 과학적 통찰, 낡은 권력의 망령들에 의해 고통받는 대중들의 나날이 더 북받치는 감정, 그와 동시에 엄청난 속도로 이루어지는 생산수단의 발전, 이것들로 미루어 진정한 프롤레타리아혁명 발발의 계기가 분명 주어질 것이고 그와 더불어 그 혁명의 (틀림없이 목가적이지는 않을) 직접적인 다음 행동방식의 조건들도 틀림없이 생길 것이라 볼 수 있을 걸세.23

 

 

4. 월러스틴과 이행의 시대

 

하지만 자본주의체제의 문명사적 대전환을 꿈꾼 맑스는 일단 실패했고 월러스틴은 그가 실패한 자리에서 자본주의의 생명력의 원인을 탐색하는 가운데 세계체제론의 시각을 제시했다. 그는 무엇보다 잉여착취를 통한 자본축적이 세계적 차원의 복합적인 사회적 관계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양상에 주목했고, 자본축적을 위해서는 임노동이 아닌 비자유노동을 확보하는 지리적 팽창, 국가권력, 그리고 독점이 필수적 조건이라고 보았다. 오히려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은 끝없는 자본축적의 치명적인 적이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 그는 자본주의라는 경제조직 형태가 이제까지 번영해올 수 있었던 비결 가운데 하나를 바로 그 세계경제 영역 안에 단일한 정치체제가 아니라 복수의 정치체제들이 있다는 점에서 찾았다. 자본주의는 경제적 요소들이 어느 한 정치체에 의해서 완전히 통제되는 범위보다 더 넓은 영역에서 작동하기에 자본가들에게 구조적으로 더 큰 자유를 부여한다는 것이다.24

이는 곧 자본주의를 개별 국가보다 훨씬 넓은 지리적 공간에 존재하는 세계체제로 이해하지 않고는 그 끈질긴 생명력과 부단한 팽창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세계체제적 성격은 일찍이 맑스 역시 날카롭게 의식하고 있었다. “‘오늘날 국민국가라는 틀’, 가령 독일제국이라는 틀 자체는 경제적으로 세계시장의 ‘틀 속에’, 정치적으로는 열국체제(Staatensystem)의 ‘틀 속에’ 있다”25는 맑스의 진술은 그 적확한 예이다. 맑스가 임노동제가 아닌 아메리카 노예제를 자본주의 작동의 구조적인 일부로 인식한 것도 사실인데, 다만 그는 아메리카의 플랜테이션 소유주들을 자본가로 규정하면서도 그것을 “자유노동에 토대를 둔 세계시장 안에서의 변칙형태”26로 보았다. 그래서, 세계시장을 자본축적의 장으로 보고 여러 형태의 착취양식이 결합된 작동방식에 주목한 월러스틴과 달리 맑스는 아메리카 노예제를 유럽의 임노동제의 디딤돌로 인식하는 데 그쳤다(787면 참조). 반면에 월러스틴의 관점은 이것을 변칙형태가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정상적이고 구조적인 일부로 파악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자본주의는 자유 시장경제나 임노동제 같은 특징들로 환원될 수 없는 거대한 역사적 체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월러스틴은 만물의 궁극적인 상품화를 통한 자본의 끝없는 축적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사실 외에 자본주의는 구체적 역사를 통해 전개되는 양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복합적인 사회적 관계에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인종과 성의 차별주의, 그리고 비자유노동과 결합된 형태가 늘 구조적 조건이 된다. 그렇다면 자본의 끝없는 축적에 우선성을 두고 작동하는 체제라는 개념 정의는 임노동제를 중시한 맑스의 자본주의 개념과 대립된 것일까? 월러스틴은 맑스에 관한 한 그렇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맑스가 생산과정에서의 자본-임노동 관계를 중시한 것은 맞지만 한편으론 임노동 없는 잉여가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다른 한편 끊임없이 자기확장하는 자본의 고유한 충동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끝없이 자기확대하는 자본에 의한 지배와 착취라는 양상은 맑스와 월러스틴의 자본주의관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27

특히 ‘끝없는’에 방점이 찍힌 이 최소한의 정의에서는 체제의 비합리성과 지속 불가능성이 도드라져 보인다. 확실히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전에 없던 새로운 국면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은 별 식견이 없는 사람의 눈에도 확실해 보인다. 자본주의 세계경제 안으로 통합할 비자본주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노동 인건비의 장기적 상승을 가져올 수밖에 없고, 여기에 비용을 외부로 돌리는 데서 오는 생태계 파괴도 한계상황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탄생과 종말이 있는 역사적 체제이기에 다른 체제로 대체될 수밖에 없는데, 생산비용의 장기적 상승으로 오늘날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 월러스틴의 진단이다. 그는 오늘날 자본주의체제가 민중과 자본가 계급 모두에게 부담이 되기에 21세기 중반경에 종언을 고할 것이라 예측한다.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는 아니면서도 사회적 위계제와 양극화를 온존시키는 체제로 갈 것인가, 한층 민주적이고 평등한 대안적 체제로 갈 것인가의 분기점에 서 있다는 것이다. 그가 상상하는 자본주의의 종말은 대재앙이나 최후심판의 날 같은 것은 아니다. 과거에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성립이 하나의 이행과정이었던 것처럼 미래의 다른 체제로의 이행 역시 기나긴 과정이 될 것인데, 그 과정에서 인간의 집단적 실천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선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시장을 통한 사회적 조정, 혹은 시장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끝없는 자본축적의 우선성을 약화시켜 제거해가는 과제이다. “시장 가능성을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고 기각해버린 것은 20세기 좌파운동들이 이론과 실천 면에서 저지른 중대한 실수였다”28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월러스틴은 오늘날 국가에서 공정한 시장규제와 사회적 재분배같은 비자본주의적 목적에 활용될 수 있도록 국가의 정치를 민주화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속적 민주화와 시장 가능성에 대한 꾸준한 모색을 통해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경제가 서로 다른 원칙에 따라 작동하는 부문들로, 즉 넓은 의미의 공익사업 부문은 사회적 재생산에 우선권을 두고 소비재 및 서비스 부문은 시장효과에 우선권을 두는 방식으로 조직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본주의가 아닌 대안적인 체제의 작동원리로서 금전이 아닌 다른 형태의 보상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일종의 문명적 전환을 촉구한다. 가령, 평판과 성과에 대한 자기만족이라는 형태의 보상을 실험해보아야 한다는 제안이다. 비자본주의적 조직은 보상에서 이윤원리를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자본주의체제 안에서도 무조건 많은 임금보다 명예나 시간 여유 같은 것을 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사실은 자본주의체제 너머를 사유하고 전망하는 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의료나 교육 부문의 경제구조들이 수세기 동안 비영리적이고 비국가적인 통제를 통해서 때로 잘 작동해온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점차 다른 부문으로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29 그외에도 그가 이행기의 과제로 제안하는 바는 지식구조의 대대적인 혁신 등 문명사적으로 의미있는 것들이 있지만,30 그가 미래 체제를 둘러싼 계급투쟁에 대해 했던 주장 하나를 되새겨보는 것으로 마칠까 한다.

월러스틴에 의하면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그 이전의 역사적 체제들과 구분되는 두드러진 차이는 그 체제의 잉여가치를 전유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높다는 점에 있다.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은 극소수 집단을 나머지 사람들로부터 분리해온 것이 아니라 전세계 인구의 5분의 1 정도(혹은 7분의 1)를 나머지로부터 분리해왔다. 그 이전의 역사적 체제에서는 부유한 계층이라고 해봤자 규모는 작았고 상징적인 의미에서 대략 1% 정도라고 할 수 있는 반면에, 자본주의체제에선 최상층을 1%라 했을 때 19%에 해당되는 중간계급들의 성장으로 인해 20대 80의 양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특히 프랑스 대혁명 이후 민중의 열망에 놀란 지배층이 근본적 변혁 대신 민중에게 제공한 양보 가운데 하나가 대략 세계 인구의 7분의 1 내지 5분의 1에게 파이를 나누어주는 것이었다.31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큰 부가 생산되었기 때문에 20%와 80% 사이의 차이는 다른 역사적 체제보다 큰 상태이지만, 그는 그동안 그 격차가 그리 커 보이지 않았던 것은 세계의 역사학과 사회과학들이 온통 19%의 계층에 관심을 집중해온 것도 한 이유라고 본다.32 하지만 상층의 규모가 클수록 착취가 더 클 수 있고, 상향 유동성이 가능해서 안정성을 강화시켜주는데다, 그 상층 일부가 과반수에 못 미치면서도 꽤 많을 때 사회적 양극화를 정당화시켜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월러스틴은 미래 사회체제의 향방을 둘러싼 계급투쟁이 현재로선 80% 민중을 대변하는 전지구적 좌파와 1%를 대표하는 확고한 최상층 우파 사이에서, 즉 뽀르뚜알레그리 진영과 다보스 진영의 대결에서 중간층 19%를 자기편으로 끌어당기기 위한 투쟁이 되리라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33 별다른 부연설명이 없어서 정확한 취지는 모르겠으나 전지구적으로 본 1:19:80이라는 구분이 세계사 현실을 보는 시각에서 우리에게 구호로 낯익은 1 대 99의 구분보다 분명 합리적이고 타당하다고 생각된다.34 더욱이 세계사적으로 볼 때 현재 대한민국처럼 활력적인 지역의 꽤 많은 사람들이 19%에 해당될 터인데 이들의 향배가 지구적 현실에 중요한 작용을 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다만, 다보스 정신과 뽀르뚜알레그리 정신의 대결은 지리적 위치와 무관한 전지구적인 성격의 것이고 향후 장기적인 미래 체제의 향방을 둘러싼 근본적인 투쟁이기 때문에 19%를 자기편으로 끌어당긴다는 발상도 현실에서 중단기적이면서 국지적인 과제와의 관련하에서 숙고되지 못하면 자칫 막연한 관념에 그칠 수도 있을 것이다.

 

 

  1. 이매뉴얼 월러스틴 외 『자본주의는 미래가 있는가』, 성백용 옮김, 창비 2014; 볼프강 슈트렉 『조종이 울린다: 자본주의라는 난파선에 관하여』, 유강은 옮김, 여문책 2018; 폴 메이슨 『포스트자본주의의 새로운 시작』, 안진이 옮김, 더퀘스트 2017; 「“우리가 알던 자본주의는 끝났다… 팬데믹 맞설 ‘새 공산주의’ 필요해”」, 슬라보예 지젝 인터뷰, 조선일보 2020.11.10; 사이토 고헤이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기후 위기 시대의 자본론』,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2021.
  2.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II-1』, 주경철 옮김, 까치 1996, 20면. 이하 번역문을 인용할 시 번역은 필자가 원문과 대조하여 일부 수정하였다.
  3. 이매뉴얼 월러스틴 외 「공동서론: 다음번의 대전환」, 『자본주의는 미래가 있는가』 19면. 이 책의 공저자 다섯명은 자본주의에 대한 미래 전망이 약간씩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런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4. Karl Marx, Das Kapital I, Marx-Engels-Werke(이하 MEW) 23, Dietz Verlag 1957, 787~88면. 이하 Das Kapital I에서의 인용 및 참조는 본문에 면수만 표기.
  5. 과거에 필자는 월러스틴을 임노동, 즉 노동력의 상품화라는 생산관계를 무시하는 유통주의자라고 비판하는 고전적 맑스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한 바 있다. “월러스틴에게는 끊임없는 자본축적이라는 현상이 세계적 차원에서 부분적 임노동화에서만 유지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착취양식이 결합된 세계적 생산관계에서 자본주의의 작동양상을 바라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졸고 「맑스와 월러스틴」, 『창작과비평』 1996년 봄호 320면.
  6. 월러스틴은 타계하기 전해인 2018년, 생애 마지막 대담에서 널리 알려진 맑스 사상 중에서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세가지를 적시해달라는 요청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첫째, 자본주의가 사회조직의 자연스러운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잘 말해주었다는 것. 둘째, 자본주의의 기초를 마련한 ‘본원적 축적’이 부르주아지의 지배에서 핵심적 과정임을 아주 잘 이해했고 그것은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 셋째, 사적 소유제와 공산주의의 문제를 국유화 여부가 아니라 잉여가치의 생산 및 수취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것. Marcello Musto, “Read Karl Marx! A Conversation with Immanuel Wallerstein,” Truthout 2018.3.24.
  7. 다만, 그는 자본의 역사적 발생이 “노예나 농노에서 임노동자로의 직접적인 전환, 즉 단순한 형태변화가 아닌 한, 그것은 단지 직접적 생산자의 수탈, 즉 자기 노동에 기초한 사적 소유의 해체를 의미할 뿐”(789면)이라 함으로써 노예나 농노로부터의 직접적인 전환도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8. 맑스 자신이 중요한 수정 및 추가를 했다고 말한 불어본(1872~75년)에서는 이 대목이 다음과 같이 수정・보완되었다. “노동자가 자기 생산활동 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는 것은 농업이나 제조업에서 소경영의 당연한 귀결이고, 이 소경영은 사회적 생산의 양성소(pépinière)이자 노동자의 손재주와 창의적인 솜씨, 그리고 자유로운 개성의 연마가 이루어지는 학교이다.” Karl Marx, Le Capital I, Gallimard 1963, 785면.
  9. 이매뉴얼 월러스틴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나종일・백영경 옮김, 창비 1993, 46~47면.
  10. 다만, 월러스틴이 ‘18세기 말’설의 대표자로 지목했던 발리바르(이매뉴얼 월러스틴 『근대세계체제 II』, 유재건 외 옮김, 까치 1999, 17면 참조)는 2018년 좌담에서 과거 월러스틴과 공저 작업을 하며 나눈 대화 덕분에 자신은 “자본주의에 대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논의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고 술회했다. 게다가 계급과 국민을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제도적 구조로 보는 사고에 공감하면서 자신은 점점 더 월러스틴주의자(ultra-Wallersteinian or post-Wallersteinian)가 되고 있으며 이는 알뛰쎄르 및 고전적 맑스주의와의 결별을 뜻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에티엔 발리바르·이매뉴얼 월러스틴 『인종, 국민, 계급』, 김상운 옮김, 두번째테제 2022, 11, 24면 참조.
  11. 이매뉴얼 월러스틴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101~47면;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백승욱 옮김, 창비 2001, 253면 참조.
  12. 농업에서도 생태적으로 합리적인 길은 노동자와 노동조건의 융합이 이루어지는 두가지 길밖에 없다는 점을 그는 간명히 표현한다. “합리적 농업은 자영소농의 손길이나, 아니면 연합된 생산자들에 의한 관리를 요한다.” Karl Marx, Das Kapital III, MEW 25, 131면 참조.
  13. 같은 책 784면.
  14. 졸고 「맑스의 과학적 사회주의와 현실적 과학」, 『창작과비평』 1994년 가을호 269~72면; Karl Marx, “Ö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MEW Ergänzungsbände 1, 534~35면 참조.
  15. Karl Marx, “Briefe aus den ‘Deutsch-Französischen Jahrbüchern’,” MEW 1, 344면 참조.
  16. Karl Marx, Kritik des Gothaer Programms, MEW 19, 26면; 졸고 「맑스의 과학적 사회주의와 현실적 과학」 268면 참조.
  17. Friedrich Engels, Anti-Dühring, MEW 20, 99면; “F. Engels an A. Bebel, 1875.3.18~28,” MEW 19, 7면. 엥겔스는 베벨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나라, 지역, 지방 간에는 생활조건들이 언제나 어느 정도의 불평등을 보일 것이고 그것은 최소한으로 줄일 수는 있어도 전적으로 제거될 수는 없는 것이지. 알프스 거주자들의 생활조건은 언제나 평지인들의 그것과는 다르겠지. 사회주의 사회를 평등의 왕국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유, 평등, 우애’라는 낡은 관념에서 비롯된 일면적인 프랑스적 관념으로, 그 시대와 장소에서 하나의 발전단계로서는 정당화되겠지만, 이전 사회주의 학파의 모든 일면적인 견해와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이제는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야.”(강조는 엥겔스)
  18. 제이슨 바커 엮음 『맑스 재장전: 자본주의와 코뮤니즘에 관한 대담』, 은혜·정남영 옮김, 난장 2013, 99면 참조.
  19. Karl Marx and Friedrich Engels, Die Heilige Familie, MEW 2, 138면 참조.
  20. Karl Marx and Friedrich Engels, Die Deutsche Ideologie, MEW 3, 212면.
  21. 마르틴 하이데거 「휴머니즘 서간」, 『이정표 2』, 이선일 옮김, 한길사 2005, 154면. 백낙청은 하이데거의 ‘Sein’을 노자의 “도법자연(道法自然), 곧 도가 자연에 바탕한다고 할 때의 자연, 그러니까 ‘스스로 그러함’의 의미”로 풀이한다. 김용옥·박맹수·백낙청 특별좌담 「다시 동학을 찾아 오늘의 길을 묻다」, 『창작과비평』 2021년 가을호 106면.
  22. 백낙청 「2023년에 할 일들: 살던 대로 살지 맙시다」, 『창작과비평』 2023년 봄호 29면; 「통일시대 한국사회와 정신개벽」, 『문명의 대전환과 후천개벽』, 박윤철 엮음, 모시는사람들 2016, 209~12면 참조. 다만 그는 맑스 자신이 각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대중의 마음공부에 충분한 배려를 안 했던 사실”이 20세기 사회주의권의 거대한 실패와 무관치는 않았으리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23. “Marx to F. D. Nieuwenhuis, 1881.2.22,” MEW 35, 160~61면.
  24. 이매뉴얼 월러스틴 『근대세계체제 I』, 나종일 외 옮김, 까치 2013, 533면 참조.
  25. Karl Marx, Kritik des Gothaer Programms, MEW 19, 23~24면.
  26. Karl Marx, Grundrisse der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MEW 42, 412면.
  27. Immanuel Wallerstein, “Hôtel de l’Amerique,” Espaces Temps 34~35, 1986, 45면; 졸고 「카라따니 코오진과 맑스」, 『창작과비평』 2014년 여름호 367~69면; 졸고 「맑스와 월러스틴」 320면 참조.
  28. 이매뉴얼 월러스틴 외 『자본주의는 미래가 있는가』 385면.
  29. 이매뉴얼 월러스틴 『유토피스틱스』, 백영경 옮김, 창비 1999, 108~109면; 이매뉴얼 월러스틴·이강국 대담 「위기, 이행, 대안」, 『창작과비평』 2015년 봄호 61면 참조.
  30. 졸고 「세계체제 분석, 탈근대론, ‘로컬리티의 인문학’」, 『지역과 역사』 제27호, 2010.
  31. 이매뉴얼 월러스틴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129~30면;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102~103면 참조.
  32. 이매뉴얼 월러스틴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110면 참조.
  33. Marcello Musto, 앞의 글.
  34. 대담자인 무스토는 중간계급에 대한 성찰이 자신에게는 그람시(A. Gramsci)의 헤게모니 개념을 상기시킨다고 답변하고 있다. 같은 글 참조.

유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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