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대전환, 어디서 시작할까
소수자 인권과 한국사회 시민권의 재구성
백영경 白英瓊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문화인류학. 논문으로 「지식의 정치와 새로운 인문학: ‘공공’ 연구의 확장을 위하여」 「성적 시민권의 부재와 사회적 고통」 외 다수. paix@knou.ac.kr
한국사회에서 소수자1)의 존재가 담론과 사회운동을 통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다. 1987년 이후의 민주화시대는 새로운 민주주의와 인권, 다양성 같은 가치를 강조하였고, 이는 소수자의 차별과 배제를 문제삼을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70년대 이래 민주화운동이 민중을 주체로 내걸었고, 87년 6월항쟁을 거치면서 자리잡은 새로운 사회운동이 시민을 주역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면, 90년대에 들어서는 장애인·성소수자·이주민 인권단체 등이 형성·발전되면서 정체성에 기반을 둔 소수자운동이 활발해지게 되었다. 민주화가 열어놓은 새로운 공간은 이전 시기 민중운동이나 시민운동이 담아내지 못했던 성소수자, 이주자, 장애인, 북한이탈주민 등 소수자의 인권과 시민권이 제기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90년대 이후의 소수자운동은 87년체제의 한계를 넘고자 한 움직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민주화의 성과로 가능해졌고 또 성장할 수 있었던 운동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까지 여성운동이나 노동운동 등 ‘일반’ 진보운동 측의 무관심이나 배제로 인한 긴장관계가 지속되었음에도 소수자운동은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한 사회운동의 일역을 꾸준히 담당하면서 성장해올 수 있었던 것이다.2) 특히 90년대 후반 이후 인권의식이 고조되고, 한국사회 곳곳의 사회적 차별과 배제를 고발하는 인권운동이 활발해진 과정에는 이주민과 다양한 처지의 여성, 성소수자 등의 인권 문제를 제기해온 소수자운동이 기여한 바가 컸다. 각론에서는 갈등과 이견이 있을망정, 큰 틀에서는 소수자 인권의 확보가 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합의가 사회운동 내에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최근 ‘서울시민인권헌장’ 폐기 사건을 비롯해 이미 통과된 지방자치단체의 인권조례에서 성소수자 인권 관련 조항을 삭제하도록 정부 부처가 직접압력을 가한 상황은 단지 성소수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87년 이후 이룩한 제도적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과정이자 사회운동 내의 합의가 허물어지는 과정이다.3) 노골적으로 차별과 배제를 옹호하지는 않지만 성적 지향이 다른 시민들에 대해서는 인권의 명시적 보장을 거부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차별을 인정하는 것이며, 합법적인 절차를 따른다면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집회와 표현, 결사의 자유 역시 어떤 시민들에게는 허락될 수 없다는 것이니 결국 지금 한국사회는 민주주의와 시민권의 개념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소수자의 인권에 가해지는 공격과 혐오발언의 증가가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반적인 민주주의 퇴행 및 공론장 오염의 징후임은 물론이다. 하지만 동시에 민주적 체제가 허약해진 배경에는 그동안 소수자운동이 제기해온 문제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제대로 씨름하지 않았던 이유도 없지 않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소수자운동은 그동안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이 포괄하지 못하는 여러 문제를 생존권 차원에서부터 새로운 정치이론의 필요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제기해왔지만, 그 문제들은 종종 한국사회 일반의 것이 아닌 듯 취급받곤 했다. 현재 소수자 인권을 둘러싼 논란은 과연 한국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시민은 누구이며 그 자격은 무엇인지, 보편적 권리라고 여겨지는 인권의 적용을 현실적으로 제약하는 것은 무엇인지, 또 사회운동에서 소수자의 문제를 ‘일반’ 시민의 문제와 구별할 때 생기는 문제는 무엇인지 같은 질문에 우리가 답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우선 한국에서 소수자운동이 부상한 과정을 살펴보면서, 소수자 관련 쟁점들이 어떻게 해서 주로 인권운동으로 틀 지어지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살펴보는 걸로 시작하여, 소수자 인권과 시민권 문제가 한국사회의 새로운 전환을 위해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이유는 무엇이며, 이를 위한 실마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를 모색해보고자 한다.
소수자 인권 문제의 부상
1990년대 들어 한국사회에서 소수자의 인권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한 데는 다양한 원인이 존재한다. 우선 이미 말한 대로 민주화의 진전은 그때까지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던 사회적 배제와 차별의 문제가 본격화되어 소수자운동이 하나의 사회운동으로서 자리잡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장애인운동의 경우 1988년 대규모 장애인 생존권 시위가 일어나고 장애 문제를 다루는 언론매체가 창간되는 등 87년 이후부터 장애인 대중과 함께하려는 진보적 지향의 흐름이 생겨났다.4) 성소수자의 경우에도 최초의 성소수자 인권단체인 ‘끼리끼리’와 ‘친구사이’, 그리고 그 전신인 ‘초동회’가 각각 94년과 93년에 만들어졌다. 그런가 하면 90년대 초반부터 냉전갈등이 완화되면서 중국에서 들어오는 ‘조선족’ 동포의 수가 크게 증가했으며, 북한의 체제위기 현상에 따라 북한지역을 이탈한 주민의 유입 역시 큰 폭으로 늘어났다. 또한 이 시기 이주를 통해 국내의 노동력과 결혼 수요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자가 증가했다. 이에 따라 정부 역시 다문화정책을 표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이주자를 지원하고 그들에 대한 인권침해 현황을 고발하며 법적 보호를 요구하는 운동단체들이 생겨났다. 한마디로 80년대식의 민주화운동은 물론 시민운동의 이름으로도 포괄하기 어려운 새로운 주체와 쟁점이 이 시기를 통해 부상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소수자의 인권 확보를 위한 운동이 성장한 것과 다소 별개로 소수자운동이 인권 패러다임과 결합하여 압도적으로 인권운동의 형태를 띠게 된 맥락에 대해서는 따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5) 우선 국제기구에 의해 만들어진 협약과 국제적 규범의 영향력을 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현재 소수자가 이해되는 방식과 소수자에 대한 국가의 보호 의무를 규정한 것은 92년 유엔총회를 통과한 ‘소수자권리선언’(Declara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Belonging to National or Ethnic, Religious and Linguistic Minorities)이다. 이 선언은 소수자의 존재와 정체성을 보호·장려하는 것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소수자가 국가에 대해 차별철폐와 권리보호를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고 국제적으로 소수자 권리운동에 많은 영향을 남겼다.
한국에서도 인간이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로서의 인권이라는 담론은 형식적 민주화를 넘어서 사회적 차별과 배제의 철폐를 목표로 하던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992년부터 서준식(徐俊植) 등이 중심이 되어 기존의 인권운동에 문제의식을 가진 ‘인권운동사랑방’ 같은 조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93년 비엔나에서 개최된 유엔 세계인권대회에 참여하는 등 인권 문제에 대한 인식의 폭을 확대하면서, 민주화운동의 경험을 공유하는 동티모르나 아르헨티나와 국제연대활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1998년 설립되어 이듬해 인권학술회의를 개최하는 등 소수자 개념에 대한 학술적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 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한국인권재단 역시 유엔 세계인권선언 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에서도 국제 인권담론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당시의 진보적인 사회운동 내에서는 인권 문제가 큰 화두가 되었고, 1994년 참여연대 역시 창립선언문에서 참여와 인권을 위한 시대를 표방하였다.6)
한편 소수자 인권을 주장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장이 현실화되는 데는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출범이 큰 전환점이 되었다. 1993년 비엔나인권회의 이래 인권 관련 국제기구들은 국가 차원의 인권기구를 설립할 것을 한국에 지속적으로 권고했고, 1997년 12월 인권법과 국민인권위원회 설치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인권 전문가, 활동가 들의 참여 속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권운동가이자 1994년 대통령에 취임한 넬슨 만델라와 종종 비교되던 김대중은 자신의 민주화운동을 인권담론과 연결 짓고자 했고, 행정부처에서 독립된 국가적 차원의 인권기구 수립은 그러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차별 시정에 대한 법적 강제력이 없다는 한계 속에서도,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국가인권위원회법 제1조) 국가인권위원회는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라는 개념이 널리 사용되고 공론화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실제로 성소수자와 관련하여 국가인권위원회는 설립 당시부터 성적 지향을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명문화했는데, 이는 국내 활동가들의 압력과 국제규범의 영향력에 공히 힘입은 것이었다. 2005년에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성적 소수자 인권 기초현황조사를 실시했고, 2006년 공표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에서는 성적 소수자를 우리 사회의 중요한 사회적 약자 혹은 소수자 집단으로 확인함으로써 이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인권정책이 필요함을 명시하였다. 이명박정권 이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2014년에는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2003년 청소년 유해매체물 심의기준으로 동성애를 포함시킨 것은 잘못이라는 진정이 접수되자 해당 문구의 삭제를 권고한 일을 비롯하여,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소지를 심의하는 등 국가인권위원회는 각종 인권침해에 대해 진정을 통해 판단을 구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펼쳐지는 중요한 장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장애인 인권에 대해서도 장애인의 이동권, 학습권,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사작업을 수행하고 그에 근거한 권고안을 만들어냈으며,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자에 대한 차별을 드러내고 시정하기 위한 조치를 권고하는 동시에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작업을 펼쳐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그밖에도 성별을 근거로 한 고용차별의 문제나 남녀차별, 성희롱 등 모든 차별의 문제를 담당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차별과 배제에 항의하는 당사자들도 주로 인권의 틀에서 문제를 제기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문제제기할 수 있는 다른 국가기구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존재는 소수자 문제를 인권의 틀로 보게 하는 큰 요인이 되었다.
소수자의 인권과 시민권
주로 국가인권위원회와 인권의 틀에서 소수자의 권리가 논의되어온 현상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이 존재한다. 우선 두드러지는 것은 인권 차원의 소수자 권리 논의로는 한국사회의 정치적 기획 자체를 바꿔놓을 수 없기 때문에 소수자가 한국사회의 제대로 된 성원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소수자의 인권이, 시민 일반이 아닌 말 그대로 소수의 문제로, 그래서 배려와 관용을 통해서 공존을 모색함으로써 사라지게 해야 할 ‘문제’로 취급받고 있음을 비판한다. 따라서 인권 차원의 논의에 머무르지 말고, 소수자가 동등한 시민으로 설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정치는 무엇인지가 시민권에 대한 논의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진보신당 성정치위원장이었던 토리(활동명)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담론이 성소수자를 시민으로서 인정하는 성과를 가져왔지만, 동성애에 대해 규범적으로 인정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시민으로서 진정한 권리를 획득한다는 것은 사회가 규정하고 있는 시민의 개념을 확장하고 변형하면서, 그 사회의 제대로 된 성원이자 사회적 권리의 수혜자로서 인정받는 과정이어야 함에도, 국가인권위원회 중심의 인권담론에서는 단지 동성애적 주체도 권리가 있음을 인정했을 뿐, 한국사회가 가진 시민의 상을 바꿔놓지는 못했다는 것이다.7) 한편, 장미경은 한국사회에서 소수자를 대변하고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이 소수자의 정체성 자체에 대한 인정을 통해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넘어 정상/비정상의 틀과 그 위계적 이분법을 깨는 제대로 된 소수자 시민권의 정치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보았다.8) 윤수종 역시 국가폭력의 문제가 일정정도 해결된 시대가 되면서 인권 문제는 국가 대 시민의 문제가 아니라 주로 소수자가 겪는 문제라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고, 소수자를 단지 사회적 약자로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한다. 표준화되지 않고 다른 삶을 사는 소수자들은 다른 세상을 만들어갈 존재로서의 가능성을 갖는데, 이를 인권담론으로 담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9)
결국 인권담론에 대한 비판을 요약하면, 소수자 문제를 인권 차원에서 접근하는 방식이 소수자에 대해 배려와 공존의 이름으로 생존 차원의 제한된 보호와 인정을 제공하는 데 기여해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반면에 급진적인 차이를 주장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로 부각하는 데는 제약이 크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이 부분을 한계로서 지적하기는 쉽지만, 인권과 시민권의 관계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까지 감안한다면 인권 개념을 대신하여 시민권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건강권이나 교육받을 권리, 최저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임금 등은 모두 기본적인 인권을 이루는 구체적인 내용이지만, 이러한 권리들은 추상적인 인권이 아니라 모두 복지국가의 등장과 함께 시민적 권리로서 제시된 것이기도 하다.10) 또한 인권 문제는 국경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일면 국제적인 인권규범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나, 인권을 실제로 확보하고 인권침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국민국가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을 보아도 현실에서 인권과 시민권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서동진이 지적하듯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는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통해서만 매개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권과 정치적 시민권은 상호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11)
사실 모든 인권이 인간으로서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라는 개념은 매우 유럽적인 것으로, 그 자체로 자명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인권의 보편성에는 한계가 있음을 이미 여러 인권 연구자가 지적한 바 있다.12) 그 한 예로 많은 사람들이 현대적인 인권 개념의 기원이 되었다고 간주하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1789, 이하 「선언」)의 시대, 즉 18세기의 프랑스를 연구하는 문화사학자 린 헌트(Lynn Hunt)는 「선언」이 인간과 시민의 권리를 병렬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데서도 드러나듯, 인권이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자명한 권리로 보기는 어렵다는 사실에 주목한다.13) 18세기는 여전히 신분제와 노예제가 존재하며 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박해가 자행되는 시기였다. 실제로 「선언」의 주체 자신들 역시 노예주이거나 남성으로서 지배계급에 속했으며, 이후 인간의 권리를 식민지인이나 무산자, 유색인 혹은 여성으로 확대 적용하는 데 반대하기도 했다. 헌트는 그들이 인간은 동등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으며, 정치적 권리는 자산에 기초한다고 믿었음에도 어떻게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 개념을 옹호할 수 있었던 것일까 질문한다. 헌트가 찾은 답은 이 시기에 개인과 자아의 개념에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계몽주의 시대가 되면서 차이를 초월해 존재하는 자율적 존재로서 개인을 이해하게 되었고, 나와 다른 신분과 처지에 있는 타인들 역시 나와 마찬가지의 내면을 가지고 있고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관념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한 인식에 기반해 타인에 대해 공감을 느끼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러한 변화가 인권의 발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헌트의 주장이다. 그렇지만 「선언」이 보편적인 천부인권을 내세웠음에도 「선언」의 주역들은 시민이 아닌 이들의 인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나와 다른 타인에 대한 공감이 확산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억압받는 사람들의 정치적 권리 확대로 이어진 것도 아니었다. 결국 당대의 놀라운 성취는 현실적으로 시민권 없는 인권이 존재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분과 성별, 인종을 초월한 인권을 상상하고 공감하는 개인들이 늘어났고 보편적인 천부인권이라는 믿음이 마치 자명한 것인 듯 확산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에 있었다.14)
그러므로 보편적인 인권이라는 개념의 의의는 역설적으로 그것이 달성 불가능한 목표라는 사실에 있다. 추상적인 인권 개념은 현실적 한계도 분명했지만, 동시에 현실의 조건을 넘어서 인권의 보편성을 도달해야 할 이상으로 만들었고, 그 결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열망을 자극하여 정치적 변화를 요구할 수 있는 장(場)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권 개념은 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는 듯하지만, 그 안에는 현실의 인간은 추상적인 개인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관계 속에 매인 존재라는 사실을 종종 외면하는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인권 개념은 시민권 개념이 가진 문제점, 즉 국민국가의 인정 여부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벗어나서 시민이 아닌 자들 역시 평등을 열망할 수 있게 해주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인권이라는 이상을 향해 무한히 근접해가는 멈출 수 없는 운동으로서의 인권의 정치 자체를 유지하는 일이다.15)
소수자운동의 경우에도 인권담론의 제약성을 감안하는 한편으로 인권을 통해서 열린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과 장은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사회 성원으로서 제대로 된 시민적 권리를 누릴 수 없게 만드는 체제적 조건이 유지되는 한 인권 역시 확보될 수 없지만, 동시에 이제까지 시민권을 적용할 수 있는 대상이 확장된 데에는 인권의 역할이 컸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 이대로의 시민권 체제가 인권의 침해로 이어지는 상황을 바꾸고 소수자를 정치적 권리의 주체로 만드는 과정에서 인권과 시민권 논의는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민권의 재구성과 시민성의 문제
소수자의 시민권 논의가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한다고 할 때조차 소수자를 ‘일반’ 시민과는 구분되는, 무언가 결핍된 존재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수자는 형식적으로 시민의 요건을 모두 갖췄더라도 제대로 된 사회적 성원으로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한 국가의 시민으로 태어난다고 해서 누구나 자격 있는 시민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며,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일반’ 시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시민 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구분을 문제삼고자 할 때, 이를 근대사회에 작동하는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경계 문제, 표준에서 벗어난 개인에 대한 억압과 배제 문제로 접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소수자와 일반 시민이라는 구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근대적 시민 개념 자체에 뿌리내리고 있는 암묵적인 전제들이 무엇인지를 물을 필요가 있다.
이렇게 사회가 시민에게 부여한 권리 및 의무에 기반을 둔 사회적 성원권을 시민적 권리(citizenship rights)와 구분하여 시민성(citizenship)이라 부르기도 하는데,16) 이 시민성은 바로 권리가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을 제약하는 구체적인 원리로서 작동하게 된다. 김홍수영은 노숙인 연구를 통해 한국사회의 시민성을 구성하는 기준으로서, 국민등록의 원칙에 맞게 주거지 등록이 되어 있는지, 시장노동에 근면성실하게 참가하고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재산을 가지고 납세의 의무를 다해야만, 가족구성의 의무와 병역의 의무를 다해야만 시민적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관념은 결국은 이러한 요건을 맞출 수 없는 장애인이나 성소수자, 노숙자, 여성 등으로 하여금 시민권 행사에서 차별을 겪게 만들고, 이들을 사회적 소수자로 만드는 기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17) 전지구적 이동이 많아지면서 크게 증가하고 있는 이주자의 경우에도 근대국가의 경계 내에서 작동하는 시민성에 부합하기는 큰 어려움이 따르며 특히 해당 사회에 존재하는 민족주의,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속에서 시민권이나 인권을 누리기는 어렵다.18) 따라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지원이나 보호 조치가 아니라 이들이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시민성의 원리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해야 할 점은 앞서 열거된 시민성의 요소들이 반드시 소수자에게만 차별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개인들은 단지 시민권을 가질 수 있는 사람과 시민권에서 배제된 사람으로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시민성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시민성을 입증하지 않으면 시민의 자격을 유지하지 못한다. 물론 소수자의 경우에는 항구적은 아니라 할지라도 시민성에 부합하기 어렵게 만드는 특징을 변경하기 어렵다는 차이는 있지만, 소수자를 만들어내는 시민성의 원리와 위계질서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인류학자인 탈랄 아싸드(Talal Asad)는 비단 시민권뿐 아니라 인권 역시 그 자체로 인간에 대한 특정한 상(像)과 자격에 기대고 있음을 지적한다.19) 그 한 예로서 노동할 수 있는 권리를 들 수 있는데, 노동권은 세계인권선언 제23조에 규정된 대표적인 인권의 하나로 간주된다. 그런데 흔히 인간의 본질을 노동에서 찾고, 노동할 권리를 보편적인 인간권리이자 시민권의 주요한 내용으로 보지만, 사실 인간과 노동에 대한 시각은 시대적으로 변화해온 것임을 아싸드는 강조한다. 그는 노동을 규율의 수단으로 동원한 16세기 구빈법(救貧法)에서 노동권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데, 이 시기 노동은 인간 자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기준으로서 인민과 부랑자를 구분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18세기에 들어서자 노동은 이제 국민적 의무일 뿐 아니라 시민의 권리로 주장되기 시작했으며, 20세기에는 노동권이라는 개념이 케인즈주의적인 고용정책과 결합하면서 경제를 활성화하는 수단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부랑자를 통제하는 수단으로서의 노동과 경제계획의 수단으로서의 노동은 인간에 대한 아주 다른 이해에 입각해 있다고 할 때, 노동 여부, 특히 시장경제에 포섭된 노동에 참여하고 있는지 여부로 인간과 시민의 자격을 나눈다는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일 수 없다는 게 아싸드의 지적이다. 그는 노동이 인간의 자격 기준이 되어왔다는 통념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지대(地代)를 받는 재산가들에게는 인간다움의 조건으로 노동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꼬집는다.
여기서 인권과 시민권의 중요한 일부이자 시민성과 인간다움의 전제로 이해되곤 하는 노동권이 실제로는 권리인 동시에 통치의 수단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중요한 시사점을 지닌다. 시민성의 원리를 그대로 둔 채 소수자의 이름으로 더 많은 복지나 보호를 요구하는 것은 자칫하면 소수자가 흔들고자 했던 사회질서를 오히려 공고화하는 데 기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20) 사실 재산규모에 따라, 노동능력에 따라, 합리적 판단능력을 가졌는지에 따라 인간과 시민의 자격을 나누는 것은 근대 자본주의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덕목들을 개인에게 강제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이성애적 결합과 자녀 생산을 통해 사회적 재생산에 복무하는지를 기준으로 시민의 자격을 나누는 것 역시 가족을 통해 이루어지는 재생산이 자본주의 경제가 지속되는 전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수자의 배제를 가져오는 시민성의 원리들은 근대 자본주의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이는 소수자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소수자라는 범주 자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문제삼고 시민성의 원리 자체를 재구성함으로써 소수자로 하여금 정치 자체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서동진의 주장21)은 그것이 소수자 정치의 맥락에서 나온 것이지만 소수자운동의 과제로만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모두 소수자다”를 넘어서
소수자의 인권과 시민권을 제대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시민의 자격조건으로 암묵적으로 전제되는 요건들을 살펴보지 않으면 안되며, 이러한 전제들을 바꿔내기 위해서는 결국 근대 자본주의사회의 근간을 이뤄온 여러 원리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은 자칫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현실과 먼 주장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는 소수자운동은 이러한 변화 시도가 현장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으며, 동시에 당연히 인권으로 주어져야 할 것 같은 권리들도 어떤 근본적인 원리의 전환 없이는 얻기 어려운 경우가 많음을 보여준다. 일례로 장애인은 왜 당연히 최저임금 대상에서 제외되는가, 만약 그 이유가 장애인 노동이 가치를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면 임금 수준은 생산한 가치와 비례하는 것인가, 또 노동이 국민의 의무이자 권리라고 할 때 국가는 장애인의 노동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등의 질문은 모두 노동능력이 있는 남성 시민을 표준으로 두고서는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으로 인권을 제한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시민이 제정하는 인권헌장에서 성소수자의 인권보장 조항이 누락된다면, 이는 결국 한국사회 인권과 시민권의 일반적인 한계를 보여줄 뿐이다. 또한 도시가 주체가 되어, 인권의 대상을 국민국가의 국민으로 한정하지 않고 난민과 난민신청자, 이주노동자, 미등록자를 포함하여 해당 시에서 근로하거나 체류하는 사람 모두로 그 범위를 넓히는 서울시의 실험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는 이제까지 자산 소유권에 기초하여 자본축적을 최우선시하던 공간이었던 도시가 과연 소유자 아닌 거주자의 사용권이 인정되는 공간, 공유의 원리가 지배하는 공간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기도 한 때문이다.
인권 교육에서 흔히 제시되는 “우리는 모두 소수자다”라는 구호에는 소수자의 문제가 타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과, 자신은 소수자가 아니지만 소수자를 배려하고 포용하겠다는 안이한 인식 자체도 차별의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자각이 반영되어 있다. 또한 스스로를 소수자로서 바라보고 실천하는 ‘소수자-되기’ 역시 정치적 실천을 위해 중요한 윤리적 토대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소수자다”라는 언설은 18세기 인권선언의 주역들과 마찬가지로 자칫 현실의 차별적 원리를 그대로 둔 채 추상화된 타자들의 고통에 대해서만 공감하는 데서 그치게 될 위험이 있다. 따지고 보면 소수자 아닌 사람이 없다는 것과 실제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는 범주에 속해서 살아내야 하는 삶의 어려움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가령 장애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장애의 정도와 종류, 계급적 지위, 성적 지향, 성별, 인종에 따라 그 경험이 다를 수밖에 없듯이, 소수자 자체는 단일한 집단이 아니라 여러가지 교차되고 중첩된 억압을 경험하는 집단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원론적인 공감의 한계는 더욱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는 모두 소수자다”라는 인식이 한국사회에 소수자를 생산해내는 구체적인 기제와 차별의 양상에 대한 천착과 함께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점이다. 타인에 대한 추상적 공감이 가지는 한계는 분명하지만, 인권의 보편성이라는 이상에 입각한 현실적 투쟁이 민주주의의 확대를 가져오는 힘이 되었듯이, “우리는 모두 소수자다”라는 구호 역시 현실을 변화시키는 투쟁의 출발점이 된다면 의미가 클 것이다.
실제로 작은 정치적 이견만으로도 누구든 비시민, 비국민으로 몰릴 수 있는 한국의 억압적 정치체제는 어느 누구도 소수자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일반인’이라 자신하기 어렵게 만들며, 소수자의 인권 주장에 대해서도 유독 적대적이기 쉽다.22) 그러므로 사회의 민주화 및 분단체제의 극복을 목표로 하는 운동과 소수자의 인권 및 시민권을 확보하려는 소수자운동 사이에는 차이를 넘어 함께할 여지와 당위성이 존재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인권과 시민권의 문제는 상호의존적이며, 소수자 인권의 문제를 단순한 공감과 배려를 넘어 ‘대전환’으로 연결하는 정치적 기획과 실천 역시 소수자운동이 홀로 감당해야 할 성격의 것은 아니다. 좋은 삶과 나쁜 삶,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과 없는 인간, 존중받을 수 있는 시민과 그럴 자격이 없는 시민을 가르고 차별하는 권력에 저항하는 일은 결코 소수자만의 문제일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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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수자는 “신체적 또는 문화적 특징 때문에 사회의 다른 성원들에게서 차별을 받으며 차별받는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 정의할 수 있다. 단순히 수적으로 열세에 있다고 해서 소수자인 것은 아니다. 또한 그 특징이 영구적이며, 모두가 그 특징을 공유하지 않고, 다른 장점이 있다고 해도 차별의 대상이 되는 특징을 상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사회적 약자와 구분된다고 본다. 박경태 『소수자와 한국사회』, 후마니타스 2008 참조. 국제법상의 소수자 보호가 주로 언어, 인종 혹은 종교상으로 구별되는 소수자에게 국한되는 경향이 있다면, 한국사회에서의 소수자는 언어나 인종적으로 구별되는 이주민 외에도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등을 비롯해 다양한 비규범적 집단을 포괄하는 용어로 더 넓게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2) 소수자운동 자체가 매우 이질적인 주체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운동 내부적으로 볼 때도 결코 단일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일단 이 글에서는 민주화운동이나 시민운동에서 ‘일반 시민’이나 ‘일반 민중’을 이야기할 때 배제되는 집단으로서의 소수자 자체가 관심이기 때문에, 소수자의 이름으로 등장한 운동 일반에 대해 주목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해서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 등의 운동이 각기 가지고 있는 독자성과 특수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각 운동이 내부적으로 다양한 요소가 있음에도 이주민, 장애인, 성소수자 운동 등으로 묶일 수 있는 것 자체도 소수자 정체성이 확산된 데 따른 것임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3) 보수기독교 단체들은 2007년 법무부가 유엔인권이사회의 권고에 따라 제정하려던 차별금지법을 ‘동성애허용법’이라고 주장하면서 제정을 저지하였으며, 2013년 봄에도 김한길, 최원식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을 스스로 철회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2014년말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공약하고 시민들이 직접 만드는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과정에서 성소수자의 인권을 포함했다는 이유로 헌장 반대운동을 펼쳤고, 결국 헌장은 폐기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서울 성북구청장은 주민참여예산제도를 통해서 확정된 청소년 성소수자 관련 예산을 해당 구의 개신교회에서 반대한다는 이유로 불용 처리했으며, 2015년 대전시와 시의회는 여성가족부의 요청과 기독교단체들의 압력으로 인해 이미 만들어진 성평등조례안에서 성소수자 인권 관련 조항을 삭제한 후 통과시키기도 했다.
4) 김도현 『차별에 저항하라: 한국의 장애인 운동 20년, 1987-2006년』, 박종철출판사 2007.
5) 정근식 「차별 또는 배제의 정치와 ‘소수자’의 사회사 재구성」, 『경제와사회』 2013년 겨울호 186~87면.
6) 차병직 「어느 문패에 대한 20년의 명상: 참여연대 창립선언문」, 『사건으로 보는 시민운동사: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한국시민운동 20장면』, 창비 2014, 185~99면 참조.
7) 토리 「한국사회 LGBT의 성적 시민권: 비판과 전망」, 『여/성이론』 23호, 2010.
8) 장미경 「한국사회 소수자와 시민권의 정치」, 『한국사회학』 39권 6호, 2005.
9) 윤수종 「인권과 소수자, 그리고 욕망의 정치」, 『진보평론』 2009년 겨울호.
10) Susan Pedersen, Family, Dependence, and the Origins of the Welfare State: Britain and France, 1914-1945,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5.
11) 서동진 「인권, 시민권 그리고 섹슈얼리티: 한국의 성적 소수자 운동과 정치학」, 『경제와사회』 2005년 가을호.
12) John Headley, The Europeanization of the World; On the Origins of Human Rights and Democrac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7.
13) 린 헌트 『인권의 발명』, 전진성 옮김, 돌베개 2009.
14) 헌트는 충분히 다루고 있지 않지만, 「선언」 텍스트 내에서 인권과 시민권의 관계는 명료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으며, 바로 이 모호함은 맑스부터 아렌트, 크리스테바, 발리바르에 이르는 여러 논자들이 인권 개념의 정치성을 질문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황정아 「인권과 시민권의 ‘등식’: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중심으로 」, 『영미문학연구』 20호, 2011 참조.
15) 정정훈 「(불)가능한 권리와 인권의 정치」, 『문화과학』 2013년 봄호.
16) 키이스 포크 『시티즌십: 시민정치론 강의』, 이병천 외 옮김, 아르케 2009. 법적 권리 차원의 citizenship과 시민성 혹은 시민됨으로서의 citizenship에 대해서는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는 논자들이 더 많다. 따라서 이 글에서도 필요한 부분에서만 시민성(citizenship)과 시민적 권리(citizenship rights)를 구별해서 사용하였다.
17) 김홍수영 「시민성을 기준으로 조명한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 노숙인 사례를 중심으로」, 『경제와사회』 2005년 봄호. 장애인의 시민성 문제에 대해서는 본지 이번 호에 실린 김도현 「장애인은 대한민국의 시민인가」를 참조할 것.
18) 권용혁 「민주주의와 소수자」, 『사회와철학』 19호, 2010.4.
19) Talal Asad, “Reflections on the Origins of Human Rights,” A Talk at the Berkley Center for Religion, Peace, and World Affairs, 2009.9.28(https://youtu.be/Vd7P6bUKAWs).
20) 강미옥 『보수는 왜 다문화를 선택했는가: 다문화 정책을 통해서 본 보수의 대한민국 기획』, 상상너머 2014 참조.
21) 서동진, 앞의 글.
22) 2013년 민주당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보수기독교단체들이 “종북게이”라는 용어를 통해 성소수자에게 종북 혐의를 씌운 것은 한국사회에서 소수자와 체제반대자 사이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