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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키즈는 아니지만 괜찮아: 안은별 『IMF 키즈의 생애』

한영인

171220 100정확히 20년 전 이맘때 나는 몹시 들떠 있었다. 미국으로 이민 간 이모를 만나기 위해 엄마가 나와 누나를 데리고 미국행을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해외는커녕 제주도 한번 가본 적 없는 시골의 중학교에서 나의 미국행은 놀라운 사건이었다. 나는 틈만 나면 아이들 앞에서 사회과부도를 펼쳐놓고 코네티컷을 가리켰고―근데 거긴 너무 작아서 지도 속에 정확히 표시되지도 않았다―주위에 몰려든 아이들은 고양이 같은 눈망울을 지으며 혹시 돌아올 때 나이키 티셔츠 한장 사다줄 수 없냐며 은근한 청탁을 건네기도 했다. 철없었던 나는 얼마나 뻐기며 의기양양했던지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홧홧하다. 하지만 부푼 꿈이 깨지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IMF 사태가 터지면서 달러가 껑충 뛰어올랐고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우리는 결국 미국행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나는 친구들에게 실컷 다 자랑해놨다며 울고 불며 매달렸지만 냉엄한 국제경제의 현실 앞에서 엄마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았다.

 

안은별 인터뷰집 『IMF 키즈의 생애』(코난북스 2017)를 손에 쥐었을 때 나는 20년 전의 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바로 IMF 키즈 아닌가.’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이내 좀더 복잡한 의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가령 “‘IMF 키즈’라는 개념의 외연과 내포는 무엇인가?” 혹은 “어떤 공통경험이 나와 비슷한 또래들을 ‘IMF 키즈’로 한데 묶어줄 수 있는 세대적 공속감의 세목을 구성하는가?” 같은 질문들에 나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책 속에 그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는 제시되어 있을 것이므로 나는 곧바로 자세를 고쳐 앉아 책장을 넘겨나가기 시작했다.

 

이 책은 저자 안은별이 나이와 성별, 성장환경과 직업 등이 상이한 일곱 사람의 생애를 인터뷰로 재구성한 것이다. 일종의 문화기술지(ethnography)이자 구술생애사 프로젝트로 분류될 수 있을 이 작업은 그러나 의외로 ‘IMF 키즈’라는 개념을 정교화하는 데 몰두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는다 한들 내가 앞서 제기한 의문들에 대한 답이 풀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 “상이한 그들의 경험에 공통 배경으로 삽입할 수 있는 사건으로서 1997년 IMF 경제위기에 주목”한다고 쓰고 있지만 인터뷰를 읽다보면 과연 IMF가 그 세대를 묶어주는 공통지반으로 기능하는지에 대해 오히려 의문을 갖게 된다.

 

가령 대학교수와 결혼해 중산층의 삶을 살고 있는 치과의사 김마리씨와 대안학교를 자퇴하고 소설을 쓰고 있는 김재욱씨를 비교해보자. 혹은 민족사관고등학교를 나와 뉴욕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김괜저씨와 전남대학교에 입학한 뒤 막노동하며 번 돈으로 술 먹고 피씨방 가는 생활을 즐기다 지금은 광주의 한 문화원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이동석씨의 경우라도 좋다. 이들은 모두 나름의 불안과 위기를 통과하고 있지만 그들의 불안과 위기를 주조해낸 거시적 원인으로서 IMF를 선뜻 지목하기엔 망설여진다. 인터뷰이들의 삶엔 여러 우연과 선택이 교차한 흔적들이 발견되지만 IMF가 그 우연과 선택의 기저에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느낌은 별로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이 책이 “다양한 비판이나 한계에 부딪혀가며 진행되어온 청년세대론의 맥락 위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외려 독자들이 확인하는 것은 세대라는 공통지반이라기보다는 같은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출생환경과 이후 선택에 따라 각기 다른 양상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다.

 

물론 저자가 의식하듯 개인의 경험과 사회적 사건은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다. 그런 ‘결정론’에 붙박일 필요는 확실히 없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적 사건과 개인 사이의 상호 조응하는 측면까지 무시해도 좋다는 건 아니다. 이 책은 ‘IMF 키즈’라는 도발적인 개념을 내걸었지만 사회-문화-경제적 변동을 가져온 거시적 사건과 그 토대 위에서 펼쳐온 개인의 삶 사이의 조응관계를 설득력 있게 구조화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이 책은 실패인가. 어느 정도는 그렇다. 하지만 IMF 키즈라는 개념에 굳이 얽매일 필요가 없다면 이 책은 내 또래의 개인적 역사와 삶의 고민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드는 흥미로운 작업이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내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통찰과 깨달음도 적지 않다. 이 글의 제목을 “ ‘IMF 키즈’는 아니지만 괜찮아”라고 단 이유다.

 

내가 가장 주목해서 읽은 인터뷰는 김남희씨와 김괜저씨의 경우였다. 김남희씨는 IMF 키드라기보다는 ‘황광우 키드’에 가까우며 김괜저씨 역시 마찬가지로 ‘민사고 키드’에 가깝다. ‘황광우의 길’이 개인의 세속적 안정을 부정하며 사회변혁에 헌신할 것을 요구하는 ‘진정성의 레짐’을 구축했다면 ‘민사고의 길’은 소수 엘리트를 육성하여 민족부흥을 도모하고자 했던 또다른 민족 부르주아지의 진정성의 산물이었다. 전혀 다르지만 묘하게 닮아 있는 두 노선에 올라탔던 이들의 고백을 들으며 나는 어쩌면 나와 같은 80년대생들이 그같은 이념적 진정성의 세례를 받았던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나는 저자가 내세운 IMF 키드라는 개념 자체가 허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IMF 키드를 재현하기(represent) 위한 전략적 고민이다. “결국 내가 찾을 수 있었던 건 친구든, 트위터 지인이든, 소개 받은 이들이든, ‘살아남은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 1997년 이후의 세계의 ‘진실’을 가장 분명하게 비춰줄 사람들은 이미 가시권 바깥으로 사라져버린 게 아닐까. (…) 그 IMF 키드의 이야기는 영원히 들을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이런 생각을 가졌던 자신의 “한계”를 이미 알고 있지만 그 한계지점으로 돌아가 작업을 다시 출발시키지는 않는다. 이는 역설적으로 이제 우리가 출발해야 할 자리가 어딘지를 명확히 알려준다. 그것만으로도 책의 가치는 적지 않다.

 

내게도 가시권 밖으로 사라진 많은 사람들이 있다. IMF로 인해 사업이 무너지고 가정마저 해체된 작은아버지는 이후 방황하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때부터 이십년 가까이 나는 사촌누나의 소식을 모른다. 이런 슬픈 가족사가 비단 나의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의 가시권 밖으로 사라진 이들에게 입이 없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이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려는 시선과 그들의 목소리를 재현해내려는 노력의 부재일 뿐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세계를 향해 꺼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더 많은 이야기는 이미 존재한다. 문제는 그걸 듣고 채록할 더 많은 귀와 더 부지런한 손이다.

 

한영인 / 문학평론가

2017.12.2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