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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의 자격, 인간의 자격

엄문희
엄문희

엄문희

공포영화를 잘 보지 못하지만 대개 전개는 이렇다. 어떤 불안하고 두려운 징후가 계속 나타난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다. 그러나 공포를 일으키는 대상은 예측이 어렵고 잘 보이지 않는다. 컴컴한 복도 끝에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 목덜미의 서늘한 숨소리로 온다. 사람들은 겁에 질려 아무것도 못한다. 두려움은 대상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성에 기인한다. 그래서 영화의 절정은 공포를 일으키던 그 대상을 확인하는 장면이 된다. 대상을 확인한 순간, 주인공은 문제 해결에 성큼 다가간다. 두려움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6월 20일. 마침 그날은 세계 난민의 날(World Refugee Day)이었다. 인권연극제에 초대되어 서울에서 지내고 있었다. 일정에 늦어 택시를 탔다가 제주에서 왔다고 했더니 예멘 난민 소식을 염려하는 말이 돌아왔다. 내 친구와 가족도 예멘 난민의 일을 들어 안부를 물었다. 그전엔 중국인 관광객 때문에 비슷한 걱정을 들었다.

 

난민과의 마주침

 

예멘 난민들에 관한 기사는 5월 초에 처음 제주 언론을 통해 나왔다.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을 수용하고 보호해야 하지만 준비가 부족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사증제도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여론이 제주에 돌기 시작했다. ‘불법 난민 부추기는 무사증제도’라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상황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일상의 실감은 달랐다. 많은 이들이 개별적으로 난민들을 위해 할 일을 찾았고, 난민들의 한국어 공부가 곳곳에서 시작됐다. 생활지원을 위한 시민들의 커뮤니티도 생겨났다. 공공의 지원 없이 주민들의 도움으로 ‘제주살이’를 이어가는 예멘 사람들도 있다.

 

제주로 돌아오자마자 한 예멘 가정을 만나게 되었다. 그 가정은 내 친구의 집에 머물고 있는 일곱 식구 대가족이다. 친구들의 제안으로 마을미술관에서 이 가정과 함께 예멘 음식으로 ‘하루 식당’을 열었다. 소소하지만 중요한 실험이었다. 자립하기 위해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일로 식당을 생각해낸 것이었다. 부엌에서 어머니가 큰딸과 함께 주요리를 하는 동안 다른 두 딸이 밀가루 반죽을 동글게 빚어 눌러 예멘 빵을 만들었다. 아버지는 재료를 사러 다녔다. 가장 어린 두 아이는 이제 막 배운 한국어 몇마디로 동네 아이들과 놀았다. 밥을 먹기 전 예멘 친구들과 노래를 불렀다. 음식 만드는 일부터 뒷정리까지 많은 손이 모였고, 직접 오기 어려운 사람들은 십시일반 후원금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 예멘 가정과 가까이 지내며 이 식당을 내게 제안한 친구는 타이완 사람이다. 그 역시 낯선 땅에 정착하며 우리가 헤아리지 못한 시간을 거쳐온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어느 만큼씩 사회적 난민 상태를 경험하거나 정체화한다는 것도 새롭게 알았다.

 

내가 사는 강정마을은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이유로 사람들이 들어와 사는 마을이다. 육지에 살던 사람들의 이주가 낯선 일은 아니지만, 강정은 조금 다른 경로를 가졌다. 그들은 강정의 문제에 당사자가 되어 싸웠고 해군기지 완공 후에도 주민으로 남았다. 그러나 공권력은 외부세력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주민들과 끊임없이 분리하고, 자격 없는 국민으로 몰아붙였다. 사회적 경쟁에서 낙오한 인간군상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 마을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떠날 사람처럼 취급되는 배경엔 존재의 자격을 묻는 검열이 있다. 나 역시 검열을 경험했다. 여러 자격을 질문받아야 했다. 아이들만 데리고 강정에 이주한 여성으로서 기존 사회가 허용하는 가족체계를 흔든다는 혐의도 받았다. 예멘에서 온 그들에게 붙는 논란의 핵심도 그러하다. 그들의 ‘자격’이다. “진짜 난민인가?”

 

현실이 된 만남을 직시해야

 

우리는 모두 어느 만큼 사회적 난민의 가능성을 안고 산다. 급속한 변화의 뒤편에 존재하나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사회적 난민은 얼마나 많은가.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사회에서 개인이 처한 심리적 난민 상태는 또 얼마나 흔한가. 우리가 미처 몰랐을 뿐 삶의 터전을 잃고 난민이 되는 일은 현재에도 빈번하다. 제주 제2공항 예정부지에 속한 제주 서귀포 성산읍 난산리엔 이런 현수막이 붙어 있다. “전쟁도 없이 우린 난민 신세”.

 

낯선 사람, 불확실한 존재를 환대하는 경험이 우리에겐 부족했다. 국가와 생각이 다른 목소리를 차단하고, ‘종북 빨갱이’라는 말이 일상언어가 된 지금의 한국사회가, 예멘에서 온 사람들을 환대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무리다. 이 사회를 유지해온 경쟁주의, 차별과 희생의 시스템, 혐오를 힘으로 하는 정치적·사회적 감각 속에서 불신이 첫 반응인 것은 어쩌면 예고된 일이다. 그러나 ‘만남’은 성큼 현실이 되었다.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외부인’을 ‘생산’하고, 그 외부인을 자격미달로 확증하기 위해 혐오를 재생산하는 우리를 스스로 의심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어쩌면 어두운 복도 저편에서 뚜벅뚜벅 걸어오는 공포의 정체를 확인해야만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공포는 그들의 방문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그들이 저지를지 모른다는 어떤 일도 마찬가지다. 인간에게 자격을 요구하는 이 사회의 본질적인 허약함, 인간에게 자격을 묻는 존재의 자기분열이야말로 공포가 시작된 지점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그 공포의 정체를 마주하는 일은 세상 모든 존재와 함께 살아가는 운명공동체로서의 자각일지도 모른다.

 

마을에서 ‘하루 식당’이 열리는 동안 예멘 가정의 어린아이들은 동네 고양이와 놀았다. 해군기지 건설 이후 마을에 불어닥친 건설 광풍으로 서식처를 잃고 헤매는 길고양이들이 마을에 많다.

 

엄문희 / 제주 강정마을미술관 ‘문’ 활동가

2018.6.2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