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 출입처 관행부터 바꾸자

송현주
송현주

송현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면 뉴스가 더 정확하고 공정해질까? 뉴스의 품질이 좋아지면 언론을 더 신뢰하게 될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권력이 언론을 강력하게 통제할 때는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기도 하고, 자유로운 언론이 왜곡과 허위보도를 일삼는 역설도 심심찮다. 뉴스가 정확하고 공정해도 수용자의 비판의식이 날카로워지면 신뢰도가 하락할 수 있다. 우리의 경험만 보자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하에서 언론의 자유는 위기에 처했었다. KBS·MBC·YTN의 파업, 기자들의 대규모 해직과 유배, 뒤이은 엉터리 뉴스의 범람과 신뢰 추락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언론의 자유와 품질, 신뢰도 하락의 악순환은 언론인과 수용자를 대상으로 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례조사 결과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들어서는 언론인과 수용자 모두 우리 언론이 충분한 자유를 누린다고 평가했지만 언론의 정확성과 공정성에 대한 평가와 신뢰도는 여전히 바닥이다. 이전 정부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위기였다면 지금은 언론 자체가 위기에 빠진 것이다. 물론 언론의 위기가 새로운 진단은 아니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기성언론에 대한 문제제기가 총체적이고 전면적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관행에 대한 비판이 자리 잡고 있다.

 

언론의 관행은 취재와 보도 전반에 걸친 제작공정을 말한다. 어디서 누구를 만날지, 취재된 사실 중에서 무엇을 선별해 어느 정도 중요하게 보도할지, 그리고 사실을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할지 등과 관련된 표준화된 지침이 곧 관행이다. 널리 알려진 출입처와 취재원, 뉴스가치, 그리고 공정성이나 객관성 등은 중요하고도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그런데 언론 관행은 오랜 기간 반복된 경험으로 굳어진 것이고 언론의 전문 영역이라고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취재원·수용자·언론 3자 간의 견제와 균형의 긴장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언론 관행이 비판받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이 3자관계에서 언론이 주요 출입처의 취재원, 이른바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밀착한 정도가 임계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독자나 시청자들이 보기에 언론은 힘있는 취재원이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하고, 그들의 시각에서 중요도를 결정하며, 그들의 의견이나 입장을 중심으로 기사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된 출입처 관행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출입처 관행은 취재 및 보도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뉴스가치나 공정성 못지않게 중요한데, 단순하게 말하면 언론이 취재 영역을 나누어 지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주요 출입처에서는 대변인 같은 공식 취재원을 두기도 하고 기자실 같은 각종 편의를 제공하면서 기자들과 수시로 접촉한다. 그 의도는 물론 언론보도에 자신의 관점과 이해관계를 반영시키기 위해서다. 언론 또한 기자단을 운영하면서 폐쇄적인 카르텔을 형성하기도 하고 이른바 ‘단독’이라는 독점보도를 위해 취재원과 더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명분은 더 중요한 사실을 보도하겠다는 것이지만 실제 이 과정에서 비판과 감시의 대상인 권력자의 관점과 입장에 동화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특히 고급정보를 독점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외교·안보나 범죄수사 관련 출입처에서는 취재원이 언론을 지배하는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는데, 최근 조국 전 장관과 그 가족에 대한 일련의 보도는 검찰과 언론의 수직적 밀착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KBS는 조국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의 자산관리인인 김경록 PB의 인터뷰 당시 검찰 시각에 치우친 보도 행태를 보여 홍역을 치르기도 했는데, 급기야 KBS 신임 보도국장이 출입처 제도 폐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KBS의 판단은 출입처 관행에 대한 수용자들의 비판을 일정 정도 받아들인 것으로 파격적이기는 하지만 언론 일반의 각성과 반성의 결과라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현실은 정반대에 가깝다. 기자들은 주요 취재원과의 관계가 과거에 비해 끈끈하지 못하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다. 예전처럼 한 기관에 오래 출입하지도 않고 취재원과 수시로 회식이나 술자리를 갖지도 못하는 게 원인인 듯하다. 김영란법과 주 52시간 근무가 이런 경향을 가속화했다. 상호 신뢰가 돈독해야 얻을 수 있는 고급정보가 없으니 알맹이 없는 뉴스만 양산된다는 것이다. 위기의 실체는 바로 여기에 있다. 독자와 시청자는 언론과 주요 출입처 취재원이 지나치게 밀착돼 있다고 비판하는데, 정작 언론은 취재원과 멀어지는 걸 걱정하고 있다. 이런 관행은 언론의 문화가 되기도 한다. 출입처의 주요 취재원에게서 얻어내는 독점적 정보가 단독보도가 되는 관행이 수십년에 걸쳐 반복되면, 결국 취재원과의 밀착도가 언론인의 능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고 성공의 자산으로 평가되며 하나의 집단문화로 굳어지게 된다. 때로는 경력이 끝날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권력자들이 한사코 숨기려고만 하는 정보를 찾아 헤매는 탐사보도(investigative reporting)보다는, 권력의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를 받아쓰는 내부자 보도(insider reporting) 전문 언론인이 승진의 영광을 누리고 후배 언론인의 롤모델로 존경받는 현실은 출입처 관행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해법은 비교적 간명하다. 언론의 입장에서는 출입처 제도를 혁파하면 된다. 물론 뒷감당이 쉽지 않다. 출입처가 없다면 당장 사무실을 나선 기자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누굴 만나야 하는가? 취재 관행은 최종적으로 언론 스스로 결정할 문제다. 다만 밀착은 쌍방향적이기 때문에 출입처와 취재원이 결단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기자실을 매개로 한 일상적 접촉이 아니라 정례적인 브리핑 형식으로 취재 응대 방식을 전환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언론 관리를 통해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려는 욕망을 포기해야 한다. 동시에 언론의 자유,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려면 공개할 수 있는 정보는 대단히 투명하게 제공해야 한다. 이 또한 대단히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법무부의 공보준칙 개정이 한걸음이고 KBS의 실험도 한걸음이다. 그 걸음이 요란한 마무리가 아니라 작은 시작이길 기대한다.

 

송현주 /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2019.11.13.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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