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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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동 金聖東

1947년 보령 출생. 1975년 『주간종교』로 등단. 소설집 『피안의 새』 『오막살이 집 한채』 『붉은 단추』, 장편소설 『만다라』 『국수(國手)』 『꿈』 등이 있음. mahaksd@hanmail.net

 

 

 

민들레꽃반지

 

 

칼바람 소리만 귀를 물어뜯는 것이었다.

한참 동안 아무것도 없는 하늘만 바라보다가 얼크러지고 설크러진 고무딸기 가시며 두릅 가시 피하여 발몸발몸 아래채 뒤란 돌아 부엌켠 흙벽에 귀를 대어보던 김씨는 흡, 숨을 삼키었다. 우우— 우우— 아우성치며 달음박질쳐 가는 골바람 소리만 귀를 물어뜯는 것이었고,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다시 한번 숨을 삼키며 귀를 붙여보았지만 부엌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고, 큰일 났구나. 졸졸— 졸졸— 눈자라기(아직 꼿꼿이 앉지 못하는 어린아이) 오줌발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일망정 물 나오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것이니, 마침내 아래채마저 수돗물이 끊어져버린 것이었고, 아아. 세굴차게 도머리치던 김씨는 어금니에 힘을 주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군데군데 금이 가고 파여 식은 떡덩어리 같은 거스렝이가 일어나는 흙장판 위를 발몸발몸 걸어 개수대 위에 달린 수도꼭지를 바라보았다. 어제저녁에 받쳐놓았던 비닐 자수통에는 물이 가득하였고, 그렇다면 오늘 아침에 끊어졌다는 말인가? 에멜무지로 수도 손잡이를 올려보는데, 푸앙— 푸앙— 물애기가 옹알이는 것 같은 소리가 나더니 눈자라기 오줌발처럼 떨어져내리는 물인 것이었고, 살았구나. 어머니가 또 수도꼭지를 내려버린 것이었다.

“왜 대이구 수도꼭지를 내린대유. 그러지 마시라니께 증말.”

“아까워서 그려.”

“아깝다뉴?”

“아깝잖여. 아깐 물 버리넌 게.”

“그나마 여긔까지 물 끊어지먼 워척헐라구 대이구 잠군대유, 잠구길.”

“무섭잖여.”

“뭐이가 무섭대유?”

“수도세. 수도세가 월매나 무선디.”

“새꼽빠지게 뭔 말씸이래유?”

“아, 수도세가 월매나 무선디. 다락같이 올러만 가넌 물간디, 수도세락두 애껴야지.”

“여— 수도물이 아니잖유.”

“물 한방울이 피 한방울인디. 사꾼덜헌틴 물이 디. 아, 예전 육니오 때 야산대 사람덜 보니께 토굴 속이 숨어서 물 떨어지니께 심설 자긔 오줌을 받어 먹더라니께. 물이란 게 자고루 한울님인겨.”

“아이구, 어머니. 흘러가넌 물이라 갱긔찮다니께 그러시네. 아, 우덜이, 젤 꼭대기 사넌 우덜 집이서 물을 흘려줘야 저 아랫말 군덜두 사를 짓넌다니께 그러시네.”

김씨는 들창문을 닫고 창호지가 찢겨 너덜거리는 덧문을 닫았다. 그리고 보일러실에 들러 어머니방 칸에 파란불이 켜 있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나서 물매진 언덕길을 올려다보며 어금니에 힘을 주었으니, 아득한 것이었다. 한 이십미터쯤밖에 안되는 가까운 거리인데,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물매가 심한 것이야 산등성이를 까뭉개고 앉힌 집이라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잣눈 덮힌 길 한쪽 가생이로만 길을 뚫어놓았는데 유리알처럼 미끄러운 빙판길 위로 뿌려진 자욱눈이어서 여간 바드러운 것이 아니다.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다닐 좁좁한 가생이길 옆으로는 애두름이 이어졌는데 창날처럼 뻗쳐나온 가시나무들이다. 아무리 급하다고 하더라도 손 뻗쳐 잡아볼 것 하나 없고, 오늘두 안 올 모냥일세. 눈자라기 오줌발 같을망정 아직은 물이 나오니 살았지만 부르르 한번 진저리를 치고 나서 바지 단추를 여미는 아이처럼 그나마 물이 끊어져버린다면, 아흐. 죽음이라고 부르자.

화불단행(禍不單行)이요 복무쌍지(福無雙至)라든가? 나쁜 일은 홑으로 오지 않고 좋은 일은 겹쳐서 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아래채마저 물은 마침내 끊어질 수 있다. 아니, 끊어질 것이다.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가 지났어도 무슨 조홧속으로 날은 더욱 추워지기만 하니, 그렇게 될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 혼자 몸이라면 하루에 라면 한봉다리씩만 끓여 먹으며 날이 풀릴 때까지 어떻게 견뎌볼 수도 있겠지만, 어머니를 어떻게 할 것인가? 방을 얻으려면 마을로 내려가야 한다. 그러나 언젠가 전 이장한테 들은대로 마을에 군식구 들일 만한 여윳방 있는 집은 없는 것 같았고, 그렇다면 소재지로 내려가야 한다. 십리쯤 떨어진 마을에서 십리쯤 더 가야 소재지가 나오는데, 변변한 여관은 그만두고 여인숙도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면 민박을 들어야 하는데, 달세가 사십만원이라던가. 그것도 몇해 전 이야기니 이제는 더 올라서 아마 오륙십만원은 달라고 할 텐데…… 좋다. 민박집 방을 얻어 들어간다면 매끼를 사 먹을 수는 없는 일이고 방 안에서 밥을 해 먹어야 할 텐데 우선 솥단지와 밥그릇은 어떻게 하나. 이 그릇들을 챙겨 내려갈 수도 없는 일이고, 반찬은 또 어떻게 하나. 명색이 면소재지라는데 이지가지 젓갈과 김치 깍두기에 무엇보다 싸전이 없으며 그리고 목욕탕이 없다. 전에는 쇠시장이 섰던 대처여서 색시 둔 술집에 따기꾼이며 노름꾼에 깡패까지 득시글거렸다는데 옆댕이로 강원도 가는 고속화도로가 뚫리면서부터 바짝바짝 오그라들어가는 소재지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아직도 닷새마다 한번씩 장이 서기는 하나 장꾼보다 장사꾼이 더 많다. 살 만한 게 별로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농협에서 세웠다는 하나로마트인가 하는 데서 비닐봉다리에 든 동태도막 갈치도막도 사고 청양고추며 콩나물에 두부서껀 그리고 비닐봉다리에 든 쌀이며 보리쌀에 검정 서리태도 사는데, 목간을 하려면 시외버스를 타고 한 삼사십리는 나가야 한다. 똑같은 면소재지지만 그곳에 가면 사람도 많고 없는 것이 없다.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지는 사우나탕에 온탕 냉탕이 따로 있는 목간통만 두군데이니, 꼭 강남에 간 것 같다. 같은 장날이라도 그곳에만 가면 없는 것이 없다. 매일같이 먹는 배추김치, 겉저리김치, 파김치며 총각김치, 깍두기에 물김치와 고들빼기김치까지 살 수 있고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인절미는 물론이고 송편에 절편, 시루떡이며 백무리까지 언제라도 살 수 있다. 한봉다리에 이천원씩이니 만원 주고 다섯봉다리만 사면 효자에 더해 부자가 된 것 같다. 손으로 빚은 두부며 도토리묵에 새각시 볼따구니 같은 홍시감에 밤, 대추며 주전부리 할 막과자와 제과점 생과자에 통닭이며 갓 쪄낸 호빵도 있으니 먹을거리는 그곳에서 사 나르면 되지만, 골칫거리는 돈이다. 쩐. 허나 또 어쩌겠는가. 마이너스통장을 헐어서라도 버틸 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이고, 한달이면 되겠지. 아무리 충청도에서 사과가 열리고 서울에서 대나무가 살아가는 이상기온이라지만 한달만 버티면 얼음이 녹으면서 물이 쏟아지겠지.

맘밑을 눅이면서,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는 김씨가 정작으로 막막해하는 것은 어머니다. 어떻게 어머니를 모시고 내려가느냐는 것이다. 어녹이치는 빙판길 이백여미터를 내려가는 데 십오분은 걸린다. 발몬발몬 조심조심 꼭 잠자리 잡으려는 아이처럼 게걸음쳐 내려가야 되는데 아무리 조심을 한다고 해도 한두번은 꼭 엉덩방아를 찧는다. 비록 다 털어낸 깻단 같은 몸피여서 한주먹밖에 안된다지만 어머니를 업고 내려가볼 자신이 없다. 젊은 뼉다귄디, 돌팍두 씹어 색일 젊은 뼉다귄디, 그깐느 호박죽 한그릇 더 뭇 색인댜. 맛있는 별미라며 당신이 키워 쑨 호박죽을 자꾸만 더 먹으라고 했을 때 사양하자 어머니가 했던 소리다. 어머니가 돌멩이라도 씹어 삼킬 수 있는 젊은 뼈다귀라고 하는 김씨도 이제는 경로우대석 처지다. 어쩌다 서울에 갔을 때 전철을 타면 떳떳하게 노약자석에 앉아도 되는 법정연령이 된 것이다. 예순다섯살. 일흔 아니 일흔다섯은 되어야 겨우 노인 취급을 해주는 세상이 되어 예순다섯이면 경로당에서 아이 취급을 받는 나이라지만 어쨌든 노인은 노인인 것이다.

그렇다면 손을 잡고 내려가야 하는데 또한 자신이 없다. 자가 넘게 쌓여 있어 미끄럽지 않은 쪽으로 내려가면 될는지 모르지만, 해산미역이 되어버린 극노인이 어떻게 그 눈구덩이를 헤쳐간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업고 내려갈 사람을 구해야 되는데 누가 그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이백미터쯤 내려가면 대문인데, 택시가 거기까지는 안 온다. 눈이 조금만 쌓여도 헛바퀴만 돈다며 오지 않는다. 대문에서 다시 삼백미터쯤 내려가야 비로소 콘크리트로 포장된 일차선 농로가 나오는데 또한 어떻게 내려간다는 말인가. 택시 운전사한테 부탁하면 들어줄까? 물론 시간이 돈인 사람들한테 아무리 극노인이라고 해도 삼백미터를 눈구덩이 뚫고 올라와 업고 내려가달라고 할 수는 없으니, 삯을 줘야겠지. 택시비가 소재지에서 대문 앞까지 왕복 이만원이니, 왔다 갔다 하는 시간비에 업어 나르는 삯까지 쳐줘야겠지. 이만원쯤이면 될까? 콜비까지 합쳐 한 사만원이면 될라는가? 택시 운전사한테 어떻게 조닐로(제발 빌어서) 부탁을 해볼 수는 있겠지만, 골칫거리는 어머니다. 어머니를 어떻게 대문까지 모시고 내려간다는 말인가. 모래밭 지나가는 긴짐승처럼 구불텅구불텅 물매 심한 이백여미터를 무슨 재주로 내려간다는 말. 내려가는 것도 그렇지만 매일같이 되풀이되는 싱갱이에 영 진력이 나는 김씨였다. 적어도 하루에 한번씩은 꼭 어머니 방을 들여다보는 김씨인데, 그때마다 되풀이되는 일이다.

“지발덕분 불 점 꺼줘.”

“예에?”

“지발덕분 불 점 꺼달라니께. 여 시방 뜨거서 발을 댈 수 다니께.”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 김씨는 어머니 방으로 들어가보았는데, 그러면 그렇지. 발끝을 타고 올라오는 냉기를 밀어내고 요 밑에 손을 넣어보면, 사위어가는 난로처럼 밍그지근한 것이었다.

“워뗘? 뜨겁쟈? 손두 뭇 느케 팔팔 끓잖여.”

“뜨겁네유. 손두 뭇 느케 팔팔 끓넌구먼유.”

뒤란에 있는 보일러실로 간 김씨는 온도를 더 올렸는데, 장 되풀이 되는 일이었다. 그때도 그러하였다.

“불 점 줄여줘. 단내가 막 나잖여. 까스불이 뭘 올려놨나 싶어 이루 대이구 가볼 만침 단내가 막 난다니께.”

삼십여년 전이었다.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면 낭월리 속칭 뼈잿골 옆댕이에 살 때였다. 아버지 백골이 묻혀 있을 뼈잿골이 건너다보이는 산자락 마을에 스물다섯평짜리 양옥집을 지어 어머니를 모시고 살 때였다. 그때에 김씨는 본채 위에 댓평쯤 되는 사랑채 명색을 들여 살고 있었는데, 방이 뜨겁다는 것이었다. 그때도 칼바람 몰아치는 한겨울이었는데 방이 뜨거워서 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깜박 잊고 온도를 최대치로 올려놓았나 싶어 보일러실로 달음질쳐 가보았는데, 빨간불이었다. 불이 들어가지 않는데도 자꾸 방이 뜨거워 못 살겠다는 것이었고, 숫제 보일러를 꺼버렸다. 그런데도 여전히 방이 뜨겁다는 것이었고, 별꼴이다 싶어 들어가 봤더니 진짜로 방이 펄펄 끓고 있었다. 밤새도록 참나무 장작 지펴 쇠죽을 끓여내던 예전 시골 머슴방처럼 펄펄 끓는 것이었다. 심야전기 보일러를 아무리 온도 높여 땐다고 하더라도 그처럼 펄펄 끓는 방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니,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어머니가 주무시는 안방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펄펄 끓어오르는 것이었고, 이것이 무슨 조홧속이라는 말인가? 겁이 난 김씨는 알고 지내던 사이인 그 고장 무슨 공업전문대학 교수한테 말하였고, 보일러에 빠삭한 도사들이라는 전문가 두명이 출장을 나왔다. 기계공학 전공이라는 그 전문대학 교수들은 한시간이 넘게 보일러를 짯짯이 살펴보며 온도를 올렸다 내렸다 해보았는데, 마찬가지였다. 손잡이를 올려도 방은 뜨거웠고 손잡이를 내려도 방은 뜨거웠다. 이마에 깊은 골을 파며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들은 숫제 계량기 전원을 꺼버렸는데,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시 또 보일러를 짯짯이 살펴보고 방으로 가보기를 몇차례 되풀이하던 그들은 말없이 김씨를 바라보았는데, 공포를 먹은 낯빛이었다. 공구가방을 챙겨들고 보일러실을 나서며 그들이 한 말이었다.

“이건…… 우리가 아는 기계공학으로 해명될 사안이 아닌 것 같습니다.”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방이 뜨거우니 기름값이 안 들어 좋기는 했지만 이게 무슨 조홧속인가 싶어 어쩔 줄 몰라하던 김씨는 턱끝을 주억이었으니, 아버지! 아버지인 것이었다. 아버지 넋이 오신 것이었다. 피 같은 기름값이 아까워 동동거리는 당신 각시가 안쓰러워 기름을 때지 않아도 방이 뜨거워지게 한 것이었다. 더구나 당신이 마지막 숨을 거두었던 곳이 건너다보이는 곳으로 와 집을 짓고 살며 아침저녁으로 정화수 떠놓고 비손하는 당신 각시를 추위에 떨게 해서는 안될 것이었다. 그렇게 풀쳐생각할(맺혔던 생각을 풀어버리고 스스로 위로함) 수밖에 없는 김씨였는데, 그해 겨울이 끝날 때까지 어머니 방은 식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경우가 다르다. 아니, 경우가 다르고 무엇이고 할 것 없이 무엇보다도 먼저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눈자라기 오줌발처럼 졸졸거리며 찔끔거리는 물일망정 끊어지지만 않는다면 밥을 지어 먹을 수 있고 위채에서는 힘들지만 아래채에서 받아다 먹으면 된다. 물이 나오지 않아 첫째로 두려운 것은 보일러를 켤 수 없다는 것이다. 보일러실 물통에 물이 차 있어야 보일러가 돌아가며 그 물이 덥혀져 방 밑으로 깔아놓은 파이프를 타고 흐르면서 방이 더워지는 것인데, 아흐. 수도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 위채는 보일러 물탱크에 사다리 걸치고 올라가 손을 넣어보니 손이 적셔지는 것이어서 적어도 올겨울은 물이 더 올라가지 않아도 보일러를 돌리는 데 아무런 하자가 없을 것이고, 아래채가 골칫거리인 것이다. 그런데 물이 얼마나 담겨 있는지 알아보려고 아무리 보일러실을 둘러봐도 물탱크가 보이지 않는다. 물탱크처럼 생긴 쇠통이 있어 열어보았더니 무슨 단추 같은 것만 여러개 달려 있지 아무리 짯짯이 톺아봐도 물이 담겨 있을 두멍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은 물탱크만이 아니다. 이른바 컴본주의 세상이 되어서 그런지 편지도 보이지 않는다. 얼추 다 전화로 하거나 문자를 날리지 편지라는 것은 거의 사라져버렸다. 있다고 해도 무슨 기계로 찍은 것이지 어지간해서는 펜을 들어 종이에 쓰지 않는다.

우편함은 위채에서 이백미터쯤 밑 녹슨 철대문 바로 안쪽에 놓여 있었다. 플라스틱 옷상자로 된 우편함을 열어보던 김씨는 낙이 없는 얼굴이 되었다. 이미 구문이 되어버린 어제치 신문 한부만 달랑 들어 있을 뿐이었다. 물매가 심한 이백미터를 올라가려면 어제가 다르게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어서 김씨는 늘 올라가면서 구문을 펼쳐들고는 하였는데, 얼라! 신문지 틈에 끼워져 있던 무슨 편지 한통이 툭 하고 떨어지는 것이다. 집어보니 수신인이 ‘한전희’로 되어 있었다. 한전희라면 어머니 함자인데 누가 보낸 편지라는 말인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차례도 어머니 함자 앞으로 된 편지가 온 적이 없었다. 발신인은 그냥 ‘○○ 1234부대’라고만 되어 있었다. ○○은 김씨가 머무는 곳 바로 옆댕이에 있는 군 이름이었고, 꼴이 반쪽일세. 군부대서 어머니헌티 지가 다 오구? 내용물은 더구나 야릇하게도 천연색으로 된 사진이 앞뒤로 박혀 있는 한장짜리 무슨 전단지 같은 것이었다. 「625 전사자 유해 소재 제보접수」라는 제목이었다. ‘육군 병장 아무개’라고 새겨진 빗돌 앞에 하염없는 얼굴로 앉아 있는 허연 수염발에 중절모 쓴 영감님과 온갖 깃발 든 국군 의장대며 ‘국방부 유해발굴 감식단’이라고 써진 무슨 가죽점퍼 같은 옷을 입고 확대경처럼 생긴 기구로 해골을 비춰보고 있는 모습, 그리고 ‘육군 하사 아무개’라고 새겨진 빗돌 앞에 태극기 들고 아그려쥐고 있는 어린이 모습이 박혀진 천연색 사진 아래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 마을의 이름 모를 산하에서 625전쟁 시 나라를 지키시다 목숨을 바치시고 묻히신 선배전우들을 가족의 품으로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김성동_민들레꽃반지_01

 

 

 


제보접수 담당/연락처

       0267-보여단 주임원사 최철재: 0119705-XXXX

       0222-기보대대 주임원사 석지류: 0112805-XXXX

전화 인사참모처: (301) 0770016~5

 80기계화보병사단

 

뒷면에는 무슨 군번줄 같은 것을 손가락에 끼고 눈물을 흘리며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 얼굴과 태극기에 덮인 유골함 같은 그림이 깔려 있는 위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 마을의 이름 모를 산하에서 625전쟁 시 나라를 지키시다 목숨을 바치시고 묻히신 선배전우들을 가족의 품으로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김성동_민들레꽃반지_02

 

 

 

 제보접수 담당/연락처

       ○중령 남병금: 0104805-XXXX

       ○대위 이혁진: 0104805-XXXX

       ○전화 인사참모처: (130) 0770016~4

20기계화보병사단

 

어머니 앞으로 온 그 편지가 아닌 공지사항을 들여다보던 김씨 낯에 핏기가 사라졌으니, 왜 이런 것을 보내왔다는 말인가? 625 때 인민군 손에 죽은 국방군도 아니고 자위대 손에 죽은 악질반동 하이도 아니며 더구나 625가 일어나기 해 반 전에 예비검속으로 잡혀갔다가 625가 터지던 해 7월 첫때쯤 학살당한 남편을 둔 아내한테. 그것도 그냥 여느 아내가 아니라 남조선로동당 외곽단체인 남조선민주여성동맹 면당 위원장을 지내며 ‘공산세상을 이루고자 견결히 투쟁해온 사람’한테. 이른바 국가보안법에 걸려 6년 징역을 살았고 더하여 한차례 집행유예 전과까지 있는 사람한테. 이른바 ‘국보 전과’까지 있는 사람한테. 거처를 옮길 때마다 반드시 찾아오는 매롱매롱한 눈매의 신사복들로 봐서 강고한 연좌제의 쇠사슬에 동여매져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김씨였다. 연좌제에 묶인 사람들 가운데서도 아주 기분 거시기한 경우였으니, 육군 기무사령부 소속이었던 것이다. 서울과 경기도와 강원도는 ‘접적구역’에 가까우므로 군 정보기관에서 관리하고 충청도와 전라도와 제주도에 사는 사람은 국가정보원에서 관리한다는 것이다. 연좌제면 다 똑같은 것으로 알고 있던 김씨로서는 운동권 출신으로 무슨 혁신정당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한테서 그 이야기를 듣고는 영 후꾸름한(으스스한) 기분이었던 것이다. 관리 대상자의 신상명세가 입력된 프로그램이 오작동을 일으킨 것이라면 더구나 우스운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연좌제에 걸려 있는 사람이 625 때 전사한 국방군 전몰장병 유가족으로 바뀔 수 있다는 말인가? 이른바 남조선 국가정보기관에 있다는 자들의 엉터리 같은 업무 태도에 쓴웃음을 짓던 김씨가 정작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적바림이었다. 공식적으로는 이른바 연좌제라는 말도 안 되는 악법이 없어진 지 삼십년이 다 된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더욱더 완강하게 관리되고 있었으니, 이만명이라고 하였다. 1026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청와대 경호실장이라는 자가 “우선 이만명만 처단하면 된다. 쓸어 없애야 할 진빨 이만명만. 캄보디아 폴포트 정권에서는 이백만명을 죽였다는데, 까짓것 가빨까지 합쳐 모두 이십만명쯤은 조족지혈이다”라고 했다는데, 무엇보다도 먼저 ‘쓸어 없애야 할 진빨’들인 그 이만명이라는 숫자는 어디서부터 나온 것일까? 815 직전까지 계급해방을 이룬 바탕 위에서 민족해방을 이루고자 뜨겁게 싸웠던 좌익쪽 인사들이 이만명이었고 그 반수가 감옥에 있었다고 하는데, 거기서부터 나온 숫자인가? 어떤 권력자가 처단하겠다는 이십만명 가운데 가장 악질적인 공산주의자는 이만명이라는 것이었다.

 

하기야, 김씨는 생각하였다. 온갖 이상하고 또 요상한 기술이 자꾸 늘어나는 세상이라 보일러도 자꾸 신형이 나오니 요즈막은 물탱크 없이도 방이 더워지는 새로운 보일러가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십리쯤 밑 마을에 있는 예전 이장한테 전화를 하였더니 자기는 보일러 관계는 잘 모른다면서 일러준 소재지에 있는 어떤 철물점에 전화를 하였다. 철공소 주인 말이 위채는 구형 보일러인 것 같은데 탱크에 물이 가득하다니 염려할 것 없고 아래채 것은 신형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직접 살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철공소 사람을 부르면 적어도 출장비는 주어야 하므로 하루에 세번만 다니는 마을버스를 타고 소재지로 갔다. 전화로 물었을 때 주인 영감은 직접 보지 않고서는 무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했고, 그러면 보일러 기술자라도 소개해달래서 알게 된 전화번호였다. 몇번을 걸어보았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었고, 겨울이면 보일러 기술자들이 세가 난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눈앞이 캄캄하였는데 전화가 왔던 것이다. 철공소 주인이 전화로 김씨집 사정을 말해주었던 모양이었다.

“갈훈리 어디라고요?”

손전화기를 귀에 대자마자 들려오는 소리였고, 마침 늦은 아침을 먹느라고 입 안엣 것을 씹던 김씨는 말하였다.

“예에? 뉘신지이?”

하고 물었고, 곧바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수돗물이 안 나온다고 하셨잖아요.”

“아, 예에.”

안엣 것을 꿀꺽 삼키고 난 김씨는 말하였다.

“갈훈리가 아니구 갈현린데유.”

“갈현리 어디쯤이지요?”

“우벚고개라구 있잖남유, 븝화사란 절 있넌디 위쪽.”

“그쪽은 안 가봤는데요.”

“아, 예에. 찾기 쉽거던유. 소재지서 읍내켠이루 오다보먼 갈현리 들어가넌 이정표가 있잖유. 거긔서 한 칠팔키로 쭈욱 오다보먼 포장이 끊나먼서 븝화사라구 돌팍이다 새겨논 게 있넌디, 거긔서 포장이루 한 삼백메다쯤 올러오먼 바른켠이루 녹슨 철대문이 있넌디 찾기 쉬어유.”

“거기서 다시 전화하지요.”

“아뉴. 지가 마중나갈 테니께 동네 들올 때 즌화 주세유.”

보일러쟁이가 세가 난다는 말 듣고 소재지 철공소에 갔다온 지 사흘째 되는 날 낮전이었다.

“안되겠는데요.”

“예에?”

“내가 가지고 있는 기계론 한 이삼메다밖에 뚫어볼 수 없는데, 여기 수도 뽑아논 거 보니까 아무래도 땅을 파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겠는데요.”

“땅을 파서래두 물이 나오게 해야지유.”

김씨 목소리에 힘이 빠지는데 보일러쟁이는 픽 하고 콧소리를 냈다.

“땅을 누가 파요?”

“땅을 누가 파다니?”

보일러쟁이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김씨를 바라보았다.

“땅이 꽝꽝 얼어붙어서 아무도 이런 때는 일을 안하려고 한다 이런 말씀이지요.”

“날삯을 주넌디두 일을 안헌단 말유?”

“사장님도 참. 요새는 이런 일 하려는 사람 없어요.”

“이 사람은 사장이 아닌데유.”

깜짝 놀라 손사래 치는 김씨에게 웃음기를 보이는 보일러쟁이였다.

“그런데 날삯이란 말이 무슨 뜻인가요?”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물었고, 김씨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조선 사람이 날삯이란 말두 물르슈?”

“처음 듣는 말 같아서……”

“하루 일헌 품삯을 말허넌 거유. 하루 품삯.”

“아, 일다앙!”

“일당은 왜말이구 날삯은 우리말이지. 날품이나 날품삯이라구두 허구.”

김씨가 혼잣말처럼 말하는데 보일러쟁이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말하였다.

“파이프 열어보는 건 날 풀린담 하더라도 우선 물이 나와얄 테니……”

실개울 건너편 애두름으로 길게 드리워진 플라스틱 파이프 몇군데를 출렁여보던 보일러쟁이가 말하였다.

“파이프나 몇군데 잘라보지요.”

“빠이뿌를 짤르다뉴?”

“파이프가 얼어서 그런 것 같으니 잘라놓고 물을 받아다라도 쓰셔야지요.”

“빠이뿌를 짤르넌 것 말구는 뭔 방법이 으까유?”

“없음다. 파이프 자르는 것도 사장님보다 내가 해드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아 그러니, 무슨 톱 같은 것 있으면 갖다주세요.”

“난 사장이 아니라니께유.”

김씨가 말하였는데 보일러쟁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김씨는 집 안에서 접이톱을 찾아가지고 나왔다. 당뇨와 관절염 잡는 데는 동쪽으로 뻗은 소나무 뿌리 넣고 담근 독주를 장복하는 게 좋다는 말 듣고 접때 챙겨둔 것이었다.

“줘보세요. 저건 또 특수 파이프라서 잘 잘릴까 모르겠네.”

“……빠이뿌는 냅두지유.”

“예에?”

“특수 빠이뿌먼 새루 구허기두 어려울 테니께 말유. 여긔는 냅두구 저 아래채나 가보쥬.”

“좋도록 하세요.”

선의를 자빡맞았다고 느꼈는지 보일러쟁이는 담배꽁초를 밑으로 패대기친 다음 장화발로 짓이겼고, 김씨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아래채로 내려간 김씨는 부엌 바깥 흙벽에 귀를 대보던 평소와 달리 곧장 부엌으로 들어갔다.

개수대 위로 뽑혀 올라온 수도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고, 마침내 플라스틱으로 된 특수 파이프를 잘라야 된단 말인가? 파이프 자르는 것이야 골치 아픈 일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곧 다가올 봄에 얼음이 풀려 물이 콸콸 쏟아질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잘린 파이프를 어떻게 이어놓는다는 말인가? 더구나 잣물이 아닌가. 장뼘도 훨씬 넘게 깔린 낙엽을 적시고 깊숙이 박힌 잣나무뿌리 휘감으며 줄먹줄먹한 바위너덜 밑으로 욜그랑거리고 살그랑거리며 흘러내리던 산골물이었다. 저 아래 산밑 동네 사람들 말로는 잣물이라는 것이었다. 전에는 부대기(화전민)들이 살던 곳이라고 하였다. 그 아주 예전에는 무슨 암자 같은 것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깨어진 돌확이며 무슨 사천왕상 깨어진 조각들이 땅속에서 나오는 것으로 봐서 그렇다. 사십여년 전 그러니까 칠십년대 첫때쯤 군사정권에서 부대기들 흩어버린 부대앝(화전) 자리에 잣나무를 심었던 곳이다. 그래서 잣물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김씨는 또 생각하여본다. 제 아무리 날마다 더 새로운 기술이 나오는 컴본주의 시대라고 할지라도 잘려진 파이프를 새것처럼 잇는 솜씨는 없을 것이고, 마침내 새 파이프로 바꿔 깔아야 될 것이었다. 그러자면 천상 사람을 사서 백미터가 넘는 파이프를 새로 구해다가 깔아야 되는데, 파이프 삯이며 삯꾼들 노임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돈이야 장만한다고 하더라도 그 특수 파이프라는 것을 쉽게 구할 수나 있을 것인가. 마음속으로 세굴차게 도머리를 치고 나서 에멜무지로 수도꼭지를 올려보았는데, 졸졸졸. 꼭 눈자라기 오줌발 같은 물이 나오는 것이었고, 살었구나! 파이프를 자르지 않더라도 어떻게 날이 풀릴 때까지 버텨볼 수 있을 듯하였다.

골프장 때문일 겁니다.

서울 여성이 한 말이었다. 이곳에 살게 된 것이 팔년째지만 이제까지 이런 일이 없었는데 참 별꼴을 다 본다고 김씨가 말했을 때 김씨와 알음이 있는 그 젊은 여성은 아주 딱 잘라 말하는 것이었다. 김씨가 사는 집과 한 십리쯤 떨어진 곳에 골프장이 들어선 것이 서너달 전쯤 되는데 그곳에서 다량으로 물을 빼어 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에이 설마아?

아무리 물을 많이 쓰는 골프장이라고 하더라도 십리씩이나 떨어져 있는 곳에서 어떻게 물을 끌어다 쓸 수 있느냐? 그것도 땅속 깊은 곳에서 흐르는 지하수에서? 김씨가 도머리를 쳤을 때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하는 서울 여성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 속으로는 수많은 물길이 나 있는데 그 물들이 흐르는 방향에 따라서 십리 아니라 백리라도 얼마든지 끌어다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몇백마력짜리 고압 모터로 빨아들인다고 하였다. 그 골프장은 그리고 김씨 집보다 낮은 곳 애두름을 뭉개버리고 들어앉은 것이어서 그러고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예는 그레두 쬐끔씩이래두 물이 나오넌구먼유.”

수도꼭지 밑에 플라스틱 자배기를 받쳐놓고 나서 부엌을 나왔다. 그리고 정랑(淨廊)이 있는 칸 바깥을 돌아 어머니가 계신 방 쪽으로 가던 김씨는 흡, 숨을 삼키었다. 노랫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철새에 발목 잽혀 어둠속이 잠자던 우덜

동해에 해 뜨구 철새는 끈허져간다

다가치 일어나라 새조선 근설 위헤

우리덜 일흠은 여청……”

저 깊은 땅속에서 물이 흘러가는 소리 같고, 어떻게 들으면 깊은 밤 먼 데서 여인이 옷 벗는 소리 같으며, 또 어떻게 들으면 소리 죽여 흐느끼는 속울음과도 같은 그 노래는 「여청가」였다. 815 해방이 되던 해 끝 무렵 림화가 노랫말을 짓고 김순남이 곡을 쓴 「조선여자청년동맹가」.

며칠 전이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무엇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고, 김씨는 방을 나왔다. 문간문을 열면 손님맞이방으로 쓰는 큰방으로 곧바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는데, 어머니였다.

“어머니 웬일이세유?”

김씨가 어머니 두 어깨를 잡았다.

“뭔 일루 여길 오셨댜? 이게 도대처 워치게 된겨?”

비닐돗자리가 깔린 방바닥에 엎드려 있던 어머니는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끙 하는 소리와 함께 허리를 폈는데,

“왜 이러신댜?”

사시랑이처럼 야윈 두 팔로 김씨 바짓가랑이를 잡는 것이었다. 그리고 울음 섞인 소리로 말하였다.

“워디 갔다가 인저 오셨대유?”

“예에? 뭔 말씸을 이렇게 허신대유, 시방.”

김씨는 어이가 없어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데 어머니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눈물주머니가 그렁그렁 매달린 눈으로 김씨를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양 있다 오신규? 아니먼 지리산 있다 오신규?”

“어머니!”

“박동무넌 안허시구, 리흰상 선상님두 강령허시쥬?”

“왜 이러신대유, 증말.”

김씨는 울상이 되었는데 어머니는 자꾸 붙잡고 있는 바지 자락을 흔들었다.

“인저 저허구 사넌 거쥬? 우덜 시 식구 하냥 사넌 거쥬? 유자생녀 만수다복 향복허게 하냥 사넌 거쥬?”

“어머니, 절 물러유? 아들두 물러본단 말유? 시바앙!”

김씨는 안타깝게 소리치며 움켜잡힌 바지 자락을 빼내려고 하였는데, 별꼴. 이제 달포만 있으면 망백(望百)이 되는 그 늙은 여자는 두 팔을 높이 치켜올리며 이렇게 소리쳤다.

“조선공산당 만서이!”

아마도 815 바로 뒤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아들을 보고 이미 땅보탬이 된 지 육십년도 지난 남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는데 아아, 그렇다먼 그러니께 망령이 드셨다넌 말인가? 왜식말루 치매? 김씨는 어머니 두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전 냄편이 아니구 아들유, 아들. 아들두 물러보신단 말유? 시방.”

김씨는 울먹이며 말하였는데, 그 늙은 여자는 아들 말이 안 들리는지 두 팔을 높이 치켜올리며 소리쳤다.

“위대헌 지도자 박흔 동지 만서이!”

“친일 친팟쑈 및 민족반역자럴 제외헌 조선민주주의 림시증부 수립진 만서이!”

김씨의 어머니는 족보에 오른 진빨이었다. 1969년 대검찰청 수사국에서 비매품으로 박아낸 좌익사건실록이라는 책에 나와 있다. 모두 12권으로 되어 있는 그 책은 각각 삼백면이 넘는 두께였는데, 「여맹원 한전희 북괴 고무찬양 사건」이라는 제목이다. 한전희씨는 모르고 있지만 김씨는 그 책을 본 적이 있다.

 

피의자 한전희는 19467월경에 남로당 외곽단체인 부녀동맹에 가맹한 자인바 동 여성동맹이 국헌을 위배하여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조직된 비밀결사인 점을 충분히 지실함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재맹 중이며 거리에서 농업 겸 가사에 종사하고 있는 자로서 19467월 하순경에 피의자 자택에서 남로당원 양인병에게 부녀동맹 투쟁기금으로 현금 10원을 갹출한 사실이 있고, 194610월경에 피의자 자택에서 남로당원 양인병에게 부녀동맹 투쟁비로 백미 2승 가량을 갹출하여 민중의 복리를 위한 미군정계획에 반한 불온음모를 획책토록 방조하고, 194710월 중순 오후 9시경에 피의자 자택에서 남로당 ○○군책 이점석에게 남로당 투쟁비로 백미 5승 가량을 자진 공급하여 이 등의 행위를 용이하게 방조하고, 평소에 적색사상을 포지하고 암암리에 지하공작을 기도하던 자인바 1948815일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면서 일제치하부터 소위 조선독립운동을 한다며 망동하던 악질 공산주의자였던 남편 김일봉이 피체되어 대전형무소에 수감되면서 남편의 사상을 받들어 공산주의 사상을 반포하고자 암약하다가 625 사변 돌발과 함께 총살된 남편의 원한을 복수코자 여맹위원장에 취임코 당지에 침공한 북한괴뢰군과 호응하여 부락민 약 30명을 동원하여 동 부락회관에 집합시켜놓고 약 1시간 30분에 걸쳐 북한괴뢰군 집단의 정치이념인 남녀동등권 법령 실시에 대한 각종 선전 「슬로우건」을 동 부락민 등에게 고취한 사실이 있고, 범의를 계속하여 동년 816일 오후 8시경 부락민 10여명과 인민학교 아동 10여명을 동 부락회관에 집합시켜놓고 약 2시간에 걸쳐 소위 인민공화국의 정치이념인 남녀동등권 법령 실시 및 대한민국의 부패성을 지적하여 인민군에게 물질적 원조 등을 역설 선전하고 동시에 학생 아동들로 하여금 괴뢰 괴수 김일성 찬가,

장백산 줄기줄기 피 흐른 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피 흐른 자욱

오늘도 자유조선 꽃다발 위에

명석히 비춰주는 거룩한 자욱

아?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 장군

이상과 같은 찬가를 고창케 하여 민심을 교란케 한 사실이 있고, 계속하여 19508월 일자불상 자진하여 괴뢰군 10명에게 식사를 제공한 사실이 있고, ○○리 후산에서 봉화전을 감행하고, 509월 괴뢰군 위문품으로 「독립만세」라고 수를 놓은 손수건 10매 양말 2족 보릿가루 5포를 갹출하여 괴뢰군에게 직접 제공한 사실이 있고,

북조선인민공화국은 노동자 농민이 잘 살고 있다!

농민에게 무상으로 토지를 분배하여 주고 있다!

노동자 농민이 잘살 수 있는 정부는 인민공화국이다!

인민군 만세!

스따린 대원수 만세!

김일성장군 만세!

같은 구호를 외치게 하고 또 「삐라」에 박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뿌렸고, 동년 910일경 ○○면 18개 부락 여맹위원장 등에게 지시하여 괴뢰군 등에게 제공할 목적으로 면포제 국방색 군복(상하) 1착씩을 제작 납부토록 할당 군복 18착(싯가 약9만원)을 징수하여 ○○군 여맹본부에 조달 납부한 사실이 있고, 범의를 계속하여 동면 3개 부락 여맹위원장 성명불상자에게 지시하여 동 부락민으로부터 부식물인 된장, 고추장, 고추, 마늘 등 싯가 약 1,500원 상당을 할당 징수케 하여 전술 ○○군 여맹본부에 조달 납부한 사실이 있고, 범의를 계속하여 동년 108일 오전 10시경 군경이 당지에 진주함을 계기로 계속 지하운동을 감행할 목적으로 거주면 ○○리 후산에 비설된 소위 ○○면 노동당 「아지트」에 기피 입산하였으며, 식량 등을 약탈할 목적으로 동면 ○○리에 침입 도중 동 부락 후측에서 잠복 중인 경찰에 체포당한 자임.

 

선고

피의자 한전희는 19501121일 대전지방법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다음과 같이 선고되었다.

한전희: 징역 4년, 7년간 집행유예

 

한전희라는 이름이 나오는 꼭지는 한군데 더 있었다. 「여맹원 북괴 찬양고무 사건」이라는 제목이었다.

 

관련자 인적사항

피의자 한전희는 1936년 충남 홍성군 홍동면 소재 홍동소학교를 졸업하고 1943년 김일봉에게 출가하여 일제시대부터 조선공산당 수괴인 박헌영의 비선참모로 맹약 중이던 김일봉의 사주로 부청과 여청 여맹에 가맹하여 대한민국정부를 전복시키고자 암약하다가 194810월경 김일봉이 서울시경 소속 특별경찰대에게 체포되어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19507월 초순경 처형되자 대한민국정부에 증오감을 포지하고 정부 전복을 위하여 암약하던 중 인민공화국 정권이 수립되었던 ① 1950820일경 동면 ○○리 김병모가에 피난 중인 ○○면 병사계원 이순우, ○○리 거주 우익요원 유남수 양인을 악질 반동분자라 하여 분주소로 인치케 하고

② 동년 825일경 인민군의 승리를 일반에게 주지시킬 목적으로 허위화상(맥아더 장군이 이 대통령을 양다리 사이에 놓고 투르먼 대통령에게 전과 보고하는 형상)을 1매 작성하여 동 부락 강기봉 자택 벽에다 첩부한 악질적 행동을 기화로 괴뢰도당이 말하는 소위 투쟁경력을 축적하여 혁명정신을 고취코저 19508월 말경에 ○○면 내에 산재하여 있는 11개 리에 긍하여 여성동맹을 조직 결성시켜 동원 133명에 달하는 세포를 조직한 후 동 맹원들로부터 수건 80매, 양말 20족, 현금 6만원을 갹출하여 이적의 목적으로 전기 금품을 괴뢰군에게 직접 제공하여 이적행위를 감행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토지개혁 성공 만세 등의 내용이 기재된 불온 벽보 50여매를 ○○리 여맹원들로 하여금 부락 각 요소에 첩부하여 일반민으로 하여금 대한민국에 적개심을 환기하여 김일성 괴뢰집단에 협력하게 하고 동 기간 내 부역군 모집 및 여맹원 포섭을 목적으로

① 의용군에 참가하자

② 피 끓는 여성은 여맹 기빨 아래로 등의 내용이 기재된 「비라」를 면소재지 일대에 뿌리며 인민공화국 세상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였던 자로

① 미군은 철퇴하라!

② 토지를 무상으로 농민에게 분배하라!

③ 모든 여성들은 여성동맹 기빨 아래로!

④ 머지않은 장래에 행복이 온다!

⑤ 미제의 주구인 매국역적 리승만 김성수를 타도하자!

⑥ 지주와 자본가의 대변자인 한민당을 박살내자!

⑦ 위대한 영도자 박헌영 동무 만세!

같은 불온 「비라」 200여매를 등사하여 일반 부락민들에게 배부한 자로서 인민군이 후퇴하고 사세 불리하게 되자 이북으로 갈 것을 결의하고 북쪽으로 40리가량 가다가 청년단원들에게 체포된 자임.

 

처분결과

피의자 한전희는 1951426일 대전지방법원에서 다음과 같이 선고되었다(괄호 안은 구형량).

한전희: 징역 6년(징역15년)

 

노랫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보일러쟁이는 김씨 어머니가 있는 방 밖을 돌아 마당 쪽으로 가고 있었고, 김씨는 얼른 어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그 늙은 여자는 마치 화두를 좇아가는 선승처럼 팽댕이를 치고 앉아 있었다. 마당 쪽 벽 앞이었는데 별꼴, 자기가 무슨 갓 시집온 홍색짜리라고 그야말로 녹의홍상으로 떨쳐입고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지고 왔다는 무명으로 된 붉은 치마와 노랑 저고리 차림이었고, 초례청에 선 새각시처럼 정성껏 단장을 하고 있었다. 틀어올려 쪽을 진 머리칼은 눈처럼 하는데 무엇을 발랐는지 꼭 동백기름 내음이 났고, 무엇으로 그렇게 하였는지 연지 찍고 곤지 찍는 성적(成赤)을 한 얼굴에서는 분가루 내음이 났다. 어머니는 아들이 들어온 것을 모르는지 왼손으로 쥐고 있는 무엇을 다후다 조각으로 닦아내고 있었는데, 무엇인지 번쩍번쩍 빛을 내고 있었다.

어머니가 홍색짜리였던 시절 그러니까 남조선민주여성동맹 ○○면당 위원장이 되었을 때 신랑한테서 받은 것이었다. 등허리에 민들레꽃 무늬가 새겨진 것으로 내외지간이나 정인이 된 여성 손가락에 남성이 끼워주던 금반지였다. 사회주의운동에 몸과 마음을 던진 사람들이 하였던 무슨 하냥다짐과 같은 것이었다. 달포가 넘게 끔찍한 족대기질을 당하고 나서 반십년이 넘는 옥살이를 할 때도 오른손 약지에 끼고 있던 것이었다. 형무소 당국에 영치시키라는 것을 삼칠일이 넘는 단식투쟁 끝에 얻어낸 것이었다.

어머니는 무슨 노래인가를 부르며 기와 가루 묻힌 다후다 조각으로 반지를 닦고 있었는데, 「해방의 노래」였다. 천재 시인으로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이던 림화가 노랫말을 짓고 또한 천재 음악가로 조선음악동맹 작곡부장이었던 세계적 작곡가 김순남이 곡을 붙인 것이었다. 그때에는 좌익 쪽만이 아니라 인민 얼추가 죄 이 노래를 불렀으므로 애국가 마침었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무슨 제삿날 쓰일 제기라도 닦는 것처럼 민들레꽃반지를 닦고 또 닦는 것이었는데,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이제까지 살아온 세월 가운데 가장 빛났던 순간 또는 시절을 떠올리며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데, 어머니 또한 많은 사람들 손뼉소리를 받으며 연설을 하고 노래를 가르치고 또 정의로운 일에 몸과 마음을 다 바치는 아름다운 사람들 뒷바라지를 하는 틈틈새새로 『자본주의의 한계』 『레닌주의의 기초』 같은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던 세월로 돌아간 것인가. 아니면 숫제 그 시절을 살고 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김씨가 그렇게 생각해서 그러한 것인지 등꼬부리에 버커리인 어머니의 조붓한 얼굴 두 뺨에는 붉은 기운이 어리는 것 같았다.

서둘러 방을 나온 김씨는 잰걸음을 쳤다. 그럴 리는 없지만 만에 하나라도 보일러쟁이가 알아들을까 봐서 어머니 방에서부터 멀어지려고 하는 것이었는데,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몇달만 있으면 망백이 되는 그 늙은 여자가 부르는 노랫소리였다. 「해방의 노래」 2절이었다.

“뇌동자와 민 덜은 심을 다헤서

놈덜헌티 빼앗겼던 토지와 공장

정의에 손이루 탈환하여라

제놈덜에 심이야 그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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