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목소리

 

자본주의, 그리고 중국의 미래는?

 

● 창비 봄호 특집 <‘자본주의 이후’를 상상하기>를 접했다. 수록된 여러 글 가운데 이남주의 「자본주의 세계체제 속의 중국 ‘사회주의’, 수사인가 가능성인가」를 가장 인상깊게 읽었다. 이 글은 중국이 세계무대에서 갖는 중요성과 미래의 경우의 수를 잘 통찰하고 있다. 지금 중국은 자본주의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국 내에선 자본주의의 병폐가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 예가 빈부격차다. 겉으로 표방하는 것과 달리 중국의 소득불평등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필자가 지적한 생태문제도 중국의 비자본주의적 발전을 방해하는 요소다. 20년 만에 최악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중국 내 인권상황도 문제다. 이러한 문제들은 결국 시장자유주의적 요소를 취사선택한 중국이 풀어야 할 숙제다. 세계가 동시에 겪고 있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중국정부는 어떻게 해결하려 할지 주목해본다.

강연우 sondobo@nate.com

 

더 나은 세계에 대한 실질적 논의로

 

● 자본주의 이후를 상상한다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여러 사회·경제적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갈 것인지의 문제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위기에 관해 논한 백승욱의 특집 글에 특히 관심이 갔다. 이 글은 ‘자본주의의 위기’와 ‘자본주의가 초래한 위기’를 구분하여 논하는데, 나는 ‘자본주의가 초래한 위기’, 즉 양극화, 저성장, 고용불안정 같은 문제는 사회적 합의로 일정부분 해결 가능하리라 본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위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실 자본주의 이후의 모습은 지난 대공황과 같은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꾸준히 논의되어왔다. 그렇기에 자본주의가 살아남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예측만 하는 것은 무의미한 반복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보다 지금의 위기를 통해 좀더 나은 체제는 어떤 모습일지를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 지난호 특집은 모처럼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었던 좋은 계기였다.

강준형 kaironan@gmail.com

 

모두를 위한 복지를 고대한다

 

● 복지문제를 다룬 ‘대화’를 유익하게 읽었다. 최근 몇년간 복지문제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활발하게 논의된 영역 중 하나였다. 그 과정에서 전국적으로 무상급식이 시행되는 등 커다란 진전이 있었지만, 복지를 폄하하는 이념공세는 여전하다. 다른 한편 현실성은 외면한 채 복지확대라는 당위만을 내세우는 목소리 또한 작지 않다. 이번 대화를 읽으면서 그동안 복지에 대해 막연하게 품어왔던 생각들에 구체성을 더해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왜곡된 ‘세금폭탄론’이 횡행하는데, 복지를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후속세대에 그 모든 부담을 전가하지 않기 위해서 적정 수준의 증세는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단, 재정문제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복지는 정권에 따라, 그때그때의 경제상황에 따라 하루아침에 심각한 퇴보를 겪을 수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세금 몇 퍼센트, 지원금 얼마에 이전투구를 벌일 것이 아니라, 복지라는 게 결국 모든 사람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연대의식의 산물이자, 위기의 시대를 함께 극복해갈 수 있게 하는 탄탄한 공동체의 필요조건임을 인식해야 하겠다.

정승인 bookersi@naver.com

 

내 삶의 ‘신’을 찾아서

 

● 사람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우리는 자주 무엇인가에 대해 자기합리화를 하지만, 그런 자신의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본 사람은 적을 것이다. 합리화는 답을 정해놓고 어떻게든 그 답을 끌어내려는 움직임이다. 답에 이르는 길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가 흠이라도 발견하면 이내 불안해질 것이므로, 우리는 재빨리 그 과정을 해치우고 다신 들추지 않는다. 봄호에 실린 단편 「신의 말을 듣다」에서 이승우는 사람의 내면에서 이뤄지는 자기합리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 적나라함에 얼굴이 붉어질 정도다. 스스로에게 하는 이 거짓말을 끊어내는 것은 ‘신의 말’이다. 다만 신의 이름은 무의미하다. 형태도 상관없다. 사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고 실천하게 하는 가치가 바로 신의 말일지 모른다. 스스로의 내면에 귀기울이며 성찰하는 삶이 필요한 때다.

이성희 sh_kanky@naver.com

 

시대의 단면을 새롭게 그린 소설

 

● 지금의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데 사유라는 것은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게 아닐까 생각될 때가 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더욱 치열하게 생존경쟁에 뛰어들어도 본전을 찾을까 말까다. 그런데 정지돈의 소설 「창백한 말」의 주인공 ‘장’은 20세기의 책들을 읽으며 지난 사상에 젖어 있다. 사회를 살아가는 처세에 무관심한 채 우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쌓아가고, 문학을 비롯한 예술에 심취해 있다. 주변과 사회에 제대로 섞이지 못하고 자신의 세계에 몰입하던 장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처럼 갑작스레 스러진다. 이 모든 과정을 따라가다보니 새삼 우리 삶의 무게가 애잔하게 느껴져 씁쓸했다. 이런 장의 최후에도 시대에 의한 죽음이라는 말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박주현 coin116@naver.com

 

‘계속해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의 메시지

 

● 황정은 소설의 애독자다. 봄호 한기욱 평론 「야만적인 나라의 황정은씨」를 읽고 황정은 장편 세권을 다시 한번 독파한 느낌을 받았다. 핍진하면서도 독특한 정서를 지닌 황정은 소설의 인물들을 이 시대의 “아픈 주체들”로 묘사한 점에 공감했다. 황정은 소설은 줄거리만 놓고 보면 그리 흥미진진하지만은 않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크게 사랑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을 읽으면 한기욱의 지적대로 우리 주변의 아픈 이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마음을 울린다. 그렇게 생생한 이유는 바로 내가 그들과 비슷한 사람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살면서 한번은 그림자가 일어선 은교, 동생을 잃은 앨리시어, 반지하의 소라·나나·나기가 되는 것은 아닌지…… 황정은이 말하고 싶은 것은 어쩌면 그러니 우리 모두 ‘계속해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일지 모르겠다. 

강상량 kyoolbox@hanmail.net

 

관료개혁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 봄호에서 정대영의 「관료개혁, 4대 방안으로 실현하자」를 관심있게 읽었다. 세월호참사의 배경에는 크고 작은 원인이 있겠으나 그중 관료제의 병폐가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고 자체의 구조적 원인이기도 하지만 사고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소재를 가리는 데도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도덕적 해이를 일삼는 ‘관피아’와 그것이 만들어낸 공직사회의 이익집단화는 이미 우리 사회를 위험에 몰아넣을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음이 드러났다. 정대영은 이 시급하고도 거대한 관료개혁이라는 과제에 대해 행정고시 폐지와 내부승진 확대, 관피아 철폐 등을 우선순위로 풀어가고, 그 파급효과로서 다른 문제들로 옮겨가자고 제안한다. 슬기로운 방안이라 생각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공무원 채용시험에 몰리는 지금, 안정적인 일자리로서만이 아니라 사회 공공성에 기여하는 공복으로서의 공무원상을 만드는 데도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최남서 autumn1974@hanmail.net

 

창비가 청년들의 쉼터가 되어주길

 

● 어릴 적부터 대한민국 교육방식에 익숙한 우리 모두는 ‘성실과 열심’의 삶을 강요받으며 살아왔다. 그래서 쉼과 여가를 즐기는 게 편치 않다. 놀 때마저 열심히 놀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것 같다. 대학생들만 해도 공강시간에까지 알바와 자기계발로 분주한 삶을 살아간다. 이같은 현실에서 『창작과비평』이 청년들의 쉼터이자 벗이 되어주길 바란다. 창비의 매력을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한시영 seismic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