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공지영 孔枝泳

1963년 서울 출생. 1988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소설집 『인간에 대한 예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장편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봉순이 언니』 등이 있음.

 

 

 

부활 무렵

 

 

1

 

“꽃이란 꽃은 다 피었네…… 봄이 오나 했는데 또 이렇게 봄이 가는구나.”

부엌 창밖을 내다보며 멍청하게 혼자 중얼거리다가 순례는 일하는 손을 재게 놀린다. 행주까지 말끔히 삶아놓고 식탁을 대충 보아두자 일이 끝났다. 순례는 거실로 나가 안주인에게 오늘은 좀 사정이 있어서 일찍 가야겠다고 말했다. 연노란빛 가죽소파에 앉아 의상잡지를 보고 있던 안주인은 돋보기 너머로 순례를 바라보았다.

“일은 다 끝내놨구요, 밥도 해놨어요. 국도 다 끓여놨고 조기도 구워놨으니까 사장님 들어오시면 데워 드시면 될 거예요. 저기…… 시댁에 제사가 있어서.”

그냥, 좀 일이 있어요, 하면 될 걸 순례는 있지도 않은 제사를 들먹이며 말을 꺼냈다.

“아니, 남편도 없는 사람이 시댁 제사는 뭘 그리 챙겨? 뭘 보태줄 집도 아닌 것 같은데.”

환갑이 지나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안주인은 목에 맨 긴 씰크스카프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평소 같으면 다 늙은 노인네가 이 봄에 집에서 웬 긴 스카프, 하며 마음속으로 투덜거렸겠지만 지금 순례는 그럴 경황이 없다. 며느리를 둘씩이나 두고 가끔씩 제사에 오너라 못 간다, 전화로 며느리들과 다투던 안주인은 과부인 순례가 시댁 제사에 간다는 소리를 듣고 요즘 젊은애들치고 넌 괜찮구나, 하는 표정이기도 했다. 제사 핑계를 댄 건 잘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안주인이 혹 알게 된 건 아닐까, 순례가 집을 나서려 할 때 지수 엄마 잠깐만, 내일부터 나오지 말아, 내가 소문 다 들었어…… 할까봐 뒷덜미께가 땅겨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90평 빌라를 청소하기가 좀 힘든 구석도 있지만, 식구가 두 사람뿐이니, 편한 집이었다. 그나저나 소문이나 나지 말아야 할 텐데, 큰일이었다.

“미친년, 도둑질을 하다니…… 이왕 도둑질하려면 아예 초장부터 큰 걸로 하나 해서 팔자나 고치고 살지. 나이 마흔이 다 돼가지고, 이게 무슨 망신이야.”

순례는 작업복을 벗고 아침에 차려입고 나온 검은색 투피스로 갈아입으며 투덜투덜 혼잣말을 했다.

“나이 마흔에 무슨 가방을 훔쳐, 훔치긴. 그 가방 든다고 지가 귀부인이 되나.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냐 말이야, 되긴.”

고급빌라들이 늘어선 무지개마을, 불곡산 자락에서부터 골목길까지 순례 말대로 꽃들이란 꽃은 다 피고, 찬바람 속에서도 볕은 뜨거웠다. 저기 무지개마을 삼성아파트는 친구 삼순이가 살던 집이 있었지, 순례는 버스를 기다리며 무지개처럼 멀리 있는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지금 아파트를 지은 저 산에는 임자 없는 무덤들도 있었다. 어른들이 육이오 때 억울하게 죽은 임자 없는 무덤들이라고 가끔 혀를 끌끌 차기도 했던 것 같다. 그 무덤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저기 청구아파트 자리는 초등학교 때 소풍 갔던 자리. 친구들은 모두 단무지에 시금치에 당근을 넣은, 빨갛고 노랗고 파란, 꽃처럼 예쁜 김밥을 싸가지고 왔는데 순례는 소풍날에도 까만 보리밥 든 도시락이 부끄러워서 친구들 몰래 구석자리를 찾아찾아 갔다. 그때도 이렇게 꽃들이 피어나고 그때도 이렇게 연초록 이파리가 돋았다. 봄이면 붕어가 지천이었던 탄천, 그리고 저만치는 어린 그녀가 살던 집이 있었다. 집은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일찍 집을 떠나 서울로, 수원의 공장으로 떠돌다가 다시 고향땅으로 돌아와서 파출부 일을 할 줄 순례는 몰랐다. 분당의 농사꾼이었던 아버지는 얼마나 복이 없으면 분당이 개발될지도 모르고 땅을 팔았는지, 그 땅으로 소를 사고 소값이 똥값이 되고, 그러자 결국 아버지는 농사도 소키우기도 걷어치우고 커다란 함지박에 소고기를 받아서 팔러 다니다가 죽었다. 땅을 팔지 않았으면 소도 안 사고 그저 가만히만 있어도 돈이 커다란 함지박으로 가득했을 텐데…… 애쓰면 애쓸수록 가난은 올가미처럼 그녀와 가족들을 죄어들었다. 아버지가 애쓰지 않았다면, 만일 아버지가 그저 게으른 농부였다면, 그렇다면 아버지의 두 딸도 이 분당에서 남의집살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같은 봄이면 새로 뽑은 차를 타고 꽃구경을 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임대아파트 보증금 이백을 일주일 안으로 올려달라고 관리사무실에서 독촉고지서가 날아온 일이 희미한 추억을 비집고 들어섰다. 도둑질을 해야 될 사람은 사실 순례 자신이었다. 딸 지수 등록금 마련하느라 빚까지 얻었는데 이백을 어디서 마련하나, 미금역까지 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자리를 잡았을 때 순례는 문득 머리가 멍해지면서 사는 게 고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례는 별로 흔들리지도 않는 버스에 앉아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남편이 죽고 애들 데리고 시집을 나왔을 때도,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그녀였다. 장미농장에서 한철, 아침 일곱시부터 밤 세시까지 일할 때도, 함바집에서 200명 인부 밥을 해댈 때도 이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늙나, 순례는 문득 서글퍼졌다.

아니, 어린 나이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긴 있다. 그녀가 분당 고향집에서 서울 동부이촌동 아파트로 식모살이 떠날 때였을 것이다. 그때 버스정류장까지 따라나와 울던 동생 정례가 있었다. 날마다 순례에게 머리를 쥐어박혀도 언니를 떠나지 않던 정례…… 식모살이를 가는 게 뭔지는 몰라도, 다른 친구들 다 교복 입고 학교 가는데 날마다 소똥을 치우는 게 너무 지긋지긋해서 순례는 슬프지도 않았다. 그날, 언니를 따라가겠다고 울던 정례를 머리를 쥐어박아 떼어내고 작은엄마와 함께 버스에 올라탔을 때, 멀미 때문이었을까, 순례의 머릿속이 살구꽃 이파리처럼 하얘지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산다는 건 참 고되구나…… 그때 그녀 나이 열세살 무렵이었으니, 정례는 아마 여섯살이나 일곱살이었을 것이다.

 

 

2

 

“억울해 언니, 그냥 억울했어. 저 여자는 저렇게 많이 갖고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없는가 싶고,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면서……”

사흘 전 일을 마치고 경찰서로 달려갔을 때 동생 정례는 울면서 그렇게 말했다. 정례는 도둑이 된 것이다. 동생의 나이 마흔, 중학교 3학년짜리 아이를 둔 에미가 유명상표, 샤넬인지 구찐지 하는, 주인여자의 핸드백을 열 개나 훔친 것이었다. 병신 같은 것, 샤넬이든 구찌든 루이뷔똥이든, 성남 모란시장에 가면 오천원, 만원짜리가 널려 있는데 왜 그걸 훔쳐냈단 말인가. 등신 같은 년, 니가 들면 진짜라도 모란시장에서 산 것 같고, 주인여자가 들면 가짜라도 진짜인 것처럼 보이는 걸 몰라? 왜 바보 같은 짓을 해, 하긴! 마음 같아서야 어린 시절처럼 머리를 쥐어박으며 소리라도 지르고 싶지만 순례는 침만 꿀꺽 삼키고 말았다.

동생 나이쯤이던가, 아니면 그보다 더 전이던가, 파출부 일이 손에 익으면서 순례도 그런 생각을 안해본 건 아니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화장을 하고 노래교실에 달려나가는 은행원의 부인도 있었고, 파출부 나온 순례는 사람도 아니니, 없는 셈치고, 전화기를 붙들고 정부와 밀어를 속삭이던 사업가의 부인도 있었다. 98평짜리 빌라의 여주인은 지갑을 펴더니 잔돈은 하나도 없네, 혼잣말을 하면서 안방에 놓여 있는 금고를 열고 돈을 꺼내주기도 했다. 대부분 순례나 정례 또래의 여자들이었다. 저 여자는 얼굴 어디에 복이 붙었을까, 하루종일 노는 저 여자는 어디서 돈이 저렇게 많이 나올까, 순례는 잠깐 일손을 놓고 주인여자들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소고기 안심을 척척 구워먹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카레에 넣은 돼지고기 살점에 고개를 박던 제 아이들 생각에 울컥해졌던 건 그보다 한참 뒤였다. 남편이 살았을 때는 농삿일 때문에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고, 남편이 죽은 후에는 먹고사느라 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이들 때문에 아침부터 밤까지 죽도록 일하는데 아이들의 얼굴에는 날마다 그늘이 덮였다.

“왜 그런 얼굴들 하고 있냐 엉? 공부해! 기죽지 말고 살아! 엄마가 니들은 안 굶겨! 무슨 짓을 해서라도 대학 공부까지 다 시켜줄 거야. 근데 방은 왜 이렇게 어질러놨냐?”

빗자루를 들어 괜히 아이들을 두들겨패면서 기죽지 말라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이들은 순례의 눈치를 살피며 방구석으로 몰려가 울다 잠이 들었다. 그렇게 아이들을 재워놓고, 노느니 벌지 하면서 단란주점에 나가던 시절도 있었다. 성남시내 단란주점에서 아줌마들을 찾는다는 연락이 옆집 성기네를 통해서 오면 그 밤에 화장을 하고 셋이나 넷이서 그리로 갔다. 밤늦게 온다고 화를 낼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밤마다 과부들끼리 둘러앉아 먹는 술, 그 술도 공짜로 먹고 노래도 부르고 이만오천원도 벌고, 나쁠 게 없었다. 그러나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