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시민참여형 통일운동의 역할과 가능성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교수, 세교연구소 소장. 저서로 『중국 시민사회의 형성과 특징』 『동아시아의 지역질서』(공저) 등이 있음. lee87@skhu.ac.kr

 

  • 이 글은 지난 9월 19일 열린 세교연구소 2008년 공개 심포지엄‘기울어진 분단체제, 대안을 만들 때다-남북연합과 한반도 선진사회 건설’의 발표문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1. 머리글

 

최근 통일운동에서 시민사회의 역할이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1 백낙청(白樂晴)은 2006년 5월‘한반도식 통일과정과 시민사회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한반도식 통일은 곧 시민참여형 통일이라고 규정하고 “점진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일반 시민의 참여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질 뿐 아니라,‘과정’과‘종결점’의 구분 자체가 모호한 상태에서 그 과정의 실상에 따라, 즉 사람들이 얼마나 참여해서 어떻게 해나가는가에 따라 통일이라는 목표의 구체적 내용마저 바뀔 수 있는 개방적 통일과정”이라고 시민참여형 통일의 의미를 설명했다.2 한반도식 통일과 시민사회의 적극적 역할 사이의 내적 연관성을 강조하는 그의 문제의식은 최근 시민사회 내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지난 7월 22일 한겨레평화연구소 창립 기념 쎄미나에서 박순성(朴淳成)이‘남북관계의 변화와 시민사회’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고, 9월 4일에는‘남북관계에서의 시민사회 역할과 진로모색’이라는 주제의 학술토론회가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과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평화나눔쎈터의 공동 주최로 열렸다.

시민사회와 통일의 관계에 대한 관심은 당위론에서 비롯되는 측면도 적지 않다. 즉 한반도에서의 바람직한 통일을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시민사회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통일이 단순히 갈라진 민족을 하나로 합치는 감성적이고 회고적인 목표가 아니라 한반도 민중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지극히 당연할 뿐 아니라 뒤늦은 각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당위론적 차원에 머무르는 것만은 아니고, 현실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임을 인식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6·15정상회담 이후 NGO들이 남북협력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정부, 기업에 이어 또다른 통일사업의 주체로 등장해왔다. 통일부에 등록된 통일 관련 법인 수가 증가한 것이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준다. 통일 관련 법인은 1990년까지 16개에 불과했으나, 1991~95년에는 22개, 1996~2000년에는 44개가 추가로 등록되는 등 점진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1~05년에는 83개, 2006~07년 2년 동안 37개가 새로 등록되는 등 2000년 6·15정상회담 이후 더욱 빠르게 늘어왔다. 다른 형식으로 통일 관련 사업에 참여하는 단체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3 따라서 통일과정에서의 시민사회의 역할이 최근 들어서야 여러 사람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는 점이 오히려 의외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시민참여형 통일운동의 발전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특히 시민운동 내에서 지난 10월 1일‘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시민평화포럼’이 창립되는 등 통일의제를 수용하기 위한 새로운 모색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은 상층 중심의 활동이고 시민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통일의제와 거리를 두려는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으며, 적극성도 그리 높지는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분위기에는 다음의 두가지 견해들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남북관계의 미래와 관련하여 통일보다는 평화를 더욱 중요시하고 평화운동이 시민사회의 지향과 더 부합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는 통일사업에서 정부에 비해 시민사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지 않으리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시민참여형 통일운동의 전망을 제시하는 것은 이러한 두가지 견해들이 지닌 문제점을 검토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2. 평화 vs. 통일?

 

평화통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민간에서 요구했을 뿐 아니라 남북 당국도 합의한, 민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원칙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통일보다는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강하게 제기되기 시작했다. 최장집(崔章集)의 다음 주장이 대표적이다.

 

남북한간의 이상적인 관계는 얼마라고 예

  1. 시민사회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특정한 규범적 지향을 강조하기보다 국가, 기업과 구분되는 사회조직을 주체로 하는 사회영역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할 것이다. 이 글에서‘시민’이라는 용어도 많이 사용했는데, 이는‘민중’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민중 개념이 1980년대 이후 계급연합적 개념으로 많이 사용되면서 그 외연이 제한된 측면이 있고, 통일과정에는 이러한 의미의 민중보다 폭넓은 주체들이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시민을 주체로 지칭했다.
  2. 백낙청 「한반도식 통일과정과 시민사회의 역할-5월에서 시민참여형 통일로」, 전남대 5·18연구소 주최 5·18민중항쟁 제26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민주주의, 평화, 통일과 시민사회’(전남대 용봉홀, 2006.5.23~24), http://www.changbi.com/webzine/content.asp?pID=404에서 재인용. 백낙청의 시민참여형 통일론에 대해서는, 백낙청 「한반도 시민참여형 통일과 전지구적 한민족 네트워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최 한일국제심포지엄‘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한 한국과 일본의 역할’(2006.10.26) 참조.
  3. NGO들의 통일사업 참여추세에 대해서는, 손기웅·김영윤·김수암 『한반도 통일 대비 국내 NGOs의 역할과 발전방향』, 통일연구원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