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신자유주의를 넘어 어디로?

 

신자유주의, 정말 끝났는가

 

 

임원혁 林源赫

KDI경제개발협력실장. 저서로 『경제위기 10년: 평가와 과제』(공저) 등이 있음. wlim@kdi.re.kr

 

 

자유주의가 전제권력으로부터 인간해방을 주창한 사상이라면,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자본가의 자유를 극대화하려는 사상이다. 신자유주의 철학은 정부에 대한 불신과 시장에 대한 신뢰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시장자유화의 대상을 실물뿐 아니라 금융부문에까지 대폭 확대한 것이 특징이다. 역사적으로 신자유주의는 대공황 이후 확대된 정부의 사회·경제적 개입을 비판하면서 사유화, 규제완화, 누진과세 철폐와 노조 무력화를 옹호해왔다. 소득창출과 분배에 대해 신자유주의는‘감세를 통해 일할 유인을 증진시키면 경제활동이 활성화되어 하위소득층도 그 혜택을 볼 것’이라는 이른바 공급중시 경제학(supply-side economics)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영국의 새처 총리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본격적으로 정책으로 수용된 신자유주의는 소련과 동유럽에서 공산주의체제가 붕괴되고 세계경제의 통합이 급속히 진행된 1980년대 말 이후 수년간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금융위기가 증폭되면서 신자유주의의 영향력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복지국가의 비효율적인 부분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기는 했지만, 폭넓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신자유주의의 한계는 여러 나라에서 진보정치가 다시 주도권을 잡게 만들었고, 금융감독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요인이 되었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확인된 진보정치의 부상과 세계 금융위기의 확산은 정부의 사회·경제적 기능 강화와 국제 금융질서 재편을 촉구하는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이해관계에 충실하지 못한 유권자의 투표행태, 세계화의 진전에 따른 정부의 영향력 감소와 국가들간의 규제완화 경쟁, 그리고 금융시장 자유화를 둘러싼 국가들간의 이해대립으로 인해 이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쉽사리 신자유주의의 몰락을 선언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1. 신자유주의의 역사적 배경과 지적 기반

 

용어 자체의 구성만 보면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의 복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자유주의는 억압적인 중세 사회질서에 대한 대항원리로 등장한 이후 상당한 진화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신자유주의가 복원하려는 자유주의가 어떤 자유주의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자유주의는 전제권력으로부터 인간해방을 주창하는 사상으로 출발했다. 미국 독립과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자유주의는 권력에 대한 통제라는 소극적 입장을 넘어 민중의 참여를 옹호하고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지지하는 사상으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자유주의가 단순히 절대권력을 타파하고 권력의 절대화를 견제하면서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추구하는 부르주아사상의 한계를 극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그 누구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는 보편성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자유주의는 자유뿐만 아니라 평등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했고, 자유주의의 이상은 현실의 변화를 촉발하는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인종이나 종교, 재산의 유무와 관계없이 투표권과 시민권이 확대되면서 정치적 영역에서의 자유주의는 지배이념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반면 경제적 영역에서의 자유주의는 자유방임(laissez-faire)을 표방했지만 빈부격차 확대와 공황 발생이라는 두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치적 영역에서와는 달리 확고한 위치를 점하지 못했다. 자유주의는 정치권력에 결탁된 경제권력과 중상주의를 타파하고 무역과 시장경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경제적 영역에서의 자유주의가 정치적 영역에서만큼 자유와 평등을 동시에 존중하는 것은 아니었고, 기회균등의 원칙을 외치는 것 외에는 빈부격차에 대한 실질적 해법도 별로 제시하지 못했다. 공황 발생에 대해서도 자유주의는 방관적 입장을 취했다. 19세기 말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실질적인 기회균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적극적인 복지·조세정책과 반독점 등 경쟁·규제정책이 일부 도입되기 시작했지만, 빈부격차는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였고 공황 발생은 시장경제의 불가피한 부분으로 여겨졌다.

1920년대 말에 발생한 대공황은 자유방임주의를 재검토하게 만드는 전기가 되었다. 기업과 은행이 연쇄 파산하고 실업률이 25%에 달하는 상황에서 빈부격차 확대와 공황 발생을 자연스런 현상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지적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고 정치적으로는 자살에 가까운 행위였다. 실제로 자유방임정책은 대공황을 해소하지 못함으로써 독일이나 일본에서 민주주의 실험이 실패로 끝나고 전체주의가 확산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반면 미국 등 자유주의 전통이 강한 나라에서는 자유방임노선을 수정하여 대공황에 적극 대처하는 대안을 선택했다. 미국 로즈벨트 행정부의 뉴딜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자유방임노선에서 벗어나 추진된 정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실업을 구제하고 빈부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했으며 누진과세를 강화했다. 미국 연방소득세의 경우, 최상위 1% 소득계층에 대한 평균세율이 1920년대 24%에서 로즈벨트 행정부 1기에는 63%, 2기에는 79%로 대폭 상향 조정되었다. 또한 대공황에 따른 금융위기를 해소하고 유효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금본위제에서 탈퇴하여 팽창적인 통화정책을 추진했고, 금융감독을 강화해 금융씨스템을 안정화하는 한편, 적자재정을 실시하기도 했다. 특히 은행에 대해 예금보험을 도입하고 예금보험의 대상이 되지 않는 금융기관은 은행에서 분리함으로써, 은행이 파산하더라도 예금주의 예금이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을 준 점이 금융씨스템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적극적인 복지·조세정책 및 통화·재정정책 도입과 더불어 경제 전반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노동조합의 입지가 커진 것도 대공황 이후의 일이었다.

경제적 영역에서의 자유주의는 대공황을 기점으로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특히 독일의 프라이부르크(Freiburg) 학파는 시장경제라는 질서를 유지하는 데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질서자유주의를 주창했다. 그들은 독일제국과 바이마르공화국 시대의 자유방임체제가 경쟁제한과 정경유착을 조장하고 궁극적으로 모든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이 나찌정권에 집중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정치·경제적 자유를 수호하고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