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6·15시대, 무엇을 할 것인가
역사적 실험으로서의 6·15시대
유재건 柳在建
부산대 사학과 교수. 주요 논문으로 「맑스와 월러스틴」 「통일시대의 개혁과 진보」 「미국 패권의 위기와 세계사적 전환」 등이 있음. jkyoo@pusan.ac.kr
1. 머리말
2000년 6·15공동선언에는 으레 ‘역사적’ ‘획기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그것이 별로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분단 후 최초로 남북 정상이 만나 화해와 교류를 통한 평화적 통일에 합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그럴 만하고 여기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5년여가 지난 지금 그 선언을 ‘6·15시대’라는 시대구분의 한 기점으로 삼는 것은 합당한 것일까? 물론 6·15선언은 우여곡절 가운데서도 알게 모르게 한반도의 안전지대화에 일조하면서 양측 사회에 어느정도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그 변화가 양측 사회 전반의 일대 쇄신에 이르렀다고 보기는 어렵고 게다가 북핵문제 등 평화정착에도 많은 어려움이 가로놓여 있다.
이런 판에 한반도를 단위로 한 ‘6·15시대’론은 통일운동가들이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다짐의 표현은 될지언정 적어도 우리 사회과학계에서 큰 호응을 받을 것 같지는 않다. 대체로 자기가 살고 있는 당대를 규정하는 일은 오늘의 역사적 좌표를 설정하고 그에 걸맞은 과제를 자각하는 방편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6·15시대’론은‘분단시대’론과 마찬가지로 남북을 아우르는 하나의 시대를 설정함으로써 남북관계 및 통일에 결정적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초에 한겨레신문에서 개최한‘선진대안포럼’대토론회는 오늘의 한국사회의 과제를 모색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의 첫 모임이었지만 이를 게재한 신문지면 4면 전체를 보더라도 한반도 단위의 사고는 물론이고 남북관계가 아예 시야에 없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1 그렇다고 여기에 참여한 진보적 지식인들이 분단과 통일의 문제, 한반도 평화의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한국사회의 핵심과제를 다룰 때 분단과 통일의 문제를 일단 사회과학적 시야에서 배제하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우선 남과 북이라는 너무 이질적인 두 사회의 동시대성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분단시대든 6·15시대든 그것이 한반도 단위의 의미있는 시대구분인 한, 이질적인 두 사회를 포괄하는 공통의 틀, 혹은 두 사회의 주민이 동일한 체제에 살고 있다는 인식을 전제로 깔고 있다. 우리의 진보담론이 분단과 통일의 중요성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사회과학적 시야에서 이 문제를 제쳐놓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없어 보이는 이런 전제를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른 한가지는 통일의 문제가 진보적 사회과학이 지향하는 세계사적 보편성과 민중성의 차원에서 본질적 문제는 아니라는 인식이다. 권혁범(權赫範)이 잘 지적했듯이, 남북이 하나의 단위가 된다는 의미의 통일은 그 자체 한반도 주민의 보편적 목표나 기본적 전제가 되기에는 너무 편협하며 인류가 근대사의 우여곡절을 통해서 합의한 기본적 가치의 하위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2 특히 민족주의가 철 지난 조류가 된 지구화시대에 통일이라는 민족주의적 목표에 과도한 시대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다른 한편, 전지구적 자본주의시대에 한반도 전체에 대한 자본주의적 시장논리의 확대를 근간으로 한 통일과정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데 대한 비판도 있다. 그래서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선 현재의 통일과정 자체가 신자유주의 물결에 대항하는 민중적 대응전략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견해도 종종 나오는 실정이다.
설사 위의 보편적 차원과 민중적 차원의 획기성은 없을지라도 만약 6·15선언으로 통일이 되었다면 ‘통일시대’라는 규정은 큰 의의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6·15선언은 이제 겨우 첫걸음을 내디딘 것에 불과하고 남북한간의 심각한 격차로 인해 통일의 시도가 평화를 해칠 수도 있는 터에, 6·15시대라는 시대인식과 미래의 과제 설정은 통일지상주의에 조급증까지 가세한 것 아닌가 하는 의문도 제기될 수 있다. 이 글은 이같은 의문들을 염두에 두면서 ‘분단시대’와 ‘6·15시대’라는 시대인식이 실천적으로나 사회과학적으로 어느 정도 의미가 있을지 살펴보려는 시도이다.
2. 한반도의 분단체제와 냉전
한반도의 분단은 흔히 동서냉전의 산물이라고 이야기된다. 분단에 의한 남북한 대립체제가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 양대 진영의 적대를 고스란히 구현한 것이라는 점에서 당연하다 하겠다. 하지만 냉전구조의 성격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때 탈냉전으로 전쟁의 시대가 가고 평화의 시대가 오리라는 기대가 있긴 했지만 이제 탈냉전시대의 세계가 불안한 혼란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두루 실감되고 있는 편이다. 오히려 냉전시대가 이데올로기적 적대와 군사적 대치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평화롭고 안정된 시대였다는 인식이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 냉전시대의 양극화된 국제정치구조는 개별국가에 강제된 만큼이나 기본적으로 불안한 안정을 보장한 것이고 이런 의미에서 냉전(Cold War)의 시대는 사실상 홉스봄(E. Hobsbawm)의 말대로 ‘냉평화’(Cold Peace)의 시대였던 것이다. 오늘날 세계에 불안정과 동요가 만연하고 국지전이 빈번한 것은 냉전기에 안정적으로 고착된 모종의 지배체제에 균열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정황은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의 대결이 냉전구조의 핵심적 갈등이라는 시각 자체를 수정할 필요를 제기한다. 냉전에서 미소의 대결을 핵심으로 보는 인식에는 미국과 소련의 힘이 비슷하다는 잘못된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두 국가간의 힘의 격차는 실제로 상당히 컸으며 바로 이 격차로 인해 냉전은 미소간의 암묵적 묵계와 봉쇄가 하나가 된 체제였다. 냉전구도는 미국이 소련과의 공존을 전제로 세계적 패권을 수립하기 위해 선택한 일종의 전략적 장치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이것은 2차대전 후 경제회복이 절실했던 소련에도 이익이 되는 것으로서 미국은 소련으로 하여금 공산진영의 패권을 유지하도록 허용했다. 미국의 공산권 봉쇄정책 자체가 미국 패권주의 기획의 일부인 한 그것은 사실상 적국과 동맹국 모두에 대한 봉쇄, 즉 이중봉쇄였다. 이런 의미에서 냉전의 적대적인 지정학적 긴장은 다중적인 효과를 가지는 전략적 장치로 기능하기에 맞춤이었다.3
첫째, 세계시장의 확대에 별 도움이 안되는 공산권의 봉쇄를 통해 미국은 부담을 줄이면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팽창을 주도했고 동맹국들을 하위에 둔 패권체제를 확립할 수 있었다. 둘째, 이데올로기적으로 냉전은 동서 양진영 내부의 통제를 통해 기존 세계질서의 위협세력을 억압하고 세계 전역에서 안보국가체제를 이루게 하였다. 이로써 냉전은
- 통일 및 북한에 관한 언급으로는 박명림이 한국 진보담론의 위기상황을 규정하는 세 가지 중의 하나로“한국 진보담론의 재구성은 민족문제와 직결되어 있는데, 통일문제 및 북한의 현실에 대한 곤혹스러움이 있다. 북한의 체제이데올로기는 현재 총체적인 파탄을 맞았다”고 지적하는 한 대목이 있다. 『한겨레』 2006년 1월 3일. ↩
- 권혁범 「통일에서 탈분단으로」, 『당대비평』 2000년 가을호, 159면. ↩
- I. Wallerstein, After Liberalism, The New Press 1995, 180, 183면; 브루스 커밍스 「70년간의 위기와 오늘의 세계정치」, 『창작과비평』 1995년 봄호, 69〜81면; 김정배 『미국과 냉전의 기원: 공존과 지배의 전략』, 혜안 2001. 저자는 여기서 미국이 일차적으로 겨냥한 대상이 소련이 아니라 서유럽과 일본이었다고 주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