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유재현

유재현 劉在炫

1962년 서울 출생. 1992년 『창작과비평』에 단편소설 「구르는 돌」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시하눅빌 스토리』, 문화기행서 『샬롬과 쌀람, 장벽에 가로막힌 평화』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등이 있다. hyoooo@hanmail.net

 

 

패스터 패스터

 

 

홍콩섬과 까우룽(九龍)반도를 뒤덮은 먹구름은 나흘 동안 쉬지 않고 섬을 삼킬 듯 폭우를 퍼부었다. 124년 만이라는 큰 폭우에 섬과 반도의 모든 거리는 물에 잠겼다. 섬 남부의 첵추만(赤柱灣) 오른쪽에 자리잡은 스탠리 감옥도 사정은 다를 것이 없었다. 6미터 높이의 담장 안으로 쏟아진 물들은 잘 만들어진 배수구를 통해 재빨리 만으로 흘러나갔지만 죄수들은 운동장에 나갈 수 없었고 감방과 작업장을 오가는 날들을 보내며 감방 벽에 난 직사각형의 스테인리스 창문 너머로만 검은 구름과 빗줄기들을 엿볼 수 있었다.

스탠리 감옥의 장기수들과 무기수들이 모여 있는 중형동(重刑棟)인 A사동 5유닛. 저녁배식 후 6시 반이 되자 마름모꼴의 홀을 사이에 둔 감방 문들이 열렸다. 식당이 아니라 자신들의 방에서 각자 식사를 해야 하는 중형동의 죄수들에게 이때부터의 한시간은 감방 밖에서 주어지는 하루의 마지막 자유시간이었다. 31명의 죄수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오자 감방 사이의 좁은 홀은 왁자해졌다. 대개는 텔레비전 앞에 열지어 놓인 탁자 앞에 앉아 잡담을 나누었다.

“저쯤은 말이야. 우리 자바섬에서는 비로 쳐주지도 않는다네.”

물에 잠긴 차들과 무릎까지 물이 출렁이는 거리를 헤쳐나가는 행인들을 비춰주는 텔레비전을 건성으로 보고 있던 인도네시아 출신 누르마가 옆자리에 앉아 있던 파키스탄 출신 무디시라프에게 중얼거렸다.

“우리도 그렇다네. 나무 꼭대기나 하다못해 지붕 위에라도 사람이 매달려 있어야 비 좀 오는구나 하지.”

찢어지게 하품을 토해내던 무디시라프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한동안 감옥 전체를 달구던 살인적인 폭염은 사라졌다. 광포한 바람은 감방의 스테인리스 창문으로 차가운 공기를 밀어넣어 사방을 선선하게 만들었다. 죄수들의 표정에는 모처럼 살 만하다는 기운이 역력했다. 제조대학 출신인 중국인 황(黃)은 오늘 저녁 파트너로 꼴롬비아 출신의 웅가를 택해 홍콩에서 코카나무 재배를 시도했던 자신의 경험에 대해 심각한 토론을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항소심에서 무기를 32년형으로 단축시키는 데 성공했던 싸이코 첸은 살인대학 무기수 학생들과 모여 음란한 스토리를 푸느라 여념이 없었다. 홍콩과 콸라룸푸르를 한달에 4번씩 왕복하며 헤로인을 운반했던 말레이시아 출신 아미르와 목은 역시 운반대학 출신인 필리핀인 아길레 그리고 한국인 박(朴)과 잡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베트남 출신의 딘은 역시 베트남 출신인 응오와 좀 청승맞게 들리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며 그밖의 다수를 차지하는 중국인들은 끼리끼리 모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씨즌 오픈을 앞두고 각 팀의 전력과 관련된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물론 축구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스탠리 감옥 전체에 성행하고 있는 도박 때문이었다.

그 한구석에서 일본인 아사노 아쯔시(淺野篤)는 외톨이로 10호방 앞 기둥에 등을 기대고 그 위치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텔레비전을 향해 멍청하게 초점을 잃은 눈을 박고 있었다. 이건 스스로 생각해도 좀 한심한 일이었다. 스탠리 감옥 A사동 5유닛에 입학한 지 석달이 넘어가고 있었지만 아쯔시는 대략 8년 만에 그러니까 이바라끼(茨城)의 고등학교에서 1학년 무렵까지 당하던 이지메의 구렁텅이에 다시 빠지는 불운을 겪고 있었다. 이번엔 순전히 언어 때문이었다. 우선 A사동 5유닛에 일본인은 아쯔시가 유일했다. 자신밖에는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죄수가 없었지만 아쯔시는 무진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공용어인 영어를 익히지 못했다. 천부적으로 언어 습득능력이 떨어지는 인간들이 있었는데 스탠리 감옥에서 그 방면으로는 아쯔시가 챔피언이었다. 스탠리 감옥에는 통용되는 영어가 여러종이었다. 싱가포르인들의 싱글리시나 말레이시아인들의 말글리시, 필리핀인들의 필글리시가 있었고 한국인 박이 쓰는 콩글리시도 끼었다. 물론 자글리시도 있었다. 그도 아니면 남미에서 온 죄수들이 어영부영 지껄여대는 스펭글리시도 있었다. 어차피 언어란 의사가 통하면 그뿐이었으니 원조를 따질 일도 없었다. 요행으로 각종 글리시들은 이른바 정통 잉글리시에 비해 의사소통력이 배는 뛰어났다. 반면 정통은 맥을 추지 못했다.

“내가 말이야. 2유닛에 있을 때 미국에서 온 놈이 옆방에 있었단 말이야. 꼴롬비아로 배낭여행을 갔다가 세계일주 항공권을 주겠다는 꼬임에 넘어가 코카인 한개(1킬로그램)를 넣고 홍콩에 와서 잡힌 멍청한 놈인데 이 녀석이 말을 어떻게 하느냐면 말이야 이빨이 몽땅 빠진 우리 할머니처럼 바람이 쉭쉭 새는 소리를 내질 않나, 아님 어린 계집애처럼 코맹맹이 소리를 내니 도대체 알아먹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버마 출신으로 태국으로 흘러들어가 뜨랑의 생선 깡통공장에서 5년을 일하다 친구의 꼬드김에 어쩌다 정신을 차려 보니 스탠리 감옥이더라는 찌웨의 말인즉도 그러했다. 하지만 찌웨의 이 말에 ‘총알 두발 더하기 셋’(Two Bullet Plus Three)이란 별명을 가진 베트남 북부 박지앙 출신 응오는 덧니 사이로 침을 튀겼다.

“천만에.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건 프랑스놈이라네. 내가 스탠리에 오기 전 라이치콕 구치소에 있을 때 헤로인 봉지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있다 걸려 들어온 노인네가 있었지. 물론 제가 쓸 양이어서 기껏해야 일이년 살면 고작이야. 이 영감탱이의 영어는 그야말로 끔찍했어. 마치 찢어진 작은북에서나 울리는 소리를 말이라고 울려대는 거야. 도대체가 인간의 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지. 기분 나쁜 건 말이야, 이 작자가 내가 베트남에서 왔다는 걸 알더니 대뜸 자기네 나라 말을 할 줄 안다고 여기고 내게 코맹맹이 소리를 하면서 덤벼드는 거야. 베트남이 자기네 나라 식민지였다는 거지. 마더 퍼킹 프렌치. 그땐 우리 아버지도 태어나지 않았을 때였단 말이네.”

아이스 3킬로그램으로 스탠리 감옥까지 오게 된 응오는 드물게 육로로 국경을 넘다 잡힌 디디(DD, Dangerous Drug)였다. 사실 목적이 이주노동이었던 응오는 하노이의 브로커에게 미화 2백달러짜리 월경(越境) 패키지를 사서 중국 땅을 거쳐 홍콩으로 잠입하던 중이었다. 홍콩 경계를 넘던 날 브로커는 일행 모두에게 총알 두개씩을 나누어주었다. 종류도 제각각이어서 황금처럼 빛이 나는 38구경 권총 총알도 있었고 퍼렇게 녹이 슨 M16 소총의 총알도 있었다. 그건 홍콩 경찰에 잡혔을 경우 추방당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불법입국으로 추방당하면 투자한 2백달러는 고스란히 날려야 했지만 총알 두발을 갖고 있으면 불법무기소지죄로 21개월의 실형을 살 수 있었다. 홍콩 감옥에서 21개월의 실형이면 최소한 미화 6백달러 정도는 소내노동으로 벌 수 있었으므로 브로커에게 지불한 2백달러를 회수하는 것은 물론 3, 4백달러가량의 현금을 챙겨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렇게 총알로 보험에 든 월경은‘총알 두발 홍콩관광 패키지’로 불렸다. 응오의 패키지는 재수가 없어 경계를 넘자마자 발각되어 일행 모두가 체포되었다. 응오에게서는 총알 두개와 함께 아이스 3킬로그램이 덤으로 나왔다. “아 글쎄, 넘기 전에 브로커 자식이 테이프로 둘둘 만 뭔가를 주면서 홍콩의 누구에게 가져다주면 2백달러를 받을 수 있다고 하더란 말이지. 그게 뭔지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덕분에 스탠리에까지 오게 된 응오는 21개월이 아니라 21년형을 받았다. 물론 그 안에는 총알 두개 몫인 21개월도 포함되어 있었다.

영어에 관한 5유닛 죄수들의 방담이 열기를 더할 때 만사에 끼어들기 좋아하는 황이 자신의 의견을 제출하지 않을 리 없었다. 이번엔 미국영어론(論)이었다.

“미국 영어란 것이 말일세……”

황이 흠흠거리며 연음(延音)이 어쩌니 저쩌니 아는 척하며 말이 길어지자 찌웨는 옆에 있던 박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글쎄 그 미국놈도 말을 꼭 이런 식으로 알아먹지 못하게 하더라니까”라는 말을 남기고 멋대로 자리를 떴다. 뒤를 따라 나머지 죄수들도 모두 없어져버리는 통에 황의 얼굴색은 붉으락해졌다. 그러나 동료들이 그런 식으로 사라져버린 이유는 도대체가 알아먹을 수 없는 단어들이 황의 입에서 줄지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스탠리 감옥의 외국인 죄수들이 수용된 유닛의 영어세계에는‘지껄여도 2백 단어 안팎으로’라는 불문율이 존재했다.

“웬 말을 그리 어렵게 하는가. 천하가 자네 같은 작자들의 세치 혓바닥 때문에 어지러운 걸 모르나?”

마침 황의 등 뒤에 서 있던 살인 무기수 리우(劉) 노인이 핀잔을 주자 황은 머쓱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었다.

“미안합니다.”

“다음부턴 말을 좀 제대로 하게.”

“그러겠습니다.”

사정이 이랬으므로 누구라도 두어달쯤 지나면 얼추 이 세계에 끼어들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함은 물론, 심지어 다툼과 모략까지도 능히 수행할 수 있었지만 아쯔시는 어쩐 일인지 이게 되지 않아 외롭고 고독한 이지메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감옥 전체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휩싸인 저녁, 죄수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10호방 앞 기둥에 등을 기대고 하릴없이 고독을 씹던 아쯔시의 눈에 수인복 윗주머니에 꽂힌 작은 일영사전이 들어왔다. 아쯔시는 또 한숨을 내쉬었다. 홍콩 주재 일본대사관의 스탠리 감옥 담당직원 후꾸도메(福留)가 영치해준 물건이었다.

“아, 그렇다면 말이지요. 필담을 해보시지요. 홍콩의 중국인들이 쓰는 한자는 일본 것과도 근본과 생김새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만.”

후꾸도메는 한달에 한번 오는 면회에서 딴에는 신통한 조언을 해주었다. 아쯔시는 시간이 남아돌아 골판지 조각으로 불상은 만들어도 공책을 펼쳐놓고 흔쾌히 필담을 끄적일 상냥한 인간은 적어도 5유닛에선 찾아볼 수 없다고 변명처럼 그에게 말했지만, 상용한자(常用漢字) 1945자는 물론 1천자에 불과한 초등학교 권장 교육한자(敎育漢子)의 3분의 1도 정복하지 못한 아쯔시가 필담을 나누기란 애초에 역부족이었다. 사실은 후꾸도메가 이 말을 하기 전에도 상냥한 중국인 황이 필담 나누기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아쯔시는 황이 써갈긴 일필휘지의 필기체 한자 중에서 고작 ‘日’자 하나만을 알아보고 읽을 수 있었다.

마름모꼴의 공간을 빈틈없이 가득 흘러다니고 있는 인간의 소리들, 자신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소리들은 아쯔시를 더욱 쓸쓸하게 만들었다. 10호방 창문 너머의 빗줄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아쯔시는 울적한 마음에 눈을 감았다. 토떼모 사비시이(참으로 쓸쓸하구나). 애인 준꼬의 마지막 얼굴을 떠올리려 했지만 왠지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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