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중혁 金重赫

1971년 경북 김천 출생. 2000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소설집 『펭귄뉴스』 『악기들의 도서관』 『1F/B1 일층, 지하 일층』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장편소설 『좀비들』 『미스터 모노레일』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나는 농담이다』 등이 있음. popsong7@gmail.com

 

 

 

휴가 중인 시체

 

 

버스에다 전 재산을 싣고 떠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누군가 그 사람을 취재해보면 어떻겠냐고 말했고, 나는 건성으로 들었다. 그런 사람은 흔하지. 어떤 사람인지 알겠어. 얘기만 들어도. 견적이 나와. 보지 않았는데 얼굴 생김새도 그려져. 수염도 좀 있겠지. 옷 스타일도 알겠고. 인생은 여행이라고, 낭만은 바다에 있다고, 생각하겠지. 내 생각과는 다를 거라는 말을 다시 들었지만 생각을 고치지 않았다. 다른 일에 몰두했고, 석달이 지난 후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그 사람을 보게 됐다.

생각과는 달랐다. 텔레비전 화면 속의 그는 웃지 않았다. 괜한 웃음도 짓지 않았다. 행복해 보이지도 않았다. 거울 속에 있는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감기에 걸렸다는 이유로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얼굴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리포터는 버스 안의 물건들에 감탄하면서 설명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고, 덕분에 방송은 짧았다. 기이한 사람들을 짧게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원래는 좀더 긴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은데, 그날따라 더욱 짧게 느껴졌다. 얼굴이, 특히 눈빛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물어물어 연락처와 현재 위치를 알아냈다. 연락부터 할까, 직접 찾아가볼까. 연락을 먼저 한다면 예의를 갖출 수는 있어도 방어벽이 생긴다. 얼굴 뒤편의 표정은 전혀 보지 못하고, 꾸며낸 표정만 보고 올 확률이 높다. 배낭에다 짐을 챙겼다. 노트북과 녹음기, 간단한 옷가지.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차가운 바람이 도시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즈음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두번째 삶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였다. 확실한 것은 첫번째 삶이 끝났다는 것뿐이었다. 그냥 온몸으로 깨달았다. 불안과 공포와 환멸과 싫증과 권태와 무력이 액체가 되어 내부로부터 나를 익사시키기 직전이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도 없었고 새로운 생각을 발전시킬 배터리도 없는 상태였다. 두번째 직업을 찾아야 했지만 거기에 걸맞은 재능이 없었다. 나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그때 죽었어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온도가 높아졌고, 그게 새삼스럽게 신기했다.

예전에는 버스를 캠핑카로 개조하는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나와도 그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할 수 없었다. 그 사람들은 삶의 열망으로 가득해 보였다. 버스를 타고 이곳저곳 다니면서 생활하고 싶다는 말은, 모든 곳을 내 집처럼 만들겠다는 의지였다. 버스를 개조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우선 내부 의자를 다 뜯어낸 다음 바닥을 새로 깔아야 한다. 냉장고나 전자레인지를 쓰려면 전기가 필요하고, 물을 보관할 수 있는 탱크와 펌프도 필요하다. 오물을 처리할 장치도 필요하다.

주원씨에게는—가명이다. 책을 쓰게 되더라도 실제 이름은 밝히지 말아달라고 했다. 텔레비전에 나왔을 때도 그의 얼굴 아래에는 ‘버스 여행자’라고만 적혀 있었다—그런 의지가 없어 보였다. 주원씨의 버스는 여느 캠핑카처럼 개조되지 않았다. 45인승 관광버스 내부에 비해 달라진 게 많지 않았다. 운전석 바로 뒤의 여섯 좌석을 뜯어내고 빨간색 3인용 소파를 놓은 점, 소파 옆 네 좌석을 뜯어내고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작은 싱크대를 놓은 점만 달랐다. 내가 보기엔 개조를 하다 관둔 것 같았는데 텔레비전 리포터는 ‘무척 특이하고 미니멀한 개조방식의 캠핑카’라고 포장했다. 주원씨는 대꾸 없이 허공을 보았다.

주원씨를 직접 만났을 때 가장 의외였던 점은 말이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과묵한 인물로 보였지만 주원씨는 말이 많았다. 그의 버스처럼 시동이 늦게 걸릴 뿐이다. 음…, 에…, 그러니까…, 그게 아닙니다, 저는…이라는 도입부를 지나고 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말을 입 밖으로 내보냈다. 주원씨의 말에는 체계가 없었다. 일관적이지 않았고 우발적이었다. 때로 사람들이 그더러 ‘미쳤다’고 하는 것은 주원씨의 그런 특징 때문일 것이다. 말을 거는 방식도 주원씨에게는 중요했다. 눈을 바라보면서 대화를 시작하면 실패할 확률이 크다. 다른 곳을 보면서 넌지시 말을 건네야 그걸 받아준다.

주원씨의 버스를 처음 만난 곳은 바닷가 마을이었다. 버스는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옆의 바닥에 주원씨가 앉아 있었다. 크지 않은 체구인데다 45인승 버스의 덩치 때문에 주원씨는 더욱 초라해 보였다. 평일 오후 4시였고 겨울의 저녁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휴가를 즐기는 것처럼 천천히 해변을 걷는 남녀 말고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주원씨는 걷고 있는 남녀를 보고 있었다.

버스의 왼쪽 옆구리에는 그 유명한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나는 곧 죽는다’. 텔레비전 방송에 나간 후 주원씨의 플래카드는 인터넷에서 잠깐 화제가 되었다. 나도 저 버스 봤다. 버스 개조해서 캠핑카로 만들어드립니다. 연락 주세요. 네가 죽는다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지나가는 길에 봤는데 장의차 본 것보다 더 기분 나쁘더라. 나도 죽는다. 이거 무슨 종교인데요? 버스 여행자 아저씨 반쯤 미친 듯. 저렇게 사는 사람 진짜 이해 안 간다. 조용히 살아요, 좀. 죽으려면 혼자 곱게 죽어야지. 같은 댓글이 적혀 있었다. 나 역시 텔레비전에서 ‘나는 곧 죽는다’라는 문구를 보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극적인 말로 이목을 끌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버스에 동승해도 되겠느냐는 부탁을 했을 때 주원씨는 쉽게 승낙했다. 그렇게 쉽게 허락했다는 것이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마치 나 같은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이야기를 시작했다.

“왜요? 왜 같이 가려고요?”

“솔직히 말할게요. 저는 논픽션 작가예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고요. 따라다니다보면 뭔가 재미있는 게 나올 것 같아서.”

“내가 왜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지 알아요?”

“대충은…… 사람들한테 뭔가 알리고 싶은 거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닌데요.”

“버스에다 ‘나는 곧 죽는다’라고 붙여놓았는데 왜 그런 거예요?”

“나는 곧 죽을 거니까요. 죽을 거니까 계속 돌아다니는 거예요. 한군데 있으면 자꾸 생각하게 되니까 생각하지 않으려고.”

“피해 다니는 거네요?”

“맞아요. 피하는 거예요. 도망 다니는 거.”

“어디서?”

“도망 다니는 나한테로부터 도망 다니는 거. 아니면 도망 다니면서 계속 어디로 갈 수 있을지 알아보는 건지도 모르겠고. 실은 여기에다 절 가두는 거죠. 유폐라는 말 알아요? 아득하고 깊은 곳에다 가둬놓고 잠가버리는 거.”

“버스에다 가둔 거예요?”

“나는 버스에 갇혀서 오래 살 거예요. 엄청나게 오래 살 거야. 심장을 기계펌프로 바꾸고, 팔다리는 그거 알죠? 나와라 만능 팔, 가제트. 다리는 무쇠다리. 아니, 다리는 무쇠바퀴. 머리도 컴퓨터로 바꿀 건데 절대로 업데이트 안 하고, 옛날 기억만 계속 재생시킬 거야. 그래서 아주아주 오래 살 거예요.”

“기계 인간이 되면 오백년은 살겠네요.”

“오백년이 뭐야. 천년은 살아야지.”

“그렇게 오래 살아서 뭐하게요?”

“오래 사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오래 살기 위해서는 좀 기다려야 되거든. 아직은 기술이 거기까지 못 갔으니까. 첨단 기술을 내 몸에 부착하려면 오래 살아야 해. 그러니까 오래 살아야 오래 살 수 있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고 나서는 죄 사함을 받아야지. 죽을 때까지, 몇천년 동안.”

“제가 같이 가도 되겠어요?”

“되긴 하지만, 재미는 없을 텐데……”

“사람마다 재미의 기준은 달라요.”

“프리님은 뭐가 재미있는데요?”

“재미있는 게 없어서 재미를 찾아다니고 있는 거죠.”

“타요. 45인승이라서 자리도 많은데요. 아니지, 소파랑 싱크대 자리 빼고, 짐을 실어놓은 자리를 빼면, 현재 좌석은 서른두개. 그중에 아무 데나 앉아요.”

나 자신을 프리랜서라고 소개한 다음부터 주원씨는 나를 프리님이라고 불렀는데, 별것 아닌 단순한 호칭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때의 나는 전혀 ‘프리’하지 않았다.

주원씨는 운전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평소에는 잘 웃지 않았고 심각한 표정을 지을 때가 많았는데 운전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작은 몸으로 길쭉한 기어 스틱을 능숙하게 움직일 때는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낮 동안 주원씨는 계속 운전을 했다. 길 위에서 행복해 보였다. 직선 도로를 달릴 때는 상쾌해 보였고, 코너링 할 때는 신나 보였다. 처음에는 주원씨를 관찰하는 입장이었지만 며칠이 지나자 나 역시 버스 위의 삶이 편안해져서 내 집같이 느껴졌다. 음악은 언제나 크리스마스캐럴이 흘러나왔다. 주원씨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다이애나 크롤의 「윈터 원더랜드」.

“이름이 다이애나 캐럴인 줄 알았어요. 이름이 캐럴이었으면 내가 더 좋아했을 텐데.”

그렇게 말하고 「윈터 원더랜드」를 따라 불렀다. 모든 가사를 다 따라 하지는 못했다. “워킹 인 어 윈터 원더랜드”라는 부분만 특히 크게 따라 불렀다.

“캐럴만 들으면 언제나 12월로 돌아가는 거 같지 않아요? 12월만 열두번 있는 것도 좋잖아요.”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여행 초반에는 주원씨에게 여러번 인터뷰를 시도했다. 버스 여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 버스 개조에 든 비용, 가장 기억에 남는 도로 등을 지나가는 말처럼 물어보았지만 한번도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했다. 주원씨는 늘 이렇게 되물었다.

“그런 게 왜 궁금해요?”

“난 취재하는 사람이니까 궁금하죠.”

“나는 프리님이 하나도 안 궁금해요. 왜 그런지 알아요?”

“모르겠어요.”

“사람은 얼굴이 답안지예요. 문제지는 가슴에 있고 답안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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