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글로벌 위기와 중국의 대응전략

하나의 추세, 두가지 보수, 세가지 전략

 

 

원 톄쥔 溫鐵軍

중국 인민대학 지속가능발전고등연구원 교수, 시난(西南)대학 향촌건설학원집행원장. freecity7@hanmail.net

 

 

* 이 글은 2016년 번역 출간된 『여덟 번의 위기』(돌베개)의 중국어판 원서 『八次危機』에 부록으로 실린 내용을 번역한 것이다. 필자 원 톄쥔의 요청에 따라 한국어판 단행본에는 싣지 않았지만, 필자와 한국어판 저작권을 가진 돌베개의 동의를 얻어 번역 수록한다. 내용은 원 톄쥔이 월스트리트 금융위기가 한창 벌어지던 2008년에 뉴욕에서 현장 상황을 직접 목격하고 중국으로 돌아와 2010~11년에 주요 전문가들을 모아서 조직한 비공개토론회의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다양한 시각을 가진 여러 사람의 발언을 모아서 정리하다보니 다소 두서없는 부분도 있고,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아 혼란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일대일로(一帶一路) 추진,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설립, 위안화 국제화 시도, 중미관계를 포함한 대외전략 변화 등 근래 주목되는 중국의 행위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내적 논의를 거쳐 나온 것인지,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현재 중국을 이끌어가는 이들의 고민과 딜레마가 어떤 것인지 이해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본문 뒤에 덧붙여진 보론은 이 글이 나오게 된 배경과 의미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 톄쥔이 추가한 내용이다.

 

 

 

2001년 중국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 이후 10년 동안의 국제교류 과정에서 자본 글로벌화에 대해 더욱 깊이있게 인식하게 된 우리는, 21세기 두번째 10년에 중국이 해결 불가능한 세가지 난제에 직면했다고 보았다. 따라서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이에 관해 집중적으로 토론했고, 그 내용을 ‘하나의 추세, 두가지 보수, 세가지 전략’으로 요약했다. 하나의 추세란 글로벌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파시즘화’이고, 두가지 보수란 표면적으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급진자유주의와 독점적 경제가 사실상 시대를 ‘역주행’하여 이미 경험적으로 실패가 입증된 서구의 19세기 정치와 동아시아적 재벌경제로 회귀하는 것을 가리키며, 세가지 전략은 다음에 제시된 해결 불가능한 세가지 난제에 직면한 중국이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출로를 가리킨다.

 

 

1. 글로벌화와 파시즘화의 내적 원인은 ‘해결 불가능한 세가지 난제’

 

일찍이 2001년에 우리는 어떤 비공개 토론회에서, 자본 글로벌화가 세계의 파시즘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1

그로부터 10년 후 우리의 인식은 더 발전하여, 자본주의 금융위기 심화 단계의 세계 파시즘이 본래 독일 ‘나치즘’에서 시작된, 서구 식민화 초기 ‘중상주의’ 국가의 범죄적 전통을 계승한 파시즘과 다르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이는 강력한 패권을 이용하여 신용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된 패권국가가 세계를 상대로 저지르는, ‘신제국론’의 내용과 부합하는 그런 파시즘이다. 이들은 미·소 양대 초강대국의 지정학적 지배가 와해된 이후 단극 세계패권이 자본 글로벌화를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인류에게 패권국가의 금융심화 때문에 발생한 거대한 제도의 비용을 떠넘기고 있다.2

심각한 점은, 신파시즘적 국가범죄라는 본질을 가리기 위해 만들어진 모든 신자유주의적 제도와 시스템에도 전통적 파시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기조정을 할 수 있는 자각적인 제약 메커니즘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국제적 범위의 조사연구와 토론을 거치면서 우리는 다음의 세가지 난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여기게 되었다.

첫째, 2008년 금융 쓰나미 이후 경제위기에 대한 미국의 시장구제 과정은, 단극 중심 정치·경제체제하에서는 임시방편적 조치만 가능할 뿐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신파시즘적 국가들은 화폐발행과 채무를 끊임없이 늘림으로써, 패권을 이용하여 신용을 무한히 확대하는 ‘경로의존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제조업 위주의 경제구조로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금융심화를 통한 가상자본의 버블화와 글로벌화라는 이익추구 방식을 바꾸는 것도 불가능하다. 전세계에 위기의 댓가를 전가해온 추세를 바꿀 리도 없다. 이런 추세는 줄어들기는커녕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신용을 무한 확대하면서 전세계에 금융위기의 댓가를 떠넘기는 이런 추세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나 제도나 메커니즘은 정말 없는가? 없다.

둘째, 현재 전략적으로 가까워지는 중·미관계의 본질은, 군사적 패권을 이용하여 버블화된 화폐 시스템을 유지하고 글로벌 자원 시스템을 통제하는 미국에 중국이 ‘재종속’되는 것이고, 이런 종속관계가 갈수록 깊어지는 것이다. 또는 워싱턴 컨센서스가 전세계에 빈부의 ‘2대8 법칙(파레토 법칙)’을 받아들이게 만든 상황에서, 이른바 선진국 클럽이 이를 ‘4대6’ 수준으로 재조정하는 것이다. 중국 인구가 전세계의 20%를 차지하기 때문에, 중국에서 서구적 모델의 현대화가 실현된다면 워싱턴 컨센서스가 세계에 강요한 ‘2대8’(20%에 불과한 백인 중심의 선진국이 글로벌 자원을 독점)은 이른바 베이징 컨센서스가 이끄는 ‘4대6’으로 바뀌게 된다.

서방세계의 주류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터무니없는 면모는 그 내재적 모순에서 기인한다. 그들은 한편으로 중국에 서구 자본주의 제도로 편입되어 들어오라고 요구한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원이 유한하다는 핑계로 중국이 서구 모델에 따라 현대화를 추진하는 것을 거부하고, 중국이 세계 정치·경제질서에 도전하여 세계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비판한다.

중국에서 일찍이 1957~72년에 진행된 ‘탈종속’의 경험과 비교하면, 세계질서로 ‘편입’되려는 지금의 노력은 사실상 ‘재종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향후 10년 동안 중국은 이런 ‘재종속’ 상황을 바꿀 가능성이 있는가? 역시 없다.

셋째, 과거 제국주의국가 내부의 부르주아계급과 프롤레타리아계급 사이의 대립적 모순과 사회적 충돌은 서방의 산업이 외부로 대거 이전됨에 따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대립적 모순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노동자의 입장이 된 개발도상국의 발언권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두가지 자체 원인 때문이다.

하나는 노동자집단의 전반적인 발언권 상실이다. 중국은 공산당이 이끌고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세계 최대의 제조업 국가고, 중국의 노동자집단은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방대한 집단이다. 소련 모델의 세계 공산주의 시스템이 와해됨과 동시에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 개혁을 시작했다. 이 개혁이 완수된 후 중국의 노동자계급이나 노동자집단에게, 동원능력이 있는 자신의 담론이나 활동공간이 남아 있는가? 없다.

다른 하나는 서방 주류담론을 통해 배양된 지식인들이 의식하지 못한 채로 서방 이데올로기의 통제를 받는 것이다. 일찍이 서구에서 시작된 노동자계급운동은 ‘노동자가 세상을 창조했으므로 노동자는 신성하다’는 이념을 파생시켰다. 노동자계급은 권익을 쟁취하기 위해 자유와 민주를 표방하는 사회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하여, 착취자인 자본보다 정치적·도덕적으로 더 우위를 차지했고, 각 계층 모두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보편적 가치’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서방이 산업을 외부로 이전하자, 도덕적 우위를 갖는 이 깃발은 서방에서 새로이 사회주체가 된 중산층에게 넘어갔고, 심지어 독점금융자본의 이익을 옹호하는 신자유주의의 주요한 이데올로기적 무기로 악용되었다. 그렇다면 중국을 포함한 개발도상국의 노동자계급에게는 무엇이 남아 있는가? 그들이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전통적인 이데올로기와 담론이 신자유주의가 사용하는 무기와 같아져버리지 않았는가? 현재 개발도상국의 억압당하는 민중운동이 외치는 구호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담론과 매우 유사하다. 인권이니 자유니 민주니 정의니 하는 것들은 모두 서방이 산업 이전으로 수익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세계에 널리 퍼진 담론인데, 이는 더이상 개발도상국 노동자의 이익을 지켜주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발도상국과 그 노동자집단에 새로운 담론을 형성할 가능성이 남아 있는가? 맑스(K. Marx)가 살았던 시대에는 들불처럼 일어난 노동자집단의 투쟁이 자본의 확장을 억제했고, 노동자집단의 대규모 투쟁이 사회 진보를 이끄는 주요한 힘이 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노동자집단의 투쟁을 효과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담론이 소실되었다. 그런데도 노동자집단의 투쟁을 통해 자본을 억제할 수 있는 역량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가? 역시 불가능하다.

앞의 세가지 난제가 모두 해결될 수 없다면, 서방이 주도하는 금융자본 글로벌화는 아무런 제약도 없이 질주할 것이다. 이런 글로벌화에 내재하는 위기는 ‘단극패권세계’가 파시즘화로 치닫게 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세계의 자기파괴가 초래될 것이다.

이런 암울한 답안이 바뀔 가능성은 정말 없는가?

 

 

2. 세계질서의 변화 추세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현재의 세계질서가 상당 기간 변하지 않을 것이고 통제 불가능한 위험이 증가할 것이라고 보았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⑴ 계속 심화되는 글로벌 자본주의 위기

 

자본주의 문명사의 산업자본 단계에 서구의 노동자집단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벌인 투쟁은 산업자본의 비용 내부전가를 억제하는 힘이 되었다. 국내의 저항이 커져서 제도의 비용이 갈수록 증가하자 이를 해소할 수 없었던 산업자본은 1970년대부터 대규모로 서구를 벗어나게 된다. 금융자본 단계에 들어선 이후 노동자집단의 투쟁은 더이상 내부적 제약 요인이 되지 못했다. 금융자본의 심화와 확장은 자국 사회와 대중의 제약을 거의 받지 않았다. 해외사업의 수익을 대거 흡수하여 자국 대중이 글로벌 자본화의 이윤을 공유하게 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두번째 10년에 들어서자 전세계는 정부 채무에 대해, 특히 선진국의 부채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2008년에 글로벌 경제위기가 발생했을 때 전세계 정부 부채의 총규모는 36조 달러였는데, 2010년에는 40조 달러로 10% 이상 늘어났으며, 2011년에는 약 50조 달러에 이르러 25% 이상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또한 금융위기가 폭발한 2008년에 선진국의 채무는 세계 각국 정부 채무 총합의 70% 이상이었는데, 그 이후 지금까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선진국의 부채 증가는, 산업 해외이전으로 경제구조에서 지출의 경성 제약[3. 헝가리 경제학자 코르나이(Janos Kornai)는 사회주의체제의 기업 또는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지원을 믿고 예산을 방만하게 운용하는 현상을 가리켜 ‘연성(soft) 예산제약’이라고 불렀다. 이는 외부 지원을 기대할 수 없어 예산을 엄격하게 운용해야 하는, 즉 ‘경성(hard) 예산제약’하에 있는 자본주의 기업의 경우와 대비된다. 여기

  1. 원 톄쥔 「글로벌화와 세계 파시즘(全球化與世界法西斯主義)」, 『우리가 바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我們到底要什麽)』, 화샤출판사(華夏出版社) 2004(제1판).
  2. 미국의 ‘신제국론’은 냉전이 종식된 후 유행하기 시작하여, 21세기 초 미국정부가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다. ‘단극안정론’(William Wohlforth), ‘선제공격론’(George W. Bush), ‘주권제한론’, ‘민주평화론’은 신제국론의 네가지 이론적 중심축이다. 윌리엄 월포스는 제일 먼저 ‘단극안정론’이라는 관점을 제기했다. 그는 구소련 해체 이후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었고, 미국과 독자적으로 맞설 수 있는 국가는 더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고 본다. 세계체제를 이끄는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국제적 충돌을 일으키는 상황은 더이상 일어날 수 없게 되었고, 국제관계에는 미증유의 ‘단극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양 윈중(楊運忠) 「‘신제국론’—21세기 미국 패권의 이론적 패러다임(‘新帝國論’—21世紀美國稱覇的理論範式)」, 『당대아시아태평양(當代亞太)』 2003년 제1기, 3~10면; William Wohlforth, “The stability of a unipolar world,” International Security Vol. 24, No. 1 (1999), 5~41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