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K-방역의 그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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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근 趙亨根

사회학자. 전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HK교수. 공저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향하여』 『사회를 구하는 경제학』 『좌우파사전』 등이 있음.

remineur21@gmail.com

 

 

1.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정신에 깃든 것

 

서울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던 1129번 확진자는 2020년 1월 23일부터 26일까지 중화권 관광객들을 상대로 해설을 했다. 1월 31일부터 인후통이 왔다. 이후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먼 거리도 걸어 다녔다. 집에서도 마스크를 하고 위생장갑을 꼈다. 식기도 소독했다. 증상과 이동경로를 직접 적은 코로나 일지가 38쪽에 달했다. 접촉한 23명 모두 음성이었다. “평소 남에게 작은 피해라도 주는 게 너무 싫었다”는 사려 깊은 처신이 낳은 결과다. 코로나19 시대의 영웅은 이런 모습이다.1

1129번 확진자만큼은 못 돼도 행여 남에게 작은 피해라도 줄까 전전긍긍하며 살아온 우리다. 그해 8월 중순의 어느 밤, 휴대폰으로 확진자 접촉 통보를 받은 우리도 그랬다. 처가 전화를 안 받는다며 내게 연락한 역학조사관은 CCTV 확인 결과 처가 확진자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고 알렸다. 검사를 받으라는 통보였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그 시간에 처는 집에 있었다. 아닌 것 같다고 말했지만 조사관은 완강했다. 실랑이 끝에 받은 CCTV 사진에는 다른 사람이 찍혀 있었다. 아니라고 설명하고 전화를 끊었다. 안심이 됐을까? 아니, 새로운 공포가 밀려왔다. 조사관은 아파트 우리 라인에 확진자 두명이 동시에 나왔다고 했다. 도시에는 지역감염이 번지고 있었다. 바로 자발적 격리에 들어갔다. 처는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나도 모든 일정을 온라인으로 바꿨다. 격리가 시작되고 열흘쯤 지나자 정말 우울해졌다. ‘코로나 블루’가 그런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의무가 아닌데도 생활반경을 최소화하고, 심지어 스스로를 유폐시켰다. 감염이 두려웠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의 감염이 초래할 다른 이들의 불편이 더 두려웠다. 그러니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코로나19 1차 확산을 겪은 후인 2020년 5월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내가 확진자가 될까 두렵다’는 마음보다(64% 동의), 감염의 결과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까봐 두렵다’는 마음이 훨씬 컸다(86% 동의).2

이 놀라운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K-방역 성공’의 원천 중 하나였을 것이다. 투명하고 신속한 정보공개, 추적(tracing)·검사(test)·처치(treatment)의 3T로 구성되는 정부의 촘촘한 방역행정도 결국 시민들 사이의 배려와 자발적 협력이 있었기에 잘 작동할 수 있었다. 전술한 여론조사를 다룬 기사는 그것을 ‘민주적 시민성’이라는 말로 요약했다. 한국이 팬데믹 와중에 인명피해가 가장 적은 나라 중 하나가 된 핵심 요인은 타인을 배려하는 자발적 협력의 심성, 그 민주적 시민성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이 아름다운 서사에 조금 민폐를 끼치려 한다.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선의의 이면에 깃든 것은 민폐 끼치는 이들에 대한 분노였다. 민폐에 대한 감각에는 단죄의 욕망이 내재되어 있었다.3 나는 이렇게 힘들여 참고 있는데, 당신들은 왜 참지 못하느냐라는 비난과 원망의 정동이 웅크리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그 정동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자라온 한국사회의 모순들과 단단히 결합되어 있다.

 

 

2. 서구 대 아시아, 국가권력 대 개인이라는 이분법

 

2020년 1월 23일, 중국 우한과 주변 도시들이 예고 없이 봉쇄됐을 때 세상은 충격에 빠졌다. 묵시록적 광경이 펼쳐졌다. 이윽고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덮쳤다. 공포 앞에서 나라마다 대응이 비슷하면서도 또 달랐다. 중국은 억압적인 봉쇄정책으로 권위주의 방역의 대표 모델이 됐다.4 서구에서도 봉쇄가 잇달았다. 방역의 긴급성 앞에서도 서구인 대다수는 개인의 자유에 완고했다. 일률적인 마스크 착용도, 개인정보 수집에 기반한 디지털 방역행정도 없었다. 아니, 불가능했다. 그 대신 확진자가 폭증했고, 사망자도 늘었다. 서구가 치른 댓가였다.

자유를 희생한 중국 모델과 생명을 희생한 서구 모델 사이에 체제 경쟁이 벌어지고 있을 때 한국 방역 모델의 존재감이 도드라졌다. 한국은 전면적인 봉쇄나 영업·이동의 자유 제한 없이도 끝내 확진자 수의 극적인 감소를 이뤄냈다. 4월에는 총선까지 무사히 치렀다. 중국의 권위주의와 서구의 개인주의에 대비되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빛났고, K-방역은 그렇게 브랜드가 되었다.

코로나19에 대한 국가 간 대응의 차이, 그 성공과 실패의 이유를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서구와 아시아를 대조하는 ‘문명론적 접근’이다. 프랑스 철학자 기 소르망(Guy Sorman)은 2020년 4월 27일, 『르뿌앵』(Le Point)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코로나19 방역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다”고 호평하면서도, “유교문화가 선별적 격리조치의 성공에 기여했다. 한국인들에게 개인은 집단 다음”이라고 단언했다. 휴대전화 정보를 이용해 감염자를 추적하는 것에 대해서도 “한국인들은 이를 받아들인다. 매우 감시받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듬해 한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위계질서나 훈육에 사람들이 잘 스며들어 있다”며 재론했다.5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아시아 모델 비판은 더욱 신랄했다. 그는 한국·일본·대만·홍콩·싱가포르 등의 방역정책을 중국과 함께 아시아 모델로 묶은 다음 디지털 생명정치로 규정했다. 그가 생각한 성공 원인은 무엇일까? 아시아가 “문화적 전통(유교)에서 비롯된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유럽보다 덜 완고하고 더 순종적이다

  1. 「남에게 옮길까봐 걸어 다녀, 1129번 확진자 25일간의 ‘코로나 일지’」, 동아일보 2020.3.4 참조.
  2. 천관율 「코로나19가 드러낸 ‘한국인의 세계’: 의외의 응답 편」, 『시사IN』 663호(2020.6.2).
  3. 서보경 「감염과 오명, 보복하지 않는 정의에 대하여」, 미류 외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창비 2021, 43면 참조.
  4. 중국의 방역행정을 권위주의 모델이라고 단순하게 보기는 어렵다. ‘인민전쟁’부터 ‘디지털 법가’에 이르기까지 중국 방역에 대한 다양한 해석 틀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 하남석 외 지음, 백영서 엮음 『팬데믹 이후 중국의 길을 묻다』, 책과함께 2021.
  5. 「기 소르망 “한국, 방역대책 최고지만…심한 감시 사회” 주장」, 동아일보 2020.4.29; 「기소르망 “백신 특허 면제해야… 강대국의 이기심은 피해로 되돌아올 것”」, 한국일보 2021.5.2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