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 朴玟奎

1968년 울산 출생. 2003년 『지구영웅 전설』로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한겨레문학상 수상. kazuyajun@hanmail.net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나의 산수

 

화성인들은 좋겠다. 그해 여름은 너무 무더워, 나는 늘 그런 상념에 젖고는 했다. 상고(商高)의 여름방학은 생각보다 길어서, 그런 상념에라도 빠지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긴긴 여름, 게다가 나는 여러 일터를 전전했다. 오후엔 주유소에서, 또 밤에는 편의점에서. 있으나마나 한 여자애들이 일터마다 있긴 했지만, 있으나마나 했으므로 지루하긴 마찬가지였다. 비하자면 수성과 금성과, 있으나마나인 별들을 지나, 지구까지 오던 태양광선이 나 같은 기분이었을까? 덥지도 않고, 멀고 먼, 화성.

 

일터를 돌다 보면 별의별 일들을 겪게 마련인데, 모쪼록 그해의 여름이 그러했단 생각이다. 주유소에선 시간당 천오백원을, 편의점에선 천원을 받았으므로 나는 늘 불만이 가득했다. 그게 그러니까, 시작 때완 달리 불만이 생기는 것이다. 편의점 사장은, 이러면서 세상을 배운다― 라고 말했지만, 이천원씩 받고 배우면 어디가 덧나나? 뭐야, 그럼 당신 자식에겐 왜 팍팍 주는데?를 떠나서― 못해도 이천원 정도의 일은 하고 있다고 나는 늘 생각했다. 글쎄 천원이라니. 덥기만 덥고, 짜디짠, 지구.

 

코치 형이 가게를 찾아온 것은 그 무렵의 새벽이었다. 어떠냐? 좋아요. 편의점 알바 역시 코치 형의 소개로 얻은 것이므로, 좋다고밖에는 말할 도리가 없었다. 지역의 알바 정보를 한손에 쥐었다고 할까, 아무튼 그래서 후배들에게 일자릴 소개하고 요모조모 코치하길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이 얼마나 요긴한가, 나는 카프리썬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제 돈으로 사는 거예요. 웃으며 말은 했지만, 알고나 드세요. 제 인생의 이십오분이랍니다― 시계를 쳐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지금 일하는 덴 사장이 꼴통이라서 말야… 오늘도 여자애 허벅질 만졌지 뭐냐… 나 참… 그래도 되는 거냐? 되고 말고를 떠나 허벅지를 만지면 시간당 만원은 줘야 되는 게 아닌가, 나는 생각했다. 만지는 게 나쁜 게 아니다. 그러고 고작, 천원을 주는 게 나쁜 짓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너 푸시업 잘하냐? 푸시업이라뇨? 팔굽혀펴기 말이다. 무조건 잘한다고 나는 대답했다. 그래야 일자리가 생긴다는 건, 그때도 이미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페이가 세. 시간당 삼천원인데… 대신 몸이 좀 힘들어. 삼천원이요? 앞뒤 잴 것도 없이, 시간당 삼천원이란 말에 귀가 확 뚫리는 기분이었다. 내 주변에 그런 고부가가치산업이 존재하고 있었다니. 제의를 받은 사실만으로도, 갑자기 확, 고도산업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한 느낌이었다. 좋구말구요. 수성과 금성과 지구를 지나, 비로소 화성에 다다른 태양광선이 바로 나 같은 기분일까? 있으나마나에 받으나마나, 지구여 안녕.

 

그런 이유로, 나는 푸시맨이 되었다. 좋은 점은 전철을 공짜로 탄다는 것, 팔힘이 세진다는 것, 게다가 다른 알바에 전혀 지장을 안 준다는 거야. 이를테면 여기 일을 마친 다음 슬슬 역에 나가 ‘한딱가리’ 하면 그만이란 거지. 깔끔해. 공사 소속이니 지불 확실하지, 운동이 되니 밥맛도 좋아, 그러니 잠 잘 자고 주유소 일도 계속하고… 코치 형의 코치가 쉬지 않고 이어진 것도 까닭은 까닭이었지만― 다른 무엇보다 이유는 삼천원이었다. 요는 짧고 굵게 번다, 이거군요. 그런가? 뭐…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까 모르겠군. 코치 형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확실히 그런 식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것이 나의 산수(算數)다. 웃건 말건, 세상엔 그런 산수를 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 있게 마련이다.

 

미안하구나.

 

아버진 그렇게 얘기했다. 또 그 소리. 내가 일만 한다 하면 늘 같은 소리였다. 처음엔 들을 만했는데, 결국 들으나마나가 돼버린 지 오래다. 나이 마흔다섯에 시간당 삼천오백원, 즉 그것이 아버지의 산수였다. 여하튼 무슨 상사(商社)에 다녔는데, 여하튼 ‘무슨 상사’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직장이었다. 딱 한번 나는 그곳을 찾아간 적이 있다. 중학생 때의 일인데 도시락을 갖다주는 심부름이었다. 약도가 틀렸나? 엄마가 그려준 약도를 몇번이고 확인하며 근처의 골목을 서성이고 서성였다. 간신히 찾아낸 아버지의 사무실은― 여하튼 그곳에 있기는 한, 그런 사무실이었다. 쥐들이 다닐 것 같은 어둑한 복도와, 형광등과, 칠이 벗겨진 목조의 문. 혹시 외국인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이나 ‘을씨년’스러운 곳이었다. 깜짝이야, 그런 단어가 머릿속에 있었다니. 넉넉한 환경은 아니어도, 제법 메탈리카 같은 걸 듣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세상은 뭔가 ESP 플라잉브이(‘메탈리카’가 사용한 기타의 모델명)와 같은 게 아닐까, 막연한 생각을 나는 했었다. 했는데, 해서 문을 열고 들어서자― 꼬박꼬박 도시락만 먹어온 얼굴의 아버지가 가냘픈 표정으로 사무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 저 왔어요.

 

원래 좀 노는 편이었는데 이상하게 그날 이후 나는 조용한 소년이 되어버렸다. 뭐랄까, 그때는 몰랐지만― 그 순간 마음속에 〈나의 산수〉와 같은 게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랬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슬픈 일도 기쁜 일도 아니었으며, 누구를 원망할 성질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말 그대로 수(數)였던 것이다. 말수가 줄어든 대신, 나는 열심히 알바를 하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야, 세상은 한 방이야― 어울리던 친구들이 안쓰럽단 투로 말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결국 이들도 같은 산수를 할 수밖에 없단 사실을. 넌 뭘 할 건데? 나? 글쎄 요샌 연예계가 어떨까 싶어.

 

인간에겐 누구나 자신만의 산수가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을 발견하게 마련이다. 물론 세상엔― 수학(數學) 정도가 필요한 인생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삶은 산수에서 끝장이다. 즉 높은 가지의 잎을 따먹듯― 균등하고 소소한 돈을 가까스로 더하고 빼다보면, 어느새 삶은 저물게 마련이다, 디 엔드다. 어쩌면 그날― 나는 ‘아버지의 산수’를 목격했거나, 그 연산(演算)의 답을 보았거나, 혹 그것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즉 그런 셈이었다. 도시락을 건네주고, 산수를 받는다. 도시락을 건네주고, 산수를 받았다. 그리고 느낌만으로 〈아버지 돈 좀 줘〉와 같은 말을 두번 다시 하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참으로, 나의 산수란.

 

미안하구나.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지만, 아버지, 이건 나의 산수예요―라고 나는 생각했다. 정기적금 정기적금, 또 한통의 자유적금. 시급 천오백원과 천원이 따로따로 쌓여가는 통장들을 생각하면, 세상에 힘든 일은 없었다. 말할 것 같으면, 내 주변은 주로 그랬다. 코치 형만 해도 통장이 다섯개다. 코치 형네엔 아버지가 없지만, 우리집처럼 병든 할머니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쌤쌤이다. 코치형의 어머닌 식당일을, 누나는 서점일을, 그밖의 사정은 말을 안해 모르겠다. 들은 바, 중학생 때의 코치 형은 본드로 유명한 소년이었다, 한다. 무렵엔 그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래, 누구나 자신의 산수를 가지고 살아가는 거겠지. 그러니까

 

나의, 산수.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들은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주셔야겠지만, 그게 될 리가 없는 것이다. 승객들은 모두 전철을 타야 하고, 전철엔 이미 탈 자리가 없다. 타지 않으면, 늦는다. 신체의 안전선은 이곳이지만, 삶의 안전선은 전철 속이다. 당신이라면, 어떤 곳을 택하겠는가.

 

처음 열차가 들어오던 그 순간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열차라기보다는, 공포스러울 정도의 거대한 동물이 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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