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주희 金珠熙

1973년 서울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동대학원 재학중. chaos-0@hanmail.net

 

 

 

제6회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

소꿉놀이

 

 

딸딸딸딸따따.

아빠가 온다. 이화약국을 지나 오뚜기분식점 앞에서 뒤를 돌아본 뒤, 메뚜기 같은 아빠는 양어깨를 쫙 펴고 온다. 헬멧을 쓴 모습이 꼭 메뚜기 같은 아빠는 언덕이 가파른 오뚜기분식점 앞에서 오토바이 뒤에 묶어놓은 한냉소시지가 잘 있는지 확인하는 일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나는 아빠보다 오토바이 뒤에 묶여 있는 한냉소시지를 떠올리며 침을 꿀떡 삼킨다. 팔뚝만한 한냉소시지는 색깔도 예쁜 분홍색이다. 그러나 소시지는 언니들의 도시락 반찬이기 때문에 나는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다. 언니들이 도시락을 쌀 때 겨우 하나나마 얻어먹을 수 있는 정도인데, 언니들이 학교에 간 후에야 잠에서 깨는 나 같은 늦잠꾸러기는 잘 얻어먹지도 못한다.

아빠는 한냉소시지를 자랑스러워한다. 아빠의 회사에서 나오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새 학기마다 언니들의 가정환경조사서를 쓸 때 ‘(주)한국냉장’이라는 글자에 힘을 준다. 그러나 올해 5학년인 큰언니는 “치, 그냥 노량진 수산시장이라고 하면 될 걸” 하며 입을 삐죽거린다. 아빠는 볼펜으로 큰언니의 머리통을 툭 치며, 허허허 웃는다. 아빠가 직위란에 ‘조합원’이라고 쓰면 작은언니는 “애들이 아빠보고 그냥 생선장수라는데요?”라고 말해서 큰언니처럼 볼펜으로 머리통을 맞는다. 나는 아빠가 조합원이건 생선장수건 상관없이 좋다. 한냉소시지를 먹을 수 있다면야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오로지 나의 소망은 얼른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는 학생이 되는 것이다.

딸딸딸딸따따. 사람들은 아빠보고 딸딸이아빠라고 부른다. 딸이 셋씩이나 돼서 그렇기도 하지만 오토바이 소리를 흉내내서 그렇게 부른다. 오래되고 낡은 아빠의 오토바이는 다른 오토바이보다 소리가 크고 거칠다. 그러나 나는 소리만 듣고도 아빠 오토바이를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군데군데 녹이 슬고 소금기와 생선비늘이 허옇게 들러붙은 오토바이를 타고, 새벽장사를 마친 아빠가 낮잠을 자러 온다. 언덕 아래서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아빠가 오고 있다.

딸딸딸딸따따.

나는 아빠의 오토바이 소리를 들으며 손등 위에 모래를 덮는다. 손이 보이지 않도록 무덤처럼 모래를 쌓는다. 그리고 코카콜라병에 담아온 물을 그 위에 뿌린다. 다른 손으로 모래를 토닥토닥 두들기고 다시 모래를 덮는다. 모래 속에 파묻힌 손을 꼼지락거린다. 모래무덤에 금이 간다. 다시 물을 뿌리고 모래를 덮고 토닥토닥 두들긴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손을 조금씩 빼낸다. 두꺼비집에 또 금이 간다.

“물……”

나는 손을 빼내려다 얼른 다시 집어넣고 두꺼비집을 두들긴다. 화진이가 두꺼비집 위에 코카콜라병을 거꾸로 세워 흔들어 보인다. 겨우 물 몇방울이 떨어진다. 마지막 한방울의 코카콜라가 떠오른다. 톡 쏘는, 달짝지근한 코카콜라. 아껴 먹느라 병 입구에 입을 대고 입 안에 든 코카콜라를 병 속으로 도로 밀어넣었다가는 조금씩 삼키는데도 까만 병은 어느새 투명하게 비어버린다. 마지막 한방울은 그래서 더 달콤하다. 코카콜라를 다 먹었을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두꺼비집이 완성되기도 전에 코카콜라병에 담아온 물이 다 비어버린 것이 못내 아쉽다.

“가위 바위 보!”

나는 주먹을 낸다.

화진이를 외면한 채, 나는 두꺼비집만 토닥거린다. 가슴이 툭 튀어나와 새가슴이란 별명을 가진 화진이는 느릿느릿 손에 묻은 모래를 턴다. 마치 새가 부리로 깃을 고르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모래알이 낀 까만 손톱을 긁으며 화진이는 좀체 일어서려고 하지 않는다.

두꺼비집 위로 물줄기가 쏟아진다. 두꺼비집에는 동전만한 게구멍이 뚫린다. 화진이와 나는 물줄기가 쏟아지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작은 체구에 하얀 얼굴을 가진 남자아이는 얼른 바지의 지퍼를 올린다. 화진이는 숨을 쌕쌕거리며 내 곁에 바짝 달라붙는다. 나는 남자아이보다 한뼘이나 컸지만 키가 더 커 보이도록 뒤꿈치를 살짝 들고 화진이의 손을 꼭 쥔다. 화진이의 거친 숨소리가 조금 잦아든다.

“야! 너 뭐야?”

나는 조금은 건방지고 위엄스러운 상급생의 말투를 흉내낸다.

“난 정환이.”

남자아이는 계집애처럼 헤헤거리며 웃더니 뒤에 감추고 있던 장난감을 툭 던지고 모래밭 옆에 있는 가장 낮은 철봉 위로 올라가 거꾸로 매달린다. 나는 화진이의 손을 놓고 장난감을 펼친다. 주황색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소꿉놀이 장난감이다. 솥 접시 밥그릇 포크 칼 도마 등 여러가지 부엌살림들이 갖추어져 있다. 국자로 모래를 퍼서 밥그릇에 담아보기도 하고 접시들을 일렬로 쭉 늘어놓기도 한다. 화진이도 신기한 듯 바라보지만 손을 댈 듯 말 듯 망설이기만 하지 정작 만지지는 못한다. 남자아이는 철봉에서 내려오더니 장난감을 제 앞으로 끌어당긴다.

“나도 껴주는 거지?”

나는 두꺼비집을 발로 뭉개고 장난감을 다시 내 앞으로 끌어당긴다.

 

중앙대학교 후문으로 들어가면 체육대기숙사와 넓은 운동장만이 덩그러니 있다. 운동장 한쪽에는 안방 크기만한 모래밭이 있는데, 아이들이 종종 넓이뛰기나 씨름을 하는 그곳이 바로 우리의 놀이터다. 모래밭 옆에는 높이가 다른 철봉이 여섯 개 있는데 오른쪽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철봉은 어른의 키를 훨씬 넘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왼쪽의 가장 낮은 철봉에만 매달린다. 낮은 철봉 옆에는 키큰 귀목나무 한그루가 서 있고, 그 옆에는 육각형의 지붕을 얹은 수위실이 있다. 수위아저씨는 가끔 사탕을 나누어주기도 해서 아이들은 아저씨를 볼 때마다 달려가 인사를 하곤 한다.

중앙대학교 후문을 나서면 만나는 상도동. 하루종일 내달리면 흙냄새로 머리가 어찔한 흙언덕이 우리 동네다. 대학교 오른편엔 공동변소가 있는 공터가 있는데 아빠의 오토바이와 고물상 리어카, 트럭 등이 서 있는 곳이고, 그 주변으로 뻗은 골목마다 다세대 집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저녁이면 싸움소리나 술주정 소리로 시끄럽지만, 어른들이 시장이나 공장으로 일 나가고 학생들이 학교로 가버리는 낮이면 동네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대학교 왼편엔 아까시나무로 뒤덮인 산이 있다. 산 사이에는 어른이 누울 정도 너비의 길이 나 있는데, 가파른 고갯길이다. 가도 가도 마냥 그곳이라고 해서 마냥고개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지만 간혹 대학생들이 그 길을 가로질러 학교 정문이 있는 흑석동으로 간다.

대학교 후문을 중심으로 내리막길이 끝나는 곳에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큰 건물인 이화약국이 있다. 그 약국을 지나가면 버스가 다니는 큰길이 나오지만, 그곳 너머는 가지 않는다. 차도 많을뿐더러, 같은 모양의 건물도 많아 길을 잃기 십상이다. 시골에서 올라오시는 할머니를 마중 나갔다가 길을 잃어 파출소에 가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더이상 가볼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곳이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의 동선은 대학교 후문부터 이화약국까지의 언덕길뿐이다.

정환이를 소꿉놀이에 끼워주는 대신 소꿉놀이 장난감은 내 차지가 되었다. 내가 엄마가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살림살이를 맡는 건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당연한 일이다. 언니들이 물려준 짝이 맞지 않는 장난감밖에 없는 나에겐 처음으로 생긴 내 소유의 새 장난감이다.

화진이는 소꿉놀이에서 아기를 하게 되었다. 화진이와 정환이는 서로 아기를 하겠다고 다투었다. 작년에 도망간 엄마가 보고 싶다고 툭하면 엄마, 하며 눈물을 글썽거리다가도 이젠 괜찮아, 하며 금세 헤헤거리는 정환이가 안쓰러워 아기가 되었으면 하고, 나는 은근히 바랐다. 하지만 결국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화진이가 아기를 하게 되었다. 아기가 된 후, 화진이는 진짜 제 엄마라도 되는 양 내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우리는 모래로 밥을 짓고 붉은 벽돌로 잎사귀를 갈아 김치를 만들기도 했다.

대학교 뒷산의 아까시나무들이 누렇게 바랜 잎들을 떨어내고, 가지 사이로 바람이 웅숭그리며 기분 나쁜 소리를 내던 날, 텔레비전에서도 라디오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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