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 사회인문학 연속기

 

전통적 인문 개념과 문심혜두(文心慧竇)

정약용의 공부법

 

 

임형택 林熒澤

성균관대 명예교수. 저서로 『실사구시의 한국학』 『한국문학사의 논리와 체계』 『문명의식과 실학』 등이 있음. lim1767@skku.edu

 

 

우리 역사에 학문저술로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공부법은 어땠을까? 물음 자체가 흥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지만 21세기로 넘어와 10년을 경과한 지금 특히나 제기해볼 필요가 있는 주제로 생각된다.

요즘 인문교양을 강조하고 인문학의 부활을 외치는 소리가 학계의 범위를 넘어서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라 있다. 영국의 저명한 문학비평가 테리 이글턴(T. Eagleton)이 인문학의 위기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자본주의가 발전된 사회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해결할 출구는 없다”(교수신문 2010.9.13)고 답한 인터뷰 기사를 최근에 읽었다. 이글턴의 이 진단은 정곡을 찌른 것으로 보인다. 인문학은 서구주도의 근대, 자본주의체제하에서 주변화되었고 더욱이 시장만능의 자유주의 행보로 인해 폐기될 위기에 놓인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인문학으로 쏠린 관심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당초 인문학 분과에 속하는 당사자들이 인문학의 위기를 호소하자 사회적으로 큰 반향이 일었다. 하지만 이런 현상적 사실로 그 원인이 설명되지는 못한다. 인문학의 위기의식이 인류적 문제로 느껴져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바, 이는 요컨대 ‘문명적 전환’의 시대를 반영한 정신현상이다. 그렇게 보면 인문학의 존망은 실로 문명사적 과제와 직결된다고 하겠다.

지금 우리가 다시 찾는 인문학이란 과연 어떤 인문학일까? ‘두개의 문화’(two cultures)의 하나, 즉 과학과 인문학으로 분리된 상태의 인문학을 뜻하는가. 월러스틴(I. Wallerstein)은 “과학과 인문학 간의 인식론적 차이를 확고히함으로써, 보편적 진리는 인문학자가 아니라 과학자가 제시한 것”1)이 근대 지식구조의 특징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과학이 되지 못하는 인문학은 학문으로서 자격미달인 셈인데 이런 인문학의 위상을 그대로 감수할 것인가. ‘문명적 전환’이라면 서구주도의 자본주의적 근대로부터 획기적인 방향 전환을 의미할 터다. 21세기에 새로 불러일으키는 인문학이라면 학문의 중심적·주도적 지위를 자연과학에 넘겨주고 사회과학에도 밀려난 처지로 존속하는 식이어서는 큰 의의를 갖지 못한다. 그렇다면 르네쌍스 시대의 고전적 인문주의로 복귀하자는 뜻인가. 인문학과 과학이 분리되기 이전으로 인문정신 회복이 기대된다. 하지만 역사의 시간을 되돌리기는 불가능하겠거니와, 유럽적 보편주의의 극복이라는 주요 과제가 간과되기 마련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은 동서고금을 회통한 ‘제2 르네쌍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나는 ‘전통적인 인문 개념과 문심혜두(文心慧竇)’라는 제목을 잡아보았다. 동양 전래의 인문 개념은 다산의 공부법이 나온 곳이기도 하다. 이 인문 개념은 서구주도의 근대세계로 편입되면서 동아시아 전통체제와 함께 실종된 것이다. 다산의 공부법 역시 현실적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 ‘역사의 미아’를 굳이 찾는 뜻은 서구문명의 대립항으로서, 혹은 그 대안으로서 동양문명과 전통적 인문학을 불러오겠다는 것이 아니다. 사고의 발본적 전환으로 인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민해보자는 취지다. 학문이란 어디까지나 자료를 읽고 머리로 사고해서 글로 엮어내는 작업인데, 거기엔 주체의 창의적 활력이 필수요소다. 다산의 공부법이 이 고뇌에 찬 작업의 실천에 참조되기를 희망한다.

 

 

1. 동양 전래의 문명과 인문의 개념

 

아득한 옛날 중국에서 성립하여 동아시아의 한자문명권에 보편적으로 통용된 문명(文明)이란 술어는 인문(人文)이라는 말과도 상통하는 개념이었다.

본디 문명은 개념의 중심이 문(文)에 있었다. ‘문’이 본체이고 ‘명(明)’은 그 발현태에 해당하는 셈이다. 즉 태양의 광채가 지상을 밝게 비추듯 세상이 개명해지는 형국이다. 문이 고도로 실현된 상태, 그것이 다름아닌 문명이다. 따라서 중국적 문명의 특성은 ‘문의 문명’이라고 말해도 좋다. 문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인문이라는 개념과도 직접 관련되는 물음이다.

(文)이라는 한 글자가 포괄하는 범위는 천지와 만물·만사에 걸쳐 더없이 넓고 의미 또한 중층적이다. 얼른 떠오르는 뜻이라면 문자, 즉 한자가 잡히고 이는 글 혹은 문학으로 연계된다. 문은 원래 사물이 어울린 모습이나 무늬, 결을 지칭했다. 그래서 아름다운 상태를 문채(文采)라 이른다. 천연으로 조화를 이뤄 아름다운 문도 있고 인공이 가해져서 아름답게 된 문도 있다. 후자는 질(質, 바탕)의 반대말로 문식(文飾, 꾸밈)이라 한다. 질과 문이 적절히 어울린 상태를 미학적 이상으로 여겨서 그것을 문장(文章)이라고 일컬었다.

이와는 차원을 달리해서, 문은 예악제도(禮樂制度)를 뜻하기도 했다. 『논어』에서 공자가 “문왕(文王)이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문(文)은 여기에 있지 않는 것이냐”라고 말한 대목에, 주희는 “도(道)가 표현된 상태를 일러 문이라 하는데 대개 예악제도를 가리키는 것이다”라고 풀이했다.2) 이 풀이에서 도와 문의 관계도 뚜렷이 드러난다. 도와 문은 둘이면서 하나다. 그런데 예악제도가 목적하는 바는 경세(經世), 즉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다. 경세를 우주적 차원으로 연계시키면 경위천지(經緯天地)라는 말이 된다. 천하의 질서를 세운다는 경위천지는 문의 의미 중 최상급에 위치한 것이다. 예로부터 공자를 칭송할 때 문이란 글자를 사용했던 바 바로 이 뜻이다.

이렇듯 문의 의미망은 글자 하나하나를 가리키는 데서부터 우주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실로 중층적인데다 딱히 경계를 구분짓기도 모호하다. 그 다층구조는 분리된 것이 아니고 상통·상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문명과 관련해서 문제의 인문이란 개념이 도입된 경위를 살펴보자.

인문의 가장 이른 용례는 『주역』의 비괘(賁卦, )에 보인다. “文明以止, 人文也”가 그것이다. 비괘는 그 괘상(卦象) 자체가 불〔〕이 산〔〕 아래 있는 형국이어서 『주역』 64괘 중에 문명과 결부된 것이라 한다. 불은 문명을 표상하는바 그 불이 산 아래 그쳐 펼쳐지니 곧 인문이라고 이 구절은 해석된다. 인문에 대응되는 개념이 천문(天文)과 지문(地文)이다. 천상에 빛나는 태양을 비롯해 달과 별들의 찬란한 형상이 천문이고, 지상에 수놓인 산천과 초목이며 금수의 형형색색으로 어울린 형상이 지문이다. 천문, 지문, 인문에 공통으로 들어 있는 ‘문’은 사물의 어울린 모습이나 무늬를 가리킨다. 천문과 지문의 경우 그야말로 천지자연의 현상을 뜻하지만 인문은 인간의 작위(作爲), 즉 인공이 가해진 문이다. 인문을 천문·지문과 일단 구분하면서도 관련짓고 있다. 그래서 앞서 지적했듯 문과 질이 조화롭게 어울린 상태를 최상의 경지로 생각했던 것이다.

 

“천문을 관찰해서 사시의 변화를 살피고 인문을 관찰해서 천하를 화성(化成)한다.(觀乎天文, 以察時變, 觀乎人文, 化成天下)(『주역 비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