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사고 37주년에 탈핵을 생각하다

이헌석

이헌석                             

지난 15일, 독일은 마지막 남은 핵발전소 3기를 폐쇄했다. 독일 정부는 작년 말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할 예정이었으나, 최근 우끄라이나전쟁 등으로 에너지 공급에 문제가 생기자 폐쇄 시점을 연기한 바 있다. 연기 결정 이후 국내 일부 언론은 ‘대표적인 탈핵 국가 독일마저 정책이 후퇴하고 있다’라는 식의 보도를 이어갔으나, 그들의 예상은 현실로 이뤄지지 않았다. 2000년 독일 사민당과 녹색당 연정이 탈핵 결정을 한 지 23년 만에 독일은 ‘탈핵 국가’가 되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 이후 국내에서도 ‘탈핵(脫核)’ 또는 ‘탈원전(脫原電)’에 대한 정치적 논란이 거세게 이어졌다. 그러나 뜨거운 논란만큼 무엇이 탈핵인지에 대한 논의는 치밀하지 않다. ‘그것을 벗어남’이라는 접두사 ‘탈(脫)’의 사전적 의미만 놓고 본다면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선언 이상 의미가 없었다. 문재인정부 때 운영 중인 핵발전소 숫자는 증가했고, 전체 전력 중 핵발전 비중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고리 5, 6호기 백지화 공약을 발표했지만 공론화 이후 건설공사를 진행했고, 이미 건설 중이던 신고리 4호기나 신한울 1, 2호기 공사는 계속되었다. 1980년대 핵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있었던 부실시공이 뒤늦게 밝혀져 한빛 4호기를 비롯해 많은 핵발전소가 가동을 멈추면서 핵발전 비중이 일시적으로 줄기는 했지만, 이 역시 부실시공에 대한 보수공사와 신규 핵발전소 준공에 따라 다시 회복되었다. 즉 탈핵을 ‘핵발전에서 벗어난 상태’로 본다면 문재인정부는 그의 선언과 달리 탈핵에서 멀어진 것이다. 당시 정부의 계획대로라고 해도 한국은 현재에서 두 세대나 지난 2080년대 말이나 되어 ‘탈핵 국가’가 될 것이었다. 하지만 법률화되지 못한 이 계획은 정권이 바뀌자마자 폐기되었고, 신한울 3, 4호기가 착공됨에 따라 2090년대 이후에도 우리나라에 핵발전소가 운영될 전망이다.

 

한국사회에서 ‘탈핵’은 그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불경한 ‘금기어’ 같은 것이다. 현 세대의 절반 이상이 없을 60년 뒤의 탈핵을 계획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반발과 정치공세에 휩싸인다. 대통령이 바뀐 지 1년이 다 되었지만, 아직도 여당에선 한전 적자를 비롯해 다양한 문제를 ‘탈원전 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 논리를 따르자면 탈핵을 완수한 독일은 이미 망해도 수차례 망했을 것이다.

 

이번 독일의 탈핵은 이런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지구 반대편에선 수십년 전에 탈핵을 결정하고 이제 이것을 완료하고 있다. 사실 독일은 첫번째 탈핵 국가가 아니다. 1972년 핵발전소 건설을 결정하고 6기의 핵발전소 건설을 계획했던 오스트리아는 완공된 츠벤덴도르프(Zwendendorf) 핵발전소 폐쇄를 1978년 국민투표로 결정했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사고나 1986년 체르노빌 사고보다 먼저 이뤄진 사건이다. 이미 완공되어 가동 절차만 남은 핵발전소를 폐쇄한 오스트리아의 결정은 당시로서도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핵발전소를 운영하다가 탈핵을 한 국가도 있다. 4기의 상업용 핵발전소를 운영하던 이딸리아는 체르노빌 사고 직후인 1987년 국민투표를 통해 탈핵을 결정했다. 이 투표에 따라 이딸리아는 신규 핵발전소 건설 중단은 물론 기존 핵발전소도 폐쇄했다. 이딸리아의 4기 핵발전소 중 가장 나중에 지어진 까오르소(Caorso) 핵발전소는 860MW급으로 그 규모도 컸거니와 1981년 상업 가동을 시작한 최신형 핵발전소였다. 까오르소 핵발전소는 체르노빌 사고 직후인 1986년 가동을 멈추었고 결국 1990년 폐쇄되었다. 이렇게 따져보면 독일은 핵발전소를 운영 중이던 국가를 기준으로 하면 두번째로, 전세계적으로는 세번째로 탈핵 국가가 되었다. 독일은 핵산업을 선도하던 국가 중 하나였다. 독일의 지멘스는 핵산업 초창기부터 산업 전반을 이끌던 기업이었으나, 후꾸시마 사고 직후인 2011년 원자로 사업 자체를 정리했다. 전세계 핵발전소의 절반을 건설한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2017년 파산신청을 하고, 그 여파로 모회사 도시바가 3개 회사로 쪼개지는 등 핵산업계는 대격변을 겪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멘스의 원자로 사업 철수와 독일 정부의 탈핵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앞으로도 탈핵 국가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6기의 핵발전소를 운영하던 대만이 2025년 탈핵을 앞두고 있다. 운영 중이던 4기는 이미 폐쇄했고, 나머지 2기가 2025년까지 폐쇄될 예정이다. 완공을 앞두고 있던 2기도 폐쇄 절차에 돌입했다. 미국이나 프랑스 등 핵발전 선진국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미국은 탈핵을 선언한 적은 없으나 운영 중인 핵발전소 숫자가 계속 줄고 있다. 새로운 핵발전소도 건설하고 있으나 그 증가 속도보다 기존 핵발전소의 폐쇄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이다. 프랑스 역시 현재 운영 중인 56기의 핵발전소 중 44기가 1990년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이들의 폐쇄 시점은 점점 다가오고 있지만, 신규 핵발전소 건설은 단 1기만 이뤄지고 있다.

 

1970년대 몇차례 석유 파동을 거치면서 호황을 겪었던 핵산업은 체르노빌과 후꾸시마 사고를 겪으면서 이제 예전과 같은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2000년대 ‘원자력 르네상스’라는 단어까지 만들며 재부흥을 꾀했으나, 끊임없는 대형사고와 안전성 논란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업계는 2020년대 기후위기 심화와 재생에너지 등 분산형 전원이 확대됨에 따라 과거 핵발전이 강조하던 대용량 전원의 강점을 버리고 소규모 분산형 전원인 소형모듈형 원자로(SMR)를 새로운 마케팅 포인트로 삼고 있다. SMR은 과거 대규모 핵발전소에 비해 크기가 작아서 핵폐기물의 양이나 사고 시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규모만 작아졌을 뿐 결국 핵폐기물은 그대로 발생하며, 피해 범위가 작아질 뿐 사고 위험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과거 발전소 부지 한곳을 찾기도 힘들었는데, 이를 네다섯군데에 나눠서 짓는다면 그 부지를 어떻게 찾을지, 서울처럼 대도시에 핵발전소를 지을 수 있을지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고 있다.

 

기존 핵발전소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 보관 문제, 후꾸시마 사고로 인한 방사능 오염수 방류 문제, 핵발전소 설계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둘러싼 미국과의 분쟁 등 다양한 문제들이 핵발전 확대나 해외 수주를 가로막고 있다. 핵발전은 안전하고 깨끗하며, 기후위기 대안이라고 아무리 언급해도 본질적인 문제를 감출 수는 없는 것이다.

 

1986년 사상 초유의 핵발전소 사고가 체르노빌에서 벌어진 지 벌써 37년이 지났다. 당시의 어린이는 이제 모두 부모 세대가 되었지만, 체르노빌은 여전히 출입 통제구역이다. 체르노빌의 위험은 없어지지 않았다. 전쟁으로 인해 체르노빌 인근 지역이 주요 거점이 되자 전력이 끊어지거나 포격이 이어지는 등 새로운 위협으로 인류 전체를 긴장시키고 있다.

 

4월 26일. 매년 돌아오는 체르노빌 사고일이지만 올해 체르노빌이 특별한 이유는 한때 핵산업을 선도했던 국가 독일이 완전한 탈핵을 이루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고의 교훈을 받아들이는 나라와 애써 교훈을 무시하며 ‘원전 최강국’을 외치는 나라의 차이. 안타깝지만 우리는 현재 이런 차이를 목격하고 있다. 체르노빌 사고일 단 하루만이라도 핵발전이 처한 현실과 문제점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었으면 한다.

 

 

이헌석 /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탈핵신문 운영위원장

2023.4.25.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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