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남북연합의 형성 조건과 과제

 

 

서보혁 徐輔赫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비교평화연구회 회장. 최근 저서로 『분단폭력』(공편), 『한국인의 평화사상Ⅰ·Ⅱ』(공편), 『평화운동』(공저), 『한국 평화학의 탐구』(근간) 등이 있음. suhbh66@hanmail.net

 

 

2018년 끝자락에서 한해를 되돌아보면 한반도가 극적인 변화를 겪어왔음이 새삼 피부에 와닿는다. 전쟁위기에서 대화국면으로 전환했고, 남북의 정상이 그 변화를 주도했으며 남북정상회담 이후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이 열려 소위 비핵평화프로세스가 시작됐다. 그 대화가 이어지면서 남북 간 정치적·군사적 신뢰구축과 북한의 초보적인 비핵화조치로 비핵평화의 길이 시작되었다.

 

 

1. 2018년 한반도: 평화우선주의?

 

남북관계와 통일의 측면에서 볼 때 필자는 세차례 남북정상회담과 함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를 주요 사건으로 꼽는다. 우리가 아무리 ‘과정으로서의 통일’ ‘사실상의 통일’과 같이 그 개념을 확장하더라도 제도 차원의 통일을 무시할 수는 없다. 연락사무소 개소와 잇단 정상회담 개최, 그리고 부문별 실무회담의 개최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여기서 필자는 ‘6·15 공동선언’ 제항을 떠올린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한의 연합제안과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 그로부터 18년 후에 바라보는 그 조항은 선견지명이었는가, 아니면 비현실적인 기대에 불과했는가?

아래에서는 2018년 한반도 정세 변화를 되돌아보고 지속가능한 남북관계 발전을 통일의 관점에서 전망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남북연합을 비교적 상세하게 살펴볼 것인데, 남북연합의 필요성과 그 의의를 검토한 뒤 관련 쟁점 몇가지를 의도적으로 부각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평화가 우선이라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돼 있는 상황에서 통일 논의가 촉발된다면 작은 성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먼저, 2018년 일련의 정세 변화가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가? 한반도 정세라고 할 때 그 범위는 어디에서 어디까지인가? 한반도 정세를 남북관계로 환원해보고, 남북관계를 통일로 등치시켜 이해할 수 있는가? 논자의 관심사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한반도 정세(혹은 문제)라 할 때는 북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의 평화 및 안보 문제와 남북관계를 통칭한다. 한반도 정세가 상위의 범주이고 거기에 남북관계도 포함된다. 이때 한반도 평화문제와 남북관계는 국제문제와 민족문제로 바꿔 표현할 수도 있는데, 이 둘 사이는 맥락에 따라 조화 혹은 갈등 양상을 띨 수 있다. 남북관계는 남북 정부 사이의 상호작용과 관련 이슈를 포괄하지만 거기에는 단기적인 현안과 중장기적인 문제, 곧 통일문제도 포함된다. 그리고 남북관계는 두 정부 간 관심사는 물론 민간 교류협력, 인도주의 문제도 담고 있다. 남북관계에서도 행위주체와 문제영역 두 측면에서 조화 혹은 갈등 양상을 보일 수 있다.

한반도 정세 및 남북관계의 범주를 위와 같이 설정한다면 2018년 한반도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훗날 2018년 국제관계사에서 한반도는 제일의 주목 대상으로 기억될 것이다. 남북·북미·북중 정상회담 등 잇따른 정상외교는 한반도를 전쟁위험지역에서 평화가능지역으로 전환시켰다. 지난 10년간의 역내 긴장완화를 대결관계에 있던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주도한 점도 눈에 띈다. 위에서 설정한 한반도 정세의 주요 범주인 한반도 평화문제와 남북관계, 양 측면에서 크고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양 측면의 변화 자체는 2000년, 2007년과 유사하지만 그 변화가 극적인 반전이라는 점에서 2018년 정세의 특징이 있다. 극적인 반전은 전쟁위기에서 대화국면으로의 전환이라는 점과 분단정전체제 이후 처음으로 남북·북미 정상회담이 연쇄 개최됐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2018년 한반도 정세 변화가 평화문제와 남북관계에서 동시에 발생한 점을 좀더 살펴보자.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을 상기해보면 대주제는 평화, 번영, 통일이다. 이것은 남북의 공동 관심사를 담고 있지만 그들 사이에 일정한 순서를 말해주는 듯하다. 이를테면 관계개선과 전쟁위협 해소를 우선적으로 달성해 공동번영,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이루고, 최종적으로 통일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평양공동선언은 이런 구상을 심화시켜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포괄적인 조치를 제도적 기반하에 추진하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판문점선언 이행 군사합의서’ 채택이다. 2018년 남북 간 일련의 합의 자체가 남북 간 신뢰조성을 증거하지만, 그것을 강화하는 것이 합의 이행이다. 11월 10일 현재까지, 남북은 적지 않은 합의 사항을 이행했다. 군사 분야에서 상호 비방 중단 및 선전수단 철거를 시작으로 통신선 복구,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 지상·해상·공중에서의 적대행위 중단, 공동 유해시범발굴, 한강하구 공동이용수역 조사, 비무장지대 내 GP 철거(11월 말 완료 예정) 등이 이루어졌다. 또 비군사 분야에서는 공동연락사무소 개소를 비롯해 산림, 체육, 보건, 인도주의, 철도·도로 등 다방면에서 걸쳐 협력사업을 위한 준비 논의가 진행됐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두드러진 현상 몇가지를 짚어보자. 먼저 남북 간 접촉이 다방면에서 급속하게 전개됐지만 대부분 정부 주도로 진행됐다. 일부 행사(이산가족상봉, 평양 10·4정상선언 기념행사 등)를 제외하고는 민간의 참여가 저조하다. 심지어 민간의 인도적 지원도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둘째, 남북 간 접촉에 경제 부문은 제외되어 있다. 파상적인 대북제재로 인도적 지원조차 어려운 점을 감안한다면 남북 경제협력의 지난함은 쉽게 예상할 수 있지만, 경제 부문을 언제까지 남북협력의 예외지대로 남겨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을 과연 연내에 착수할 수 있을지가 김정은 위원장의 연내 방남과 함께 주목된다. 셋째, 그럼에도 일련의 정상회담이 선도한 남북 간 교류협력의 모색은 북한과 미국의 신뢰조성과 비핵평화 협상을 촉진했다. 4개항을 담고 있는 6·12북미공동선언은 전문에 양국의 핵심 관심사인 비핵화와 안전보장을 한 문장으로 엮고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상호주의가 아니면 지속가능한 평화우호관계 수립은커녕 적대관계도 청산하기 어렵다.

 

 

2. 남북연합의 의의와 그 조건

 

1980년대 말 냉전 해체의 물결이 유럽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소련의 개혁개방과 미국의 해외주둔군 감축 움직임 속에서 중국과 베트남에서도 민주화운동이 일고 개혁개방정책이 가속화됐다. 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 노선으로 체제유지를 기본노선으로 하면서도 고립을 타파하고 경제회복을 위해 대외협력을 추구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남북 간 일련의 고위급회담이 열려 1991~92년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채택됐다. 남북은 기본합의서에서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정전협정을 준수하면서 “정전상태를 남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