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김재영 金在瑩
1966년 여주 출생. 2000년 『내일을 여는 작가』 제1회 신인상으로 등단. 작품으로 「치어들의 꿈」 「물 밑에 숨은 새」 「자정의 불빛」 등이 있음. kjy0773@hanmail.net
코끼리
시월이 되자 아버지는 한길로 향한 창문에 뻐체우라(네팔 남자들이 몸에 걸치는 직사각형의 천)를 쳤다. 틀이 일그러진 바라지창 틈새로 스며드는 밤안개에 아버지가 심하게 기침을 한 다음날이었다. 지난여름, 장판 밑에서 시작된 곰팡이는 방바닥에 놓인 세간과 벽에 걸린 옷가지로 번져가더니 기어코 아버지의 폐와 내 종아리까지 점령했다. 아버지는 기침을 해댔고 나는 종일 종아리를 긁어댔다. 우리는 슬레이트 지붕 위로 무섭게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창문 반대편에 걸린 달력사진을 바라보는 걸로 지루한 여름을 견뎠다. 투명하고 생생한 햇빛, 푸른 티크나무숲, 눈 덮인 안나푸르나, 잔잔하게 물결치는 페와호, 그리고 사탕수수를 빨아먹으며 웃고 있는 아이들……
나와 아버지는 십여년 전까지 돼지축사로 쓰였다는, 낡은 베니어판 문 다섯 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 건물에서 살고 있다. 쪽마루도 없는데다 처마마저 참새꼬리처럼 짧아 아침이면 이슬에 젖은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가야 한다. 며칠 전 주인아주머니는 3호실 문짝에 ‘빈방 있음’이라고 쓴 누런 갱지를 붙여놓았다. 그 방 앞을 지나던 나는 열린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벽에는 얼룩과 곰팡이와 낙서가 가득했고, 들뜬 황갈색 비닐장판 위로는 뽀얀 먼지가 살얼음처럼 깔려 있었다. 비스듬하게 세워진 낡은 캐비닛 뒤쪽 벽에는 쥐가 들락거릴 정도의 작고 새까만 구멍이 뚫려 있는데, 구멍 주위로 자잘한 시멘트 가루와 흙덩이가 흩어져 있어 마치 상처 부위에 엉겨붙은 피딱지처럼 보였다. 총알에 맞아 쿨럭쿨럭 피를 쏟아내는 심장을 본 것 같은 섬뜩함이 가슴을 오그라뜨렸다.
그 방에 살던 파키스탄 청년 알리는 도둑질을 하고 마을을 떠났다. 강풍이 불던 날 밤의 어둠과 소란을 틈타 한방을 쓰던 비재아저씨의 돈을 훔쳐 달아난 것이다. 비재아저씨는 송금비용을 아끼려고 벽에 구멍을 파서 돈을 숨겨놓았다고 한다. 그날 밤 알리가 돈을 꺼낼 때 나던 조심스런 부스럭거림을 아저씨는 왜 듣지 못했을까. 하긴 이틀 연속 철야근무에 특근까지 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게다가 그날따라 2호실 방글라데시 아주머니의 갓난아기는 밤새 잠을 자지 않으며 보챘고, 저녁 내내 텔레비전 앞에서 시끄럽게 떠들던 1호실 미얀마 아저씨들은 나중엔 취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대기까지 했다. 밤에 일하는 5호실의 러시아 아가씨 마리나는 아예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4호실에서 사는 아버지와 나만이 일찌감치 불을 끄고 어둠속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우리들 역시 머릿속으로는 매우 혼란스러운 생각, 집 나간 어머니 생각에 빠져 있어서 누군가 돈을 훔치느라 바스락대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사실 알리는 비재아저씨 아들의 생명을 훔쳐 도망간 거나 다름없었다. 아저씨는 막내아들의 심장수술 비용을 마련하려고 여기 왔으니까. 이 마을에선 불행이 너무나 흔해 발에 차일 지경이다. 그래서 웬만한 일에는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비재아저씨가 그날 새벽에 내지른, 절망과 분노에 찬 비명소리는 한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요즈음 아저씨는 마당에 있는 늙은 감나무 밑에 앉아 먼산을 바라보곤 한다. 어쩌다 산 정상에 구름이 걸리면 저기 물소가 지나간다,라는 엉뚱한 혼잣말을 하면서. 아무래도 아저씨는 꽤 오래 눈물과 한숨으로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 감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까치밥이 붉은 속을 뚝뚝 떨어뜨려야 겨울을 날 수 있는 것처럼.
너무 다양한 삶을 보아버린 열세살 내 머릿속은 히말라야처럼 굴곡이 패어 있다. 세계지도 속 히말라야는 사실 손가락 한마디 크기다. 하지만 히말라야는 지도로 그릴 수 없는 땅이라고 아버지는 말한다. 깊게 주름진 계곡과 높은 설산을 다니는 것은 세상 전체를 한바퀴 도는 것보다 더 길 거라면서. 학교 과학실에서 본 뇌 모형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간다. 사람은 어려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 뇌가 심하게 주름진다니까 내 나이도 실제보다 빠르게 늘어나고 있을 거다.
3호실이 빠지는 대로 비재아저씨는 우리방으로 오기로 했다. 방세를 아낄 수 있어서다. 아버지는 더이상 집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지 않기로 결심한 걸까. 하긴 어머니는 조선족이니까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다. 적어도 자신에게 수치를 주거나 학대하려 드는 사람들에게 한국말로 대꾸할 수 있을 테지. 그만 때리세요, 왜 욕해요, 돈 주세요 따위 말고도 여러가지 어려운 말들, 선처·멸시·응급실·피해보상, 심지어 밑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느니, 개발에 땀난다는 말까지.
잠에서 깨어나니 로띠(밀가루 빵) 굽는 냄새가 방안 가득하다. 방문 쪽으로 돌아앉아 밀가루 반죽을 방망이로 밀어대는 아버지의 등과 어깨는 물결처럼 출렁인다. 내 발치께의 버너 위에 올려진 주전자에선 버터차 찌아가 쉐쉐 가쁜 숨소리를 낸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아버지의 마흔번째 생일이다. 좀전까지 몰랐는데 달력에 동그라미가 쳐진 걸 보니 분명히 그렇다. 해마다 가을이면 아버지는 띠알 축제(추석 같은 다사잉 명절 15일 뒤에 오는 네팔의 축제)를 마치고 생일날 아침에 고향을 떠나온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되풀이했다. “네팔의 여름 햇빛은 정수리로 내려오고, 가을 햇빛은 가슴에 와닿지. 내가 그곳을 떠난 건 성글성글한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와 심장에 꽂히는 가을이었단다. 심장이 사납게 뛰는 스물여섯……” 어쩌자고 동그라미를 그토록 크게 그려넣었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난 선물도 못할 텐데. 아버지는 어린 나한테까지 용돈을 줄 여유가 없다.
검은 색연필로 여러번 덧그린 커다란 원은 마치 ‘외’처럼 보인다. ‘외’는 미얀마 말로 소용돌이란 뜻이다. 1호실 미얀마 아저씨들은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은 모두 ‘외’에 빠진 거라고 말한다. 나는 아버지의 소용돌이 삶 속에서 태어났으니 새끼외다. 하지만 한국에서, 조선족 어머니 자궁에서 태어났으니 반쪽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학교나 마을에서 외 취급을 받지 않을 거란 착각을 할 정도의 머저리는 아니다. 자리에 누운 채 왼뺨의 광대뼈 부위를 만져본다. 조금 부었는지 손바닥에 그득하게 잡힌다. “너 소영이 짝이지? 이 더러운 자식!” 어제 오후 집으로 돌아오는데 육학년 소영이 오빠가 다짜고짜 내 멱살을 잡았다. 그러고는 똥 닦는 냄새나는 손으로 왜 소영이를 만지느냐고 다그쳤다. 난 그런 적 없다고 했다. 굴러가는 연필을 잡으려다가 실수로 손등을 건드린 거라고 구차한 기분이 들 정도로 차근차근 설명했다. 소영이 오빠는 거짓말 마 새꺄,라며 주먹을 날렸다. 나도 녀석의 옆구리를 한대 갈겨주었다. 쓰러진 녀석의 코에서 피가 나와 옷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손으로 먹어라. 그래야 서둘러 먹지 않고 과식하지 않는단다.”
아버지 말을 못 들은 체하고 나는 젓가락으로 로띠를 찢는다. 과식할 음식이나 있냐고 하려다 참는다. 늬들은 손으로 밥먹고 손으로 밑 닦는다면서? 우엑, 더러워. 놀려대는 반 아이들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밥은 밑 닦는 왼손이 아닌 오른손으로 먹는다. 그 때문에 아버지는 언제나 오른손을 깨끗하게, 귀하게 다룬다. 다만 아버지 손가락에는 등고선처럼 생긴 지문이 없다. 닳아버린 지 오래어서 지장을 찍으면 짓이겨진 꽃물자국 같은 게 묻어난다. 사람들은 지문이 없으니 영혼도 없다고 생각하나보다. 그렇지 않다면 노끈에 꿰인 가자미처럼 취급당할 리가 없다. 야임마, 혹은 씨발놈아,라는 이름의 외국인노동자 한 꿰미. 말링고꽃을 좋아하고 민요 「러썸삐리리」를 구성지게 부르는, 안나푸르나의 추억을 가진 어루준이란 이름의 사람은 처음부터 있지도 않다.
“멍이 들었구나. 어쩌다 그런 거냐?”
오른손으로 로띠를 찢어 입에 넣으면서 묻는 아버지한테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사실이란 중요하지 않아. 아무도 우리 말을 믿어주지 않으니까.”
부정확한 발음으로 한국말을 떠듬거리는 아버지는 어릿광대를 연상시킨다. 말이 어눌하면 누구나 멍청하게 보이는 법이다.
“차라리 맞았다면 나았을 텐데…… 조심해라. 그애가 가만있진 않을 거야.”
“저도 자신 있어요.”
“바보 같은 소리 마. 다음에라도 녀석이 때리거든 피하지 말고 맞아줘.”
아버지는 갑자기 네팔어로 말한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더니 이번엔 턱에 힘을 주며 말도 안되는 네팔 속담을 들이댄다.
“누군가 돌을 던지거든 꽃을 던져주라고 했다.”
“싫어요, 난. 차라리 사람들을 갈겨버리고 말지. 이담에 팔뚝에 힘이 붙으면 절대 아버지처럼 공장일이나 하진 않을 거야. 우리를 업신여기고 괴롭히는 나쁜 놈들을 때려눕히고 발로 차고……”
“야크처럼 앞뒤 재지 않고 돌진하겠다는 거냐?”
“야크가 어떻게 뛰는지 알게 뭐예요. 히말라야 얘기라면 이제 지긋지긋해요.”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에 나도 놀랐다. 하지만 참았던 말들이 멈추지 않고 계속 쏟아져나온다.
“난 여기, 식사동 가구공단밖에 몰라요. 흐릿한 하늘이랑 깨진 벽돌더미, 그리고 냄새나는 바람, 나한텐 이게 전부죠. 게다가 집 나간 바람둥이 엄마까지……”
“입 닥치지 못해!”
뺨이 얼얼하다. 아버지는 거친 숨을 내쉬며 주먹을 쥔 채 부르르 떤다. 볼을 싸쥐고 방에서 뛰쳐나오니 마당에 있던 누군가 너머스테(‘안녕하세요’라는 뜻의 네팔말)하고 인사를 건넨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이슬 젖은 신발을 꿰어 마당을 가로지른다. 수돗가에 떨어져 있던 감 하나가 발밑에서 터져 으깨진다.
뱃속에서 울리는 끄르륵 소리를 들으며 나는 공장이 늘어선 골목으로 들어선다. 메마르고 갈라진 시멘트길, 칙칙한 작업복 차림의 사람들, 공장 지붕 위로 떨어지는 희뿌연 햇빛, 그리고 간간이 사나운 짐승처럼 달려가는 짐 실은 트럭들 속에서 현기증을 느낀다. 학교에서 급식을 하지 않는 토요일엔 늘 이렇다. 아침에 먹은 찌아 한잔으로는 오후까지 견디기가 쉽지 않다. 공장에서 나오는 시끄러운 소음, 페인트 냄새, 가구공장의 옻냄새가 빈속을 메스껍게 한다. 코를 움켜쥔 채 인력 구함, 사채 쓸 분, 빅토리아 관광나이트 따위의 광고지가 덕지덕지 붙은 더러운 공장 벽과 전봇대를 지난다. 염색공장에서 나오는 새빨간 물이 도랑을 붉게 물들이며 흘러간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게 갓 잡은 돼지 피처럼 보인다. 헛구역질이 난다. 입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