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비평혁명의 정치사

 

 

프랜시스 멀헌 Francis Mulhern

영문학자, 문학비평가. 저서 『‘검토’지의 순간』(Moment of ‘Scrutiny’), 『현재는 오래 지속된다』(The Present Lasts a Long Time: Essays in Cultural Politics), 『문화/메타문화』(Culture/Metaculture) 등이 있음.

 

* 이 글의 원제는 “Critical Revolutions”이며, 『뉴 레프트 리뷰』(New Left Review) 2018년 3-4월호에 발표되었다. ⓒ Francis Mulhern 2018 / 한국어판 ⓒ 창비 2018

 

 

옮긴이의 말

이 평론은 북아일랜드 출신의 문학비평가인 프랜시스 멀헌이 조지프 노스(Joseph North)의 최근 저서 Literary Criticism: A Concise Political History(2017)에 대한 서평의 형식으로 쓴 글이다. 노스는 20세기 이후 영미권 문학연구가 혼란에 빠져 있고 좌파 대부분이 이를 오판해왔다는 일견 과격해 보이는 관점에서 현대 문학연구의 정치사를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본다. 멀헌은 이 책의 논점을 정리하고 논평하는 가운데 서구 비평의 위기를 진단하고 이를 극복할 실천적 방안을 모색하는 노스의 논의를 더 진척시키고자 하는데, ‘학문연구’가 문학연구를 지배하게 된 것이 문제이며 비평의 복원이 시급하다는 노스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도 학문연구와 비평의 이분법에는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는 가운데 지금까지의 진보적 문학연구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혁파해나갈 것인지, 그를 위한 문학적·사회적·실천적 조건들은 무엇인지 치밀하게 논증하려고 한다. 멀헌의 구체적인 논지에 대한 동의 여부는 독자의 몫이나, 비평이 기성 학문체제의 일부로 편입되어가면서 빚어지는 문제는 영미권에 국한된 현상은 아닐 것이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는 이 평론이 비평의 자리와 역할을 새롭게 사유하고자 하는 우리 평단의 과제에 의미있는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김영희(KAIST 교수)

 

이런 주장을 생각해보라. 지난 세기 대부분, 70년가량의 오랜 기간, 영미권의 전문적 문학연구의 역사적 자기이해는 근본적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지적 계보들이 왜곡되고 귀중한 인적자원들이 도외시되었으며, 우선순위를 오판하고 제휴관계를 오독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분야의 좌파 대부분이 이 역사적 상황 전체에 대해 잘못된 평가를 내려왔다. 조지프 노스는 그의 저서 『문학비평』에서 이렇게 주장하는데, 이 훔쳐온 제목에서부터 인습타파의 취지가 드러난다. ‘문학비평’은 불과 60년 전(원문에는 ‘ 40년 전’으로 되어 있으나 착오로 보아 바로잡는다 —옮긴이) 신비평(New Criticism)의 두 선도적 주창자가 출간한 ‘약사(略史)’의 제목이었고 지금도 그렇다.1 ‘간략한 정치적 역사’라는 부제에서 천명한 대로 이번 새 책의 다른 점은 ‘정치적’이라는 데 있으며, 따라서 이 책에서 제공하는 설명은 통상적인 지성사의 기준에서는 ‘빈약’하거나 심지어 뼈만 앙상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전략적 역사”를 자임하며, 그 작전지구인 “감수성의 지형”의 “주된 세력선들”(lines of force)을 밝히고자 한다. 이 책의 목적은 발본적 재구축을 염두에 두면서 “지난 세기부터 대다수 영어권의 학술적 문학비평을 지배해온 기본 패러다임들을 개괄적으로 신속하게 살펴보는” 데 있다.2

I. A. 리차즈(Richards)와 존 크로우 랜섬(John Crowe Ransom),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과 이소벨 암스트롱(Isobel Armstrong)에서부터 이브 쎄즈윅(Eve Sedgwick)과 프랑꼬 모레띠(Franco Moretti)에 이르기까지 이 문학적·정치적 풍경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 백년 동안 3세대에 걸쳐 수행된 영미권 문학연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업에 관여한 인물들 반열에 손꼽힌다. 그러나 여기는 아무리 간략하게라도 개별 저작들에 대한 균형 잡힌 논의를 시도할 자리가 아니다. 노스가 거론하는 인물들은 “진정한 분석대상인 더 큰 패러다임들의 편리한 표상들”인데, 이런 표현은 독자들을 무장해제하는 만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노스의 선례를 따라 이 표상적 인물들이 그의 역사적 구도 속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주목할 뿐, 그의 논지의 기본 전제들의 성패와 직결된다고 보이는 한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들 개개인의 작업과 노스의 설명에 대해 더 논의하지 않을 작정이다.

노스는 두개의 담론 구성체와 1920년대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3부의 시퀀스를 식별해낸다. 두 구성체란 그가 말하는 패러다임들로, 즉 ‘학문연구’(scholarship)와 ‘비평’(criticism)이다. 이 중 ‘학문연구’는 충분한 역사적 근거가 있는 명칭이지만, 전문적 학술연구(specialized learning)라는 포괄적 관념과의 그릇된 연관은 떨쳐낼 필요가 있다. ‘학문연구’ 활동의 목표는 새로운 지식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문화에 관한 지식 생산으로서의 문학연구(literary study)”로, 그 계보는 문헌학자 키트리지(George Lyman Kittredge, 1860~ 1941, 하바드대학에 재직하며 문헌학 전통 속에서 셰익스피어, 초서, 민담 등을 연구했다 —옮긴이)와 1910년경 하바드대학에서부터 1980년대 신역사주의 및 그 후속 경향들까지 이어진다.3 이에 비해 ‘비평’은 개입적(interventionist) 실천이다. 그것의 목적은 감수성의 함양으로, 지배적 사회질서에서 자연스럽게 선호되는 것보다 “더 깊은 존재양식”을 열어감으로써 문화에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표상적 인물을 하나 꼽자면 F. R. 리비스(Leavis)일 것이다(또 한명은 노스의 역사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 라이오널 트릴링Lionel Trilling이다). 두 패러다임에는 각기 다양한 내적 편차가 있었고 지금도 있지만, 문학연구의 근본적인 전략적 쟁점은 이 둘 사이의 대립이며, 제1차세계대전 이후 이 학문분야의 여정에서 세 시기를 구분 지어온 것도 바로 이 관계의 가변성이다.

첫번째 시기는 편의상 1914~45년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시기 학문적 문학연구의 지배적 양식은 문헌학이었고, 다시 이것은 명망과 권위를 누리던 고대언어 연구에서 영향을 받았다. 현대토착어 연구 주창자들은 대개 이(이상화된) 학문적 엄밀성의 전범들에 비추어 자신의 제안을 정당화해야 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자본주의의 국제적 위기 국면이어서, 새로이 부상하는 대조적 양식의 주장들이 우호적인 국지적 조건들에 힘입어 공명을 얻기도 했는데, 이 대조적 양식은 문화적으로는 참여적이며 기질적으로는 ‘과학적’이되 이 ‘과학성’은 문헌학적 실증주의의 통상적 절차와는 거리가 멀었다. 1920~30년대에 하나의 학문 형식으로 비평이 탄생했다. 이어서 전후 수십년의 장기 호황기에 대학교육이 크게 팽창하면서 비평이 제도적 정통성을 획득하고 문학연구는 비공식적 공동통치령이 되었다. 마찰이나 간헐적인 소규모 접전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제 학자(scholar)와 비평가는 공존하며 간혹은 혼종적 형태를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대 말경에는 이미 이 케인즈식 질서가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신자유주의가 워싱턴과 런던에서 처음 대내적으로 정치적 승리를 거두며 모든 영역에서 사회적 관계의 시장화를 승인하는 새로운 헤게모니의 부상(浮上)을 알렸고, 이른바 대학의 자율성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1980년대는 일반적으로 ‘이론’(Theory)의 10년으로 기억되니, 새로운 개념과 방법의 열혈 추종자들이 본토의 본거지들을 에워싸거나 때로는 휩쓸고 다니기도 했는데, 대개 프랑스가 원산지인—푸꼬(M. Foucault), 데리다(J. Derrida), 부르디외(P. Bourdieu)가 3폭 제단화(祭壇畵)에 새겨진 세 인물이다—이 개념과 방법들은 새롭게 ‘정치적인’ 학문 실천의 최첨단으로 널리 환영받았다. 그러나 당시의 거대한 변화는 그 성격과 효과에서 완전히 달랐다. 새로 떠오른 패러다임은 각양각색의 “역사주의/맥락주의”적 실천으로, “문화에 관한 지식 생산으로서의 문학연구”의 우선성을 재천명하는 동시에 비평으로서의 문학연구의 소명에 힘을 불어넣었던 특유의 미학적 주장을 철회하였다. 그리고 종국에는 ‘꼼꼼히 읽기’(close reading)라는 핵심 실천도 도전을 받게 된다. 1920년대(혹은 더 오래전) 이후 처음으로 문학연구라는 학문은 그 양식에서 실질적인 단작(單作)체제가 되었다. 학자들이 승리한 것이다.4

 

 

케임브리지 학맥

 

이 역사 시퀀스에 대한 노스의 무대 설정은 간단치가 않고 간단할 수도 없다. 그의 무대배경은 어떨 때는 영국이고 어떨 때는 미국이다. ‘영미권’에 대한 그의 일반화는 뒤로 갈수록 대서양의 서쪽 해안(미국 동부지역 —옮긴이)에서 시작했다가 거기서 끝나든가, 그렇지 않더라도 그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특별히 두드러지는 곳이 하나 있는데, 단순히 ‘표상적인’ 것 이상의 힘을 가시적으로 보여준 그 지역의 두 정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케임브리지는 익히 알려진 대로 이른바 ‘비평혁명’(Critical Revolution)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데, I. A. 리차즈가 맡은 배역은 지금은 그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지적인 면에서 결정적인 혁신가의 역할이다.[5. T. S. 엘리엇(Eliot)은 부록에서만 모습을 드러내는데, 20세기 초 최초의 비평가이자 이후 나타난 비평가들에게 중요한 참조가 된 시인으로 등장할 뿐, 새로운 노선의 창시자로는 사실상 등장하지 않는다. 이 부록은 “원래 각주였지만 나중에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노스는 흐뭇한 어조로 전한다.(

  1. Joseph North, Literary Criticism: A Concise Political History, Cambridge, MA and London 2017; W. K. Wimsatt and Cleanth Brooks, Literary Criticism: A Short History, New York 1957.
  2. North, viii, ix, vii면.
  3. 같은 책 231면.
  4. 같은 책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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